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한국사 365
심용환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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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고등학생 때 시험 때문에 국사를 억지로 암기하며 공부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서, '국사=골치 아픈 것'이라는 공식이 생겨버린 나는 한국사와 친해지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최근부터 읽기 시작한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한국사 365>와 함께 말이다.


   이 한국사 책은 '사건, 인물, 장소, 유적·유물, 문화, 학문·철학, 명문장' 이렇게 7개 분야 아래 고대부터 현대에 걸쳐 있었던 역사적 사실 중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내용을 요일별 순서대로 정리해놓았다. 핵심적인 사실을 짧고 굵게 말이다. 그 스펙트럼은 꽤나 방대해서 신석기 시대 유적인 '움집'과 문화재 보존 제도인 '서울미래유산'이 책 속에 함께 존재할 정도다.


   매일 1페이지씩 읽어보고 잠들기로 결심하고 책을 처음 펼친 날, 웬일인지 집중도 잘 되고 머릿속에 굉장히 잘 들어와서 20일 치를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하지만 이렇게 읽는 건, 역시 국사나 역사를 어려워하는 나에게는 부작용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읽기 시작한 후 4일째부터는 더는 하루 20페이지씩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 고등학생 때 국포자(국사를 포기한 자)였던 나는 하루 1페이지씩 매일 접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라 여겨졌다. 더구나 저자도 책 초반에 적어놓았듯이, 요일별 주제를 읽다가 좀 더 알고 싶은 주제는 인터넷에 찾아보거나 관련 서적을 읽어보는 등 그런 식으로 더 깊이 파고들 법한데, 하루에 수십 페이지씩 읽어서는 읽다가 잠이 들었으면 들었지 깊이 더 파고들 기회는 영영 없을 듯 보였다. 그래서 이젠 하루 1페이지씩 읽고 있다(마치 설명서를 무시한 채 가전제품을 다루다가 크게 당한 듯한 기분이 든다. 하하하핫;).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 중 첫 번째는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 국사나 역사를 싫어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국사를 매일 접할 행동 패턴을 만들어줬다는 점이다. '하루 1페이지조차 못 읽어내면 넌 바보 등신이야'라는 모토 아래 별 부담 없이 역사를 접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단순 나열로만 그친 게 아니라 저자의 해석(혹은 현재 역사가들의 새로운 해석)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다는 점 또한 마음에 들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던 역사학자 카(E. H. Carr)의 말마따나 똑같은 역사적 사실을 두고 과거와 현재의 해석이 차이 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하는 점을 본다면, 이왕이면 현재의 관점이 투과된 해석이 있어야 읽는 맛이 더 나지 않을까?



   하지만 저자의 역사적 해석이나 관점에 무조건 동의하는 건 아니다. 이 책을 펼친 첫날, 즉 집중력이 최고조였을 때의 일이다. 13일 차 '민족주의' 주제 속에 저자가 주석처럼 적어놓은 '주제와 관련된 짧은 지식'의 내용 중 일부를 옮겨오면 아래와 같다.


민족주의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머릿속에 있는 위인들의 이름을 적어보는 것이다.

이승만, 김구, 안창호, 전봉준, 김옥균, 김유신, 강감찬, 이순신...

이들은 왜 위인일까?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했기 때문이다.


-본서 21페이지-


   저자가 위인이라고 나열한 인물 중에 가장 첫 번째가 바로 '이승만'이다. 저자는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지금까지 살아오며 -내 주변 환경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확립된 나의 가치관으로 판단해보건대 이승만은 위인이라고 칭하기엔 상당히 어려운 점이 많은 인물이라 생각한다. 전두환보다 더 심했던 다수의 민간인 학살 사건들, 부정 선거와 독재, 친일 몰이 등등... 이승만이 독립운동가로서 세운 공이 어느 정도 있긴 하지만 그는 그 공을 다 덮고도 넘칠 만큼의 나쁜 짓들을 저질렀다(심지어 독립운동가로서의 업적 또한 애매하다고 보는 관점들이 다수 있다).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부정적인 면이 많은 인물을 위인이라고 칭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위와 같은 생각을 적고 있는 나를 방금 자각하며 느낀 건데, 이 책은 나의 역사적 지식을 넓혀주는 것도 모자라 비판적 사고력까지 한층 더 업그레이드해 주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오, 이런 나를 보니 왠지 뿌듯한걸?

   하루 1페이지씩 국사를 정복하며 365번째 주제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 봐야겠다. 아자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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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
짐 오타비아니 지음, 릴랜드 마이릭 그림, 최지원 옮김, 오정근 감수 / 더숲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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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밤, 하늘을 올려다보며 궁금증을 품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저 별들은 다 어떻게 생겨났을까?', '저 별들은 영원히 저렇게 반짝일까?', '우주의 시작은 어땠을까?'. 아이는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밤하늘을 쳐다볼 때마다 가슴이 벅참을 느꼈어요. 이런 습관은 십 대가 되어서도 지속되었고, 학교에 다니게 된 아이는 자연스레 천문학과에 관심이 생겼어요. 밤하늘을 바라보며 우주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었던 아이는 열심히 공부했고, 결국...... 천문학과와는 머나먼 학과를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수학과 물리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아흑).


   누구 얘기냐고요? 네, 바로 제 얘기입니다. 저는 뛰어난 천체물리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이 걸었던 그 길 언저리쯤이라도 걷는다는 건 꿈도 못 꿉니다(아오, 물리! 수학!!). 하지만 천체물리학자로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그의 전기를 담은 그래픽 노블 <호킹>과 같은 책을 읽으며 그런 삶은 어떤 삶인지 향기라도 맡아볼 수 있는 걸 큰 위안으로 삼는군요.


   며칠 전 두 번째 완독을 끝낸 그래픽 노블 <호킹>은 텍스트 위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전기와는 다른 느낌을 주는, 여러모로 매력적인 전기였습니다. 만화적 연출로 표현했을 때 더욱 도드라지게 느껴질 수 있는 서사나 감정선이 돋보였다고나 할까요?



   1942년 1월 8일, 그러니까 갈릴레오가 죽고 300년이 되던 날 영국에서 태어난 스티븐 호킹은 수학과 물리학을 좋아했어요. 호킹은 1959년 17세의 나이에 옥스퍼드 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했고, 1962년부터는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시아마(Dennis Sciama) 교수와 함께 우주론과 일반상대성이론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21살의 나이에 '근위축성측색경화증', 즉 루게릭병을 진단받음과 동시에 2년 남짓 살 수 있을 거라는 시한부 선고까지 듣게 되는데요. 다행히 병의 증세는 서서히 진행되었고, 그 덕분에 호킹은 이론물리학자로서 우주론에 기반한 천체물리학에 관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호킹은 서서히 악화하는 병과 힘겹게 싸우며 2018년 3월 14일(아인슈타인이 태어난 날)에 눈을 감을 때까지 55년 동안 천체물리학계에 엄청난 혁신과 업적을 남겼는데요. 대부분 블랙홀, 빅뱅과 같은 우주론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그중 몇 가지만 꼽아보면 다음과 같아요.


   먼저 호킹은 영국의 수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의 특이점 정리를 우주 전체에 적용해 '특이점과 시공간의 기하학'이란 논문으로 애덤스 상을 받게 됩니다. 이 논문은 쉽게 말해 '빅뱅 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겁니다. 이 논문 다음으로 유명한 게 바로 '호킹 복사' 이론인데, 호킹이 자신의 기존 주장을 전면 철회하며 발표한 이론으로도 알려져 있죠. 당시 학계에는 블랙홀은 강한 중력 때문에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다고 보는 게 정설이었는데요. 호킹은 일반상대성이론에 양자역학을 결합해 진행한 연구 끝에 블랙홀이 복사에너지를 방출한다는 걸 수학적으로 입증했습니다. 그야말로 놀라운 이론이었죠. 이외에도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짐 하틀(James Hartle)과 함께 '무경계 제안'을 발표한 것 또한 유명한데요. 이에 대해 책에서 짧게 언급된 내용과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쉽게 설명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진땀;). '무경계 제안'이란 우주는 초기에 허수 시간이 존재했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방향을 구분할 수가 없어 그 시작과 끝 역시 알 수 없고, 우주는 어떠한 원인이나 이유를 붙일 필요 없이 그냥 존재해왔다는 가설인데요. 이 때문에 특이점을 상정할 필요도 없죠. 허수 시간이기 때문에 빅뱅처럼 딱히 시작(=특이점)이 필요 없으니까요. 이처럼 우주가 특이점 같은 한 점에서 탄생한 것도 아니고 한 점으로 사라질 것도 아닌 다만 '존재'할 뿐이라면, 우주 속에 있는 모든 물질은 무경계 상태로 있는 게 가능하죠. 마치 둥근 구 형태처럼 말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우주'와 관련된 인물이다 보니, 생애와 업적 소개가 다소 길어졌네요. 지루했나요? 하하하. 이 그래픽 노블 <호킹>에서는 천체물리학에 대한 역사가 호킹의 생애 못지않게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는 게 특색인데요. 마치 천체물리학에 대한 입문 서적을 읽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 점이 저는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그의 생애뿐만 아니라 천체물리학의 역사까지 정리해주며 저를 그 열띤 연구 현장 속으로 자연스레 초대해주었으니까요.



   글 초반에 언급했듯 만화로 표현했을 때 더욱 와닿는 서사나 감정선이 몹시 괜찮았는데요. 두 번의 결혼 그리고 이혼과 관련된 사생활은 함축적인 만화적 구성으로 세련되게 표현한 부분이 참 좋았어요. 아마 그림 없이 텍스트로만 이렇게 표현하려고 했다면 그다지 잘 와닿지 않았을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호킹의 말풍선에 이따금 하나씩 보이던 '기울어진 회색 글자'가 그가 1985년 기관지 절개 수술을 하고 음성합성기 '이퀄라이저'를 이용해 기계음으로 말을 하게 되기 직전까지 그 빈도가 점점 높아지는데요. 알고 보니 루게릭병으로 인해 어눌해져 가는 말투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 단어들을 회색 글자로 표현한 게 아니겠어요? 얼마나 기발하다고 느꼈는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무릎을 '탁' 칠 정도로 감탄했지 뭐예요.


   <호킹>을 두 번 읽어보며 확실히 느낀 건데, 방금 말한 디테일한 점들을 포함해 전체 서사적인 면으로 보나 만화적인 연출 면으로 보나 참으로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는 인상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많은 시간을 공들여 말입니다. 하지만 잘 만든 이 책에 단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크기'인데요. 책 크기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이론들을 설명할 때 배경으로 나오는 다이어그램 속 글자들이 한국어로 다 번역되어 있긴 하지만 글자 크기가 워낙 작아서 잘 알아볼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봄 역사상 처음 사진으로 찍힌 블랙홀을 보게 되었을 때, 그 모습을 보고 한참을 감탄하는 와중에 문득 호킹이 떠오르더군요. 그가 살아있었다면 이 사진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해서, 그날 밤하늘을 보며 이렇게 말했어요. "Can You hear me? 블랙홀의 실제 모습이 찍혔어요!"


   아시는 분은 이미 아시겠지만 'Can You hear me?'는 그가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기계음으로 처음 했던 말입니다.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던 호킹이지만, 아마 어디에선가 양자적 상태로 존재하며 제 목소리를 들었을 거라 믿고 싶어요. 밤하늘에 타오르는 별빛처럼 찬란하고 치열했던 그의 전기를 감성적으로 읽어보고픈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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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플래닛 - 그림으로 보는 지구별 패션 100년사 I LOVE 그림책
나타샤 슬리 지음, 신시아 키틀러 그림,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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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유행하는 패션은 뭘까? 이 질문에 대해 답하라고 한다면 나는 자신 있게 '모른다'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꼭 패션 테러리스트라서 자신 있게 모른다고 말했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그리고 자신감이 넘친다고 해서 내가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사실이 딱히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_-).

   솔직히 말해 현재 패션위크마다 내놓는 해외 유명 -사치품- 브랜드들이 어떤 디자인을 내놓고 올해는 어떤 컬러가 유행하는지 나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 패션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현시대에 해마다 쏟아내는 해외 유명 브랜드들의 결과물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현대 패션에 더 이상 '새로운 패션'이라는 게 존재하긴 한가? 죄다 과거 유행했던 패션의 재탕이거나 그냥 대놓고 '레트로'라고 하면서 과거 유행했던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오기 일쑤인데 말이다.


   바야흐로 지금의 유행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입는 것'이라고 본다. 얼마 전 재미있게 읽어보았던 그림책 <패션 플래닛>에도 나오듯, 우리는 이미 100년이 넘는 화려한 패션 역사를 갖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우리들은 과거 패션 피플들이 향유했던 패션의 유산을 이리저리 조합하며 마음껏 누리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금 말한 <패션 플래닛>이라는 흥미로운 그림책은 패션 역사 중에서 괄목할 만큼 뜨거웠던 현장 속으로 나를 초대해 주었다. 개성 넘치는 일러스트와 깨알 같은 글씨의 설명들은 패션 역사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지루하지 않게 충족시켜 주었고, 덕분에 책장을 넘기는 내내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패션 플래닛>을 보면 지구별 패션 100년의 역사에 한 축을 이룰 패션이 잉태된 현장마다 개구쟁이처럼 보이는 두 남녀가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 S곡선 실루엣이 돋보이는 드레스들이 즐비한 1890년대~1910년대의 영국 대저택의 사교계 파티 현장부터 시작해, 요란하고 사치스러운 스코타니(댄스 경연을 하며 화려한 패션을 뽐내던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말)들이 치열하게 춤 실력을 경쟁하는 2000년대 중반의 현장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 스물다섯 곳의 다양한 패션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물씬 뽐내고 있다.


   이 다양한 패션들 중 내가 가장 주목한 현장은 바로 1997년~2000년대 후반에 일본 하라주쿠를 강타했던 '데카로'와 '로리타', '갸루' 스타일. 특히 갸루 패션의 극단을 보여주는 '강구로' 스타일은 지금 인터넷으로 그 스타일을 찾아봐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저게 과연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1970년대 영국 펑크족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더구나 그들에겐 펑크 스피릿이 있지 않았던가. 피부를 오렌지빛이 나도록 검게 그을린 후 그에 대비되도록 눈 화장을 과할 정도로 하얗게 떡칠하고 이에 질세라 입술도 하얗게 칠하면 당신도 요란하고 반항적인 강구로가 될 수 있다(오 마이 갓!). 그 당시 일본에 유행했던 로리타 스타일은 일본 영화로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기에 그리 거부감이 없는데, 강구로 스타일은 진짜...... 뭐 이런 유행은 다신 찾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책 말미에 보면 저자가 간략히 정리한 '연대표'와 더불어 세계 패션 역사의 책갈피 역할을 해준다는 '실루엣'과 신발, 모자, 가방이 시대별로 그 변천사가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 '실루엣'과 '밑단' 그리고 '소매'는 스물다섯 곳의 각 패션 현장마다 그 특징이 텍스트로 정리되어 있을 만큼 패션 역사에서 확실히 책갈피 역할을 맡고 있는 걸로 보인다. 또한 '찾아볼까요?'라는 섹션은 '월리를 찾아라'에서 느꼈던 재미를 소소하게 선사해 준다.

   그러나 책 마지막에 있는 '용어 사전' 페이지는 내가 책을 보는 내내 신경이 쓰였던 부분인데, 왜냐하면 이미 알고 있는 용어라도 별표 표시로 된 옮긴이의 주가 있으면 무조건 봐야 하는 성미를 가진 나에게 있어 별표 표시가 된 용어가 나올 때마다 책 끝 페이지를 계속해서 펴봐야 했던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


   개성 넘치는 그림과 위트 넘치는 설명 덕분에 즐거운 패션 역사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이런 흥미로운 그림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여력이 된다면 이런 그림책이 눈에 띌 때마다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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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작은 아씨들 (1896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디럭스 티파니 민트 에디션) - 합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박지선 외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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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 이건 꼭 소장해야 돼!" 본 순간 저절로 이 말을 내뱉게 했던 책, <초판본 작은 아씨들 (1896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디럭스 티파니 민트 에디션)>!

   그렇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고 읽어본 적 있는 바로 그 책, 19세기 미국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작은 아씨들>이다. 어릴 적 하도 많이 읽어서 표지가 닳다 못해 속지까지 분해돼 책을 잘 두지 않으면 낱장으로 흩어졌던 나의 <작은 아씨들>을 이렇게 고급지게 만나볼 수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아,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감동의 눙물...).


   민트색도 그냥 민트가 아닌 티파니 민트색에, 빛에 반사될 때마다 은은하게 반짝이는 영롱한 은장 속지, 이 두 개의 하모니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뿐인가? 표지가 1896년 오리지널 초판본 디자인인 것도 모자라, 책 속의 일러스트도 1896년에 출간되었던 오리지널 일러스트다! 앤티크 한 느낌과 고급스러운 느낌을 제대로 안겨주는 것이, 내가 그동안 봐왔던 <작은 아씨들> 서적 중 단언컨대 이 책이 럭셔리의 끝판왕이다(튜닝의 끝은 역시 순정!). 같은 출판사에서 '레드 벨벳+금장'으로 나온 버전도 있는데 나는 이 '티파니 민트+은장'이 훨씬 더 괜찮은 것 같다.





   이 책에는 루이자 메이 올콧이 1868년부터 1886년까지 출간했던 총 4편의 <작은 아씨들> 시리즈 중 1편과 2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알다시피 1편과 2편은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로 묶어두는 게 자연스럽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가장 먼저 읽었던 버전은 예쁜 일러스트로 중무장한 편역본의 1편이었는데, 그 후 몇 년 뒤 <작은 아씨들>을 다시 읽었을 때 2편의 이야기도 같이 읽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쉽게도 3편과 4편은 여전히 숙제처럼 남아 있는 미지의 세계이다...(먼 산)


   간만에 펼쳐든 <작은 아씨들>은 내 입가를 미소 짓게 만드는 매력을 간직한 예전 그대로였다. 딸부잣집 마치 가에서 네 명의 자매들이 겪는 성장통과 옆집 로렌스 가의 부잣집 소년 로리와 함께 벌이는 알콩달콩한 해프닝들은 다시 읽어봐도 너무 재미있다. 특히 예나 지금이나 그 맛이 너무도 궁금한 라임피클과 라임피클 사건의 주인공인 에이미는 불쌍하면서도 어쩜 이리 귀여운지! 또한 19세기 미국 남북전쟁이 배경인 만큼 그 시절 여성들이 가진 위치와 인권에 대해 네 자매 중 가장 도드라지게 저항하는 둘째 조의 행동은 지금 보아도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조'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소설 속에서 결국 결혼하는 조와는 다르게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일구어 나가며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노력한 루이자 메이 올콧이야말로 더 당차고 멋진 여성이 아닐는지.


   가난하지만 사랑이 가득한 마치 가족의 가풍 역시 다시 봐도 여전히 부럽다. 네 명의 자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시련을 가져다주는 '가난'은 그들을 힘들게 하긴 하지만 서로에게 의지하며 극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가족애가 더욱 돈독해지는 장치가 되어주기도 한다. 나와 내 가족이 저런 똑같은 상황에 놓여도 과연 저렇게 밝고 꿋꿋하게 극복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곰곰이 빠져있다 보면,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콧이 밝고 따스하며 인도주의적인 가치관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책임감이 강하고 온화하며 네 자매 중 가장 아름답지만 허영기가 좀 있는 첫째 메그, 남성적이면서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작가 지망생 둘째 조,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지만 심성이 착해 늘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셋째 베스, 버릇이 없고 제멋대로인 성격이지만 애교가 많고 예술적 재능을 가진 넷째 에이미. 이렇게 네 자매의 캐릭터가 각각 너무도 입체적이고 분명하다. 작가가 자신을 포함한 실제 자매들에게서 따온 캐릭터들이라서 그런가, 소설 속 네 자매의 캐릭터가 무척 디테일하게 그려져 있어 생동감이 느껴진다. 매력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와 세밀하게 그려진 스토리 때문인지 <작은 아씨들>은 몇 번이나 영화화되었는데, 몇 달 전 개봉한 그레타 거윅 버전의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도 이 네 자매의 캐릭터가 소설 못지않게 잘 그려져 있어서 무척 재미있게 보았다. 혹시 이 멋진 고전을 읽는 것을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영화화된 [작은 아씨들]을 먼저 도전해보길 추천한다.


   글을 끝맺으며 던져보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 한 가지! 이 매력적인 네 명의 자매 중 어린 시절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던 옆집 소년 로리의 마음을 빼앗은 자매는 누구이며, 로리와 결혼하는 자매는 누군지 궁금한가? 뭐라고? 궁금하다고?

   그럼 얼른 <작은 아씨들>을 안 펼쳐 보고 대체 뭐하고 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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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숲에서의 일 년 인생그림책 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지오반니 만나 그림, 정회성 옮김 / 길벗어린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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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 때 처음 읽어보았던 <월든>의 첫인상은, 그저 따분하게 느껴진 책이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유명한 책이라고 하니까 읽긴 읽어본다'라는 생각으로 읽어내려가서 그런지 읽는 둥 마는 둥 하며 책장을 넘겼던, 심심하고 지루한 말들만 잔뜩 늘어놓은 그런 책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제대로 완독했다는 느낌 없이 다 읽었던 그 책은 지금까지 살아오는 내내 잊을만하면 떠오르곤 했습니다. 삶이 갑갑하다고 느껴질 때, 사람이 지긋지긋하다고 느껴질 때, 문명의 이기와 동떨어진 삶을 상상할 때, 그리고 최근 몇 달 동안 '코로나19' 시국 속에서 속속 드러나는 시민의식 없는 사람들의 천태만상을 지켜보며, 또다시 <월든>은 제 머릿속에 불현듯 떠올랐어요. 좋았던 구절 하나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 이 책이 말이죠.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이제는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고 며칠 전부터 강하게 느끼고 있던 와중 이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월든: 숲에서의 일 년>. 이탈리아 안데르센 상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적이 있는 그림 작가 '지오반니 만나'의 일러스트와 함께 <월든>의 2년 조금 넘는 사계절을 1년으로 축소한 편집판을 보고 있으니, 요즘 이리저리 부대끼던 저의 마음이 잠시나마 평온해지는 걸 느꼈어요.



나는 한순간이라도 깊이 있게 살면서

삶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싶었다.

또 스파르타 사람처럼 강인한 태도로 살면서

삶이 아닌 것들을 모두 물리치고 싶었다.


- 본서 9쪽 -



   생태주의자의 효시로 알려진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제대로 자연친화적인 소박한 삶을 지향한다는 건 저는 꿈도 못 꾸겠습니다. 하지만 소로가 문명과는 거리가 먼 숲에 들어갔던 그 마음을 어른이 된 지금의 눈으로 보니 이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꽉 막힌 꼰대들이나 할 법한 말들로만 느껴졌던 소로의 문장들을 지금 다시 읽어보니 단어 하나하나가 진실로 실천적인 가치들과 굳건한 신념 속에서 나왔다는 게 느껴지며,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비로소 가슴에 와닿는군요.





    총 40페이지인 이 그림책을 다 읽는데에, 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간을 들여 이 수려한 그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소로의 문장을 몇 번이나 곱씹으며 음미하느라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흐른 줄도 몰랐어요.

   수채화의 대가인 지오반니 만나 작가의 그림과 함께 본 <월든: 숲에서의 일 년>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용이 좀 더 길었으면 한다는 것! 더 많은 멋진 그림과 더 많이 발췌한 글들로 원작 <월든>의 여운을 일러스트 버전으로 좀 더 많이 느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군요(허허헛).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이 그림책을 매일 밤 읽어주는 부모가 있다면 그건 무척 멋진 일일 것 같아요. 그 아이들은 <월든>을 모르는 다른 아이들보다는 마음의 그릇이 좀 더 넓어져 있을 테니까요. 간만에 멋진 책을 만나 기분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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