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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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유미짱~~~ 여기 주사 준비~~~"

어김없이, 주사가 나온다. 크흑, 알고 왔지만 무턱대고 맞는 주사는 아프단 말야. 그래도 일단 맞았다.

"저요, 요즘요, 쉬어도 쉬는 거 같지가 않아요. 자꾸 이런 저런 생각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못 쉬겠어요. 그렇다고 일만 하기엔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요."

주사를 맞자마자 소매를 내리면서, 나는 급하게 내 방문 목적을 꺼내 놓는다. 하지만 책상 맞은 편의 이라부 선생님은 배실배실 웃는 폼이 뭔가 딴 생각을 하는 눈치다.

"그럼 그냥 쉬어. 생각하지 말고."

"그게 안 되니까 찾아왔죠~ 쉬고 있으면 불안해서 생각이 많다니까요?"

"그럼 그냥 일해. 쉬지 말고..."

이라부 선생님은 계속 배실배실 웃고 있다. 내가 남들의 이야기만 듣고 쓸데 없이 이곳에 찾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었다. '아냐, 그래도 책에서는 덕분에 많은 심각한 병을 앓던 사람들이 다 완쾌됐잖아. 뭔가 특별한 방법을 주실 지도 몰라...'

"안 쉬면 힘들어요. 계속 일 못 해요."

"잘 됐네. 완전히 뻗어 버리면 더 이상 아무 생각도 못 할테니...! 그럼 그때는 그냥 쉴 수 있잖아?"

 <공중그네>를 읽고 해 본 상상이다. 만약 내가 이라부 선생님의 병원에 찾아가서 지금 내 상태를 이야기한다면 뭐라고 이야기해 줄까?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하고 궁금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의사 선생님이 정말 계시다면 어디에 계시든 꼭 찾아가서 진료를 받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주변에 의사다운 의사가 없다, 뭐 이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라부 선생님처럼 '마음까지' 고쳐줄 수 있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싶은 것은, 모든 '아픈' 사람들의 꿈일 것이다. 내가 늘 아플 때면 하는 생각이지만, 몸과 마음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더라. 그래서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는 거지! 그러니 몸도 낫게 하고 맘도 낫게 해 줄 선생님이라면 이 세상의 모든 환자들에게 최적의 의사가 아닐까 싶은데...?

 하지만 그 방식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아마 이라부 선생님이라면 정말 나에게 뻗어버리라고 주문할 것 같다. 그리고 아예 편히 한 번 쉬어 보라고 말이다. 근데 생각해 보면, 그 방식도 나쁘지 않다. 아니, 좋은 방법이긴 하다. <카르페 디엠!>에서처럼 심하게 다쳐서 입원하게 되면 자신의 인생을 다시 되돌아 보게 되지 않냔 말이다. 그러다보면 병원 침대에서 크게는 인생을 새로 계획할 수도 있고, 작게는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이렇게 조급해 하는 지, 불안해 하는 지를 찾아낼 수 있을테지.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를 치료'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사처럼 제 3자의 힘을 빌리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것은 뻔하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공중그네>가 가진 매력이다. '이라부'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지닌 '독특한 치료 방법'! 단순히 이들이 치료되었다는 것에 감동받는 게 아니라 이라부의 의도 없는-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유도에 따라 그들 스스로 자신을 바꿔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그 과정이 감동적이고 재미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치 '우리'가 치료되는 것 같으니까... 이 어둡고 험난하고 힘든 자신만의 현실-누구도 쉽게 치료해 줄 수 없는-에서...

 사실 우리가 <공중그네>를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치료받았다'. 요즘은 웃는 걸로 다이어트도 한다고 하고, '웃음'만큼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는데,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는 그 순간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보를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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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개미 박성득의 주식투자 교과서
박성득 지음 / 살림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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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의 목표는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거다. 2년간 펀드로 간접 투자를 해 보니 슬슬 직접 투자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물씬 올라오는 것이다. 그 많은 개미들이 울고 간 '주식'에 말이다. 그래서 그 전에 열심히 공부를 하고자 투자와 관련된 책들,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책들까지도 나름대로는 열심히 보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다 내 손에 잡힌 것이 바로 <슈퍼개미 박성득의 주식투자 교과서>였다. 이 책에 내가 '홀랑' 넘어간 것은 이 문구 단 하나. '15세 횟집소년 100억대 주식부자 되다'. 사실 이게 주식의 묘미다. 잃을 때는 미친 듯이 잃게 되지만, 또 벌면 미친 듯이 벌게 되는 것. 그걸 운이라고 해야 하는 지 노력이라고 해야 하는 지, 아직 해 보지 않은 나는 감히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여하튼 앉은 자리에서 며칠 혹은 하루 사이에 몇 백, 몇 천을 벌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어린 나이에 험하게 시작한 사람이 '현대약품'의 1대 주주가 되었으니 그 사람의 노하우를 다룬 책이라면 분명 주식투자를 위한 필독서임에 틀림 없다고 판단했다.

 

물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난 이 책에서 주식 보다 더 큰 인생을 보게 되었다. 감동을 얻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칙과 신념이 있는 삶은 어디서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로구나. 사업이든, 주식이든... 나는 주식 자체에만 목을 멜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나라는 인간을 좀더 옳고 제대로 살아 있게 만들어야겠다...라고...

 

또 때로는 음식을 하다보면 파리가 들어갈 수도 있다. 한 번은 손님이 파리를 발견하여 지배인을 부른 적이 있었다. 나는 지배인보다 먼저 달려갔다. 손님이 숟가락에 파리를 얹어서 보여주었다. 누가 봐도 그건 파리였다. 그러나 나는 주인으로서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이거 멸치 똥이네요."하고 먹어 버렸다. 그리고는 "그래도 손님께서 기분 나쁘실 테니 새로 차려드리겠습니다."하고 음식을 새로 차려드렸다. 손님도 그 순간 그게 파리라는 걸 알았을 테지만 주인으로서 나의 자세를 보고 놀라고 감동했던 모양이다. 그 이후 그 손님은 우리 가게의 단골 손님이 되었다. 음식 값을 물러주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거기 수반된 불쾌감까지 덜어주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p66

 

이런 경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냥 죄송합니다, 라고 정중하게 인사하고 다시 차려 주거나 돈을 돌려 주는 것으로 끝냈을 테지. 하지만 그 손님이 다시 내 식당에 올까? 아마도 여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닐 것 같다. 난 지금까지 '미안하다'라고만 하면 끝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손님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그것뿐만이 아닌 것이다. 멀쩡히 밥 먹다 생긴 불쾌감, 그것 또한 식당 주인이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일인 것이다. 고객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이 분의 멋진(혹은 위대한) 점은 정말 그 시작이 우리 같은 '개미'였다는 점이다. 이건 금액의 문제가 아니다. '전문가'이냐 아니냐는 것이지. 주식에 대해서 특별한 공부를 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분 자신이 장사를 해 봤기 때문에 주식을 살 때도 같은 원리를 적용시켰을 뿐이란다. 회사를 자기 가게처럼 놓고, 하는 행동이 돈이 벌릴 일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고 그 규모가 어떤 지 생각해 본다면 가치 있는 회사를 판단하는 게 어쩌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분은 '공부'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과일나무와 배우자를 예로 들어 설명을 해 주시는데, 가슴에 비수처럼 와 닿는 말들이 왜 이렇게 많은 지! 주식의 득만 보고 미친 척 직접 투자를 하고 싶소, 라고 감히 나선 나에게 종아리 걷으라며 호통치시는 무서운 훈장님 같이 느껴졌다.

 

다시 과일나무로 돌아가서 과일나무를 사기로 결심했다면 먼저 그 과일나무에 열리는 과일이 탱자인지 밀감인지는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안목은 키워야 한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자기 나무에 밀감이 열린들 그걸 잘 키울 수 있겠는가? 어쩌면 아직 덜 자라 조그마한 밀감을 탱자라고 보고 나무를 베어버릴 지도 모른다. 그 정도 공부도 하지 않고 주식 투자를 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애당초 그만두는 것이 좋다.

-p186

 

늘 좋은 책을 보면 그렇지만, 이 책에 있는 주옥같은 많은 말들, 산 경험에서 나온 진국 같은 말들을 다 적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다. 그렇지만 역시 제일 좋은 방법은, 이 책 <슈퍼개미 박성득의 주식투자 교과서>를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는 것일 것이다. 주식 투자에 뜻이 없더라도, 경제 공부 삼아, 인생 공부 삼아, 혹은 그냥 이 사람은 이런 인생을 살았더라 심심풀이 땅콩 삼아 한 번쯤은 읽어 볼만한 좋은 책이다. 아마 차근차근히 읽어 보면, 왜 내가 이 책에 이렇게 반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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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통
장승욱 지음 / 박영률출판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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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취하는 걸 싫어한다. 꼭지가 돌게 마시면 어느 새 필름이 끊겨 있다. 아니, 차라리 완벽하게 끊겨 있다면 어제 일은 난 모른다고 오리발이라고 내놓아 보겠지만 아침에 깨고 보면 간간이 떠오르는 부끄러운 장면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이대로 깨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니 나이를 먹으면서 드는 생각은 당연히, 이 놈의 치욕스런 술을 끊어야지, 였고. 결국 지금은 완전히 끊지는 못했지만 마신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적은 주량을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술이라는 놈의 위력은 대단해서 아직도 날씨가 '꿀꿀'하거나 좋지 못한 소식을 듣거나 마음이 우울하거나 축하해야할 아주 기쁜 일이 있으면 자동으로 '한 잔' 생각이 나는 것이다. 끝내 인정하긴 싫지만 술, 이 녀석은 나에게 '애증'의 상대인 셈이다.

 

여기, 나는 술을 무진장 사랑하노라, 세상사 인생사 술 먹고 다닌 일을 잡지에 '취생록'이란 제목으로 연재하더니 뒤이어 그 글을 모아 약간의 가감을 거쳐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내 놓은 사내가 있다. 책 이름 하여 <술통>. 쓴 이는, 역시 술을 무진장 좋아하던, 영화 <취화선>의 오원 장승업을 떠올리게 하는 '장승욱'이다.(어쩌면 이름도 이렇게 비슷할까!)

 

그에겐 술로 인한 나와 같이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순간이 없었을까? 없지 않다. 그러나 그는 그것마저도 즐기고 받아 들인다. 그리고 계속 마신다. 이 부분이 그와 나의 차이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차이, 가장 큰 차이는. 나는 그 일들을 잊으려고 애를 쓰지만, 그는 그 일들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맛깔나는 문장으로 솔직하고 상세하게 풀어 놓는다는 것이다.

 

<술통>에는 슬픈 이야기들도 참 많다. '술'을 통해서 자신의 삶과, 자신과 함께 술을 마셨던 사람들의 삶, 자신이 술을 마셨던 장소들의 변천사 등도 함께 그려냈기 때문이다. 술과 함께 즐겼지만, 마셔버린 술처럼 함께 사라져 간 많은 아쉬운 것들... 나는 이 책에서 나의 젊은 날을 보았다. 한 때 작가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고, 별을 보며 작지만 순수한 꿈들을 이야기하고, 비속어를 섞어 가며 세상을 욕하고, 대학이란 혹은 '나'라는 우물 안에 앉아 인생을 논하던 그 시절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져 버린... 그 추억, 그 사람들을... 그리워했다.

 

모든 사라진 것들은 아름답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내가 세월과 함께 마셔 버렸던 그 부끄러웠던 주정의 술들까지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 나는 장승욱이 풍기는 짙은 술냄새에 취해 버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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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랜덤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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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기억이다.(이 말은 예전에 안 모 교수님께 수업시간에 들은 말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잊었지만 그 말은 오래도록 내 기억에 자리하고 있다. 너무나 맞는 말인 것 같아서...) 나이를 먹으면 때로 희미해지기는 하지만, 자신에게 깊이 자욱 남긴 '그 일'을 쉽게 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죽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려고 그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할까...? (<의천도룡기> 중 조민) 상처와 기억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 날을, 그 일을 떠올리면 떠올릴 수록 상처는 욱씬거리고 마음의 화증은 심해져만 간다.

살인범 츠요시의 편지. 우발적인 범행이었지만 결코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해 버린 그는 끊임없이 편지를 쓴다. 그에게 편지는 단순히 소식을 전하는 통신 수단이나 세상과 연결되는 매개체가  아니었다. 그의 편지쓰기는 매번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떠올리며 자신의 상처를 후벼파고 다시 짖이기는 행위나 다름 없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결코 생생하게 잊지 않겠다는... 자신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그리고 세상에 남겨진 츠요시의 동생 나오키. 그는 '살인범의 동생'이란 씻을 수 없는 멍에를 지고 살아가야 한다. 내가 살해한 것도 아닌데, 왜 나에게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하냐고 화를 내고 괴로워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그의 형이 살인범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그는... 그 사실을 받아 들이려고 한다.

이 책에 정답은 없다. 내 마음에도 정답은 없다. 안타까운 두 형제의 삶에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마구 났지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때도 그랬지만, 결국 내가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지, 친구가 되면 지금처럼 그들을 위해서 울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난했든, 세상이 그들을 버렸든 간에 절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치거나 죽게한 그들을 동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편지나 쓰면서 자신들의 행복한 시간 따위를 보내는 걸 감히 허락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츠요시의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모진 세월을 겪어야만 하는 나오키는? 본인의 죄는 아니라지만, 안타깝게도 역시 이 소설속에서처럼 그렇게 살아야 하겠지? 나오키도 역시 자신의 딸 미키에게 상처 입힌 가해자의 부모가 왔을 때 그, 그리고 그들을 용서하지 못했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자신의 일이 되었을 때는 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우리는 흔히 타인에게 인사치레로, 혹은 에둘러 말하기로 대충 위로하거나 잘하라고 응원한다. 그렇지만 정작 그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그처럼 만만한 일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그런 말들이 그들을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래서 히라노 사장의 직설적인 말-자네가 겪고 있는 고난까지도 자네 형이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에 나오키는 더 감동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솔직하고 정곡을 찌르고 있으니까...

가슴이 답답하다. 이런 무거운 주제를, 담백한 문체로 편안하게 풀어낸 작가가, 한편으론 얄밉다. 자신도 찾지 못한 화두를 나에게 던져놓다니... 아니, 그는 벌써 찾은 것인가? 결국 나오키가 노래를 하러 갔으니...?

그런 걸 보면, 결국에는 이런 생각도 든다.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기억조차 희미해져가며 살아가는 어떤 죄 지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 좋겠다고... 적어도 그가 그 기억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깨닫지 못하는 동안에는 괴롭지 않을 테니... 범죄는, 저지른 자에게도, 관계된 살아 남은 모든 자들에게 아픔을 남긴다...

오늘 밤, 모든 상처받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 부디 그들이 망각으로써 마음의 짐을 벗어놓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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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 전12권 세트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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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 교수님들과 함께 중국 동북부 지방으로 문화답사를 떠난 적이 있었다. 시간의 여유가 나자 교수님들은 제일 먼저 신화서점에 가셨는데, 거기서 사 오신 책 중에 <홍루몽>이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한국에는 이걸 제대로 번역한 책이 없어서 중국서 샀다고 하셨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서 중국말로 된 책뿐만 아니라 조선족들(혹은 북한)을 위해 조선어로 번역된 <홍루몽>도 있었던 것이었다. <홍루몽>이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니 뭐니 해도, 결국 우리 학생 중에는 누구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이 없었기에 우린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아직 일정이 많이 남았는데 저 책들을 다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면 교수님 힘들겠다'는 부수적인 생각만하면서 넘겼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홍루몽>이 완역되어 전집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 때의 생각이 나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 올랐다.

 

<홍루몽>을 읽어나가다보니 영화 <음란서생>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반응을 끌기 위해서 야시러운 이야기도 넣고, 적당히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이야기를 끊어내거나 뜬금없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끌어넣으면서 다음 편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내가 시대를 거슬러 그들이 써 내는 소설의 숨어 있는 독자가 된 기분이었다. 중간중간에 독자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재밌고, 심오하고, 우아한 싯구들도 삽입되어 책 안에서 계속 변화하고 진화해가는 이야기가 바로 <홍루몽>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읽어 나가다가 각 장의 맨 마지막 문구 '~는 다음 회를 보시라'에 닿으면, 책에서 몰입되었던 게 제정신이 들어 우습기도 하고 흥미진진할 때는 정말 마음이 급해져서 얼른 책장을 넘기기도 하고... 이 책의 저자인 조설근은 중국 사람이라 아마 우리 조상님도 이 분을 못 만나봤을 테지만 그의 책이 남아서, 이렇게 세대와 시대, 국적을 떠나 그와 나를 연결하고 있다는 생각은, 나에게 책 이상의 감격이었다.

 사실 어렵고 어색한 부분도 있다. 청대의 귀족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자세히 그리고 있는데, 아무리 상세하게 설명을 해 놓아도, 아니 상세하게 설명을 해 놓으면 놓을 수록 그림을 통하지 않고는 그들의 옷차림이나 집의 규모, 모습 같은 것을 잘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의 생활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이상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모습이라, 가끔은 반감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고...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보옥과 금릉십이채를 비롯한 중심 인물들부터, 가끔 한 두번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그들 각각의 인생이 절절하게 그려져 있는 매력은 내가 이 책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돋보기 안경과 오목렌즈를 적절히 배분해서 중심인물들에 대해서 한참 설명하다가 잠시 쉬어가며 그들 주변의 인물들의 삶까지 조명해 보여 주는데 시대가 흘러도 사람들의 삶이란, 그 삶에 있는 희노애락과 속없는 부귀영화의 허망함은 결코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이 차츰 변해가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비 효과'처럼 아주 작은 일이었지만, 그게 지나고 나중에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고, 그 사람이 바뀜으로 인해서 그 주변의 또 다른 사람들, 또 다른 일들이 바뀌고 생겨나고... 결과적으로는 비극으로 치닫고 만다. 처음부터 선하게만, 악하게만 태어난 사람도 있겠지만, 살아가면서 상황이 그를 선한 행동을 하게도, 악한 행동을 하게도 바꿔 놓는다. 그래서 모두가 사랑스럽고 모두가 안타깝고 모두가 슬프고... 나오는 사람 하나하나 그 사람의 속사정을 알게 되니 그들에게 다 감정이 이입된다. 이처럼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데, 모든 등장인물에게 애정이 가는 소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전집으로 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마치 김용의 무협지를 읽어나가듯이,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절대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끝을 보아야만 한다. '~는 다음 회를 보시라'는 말은 마치 마약 같이 나를 휘감는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디 외따로 떨어진 곳에 가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줄창 <홍루몽> 전집을 읽어 보고 싶다는 2007년의 여름 휴가 계획이 저절로 세워져간다. 또한 나는 아직 상해를 가보지 못했는데, 상해에 이 책에 나오는 '대관원'을 재현해 놓은 데가 있단다. 거기도 꼭 가보고 싶다. 그러면 나의 부족한 상상력이 다 채우지 못한 <홍루몽>의 비어 있는 부분들을 환상적으로 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홍학'이라고 홍루몽만 연구하는 학문이 있다던데, 정말 <홍루몽>은 계속 공부하고 계속 읽어야 될 책 같다. 너무 다양한 곳에서 색다른 즐거움과 멋이 숨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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