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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돈의 지도책 - 세계 경제를 읽는 데이터 지리학
다리우시 보이치크 지음, 제임스 체셔.올리버 우버티 그림, 윤종은 옮김 / 윌북 / 2025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920년 독일 경제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돈을 경제적 존재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무기로 묘사했다. 우리가 경제적 존재로서의 삶을 이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싸우려면 돈과 금융을 이해해야 한다. (...)
금융 시스템 안에서 날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시급이나 월급, 보너스로 측정 가능한 노동이 된다. 우리가 사는 집은 세금과 유지비가 부과되는 부동산이 된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은 재정적 가치와 비용 편익 분석에 따라 보존과 소멸이 정해지는 자산 집합이 된다. 우리의 삶은 자산과 부채로 이루어진 장부가 된다. 시간은 우리가 벌어들이고 갚아야 할 이자를 계산함에 따라 그 자체로 재정적 가치를 가진다. 미래는 보험을 비롯한 금융 위험 관리 기법을 활용해 금융 위험과 수익을 계산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된다.
- 본서 17쪽 -
<눈에 보이지 않는 돈의 지도책>의 저자들은 눈에 당장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겨냥해서 이 책을 만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돈의 흐름을 시각화해서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경제적 존재로서의 삶을 이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싸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게 말이다. 부자가 되는 것에 관심 없고 주식이나 투자에 관심이 없더라도 돈과 금융의 특징이나 흐름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건 그래서이다. 제대로 알고 있지 않으면 돈에 눈이 먼 사기꾼이나 끝없는 욕망으로 무장한 대기업, 기득권자에게 뒤통수 맞기 십상이니까. 그리고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를 초래한 사람들보다는 가장 취약한 계층과 지역이 피해를 보기 마련임으로.
전작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의 저자 제임스 체셔와 올리버 우버티는 옥스퍼드대학교 지리환경대학원 국제연구팀의 수장 다리우시 보이치크와 손을 잡고 보이지 않는 돈의 흐름과 금융 시장을 다양한 그림과 그래픽으로 시각화해서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갈수록 심각해지는 빈부격차 및 불평등, 환경오염과 같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라도 금융의 패턴과 영향을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방식으로 지도화·시각화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훌륭한 역할을 해낸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먼저 이 책은 '1장 역사와 지리'에서 돈과 금융의 기원과 관련 역사를 간략하게 짚어본 후, 2장부터 마지막 8장까지 '자산과 시장, 투자자와 투자, 중개와 기술, 도시와 중심지, 버블과 위기, 규제와 거버넌스, 사회와 환경'이라는 주제로 나누어 금융의 여러 면면을 다루고 있다. 다양한 주제 속에서 저자들은 현대 자본주의 속 금융의 민낯과 불평등으로 대표되는 불편한 진실을 정리해서 패턴으로 시각화해 보여주는 한편,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 자본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지 끊임없이 자문하게 한다.
시골의 예금자는 자신이 은행가에게 돈을 맡기며, 은행가가 대출을 내줄 때는 그가 알고 지내는 개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시골 사람은 은행가가 자신의 예금을 런던의 증권업자 손에 맡기며, 자신과 은행가 모두 증권업자의 사업에 전혀 간섭할 수 없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 본서 38쪽, 카를 마르크스 -
책장을 넘길 때마다 여러 가지 그림과 도형으로 다양하게 표현한 지도와 인포그래픽이 우릴 반긴다. 창의적으로 꾸민 그래픽으로 빅데이터 속 숫자를 시각화해 돈과 금융의 패턴을 기발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가시적인 형태로 이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볼 수 있게 해준다. 빅데이터와 지도를 접목하면 이렇게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음을 읽는 내내 느낀 놀라운 책이다.
마지막 장까지 다 넘긴 지금 돌이켜보니 어느 페이지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든 챕터마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가득했다. 특히 목차에서 가장 덜 재미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4장 중개와 기술'에 흥미를 느낄만한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다는 점은 의외였다. 4장의 '빠르게, 더 빠르게' 편을 보면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의 데이터센터 사이에 조금이라도 더 빠른 신호 전송을 위해 레이저 장비를 설치했는데, 이 장비의 렌즈에 새똥이 들러붙지 않도록 코팅하는 데만 무려 1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욕망덩어리 그 자체인 증권가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게 씁쓸하다. '6장 버블과 위기'에서 언급되고 있듯, 금융 위기를 일으키는 진짜 범인은 공격적이고 투기적인 거래 행위에 보상을 주는 금융 시스템 그 자체이고, 이런 썩은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금융 위기는 언제나 되풀이될 거라는 게 이 세계의 현실이다.
책을 읽는 동안 이런 문제의식을 계속 가지고 봐서 그런가, 가장 기억에 남는 지도는 5장의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이다. 세계의 (돈)세탁소인 영국, 그중에서도 국제 금융중심지로 유명한 런던에는 역외 관할권과 조세회피지에 등록된 해외 부유층의 고가 부동산이 많은데, 이 '오프쇼어(역외) 런던'의 실태를 아름다운 산호섬들의 무리로 빗대어 표현해 놓았다. 이 지도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아주 그냥 영롱하다 못해 찬연하여 차마 계속 눈 뜨고 볼 수가 없을 지경이다.

숙련된 투자의 사회적 목표는 우리의 미래를 뒤덮은 시간과 무지의 어둠을 물리치는 데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숙련된 투자자들이 실제로 추구하는 개인적인 목표는 미국인들의 기막힌 표현대로 '총이 울리기 전에 출발'해서 일반 대중보다 앞서 나가고, 조악하고 가치가 떨어지는 동전을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 본서 40쪽, 존 메이너드 케인스 -
주식시장은 큰손들이 짜고 치는 거대한 도박판이라는 가능성은 2021년 게임스톱 주가 폭등 사건을 그려낸 2장의 '월가에 한 방을'과 4장의 '시장을 장악한 기관들'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수많은 금융 위기 속에서도 외환시장에서 거래되는 통화의 종류와 거래 장소는 놀라울 정도로 변화가 적다는 점은 2장의 '변하지 않는 통화'에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국제 금융 서비스 거래의 지형은 별다른 변화 없이 미국이 지배하고 있음은 2장의 '한결같은 패턴'을 보면 알 수 있다. 책을 읽기 전엔 이 책을 읽고 나면 거시경제의 흐름을 알 수 있어서 세계를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막상 눈으로 직접 보고 나니 오히려 모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대 자본주의 세계가 돌아가는 꼴이 우스우면서도 무섭다. 책을 읽기 전부터 내가 갖고 있던 견해가 더욱 굳혀졌다고나 할까. 소시민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초부유층과 많은 기업들이 정신 차리지 않는 한 이 세계는 미래가 없겠다는 생각 말이다. 자본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은 이젠 일부가 아닌 모든 사람이 고심해 봐야 할 중대한 문제로 직면해 있다. 몇십 년 후 세계가 디스토피아로 변해 있을지 지금보다 나아져 있을지는 현재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