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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의 모든 것 - 신비주의, 마법, 타로를 탐구하는 이들을 위한 시각 자료집
피터 포쇼 지음, 서경주 옮김 / 미술문화 / 2024년 7월
평점 :
<오컬트의 모든 것>은 어렸을 적부터 호기심을 가졌던 오컬처, 그러니까 오컬트를 제대로 알고 싶어서 읽어본 책이다. 본서는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 '기초 학문들'에는 '점성술, 연금술, 카발라'가, 2부 '오컬트 철학'에는 '자연 마법, 천체 마법, 의식 마법'이, 3부 '오컬트의 부활'에는 '오컬티즘, 타로, 뉴에이지와 오컬처'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책의 서문에서는 오컬트의 개념과 특징에 대해 아래처럼 말하고 있다.
위로는 하늘, 밑으로는 땅에 관한 이야기이자 신과 인간, 자연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만물의 상호 조화가 존재한다는 하나의 믿음이며 복잡하게 얽힌 창조, 즉 거대한 존재의 사슬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은 천사와 정령의 권능, 이로운 귀신과 해로운 귀신, 동식물과 광물의 속성, 그리고 인간의 잠재력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불가사의하고 경이로운 것에 매료되어 그 비밀을 밝히고 숨겨진 것을 찾으려는 인간의 이야기다.
- 본서 10쪽

본서는 영화 [이터널스 Eternals](2021)에서 스피드스터인 마카리가 그토록 집착하며 찾던 유물이기도 한 '에메랄드 타블렛'에 있는 유명한 텍스트를 서론 첫머리에 인용하며 시작하고 있다. 이 에메랄드 타블렛을 쓴 것으로 알려진 신화적인 현자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는 오컬트 수행의 원조 중 한 사람으로서, 연금술을 비롯한 모든 과학 기술의 창시자로 여겨지고 있다.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하인리히 쿤라트, 엘리파스 레비, 하인리히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 앨리스터 크롤리처럼 헤르메스 역시 책을 읽다 보면 자꾸 만나게 되는데, 이는 그가 오컬트에 끼친 영향이 그만큼 지대하다는 걸 보여준다.
책을 읽다가 머리가 띵- 해지는 구간이 있었는데, 이는 1부 '카발라'의 '상징적 신학' 면모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히브리어 알파벳의 모든 문자는 본래부터 고유한 숫자 값을 가지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 유대교는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방식이 기독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대교는 '텍스트 자체를 재구성하고 변형시켜 개별 문자의 형태와 구성요소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성서라는 자료에서 거의 무한히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히브리어 단어나 문구를 히브리어 알파벳이 가진 문자의 숫자 값을 이용해 계산하는 '게마트리아 Gematria', 두문자어(頭文字語)처럼 문자를 조작하여 글자 수수께끼를 만드는 '노타리콘 Notarikon', 어휘에 들어 있는 문자를 자모의 다양한 순열에 따라 대체하는 '테무라 Temura' 혹은 '체루프 Tseruf' 등 주로 이 세 가지 기법을 이용해 이루어진다. 이 골치 아픈 내용은 2부 '천체 마법'에서도 일부 이어지는데, 이 부분을 읽고 있으면 머릿속이 하얘져서 결국 교수님께 천체 마법은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후 정령을 보는 법과 본초학, 관상학을 배울 수 있는 '자연 마법'이나 '의식 마법' 중 하나인 강령술과 관계 깊은 고에테이아 마법을 더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오컬트의 모든 것>은 '오컬트'라는 학과명 아래에 묶인 다양한 전공과목들의 개념 및 기원, 변천사 등에 관한 핵심 내용을 개괄적으로 정리한 오컬트 개론서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책은 오컬트 철학의 핵심 개념인 4대 원소(흙, 물, 공기, 불)와 오컬트 기본 과학인 점성술, 연금술, 마법을 비롯해 카발라, 타로, 오컬티즘, 뉴에이지와 오컬처, 그리고 여러 오컬트 관련 단체(프리메이슨, 장미십자회, 신지학회, 황금여명회 등등) 등 오컬트에 속한 다양한 요소를 두루두루 살펴보고 있다. 책을 읽으며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 천재 과학자이자 신학자인 아이작 뉴턴, 스위스의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 아일랜드 시인이자 극작가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와 같은 역사 속 저명인사들과 계속 마주치는 게 처음엔 좀 놀라웠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17세기에 와서 연금술과 화학이 분리되고 18세기에 점성술과 천문학이 분리되는 계기가 된 계몽주의 사상의 등장과 과학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오컬트 과학과 철학은 지식인과 예술가에게 혁신적인 개념이자 사상으로 여겨졌으니 당대의 저명한 인물들이 관계되지 않는 게 되레 이상하게 느껴지긴 한다. 오컬트가 부활한 19세기 이후엔 다시 힙한 느낌으로 다가왔을 테니 유명인들이 가만있을 수 없었을 테고 말이다. '궁극적으로 기독교까지 아우르는 종교 철학이자 신플라톤주의, 신비주의 그리고 카발라에 기초를 둔 우주론으로 나타나'는 다형적이고 융합적인 속성을 가진 오컬트 철학에 매료되지 않기가 오히려 더 어렵지 않을까.
이 책을 재미로 보기 위해 펼쳤다면 살짝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오컬트 개론서(!)답게 내용이 딱딱한 편이고, 어색한 번역 투가 다소 있으며, 글이 그림을 보조해 주는 게 아니라 그림이 글을 보조해 주는 성격이 강한 시각 자료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컬트'란 무엇인지 그 개념을 개괄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무척 가치 있는 책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