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천마일 - 한비야를 읽었다면 박문수를 읽어라!
박문수 지음 / 이덴슬리벨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참고 참았던 탓에 눈물이 터지자 흔한 말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께서 내 얼굴과 책을 번갈아가며 한참을 쳐다보셨다. <기쁨의 천마일>을 받은, 어느 날 오후 버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아프리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곳이다. 가기 어렵고, 지내기 힘들기 때문에 더욱더 매력적인 모순의 땅. 그래도 아직은 훼손되지 않고 지구상 어디에서고 보기 힘든 자연의 모습이 찬란하게 펼쳐져 있고 때묻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이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병든 사람들과 밀렵으로 희생되는 동물들이 함께 살고 있는 땅이기도 한 아프리카. 그리고 이제 아프리카는, 그런 아프리카를 사랑하며 아프리카에 생을 바친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련하게도 물조차도 소화시킬 수 없게 된몸을 가진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강간을 당해 에이즈에 걸린 소녀의 삶. 자신에게 병을 옮겨 오직 하나뿐인 인생을 망친 그 사내를 원망하고 죽이고도 싶었겠지만 죽어가는 그 와중에도 그 소녀는 무엇을 이루었는지 부처와 같은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녀에게 아무런 원망따윈 없어 보였다.

-p175

 나를 끝내 울게 만든 한 소녀의 죽음 이야기다. 지금 다시 타이핑하느라 읽으면서도 또 다시 눈물을 그렁거리고 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나는 <기쁨의 천마일>을 읽으면서, 그 중에서도 특히 이 부분에서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또 다른 아프리카의 매력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나의 아프리카에는 사람이 없었다. TV 다큐멘터리나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에서 보여 준 드넓은 대지와 포효하는 사자를 비롯한 동물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내가 가고픈 아프리카의 모습은 킬리만자로나 세렝게티로 대변되는 곳이었다. 물론 머리로야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프다거나 기아에 시달린다거나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과 상관 없이 마음이 꿈꾸는 아프리카의 이미지는 늘 사람을 뺀 '자연'이었다. 하지만 이제 <기쁨의 천마일>은 그런 나의 공허한 아프리카에 '사람'의 숨결을 불어 넣었다.

 모든 것을 다 잃고도 상대를 원망하는 대신 넓은 가슴으로 용서하고 떠나는 소녀라든가 한밤중에 갑자기 나타나 공중전화 카드를 살 수 있는 곳을 묻는 이방인 청년에게 휴대폰을 빌릴 수 있는 식당을 소개하고 사라져 버린 누추한 옷차림의 한 남자, 버스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된 사람에게 긴 여행을 잘 하라며 기꺼이 식사를 대접하는 미라클 등 보석처럼 빛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흔히 우리가 '아프리카'하면 떠올리는 빈곤함과 질병에 지친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한쪽에서는 민족끼리 싸우기도 하고 배척하기도 하지만, 물질적으로는 가진 것 없어도 착하고 나눌 줄 아는, 진정으로 기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고통에 더욱더 가슴이 찢어졌다. 간단한 약이 없어서 몸이 붓고 썩어가고 태어날 때부터 질병에 시달리고... 엄마고 아이고 그렇게 죽어가고...

 하지만 그래도 마냥 절망적이지는 않다. 이들을 돕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도 역시 아프리카를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조국, 성별, 소속 단체 등과는 상관 없이 이들은 나누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고 있다. 이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혹은 꼭 아프리카가 아니라도 이 세상 사람들을 돕는 일을 찾고 실천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건, 아직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그 숫자도 지원 물량도 많지 않다는 점이다.(아마 그래서 더 이 책이 한국에서 출판되어야만 했던 게 아닐까 싶다.) 국내에도 못 사는 사람들이 있고 아픈 사람들이 있지만 그 사람들도 돕고 아프리카 같은 오지에서 기아나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도 도왔으면 좋겠다. 우리가 가진 것을 조금만 더 나누면 스러져 가는 생명을 살려 낼 수 있다는 걸 좀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 주었으면...

 그런 것이다. 아프리카 초원 위의 듬직한 바오밥나무라 할지라도 아무도 모르는 병을 앓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바오밥은 어린왕자의 소행성을 대부분 차지하기 이전에 이미 대지를 사랑하며 살다 병들고 죽어간다. 어린왕자는 그러한 바오밥을 제거하기 위해 열심히 그 싹을 제거하고 장미를 심겠지만 사실 장미는 가시를 품은 정말 강한 나무가 된다. 정작 강해보이는 바오밥나무는 사랑과 관심이 없으면 장미보다도 약한 나무였다.

-p162

 당분간은 아프리카에 가겠다는 이야기를 못할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예전처럼 단순한 관광 차원의 아프리카 여행보다는 뭔가 더 뜻깊은 일을 하고 싶어졌다. 아직은 아무 것도 뚜렷한 것은 없지만. 그 대신 내 마음 속에 움트는 무언가가 선명해 질 때까지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해야겠다. 사실 전부터 망설였던 일이지만 <기쁨의 천마일>이 결정적으로 힘을 주었다.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 후원 아이를 맞아 들여야겠다. 조금 벅차긴 하겠지만 소중한 생명 하나를 더 살려 낼 수 있다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은, 현재 아프리카 여행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고 있는 내 친구에게 권해 줄 생각이다. 친구는 이 책에서 나와는 또 다른-혹은 같을 수도 있지만-자신만의 아프리카를 찾아낼테지... 그렇게 이 땅을 기쁨으로 밟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아프리카는, 그리고 세상은 따뜻해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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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mbible 2006-12-23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와 사람... 감동받은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