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플래닛 - 그림으로 보는 지구별 패션 100년사 I LOVE 그림책
나타샤 슬리 지음, 신시아 키틀러 그림,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현재 유행하는 패션은 뭘까? 이 질문에 대해 답하라고 한다면 나는 자신 있게 '모른다'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꼭 패션 테러리스트라서 자신 있게 모른다고 말했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그리고 자신감이 넘친다고 해서 내가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사실이 딱히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_-).

   솔직히 말해 현재 패션위크마다 내놓는 해외 유명 -사치품- 브랜드들이 어떤 디자인을 내놓고 올해는 어떤 컬러가 유행하는지 나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 패션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현시대에 해마다 쏟아내는 해외 유명 브랜드들의 결과물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현대 패션에 더 이상 '새로운 패션'이라는 게 존재하긴 한가? 죄다 과거 유행했던 패션의 재탕이거나 그냥 대놓고 '레트로'라고 하면서 과거 유행했던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오기 일쑤인데 말이다.


   바야흐로 지금의 유행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입는 것'이라고 본다. 얼마 전 재미있게 읽어보았던 그림책 <패션 플래닛>에도 나오듯, 우리는 이미 100년이 넘는 화려한 패션 역사를 갖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우리들은 과거 패션 피플들이 향유했던 패션의 유산을 이리저리 조합하며 마음껏 누리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금 말한 <패션 플래닛>이라는 흥미로운 그림책은 패션 역사 중에서 괄목할 만큼 뜨거웠던 현장 속으로 나를 초대해 주었다. 개성 넘치는 일러스트와 깨알 같은 글씨의 설명들은 패션 역사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지루하지 않게 충족시켜 주었고, 덕분에 책장을 넘기는 내내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패션 플래닛>을 보면 지구별 패션 100년의 역사에 한 축을 이룰 패션이 잉태된 현장마다 개구쟁이처럼 보이는 두 남녀가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 S곡선 실루엣이 돋보이는 드레스들이 즐비한 1890년대~1910년대의 영국 대저택의 사교계 파티 현장부터 시작해, 요란하고 사치스러운 스코타니(댄스 경연을 하며 화려한 패션을 뽐내던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말)들이 치열하게 춤 실력을 경쟁하는 2000년대 중반의 현장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 스물다섯 곳의 다양한 패션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물씬 뽐내고 있다.


   이 다양한 패션들 중 내가 가장 주목한 현장은 바로 1997년~2000년대 후반에 일본 하라주쿠를 강타했던 '데카로'와 '로리타', '갸루' 스타일. 특히 갸루 패션의 극단을 보여주는 '강구로' 스타일은 지금 인터넷으로 그 스타일을 찾아봐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저게 과연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1970년대 영국 펑크족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더구나 그들에겐 펑크 스피릿이 있지 않았던가. 피부를 오렌지빛이 나도록 검게 그을린 후 그에 대비되도록 눈 화장을 과할 정도로 하얗게 떡칠하고 이에 질세라 입술도 하얗게 칠하면 당신도 요란하고 반항적인 강구로가 될 수 있다(오 마이 갓!). 그 당시 일본에 유행했던 로리타 스타일은 일본 영화로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기에 그리 거부감이 없는데, 강구로 스타일은 진짜...... 뭐 이런 유행은 다신 찾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책 말미에 보면 저자가 간략히 정리한 '연대표'와 더불어 세계 패션 역사의 책갈피 역할을 해준다는 '실루엣'과 신발, 모자, 가방이 시대별로 그 변천사가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 '실루엣'과 '밑단' 그리고 '소매'는 스물다섯 곳의 각 패션 현장마다 그 특징이 텍스트로 정리되어 있을 만큼 패션 역사에서 확실히 책갈피 역할을 맡고 있는 걸로 보인다. 또한 '찾아볼까요?'라는 섹션은 '월리를 찾아라'에서 느꼈던 재미를 소소하게 선사해 준다.

   그러나 책 마지막에 있는 '용어 사전' 페이지는 내가 책을 보는 내내 신경이 쓰였던 부분인데, 왜냐하면 이미 알고 있는 용어라도 별표 표시로 된 옮긴이의 주가 있으면 무조건 봐야 하는 성미를 가진 나에게 있어 별표 표시가 된 용어가 나올 때마다 책 끝 페이지를 계속해서 펴봐야 했던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


   개성 넘치는 그림과 위트 넘치는 설명 덕분에 즐거운 패션 역사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이런 흥미로운 그림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여력이 된다면 이런 그림책이 눈에 띌 때마다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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