<紫禁城을 지키는 수호신 獅子>



中 國


<第 二 部  歷史>

 3. 中国의 歷史的인 事件 年表


 * 참고 (1)


 1. 원모원인(元謀原人=Yuanmou man or Yuanmou ape man)

 중화인민공화국 운남성(雲南省)의 원모(元謀)에서 발견되었던 중국 최고(最古)의 인류(人類)라고 말해지고 있다.


<운남성 위치도>  

------------------------------------------------------------------------------------------------------


 <개요>

 1965년-운남성 북부 험산(險山)에 있는 원모현(元謀県) 상나방촌(上那蚌村)의 서북(西北) 쪽에 있는 낮은 언덕 위에서 사람의 턱과 앞니가 발견되었다.

 1973년-그 이(齒)가 발견되었던 근처 지층(地層)에서 7개의 석영(石英)으로 만든 석기(石器)와 동물화석(動物化石) 그리고 탄화(炭化)된 불(火) 사용 흔적이 발견되었다.

 1976년 7월 25일-그 화석(化石)들은 고자기측정(古磁氣測定)에 의해서 약 17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단, 50에서 60만 년 전으로 보는 학자도 있음

 그리고 그 이(齒)의 화석(化石)은 그 이면(裏面)의 형상(形狀)으로 추측했을 때,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진출했던 '호모에렉투스'로 생각되고 있으며 '북경원인(北京原人)'보다도 오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의 중국인 또는 동아시아인들의 선조는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참고로 현재의 선조로 추정되는 아프리카인이 탄생되었던 시기는 약 20만 년 전으로 생각되고 있다고 하므로, 역시 그들이 아시아로 진출했던 것은 그로부터도 훨씬 뒤의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2. 남전원인(藍田原人)

 중화인민공화국의 협서성(陝西省)에서 발견되었던 인류(人類).


<협서성 위치도> 


 태령산맥(秦嶺山脈)에 있는 남전현(藍田県)의 '공왕령유적(公王嶺遺跡)'과 '진가와유적(陳家窩遺跡)'에 의해서 구성되는 '남전유적(藍田遺跡)'에서 사람의 두개골(頭蓋骨)과 하악골(下顎骨-아래턱뼈)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두개골은 추정(推定) 약 800cc 정도의 뇌 용량을 가졌던 평균적인 원인(原人) 호모에렉투스의 화석(化石)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그 시기는 약 100만 년 전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또, 그 새로운 지층(地層)으로부터 스크레이퍼(scraper-연마석 等) 등의 석기도 발견되었고, 그리고 그 남전원인(藍田原人)도 북경원인(北京原人) 등과 같이 아시아로 진출은 했었지만, 그러나 자손을 남지지 못하고 절멸(絶滅)되었던 '호모에렉투스'의 일군(一群)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엄밀히 말하자면 현대 인류의 조상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한다.


<남전원인 턱 부분 화석> 


 3. 북경원인(北京原人=Homo erectus pekinensis)

 중화인민공화국 북경시(北京市) 방산현(房山県) 주구점(周口店) 용골산(龍骨山)의 삼림(森林)에서 발견되었던 화석인류.


<1929년에 주구점에서 발견된 최초의 북경원인 두개골(복제)>

<북경시 방산구의 위치도>

<주구점>

 현재는 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의 아종(亞種)으로 취급되고 있으며, 그리고 그 북경원인을 포함했던 호모에렉투스가 살았던 시대는 갱신세(更新世)였다.

 참고: 갱신세는 신생대 제4기의 첫 시기로, 인류가 발생해서 진화한 시기이다. 그리고 그때는 지구가 널리 빙하로 덮여있었기 때문에 몹시 추웠으며, 매머드와 현재의 식물들이 생육하였다.그리고 같은 말로는 플라이스토 世(Pleistocene) 그리고 비슷한 말로는 홍적기 또는 홍적세(洪績世) 또는 최신세(最新世) 등이 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약 180만 년 전에서 16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이다.


"Johan Gunnar Andersson"


 그리고 그 주구점(周口店)의 북경원인유적(北京原人遺跡)은 현재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으며, 그 최초의 발견은 스웨덴의 지질학자였던 요한<Johan Gunnar Andersson. 1874년7월3일-1960년10월29일. 스웨덴의 지질학자, 고고학자, 웁살라(Uppsala)대학 졸업. 중국명은 안특생(安特生)>이 인류(人類)의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이(齒) 화석을 발견했던 것이었다.


<裴文中>

 
 그리고 그 후였던 1929년 12월2일의 조사에서 중국의 고고학자 배문중(裴文中)이 완전한 두개골을 발견했으며,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합계 10 수인(數人) 분(分)의 원인(原人) 뼈가 발굴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중일전쟁이 격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 화석의 조사를 위해서 미국으로 수송하게 되었다지만,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것은 분실되고 말았다.


"Weidenreich, Franz-1873-1948"


 하지만 또 그 전에, 그곳 의학원(醫學院)의 객원해부학교수로 와있었던 독일의 프란츠(Weidenreich, Franz)가 그 상세한 기록과 연구를 남겨두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복제(replica)가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또한 오늘날의 자료가 되고 있다.<그리고 전후(戰後)에도 소수(小數)의 뼈가 그곳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또, 근래까지 그 북경원인(北京原人)이 현생인류(現生人類-아시아인)의 선조(祖先)라고 여겨왔지만, 그러나 현재에는 현대인의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 DNA 계통해석에 의해서 그것은 부정되고 있다. 그리하여 현재 그 북경원인(北京原人)은 아프리카에 기원(起源)을 둔 원인(原人) 중 하나였던 것으로 여기고는 있지만, 그러나 어떤 이유로 나중에 절멸(絶滅)되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리고 또한 그때, 석기(石器)와 노(爐)의 흔적이 함께 발견되었던 것으로 미루어서, 그들이 석기와 불을 사용했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또, 그 근처에서 동물의 뼈들이 발견되었던 것으로 미루어서는, 그들이 화식(火食)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학자도 있다.

 그리고 또한 유력한 설(說)로는, 그들의 뼈들이 산산조각 난 채로 발견되었던 것으로 해서, 그들 간에 식인(食人)의 풍습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하지만 또 그에 대한 반대의견으로는, 그 식흔(食痕)으로 미루어봤을 때, 하이에나 류(類)에 의한 흔적일 것이라는 설(說)도 있다.

 아무튼 그 후에, 남경(南京)사범(師範)대학과 미국의 퍼듀(indiana州 purdue)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그들의 기원은 약 78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며, 약 20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탄생했던 원인(原人)이, 약 100만 년 전 경에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에 도착을 했고(자바 원인), 그들이 다시 북쪽으로 진출했던 것이 바로 그 북경원인(北京原人)이었다고 한다.
 




 <참고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