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一 章

<파라나 강과 그 지류들>
※ 스페인어로 Río Paraná, 포르투갈어로는 Rio Paraná이며, 남아메리카 브라질 중남부를 흐르는 강. 브라질 남동쪽 고원에서 시작하여 팜파스를 지나 라플라타 강으로 흘러든다. 길이는 4,880km.
그리고 또 그가 14세 때에는 그의 아버지가 왜 그 강(江)에 면(面)했던 고도(古都)의 항구(港口)에서 머물게 되었는지에 대한 동기(動機) 같은 것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후에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Argentina共和國의 首都이자, 聯邦區)>에서 세월을 꽤 보냈던 후에, 이윽고 그 역시도 망명자(亡命者)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또 그 몸서리칠 정도로의 서류(書類)들과, 질릴 정도로의 관청(官廳) 출입(出入) 등에 시달리면서 그런 것을 알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극히 단순(單純)한 <로마(Roma)인>들처럼, 단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연하게 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며, 그래서 또 생활 조건이 어느 정도 복잡(複雜) 기괴(奇怪)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그리고 또 그 <로마인>들은 실제로 <스페인어(語)>가 <로마어(語)>에서 생겨났던 것이라고 믿고 있었을 만큼 정말로 단순(單純)한 인간들이었다.
그리고 또 그곳에서 <마치즈모(machismo)> 즉 <남자의 기백(氣魄)> 또는 <남자다움> 또는 <남성(男性)스러움>으로 통용(通用)되던 <남자(男子)의 명예(名譽)>는 <스페인어>로 <미덕(美德)>과 동의어(同義語)였다. 그래서 <용기(勇氣)>라든가 <견인불발(堅忍不拔-굳게 참고, 견뎌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 같은 말은 실제로는 그런 것과 전혀 관계가 없는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그의 아버지도 외국인(外國人)으로서 그 <남자의 명예>란 것을 지키기 위해서 당시 날로 증대(增大)되고 있었던 <파라과이> 국경(國境)의 위험(危險)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그곳으로 갈 결심을 했던 것인지도 몰랐는데, 그것은 또 그때, 그 항구(港口)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아버지의 모습은 바로 그 <견인불발(堅忍不拔)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그때, 그러니까 그와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아버지를 전송하기 위해서 그 항구에 도착했던 것은 그때와 거의 마찬가지로 석양(夕陽)이 내려앉으려고 했을 때였고, 그 후에 두 사람은 시끄러운 남부(南部)의 수도(首都)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때 <정치적인 데모> 때문에 출발이 몇 시간 지연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곳에는 마치 빵가루를 바른 듯했던 화장(化粧) 회칠(灰漆)의 식민지풍의 집들이 강변의 도로가에 줄지어 서있었고, 연인(戀人)들은 벤치에 앉아서 서로 껴안고 있었다. 그리고 달빛을 받아서 반짝이고 있던 <나부(裸婦)의 상(像)>이라거나, 흔해빠진 <아일랜드인>의 이름을 붙였던 어느 제독(提督)의 흉상(胸像), 그리고 청량음료(淸凉飮料) 판매대 위에나 놓일 법했던 아주 크고 잘 익은 어떤 과일 같이 컸던 외등(外燈) 등, 그때까지 그가 전혀 보지 못했거나 알지 못했던 것들이 마치 <평화의 상징>처럼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후에 그는 그곳의 고층빌딩과, 교통장해와, 패트롤카들과, 구급차들의 사이렌소리와, 말에 올라탄 영웅들의 조상(彫像)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졌을 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온 자격(資格) 있는 의사(醫師)라는 이름을 가지고 그 북부(北部)의 작은 마을로 가려고 결심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또 당시, 그 수도(首都)에서의 친구들과 찻집에서 알았던 사람들 그 누구도 그가 왜 그 북부(北部)의 작은 마을로 가려는 지에 대해서 알지를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무턱대고 <그곳은 날씨가 덥다>거나 <습도가 높아서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를 해댔고, 무엇보다 <그런 무료한 곳에서 견뎌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들을 했던 것이다. 물론 <그곳에서는 폭력사건 같은 것도 일어나지 않는 무료한 곳>이란 말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미소(微笑)로만 답을 했을 뿐이었는데, 그것은 또 일단 그런 결심을 한 후에는 그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또 그 미소는 마치 그의 아버지가 희망을 품었을 때 지었던 미소와도 같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또,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헤어진 후, 꽤 긴 시간동안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편지는 단 한통뿐이었다. 그리고 그 봉투에는 <자신과 어머니 두 사람 앞>이라고 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 글자는 <아내와 아들>이라고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식적으로 투함(投函)되어서 왔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아파트의 문 밑 틈으로 누군가 밀어서 넣어져 있었던 것이었고, 그것은 또 그와 그의 어머니가 그곳으로 갔던지 4년째나 되었을 때의 어느 날 저녁, 세 번째로 봤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발견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당시, 그의 어머니는 그런 지나간 영화가 <리바이벌> 되는 것을 놓치는 법이 없었는데, 그것은 또 아마도 그런 옛날 영화나, 거기에 출연하는 옛날의 <스타>들을 보고 있으면, 그 시간만은 내전(內戰)이라거나, 위험(危險) 같은 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또 역시,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었던 <클라크케이블>과 <비비안 리>도 탄환(彈丸)이 날아다니던 그 전화(戰禍) 속에서 용감하게 빠져나오는 훌륭한 모습들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그 편지의 봉투는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고, 겉봉투에는 <직송의뢰(直送依賴)>라는 글자가 함께 쓰여 있었다. 하지만 그 직송(直送)을 했던 사람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으며, 다만 편지를 보냈던 곳이었던 듯 <에스탄시아(estancia-아르헨티나의 온대초원 pampas에 있는 대목장 등, 또는 라틴아메리카나 에스파냐어 권에서의 광대한 목장이나, 농장을 의미함)>라는 고딕체의 글자가 겉봉투에 화려하게 인쇄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안의 편지지도 일반편지지가 아닌, 그냥 선이 그어져 있던 공책을 아무렇게나 찢어서 쓴 것이었다. 그리고 또 그 내용은 항구(港口)에서 헤어졌을 때와 같이 온통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 대충은 또 <사태(事態)는 이제 곧 마무리 될 것이므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는 등의 글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쓴 날짜는 쓰여 있지 않았으며, 그래서 또 그 <희망(希望)>이란 것도 그 편지가 그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모두 끝났던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후, 그의 아버지에 대한 소식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고, 그래서 또 그와 그의 어머니는 그의 아버지가 감옥에 갇혔는지, 아니면 어느 자신들이 모르는 곳에서 사망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었는데, 어쨌든 그 편지의 마지막에는 <스페인 식>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무사히 지내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서 아주 큰 위안(慰安)이다.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버지인 헨리(Henry)로부터...>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