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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화의 비밀 - 건축과 예술의 만남, 그 안에 숨겨진 세계의 걸작들
캐서린 매코맥 지음, 김하니 옮김 / 아르카디아 / 2025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참으로 어수선하기 그지없는 데다 시름 또한 많은 2024년의 12월을 보내왔다. 요즘의 나는 혼란스러운 이 시국을 잠시 잊고, 머리를 식히고 눈을 호강하며 마음을 채워줄 창조적인 무언가가 너무도 필요했다. 답답한 마음에 단순히 하늘을 올려다볼 때 느낄 수 있는 감각보다 좀 더 창조성을 띤 무언가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천장화의 비밀》을 읽었다.
저자 캐서린 맥코맥은 전 세계 40여 곳의 미려한 천장화를 그냥 모아놓은 게 아니라 '종교, 문화, 권력, 정치' 이렇게 네 가지 주제로 나누어 실어놓았다. 바꿔 말하면, 역사를 통틀어 복제가 가장 많이 된 종교 이미지 중 하나이자 '천장화' 하면 가장 먼저 딱 떠오르는 그림인 로마 시스티나 예배당의 <아담의 창조>와 같은 종교 천장화만 수록해 놓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천장화가 그려지는 캔버스인 '천장'이 가진 위치적 특성상 이 책에 실린 작품의 상당수는 종교와 관련이 있긴 하다. 책을 펼치면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가 그리는 내내 "살아있는 지옥에 갇혀 지내는 고문"이라고 표현했던 시스티나 천장화가 있는 이탈리아 외에 프랑스, 스페인, 영국, 체코, 러시아 등을 포함한 유럽의 천장화뿐만 아니라 에티오피아, 이란, 일본, 인도, 쿠바, 멕시코, 미국 등 세계 곳곳의 천장화를 큰 도판으로 만나볼 수 있는데, 경이로운 천장화를 자리에 편하게 앉아 구경하는 즐거움이 참으로 쏠쏠하다.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면 온몸의 감각이 사라지면서
별의 시간 속으로 초월하고 필멸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 본서 9쪽

책에 수록된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천장화를 좀 더 극적으로, 더욱 화려하게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다양한 기법 및 장식법이 나온다. 천장화를 말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소토-인-수' 기법부터 '콰드로 리포르타토', '콰드라투라', '트롱프-뢰유', 로코코 특유의 장식인 '로카이유', 기괴한 '그로테스크' 장식 등 화가들의 실험정신과 창의력이 돋보이는 여러 가지 기법이 소개되어 있다. 한편 기독교와 달리 우상숭배를 우려해 그 어떠한 형태로도 신을 묘사하지 않는 이슬람교는 '무까르나스' 기법, 고대 로마제국의 모자이크 기법인 '오푸스 세크틸레', '이즈니크 타일'로 대표되는 세라믹 타일 디자인, '하프트-랑기' 기법, 망가니즈 퍼플 안료로 윤곽선을 칠하는 기법 등을 사용해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문양을 반복해서 천장을 꾸밈으로써 복잡하고 화려한 우주 창조의 신비 그 자체를 표현했다. 흥미롭게도 기독교 이념과 이슬람 이념이 적절히 공존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작품도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곡선형의 기하학적인 형태를 적용한 건축으로 유명한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이에 해당한다.
이렇게 다양한 기법 중 이것 하나만 알고 있어도 "천장화 좀 보셨네요?"라고 들을 수 있는 기법이 있다. 그건 바로 '소토-인-수(sotto-in-su)'! 이탈리아어로 '아래에서 위쪽으로'라는 뜻의 '소토-인-수'는 그림 속 인물들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 효과를 주기 위해서 극단적으로 단축해서 표현하는 기법을 말한다. 내가 천장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기법이자, 이렇게 묘사된 작품을 보기 위해서 천장화를 찾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기법이기도 하다. 이 '소토-인-수'와 평평한 천장을 돔처럼 보이게 착시 효과를 일으켜 마치 천장이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콰드라투라', 실제라고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하는 기법인 '트롱프-뢰유', 이 세 가지 기법이 만나면 내가 천장화에 기대하는 그 가슴 벅찬 느낌의 그림이 완성된다. 끊임없이 확장하며 하늘과 우주를 넘어 미지의 다른 세계까지 무한히 뻗어나가는 것 같은, 초월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 말이다. 이 세 가지 기법이 잘 표현된 작품으로는 베네치아에 있는 산 판탈론 성당의 천장화 <성 판탈레오네의 순교와 신격화>, 이탈리아 만토바에 있는 테 궁전의 '거인들의 방' 천장화, 로마에 있는 바르베리니 궁전의 <신의 섭리에 관한 알레고리>를 꼽을 수 있다.

한 쌍의 남녀가 서로를 향해 팔을 뻗는다. 내면에서 흘러나온 황금색 빛이 둘을 하나로 포옹한다. 은하수처럼 우주의 에너지를 담은 황금빛이 리듬을 만들며 그들을 둘러싸고 천장을 가로질러 벽 아래로 울려 퍼진다. 천장 아래에는 물이 흐르는 분수를 중심으로 약 500종이 넘는 식물들이 거대한 색유리 천장을 통해 스며든 형형색색의 빛줄기를 만끽하고 있다.
이 식물원에서 빛은 영혼의 메타포이며 물질인 유리를 통과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영혼의 초월성을 반영한다.
- 멕시코 톨루카, 코스모비트랄 식물원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코스모비트랄>, 레오폴도 플로레스
저자의 위트 넘치는 글솜씨 덕에 그림 보는 재미와 더불어 읽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는 《천장화의 비밀》에는 위에 언급한 경이롭고 장엄한 작품 외에도 특이한 작품들 또한 여럿 실려 있다. 스페인의 달리 극장-박물관의 <바람의 궁전> 작품에선 살바도르 달리와 그의 아내 갈라의 거대한 발바닥을 볼 수 있고, 이탈리아 키에리카티 궁전에서는 아폴론의 엉덩이와 성기뿐만 아니라 네 마리 말들의 아랫도리까지 그려 넣어 '소토-인-수' 기법을 외설적으로 비튼 민망한 천장화도 볼 수 있다. 또한 벨기에 브뤼셀 왕궁의 거울의 방에서는 무지갯빛 녹색으로 다채롭게 빛나는 160만여 개의 보석풍뎅이 겉날개로 만든 얀 파브르의 작품 <쾌락의 천국>을 만나볼 수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책을 다 읽은 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하나 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도저히 하나만 꼽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작품으로 가득하다. 잔혹한 2024년 12월을 보내는 동안 나는 이 책을 틈틈이 읽으며 현실의 시름을 잠시나마 덜어볼 수 있었다. 그런 연유로 이 책은 환상적이었을뿐만 아니라 무척 고마운 책으로도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