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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숲에서의 일 년 ㅣ 인생그림책 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지오반니 만나 그림, 정회성 옮김 / 길벗어린이 / 2020년 5월
평점 :
중학생 때 처음 읽어보았던 <월든>의 첫인상은, 그저 따분하게 느껴진 책이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유명한 책이라고 하니까 읽긴 읽어본다'라는 생각으로 읽어내려가서 그런지 읽는 둥 마는 둥 하며 책장을 넘겼던, 심심하고 지루한 말들만 잔뜩 늘어놓은 그런 책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제대로 완독했다는 느낌 없이 다 읽었던 그 책은 지금까지 살아오는 내내 잊을만하면 떠오르곤 했습니다. 삶이 갑갑하다고 느껴질 때, 사람이 지긋지긋하다고 느껴질 때, 문명의 이기와 동떨어진 삶을 상상할 때, 그리고 최근 몇 달 동안 '코로나19' 시국 속에서 속속 드러나는 시민의식 없는 사람들의 천태만상을 지켜보며, 또다시 <월든>은 제 머릿속에 불현듯 떠올랐어요. 좋았던 구절 하나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 이 책이 말이죠.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이제는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고 며칠 전부터 강하게 느끼고 있던 와중 이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월든: 숲에서의 일 년>. 이탈리아 안데르센 상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적이 있는 그림 작가 '지오반니 만나'의 일러스트와 함께 <월든>의 2년 조금 넘는 사계절을 1년으로 축소한 편집판을 보고 있으니, 요즘 이리저리 부대끼던 저의 마음이 잠시나마 평온해지는 걸 느꼈어요.
나는 한순간이라도 깊이 있게 살면서
삶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싶었다.
또 스파르타 사람처럼 강인한 태도로 살면서
삶이 아닌 것들을 모두 물리치고 싶었다.
- 본서 9쪽 -
생태주의자의 효시로 알려진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제대로 자연친화적인 소박한 삶을 지향한다는 건 저는 꿈도 못 꾸겠습니다. 하지만 소로가 문명과는 거리가 먼 숲에 들어갔던 그 마음을 어른이 된 지금의 눈으로 보니 이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꽉 막힌 꼰대들이나 할 법한 말들로만 느껴졌던 소로의 문장들을 지금 다시 읽어보니 단어 하나하나가 진실로 실천적인 가치들과 굳건한 신념 속에서 나왔다는 게 느껴지며,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비로소 가슴에 와닿는군요.

총 40페이지인 이 그림책을 다 읽는데에, 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간을 들여 이 수려한 그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소로의 문장을 몇 번이나 곱씹으며 음미하느라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흐른 줄도 몰랐어요.
수채화의 대가인 지오반니 만나 작가의 그림과 함께 본 <월든: 숲에서의 일 년>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용이 좀 더 길었으면 한다는 것! 더 많은 멋진 그림과 더 많이 발췌한 글들로 원작 <월든>의 여운을 일러스트 버전으로 좀 더 많이 느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군요(허허헛).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이 그림책을 매일 밤 읽어주는 부모가 있다면 그건 무척 멋진 일일 것 같아요. 그 아이들은 <월든>을 모르는 다른 아이들보다는 마음의 그릇이 좀 더 넓어져 있을 테니까요. 간만에 멋진 책을 만나 기분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