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 전12권 세트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대학 다닐 때 교수님들과 함께 중국 동북부 지방으로 문화답사를 떠난 적이 있었다. 시간의 여유가 나자 교수님들은 제일 먼저 신화서점에 가셨는데, 거기서 사 오신 책 중에 <홍루몽>이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한국에는 이걸 제대로 번역한 책이 없어서 중국서 샀다고 하셨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서 중국말로 된 책뿐만 아니라 조선족들(혹은 북한)을 위해 조선어로 번역된 <홍루몽>도 있었던 것이었다. <홍루몽>이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니 뭐니 해도, 결국 우리 학생 중에는 누구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이 없었기에 우린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아직 일정이 많이 남았는데 저 책들을 다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면 교수님 힘들겠다'는 부수적인 생각만하면서 넘겼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홍루몽>이 완역되어 전집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 때의 생각이 나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 올랐다.

 

<홍루몽>을 읽어나가다보니 영화 <음란서생>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반응을 끌기 위해서 야시러운 이야기도 넣고, 적당히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이야기를 끊어내거나 뜬금없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끌어넣으면서 다음 편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내가 시대를 거슬러 그들이 써 내는 소설의 숨어 있는 독자가 된 기분이었다. 중간중간에 독자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재밌고, 심오하고, 우아한 싯구들도 삽입되어 책 안에서 계속 변화하고 진화해가는 이야기가 바로 <홍루몽>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읽어 나가다가 각 장의 맨 마지막 문구 '~는 다음 회를 보시라'에 닿으면, 책에서 몰입되었던 게 제정신이 들어 우습기도 하고 흥미진진할 때는 정말 마음이 급해져서 얼른 책장을 넘기기도 하고... 이 책의 저자인 조설근은 중국 사람이라 아마 우리 조상님도 이 분을 못 만나봤을 테지만 그의 책이 남아서, 이렇게 세대와 시대, 국적을 떠나 그와 나를 연결하고 있다는 생각은, 나에게 책 이상의 감격이었다.

 사실 어렵고 어색한 부분도 있다. 청대의 귀족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자세히 그리고 있는데, 아무리 상세하게 설명을 해 놓아도, 아니 상세하게 설명을 해 놓으면 놓을 수록 그림을 통하지 않고는 그들의 옷차림이나 집의 규모, 모습 같은 것을 잘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의 생활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이상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모습이라, 가끔은 반감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고...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보옥과 금릉십이채를 비롯한 중심 인물들부터, 가끔 한 두번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그들 각각의 인생이 절절하게 그려져 있는 매력은 내가 이 책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돋보기 안경과 오목렌즈를 적절히 배분해서 중심인물들에 대해서 한참 설명하다가 잠시 쉬어가며 그들 주변의 인물들의 삶까지 조명해 보여 주는데 시대가 흘러도 사람들의 삶이란, 그 삶에 있는 희노애락과 속없는 부귀영화의 허망함은 결코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이 차츰 변해가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비 효과'처럼 아주 작은 일이었지만, 그게 지나고 나중에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고, 그 사람이 바뀜으로 인해서 그 주변의 또 다른 사람들, 또 다른 일들이 바뀌고 생겨나고... 결과적으로는 비극으로 치닫고 만다. 처음부터 선하게만, 악하게만 태어난 사람도 있겠지만, 살아가면서 상황이 그를 선한 행동을 하게도, 악한 행동을 하게도 바꿔 놓는다. 그래서 모두가 사랑스럽고 모두가 안타깝고 모두가 슬프고... 나오는 사람 하나하나 그 사람의 속사정을 알게 되니 그들에게 다 감정이 이입된다. 이처럼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데, 모든 등장인물에게 애정이 가는 소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전집으로 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마치 김용의 무협지를 읽어나가듯이,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절대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끝을 보아야만 한다. '~는 다음 회를 보시라'는 말은 마치 마약 같이 나를 휘감는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디 외따로 떨어진 곳에 가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줄창 <홍루몽> 전집을 읽어 보고 싶다는 2007년의 여름 휴가 계획이 저절로 세워져간다. 또한 나는 아직 상해를 가보지 못했는데, 상해에 이 책에 나오는 '대관원'을 재현해 놓은 데가 있단다. 거기도 꼭 가보고 싶다. 그러면 나의 부족한 상상력이 다 채우지 못한 <홍루몽>의 비어 있는 부분들을 환상적으로 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홍학'이라고 홍루몽만 연구하는 학문이 있다던데, 정말 <홍루몽>은 계속 공부하고 계속 읽어야 될 책 같다. 너무 다양한 곳에서 색다른 즐거움과 멋이 숨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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