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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경제학
유병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여자, 나이 30에 그렇게 예쁘지도 잘 나가는 직장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매력적이고 당차기에 결혼이 늦어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겨왔다. 또한 나름대로 친구들보다는 재테크를 잘 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백마 탄 왕자님은 아니라도 강아지 몇 마리 거느리며 유유자적하며 노후를 보낼 정도의 남자와는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지금은 벌이도 적도 모아놓은 돈도 적지만 뒤늦게나마 노력하고 있으므로 미래에는 그럭저럭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인생에 한 권이 책이 나타났다. <여자 경제학>. 이 책은 지금까지 그녀가 꿈꾸던 온갖 낙관적인 일이 실제로는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여유를 부리던 그녀를 경악하게 했다.
그래, 경악이다. 경악 [驚愕] [명사] 소스라치게 깜짝 놀람. 이 책을 처음 대했을 때 나는 경악했다. 순식간에 탄탄하게 내 발밑을 지탱하고 있던 땅이 우르르 꺼져 버렸다. 심장이 오그라들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금까지 내가 믿었던 것, 내가 희망했던 것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여자 경제학>은 나처럼 아는 것 쥐뿔도 없으면서 마냥 낙관만 하는 여자들에게 거침 없이 철퇴를 휘둘렀다.
고령화의 충격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치명적일 거라 생각해 봅니다. 남자는 '일 없이 오래 살아야 할 자신의 노후, 자식의 앞날'만 걱정하지만, 여자는 '일 없이 남편보다 오래 살아야 할 자신의 노후'가 더 걱정됩니다. 백마탄 왕자가 한재산 물려주며 왕비처럼 떠받들어 줄 게 아니라면, 여자의 노후 대비는 온전히 여자의 몫입니다. 여자들은 점점 더 결혼이 늦어지고, 여자들은 점점 더 혼자 살고, 여자들은 점점 더 아이를 적게 낳고, 여자들은 점점 더 수명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이혼과 사별도 경제력 있는 남자보다 경제력 없는 여자의 앞날을 더 갈기갈기 찢어놓습니다.
-p6 ; 책머리에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사는 경우도 많고, 살다가 이혼이나 사별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혼한 여성을 모으면 제주도 인구와 비슷하고, 애를 하나씩 데리고 살면 울산시 인구가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중요한 건 '경제력'의 여부다. '화려한 싱글'이어야 '화려한 더블'도 될 수 있는 거라는 거다. 그 뿐인가. 있는 집 여자와 없는 집 여자의 가사 노동의 대가는 천지차이다. 가사 노동이 실제로 돈으로 환산되지는 않지만 있는 집 여자가 받는 월급 봉투와 없는 집 여자가 받은 월급 봉투로 치환하면 바로 답 나온다. 오죽하면 전업주부면서 경제에도 밝지 못하면 '탐관오리'라는 유머도 있을까...
이젠 마냥 낙관은 불가하다. 여자도 경제를 알아야 한다. 아주 잘 알아야 한다. 이 책 뿐만 아니라 여러 재테크 서적들이 말하길, 앞으로 4~7년간 주식이나 부동산에서 화끈한 기회가 온다고 한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에겐 남의 일이 될 뿐이다. IMF 때 바겐세일 나온 주식이나 부동산 사서 돈 번 분들을 몇 알고 있다. 그 분들이 그걸 살 때는 주변 사람들은 직간접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미쳤나봐~. 지금이 어떤 땐데... 지금은 무조건 현금이 최고라고." 그 중의 한 분은 우리 회사 사장님이셨다. 여자분이셨지만 경제에 꽤 밝은 분이셨다. 이래저래 돈을 만들어서 마포에 있던 사무실에서 청담동에 있는 7층짜리 사옥으로 바꾸었다. 시중가의 1/3 가격으로 샀음은 물론이다. 지금은 더 많이 올랐겠지...? 그렇지만 그 때 함께 일하던 언니들은 아직도 그 사장님 밑에서, 그 회사 건물에서 여전히 직원으로 일하고 있을 것이다. 기회를 보지 못하고, 기회가 왔을 때도 살리지 못한 차이로...
아무리 수입이 많아도 제대로 관리하고 불리지 않으면 낭비와 다름없습니다.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 그냥 통장에 넣어둔다고 해 보죠. 월급통장이란 게 원래 이자가 쥐꼬리만하지 않습니까. 연 4퍼센트짜리 정기예금과 비교만 해봐도 그 이자 차이만큼 매달 길바닥에 돈을 뿌리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중략) 어차피 결혼자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수익률 높은 장기상품에 멀리 보고 투자하기는 힘들다고요? 기회비용이라는 잣대로 보면 여러분이 애써 모은 수입 전부를 결혼자금으로 사용하는 것 또한 대단한 낭비입니다. (중략) 차라리 그 돈을 더 큰 돈을 불리기 위한 종자돈으로 사용했다고 해보십시오. 예물을 장만한 데 들어갔던 돈의 기회비용은 해가 갈수록 늘 겁니다.
-p89~90
이건 완전히 내 얘기였다. 정기적금이나 예금 대신 펀드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남보다는 앞서고 있다고 은근히 자부하고 있었는데, 결국 '목적'이 문제였다. 지금까지 내 재테크의 이유는 '결혼자금 마련'에 불과했다. 그렇기 때문에 수익률보다는 안전성에 신경을 더 많이 쓸 수 밖에 없었다. 말로는 수익을 찾아 다닌다고 했지만 한 행동은 정반대였던 것이다. 난 솔로로 살 생각도 없고, 부모에게서 독립해서 살 생각도 없었기에 내 돈으로 '내 집'을 사겠다는 생각은 감히 해 보지 못했다. 목표가 다르니 시작도 다를 수 밖에 없고 결과도 당연히 떨어지는 거다. 이런 점은 또 있었다.
여자들의 '내 가게'와 남자들의 '내 회사'는 언뜻 단어 하나 차이에 불과한 것 같지만 굉장히 큰 차이를 담고 있습니다. 같은 직장생활을 해도 남자들은 'CEO'를 꿈꾸며 일하지만 여자들은 '가게 주인'을 꿈꾸며 일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자신의 업무에서 미래 자기 사업의 아이디어를 이끌어내지만, 여성 직장인은 자신의 업무와 자기 사업을 별개로 생각합니다. 남자들은 '실패할 수도 있지만 전부를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자들은 '전부를 걸면 다 날릴 수 있다'는 생각에 집착합니다.
-p66~67
내 회사, 내 직종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사람과, 그냥 여기서 적당히 돈 좀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사람의 태도는 분명 다를 것이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서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바로 내가 후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너무나 가슴 아픈 자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전부를 걸면 다 날릴 수 있다'는 생각은, 확장시켜 사랑을 하면서도 내가 갖고 있는 아주 안 좋은 측면 중의 하나인데, 이렇게 확 꼬집어 주니 너무 아파 죽겠다!
<여자 경제학>의 마지막 책장을 닫은 후에도 계속 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난 그래도 잘 해왔다고 생각했어.' '너무 무서워.' '근데 이게 정말 진짜야?' '믿을 수 없어!' 등 다양한 소리가 나를 흔들었다. 그래 어쩌면 이 책은 '꼬마 병아리'일 수도 있다. 하늘이 무너진다고 매일매일 떠들고 다니는. 하지만 난 이 책에 너무 많은 부분을 꼬집혔다. 이 책의 메시지들은 내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 들어 후벼 놓았다. 덕분에 나의 자신감 아닌 자만심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래서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발밑이 꺼졌으니, 이제 새로 탄탄한 땅을 찾아 밟고 서면 된다. 내 나이나 내 금전 상황은 이 책에서 말한 위기를 타파하기엔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설사 그렇다해도 무너진 땅 위에 가만히 서 있을 것인가? 주변 지반이 언제 또 무너져 내려 매몰될 줄 알고? 얼른 기어 나와 그래도 나은 곳을 찾아 나서야지!
삶의 위기를 느끼게 해 주는 강한 충격요법으로 나를, 내 삶을 자각하게 해 주는 <여자 경제학>. 모든 여자들이 반드시 읽어야할 필독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