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통
장승욱 지음 / 박영률출판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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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취하는 걸 싫어한다. 꼭지가 돌게 마시면 어느 새 필름이 끊겨 있다. 아니, 차라리 완벽하게 끊겨 있다면 어제 일은 난 모른다고 오리발이라고 내놓아 보겠지만 아침에 깨고 보면 간간이 떠오르는 부끄러운 장면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이대로 깨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니 나이를 먹으면서 드는 생각은 당연히, 이 놈의 치욕스런 술을 끊어야지, 였고. 결국 지금은 완전히 끊지는 못했지만 마신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적은 주량을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술이라는 놈의 위력은 대단해서 아직도 날씨가 '꿀꿀'하거나 좋지 못한 소식을 듣거나 마음이 우울하거나 축하해야할 아주 기쁜 일이 있으면 자동으로 '한 잔' 생각이 나는 것이다. 끝내 인정하긴 싫지만 술, 이 녀석은 나에게 '애증'의 상대인 셈이다.

 

여기, 나는 술을 무진장 사랑하노라, 세상사 인생사 술 먹고 다닌 일을 잡지에 '취생록'이란 제목으로 연재하더니 뒤이어 그 글을 모아 약간의 가감을 거쳐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내 놓은 사내가 있다. 책 이름 하여 <술통>. 쓴 이는, 역시 술을 무진장 좋아하던, 영화 <취화선>의 오원 장승업을 떠올리게 하는 '장승욱'이다.(어쩌면 이름도 이렇게 비슷할까!)

 

그에겐 술로 인한 나와 같이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순간이 없었을까? 없지 않다. 그러나 그는 그것마저도 즐기고 받아 들인다. 그리고 계속 마신다. 이 부분이 그와 나의 차이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차이, 가장 큰 차이는. 나는 그 일들을 잊으려고 애를 쓰지만, 그는 그 일들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맛깔나는 문장으로 솔직하고 상세하게 풀어 놓는다는 것이다.

 

<술통>에는 슬픈 이야기들도 참 많다. '술'을 통해서 자신의 삶과, 자신과 함께 술을 마셨던 사람들의 삶, 자신이 술을 마셨던 장소들의 변천사 등도 함께 그려냈기 때문이다. 술과 함께 즐겼지만, 마셔버린 술처럼 함께 사라져 간 많은 아쉬운 것들... 나는 이 책에서 나의 젊은 날을 보았다. 한 때 작가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고, 별을 보며 작지만 순수한 꿈들을 이야기하고, 비속어를 섞어 가며 세상을 욕하고, 대학이란 혹은 '나'라는 우물 안에 앉아 인생을 논하던 그 시절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져 버린... 그 추억, 그 사람들을... 그리워했다.

 

모든 사라진 것들은 아름답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내가 세월과 함께 마셔 버렸던 그 부끄러웠던 주정의 술들까지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 나는 장승욱이 풍기는 짙은 술냄새에 취해 버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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