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책사 - 한국사의 명암을 가른 관계의 힘
김준태 지음 / 믹스커피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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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책사』- 왕의 이름 뒤에 남겨진 두 사람의 역사,혼자 빛난 이름보다, 그 곁을 먼저 보게 된 시간


✍🏻 저자 : 김준태 

🏢 출판사 : 믹스커피



🎯 역사책을 읽을 때 나는 늘 왕의 결단이나 장수의 승리에 먼저 눈을 두었다. 한 시대가 바뀐 이유도 결국 뛰어난 한 사람에게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왕과 책사』는 그 익숙한 시선을 왕의 옆자리로 옮겨 놓는다. 누가 충언했고, 왕은 왜 그 말을 들었으며, 어떤 순간에는 왜 끝내 외면했는지. 사람을 알아보는 일과 믿고 맡기는 일이 전혀 다른 문제라는 생각 앞에서 자꾸 멈추게 된다.



🔖 고국천왕이 경력도 배경도 없던 을파소를 최고위직에 앉힌 대목은 흔히 말하는 ‘파격 인사’보다 훨씬 위태로운 선택으로 읽혔다. 왕은 사람을 뽑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가 능력을 펼칠 자리와 권한까지 내어 주었다. “그대의 추천이 없었더라면 내가 어찌 을파소를 얻었겠는가”라는 말도 남는다. 추천한 안류에게까지 상을 내린 장면에서 나는 인재를 얻는 일이 개인의 안목이 아니라 사람을 찾게 만드는 분위기와 연결된다는 점을 보았다. 좋은 사람을 데려오는 것보다, 그가 떠나지 않을 자리를 만드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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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왕과 최영의 관계는 신뢰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우왕은 최영을 믿고 의지했지만, 나라를 위해 쓰기보다 자신을 지키는 방패로 곁에 묶어 두었다. 책은 이를 “명검을 호신용 칼로 썼다”고 표현한다. 이 문장을 읽으며 능력 있는 사람을 가까이 두었다는 사실만으로 리더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최영 역시 명령을 따르는 충성에 머물렀다. 서로를 믿었으나, 그 믿음이 더 나은 판단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관계에는 친밀함만이 아니라 방향도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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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서의 이야기는 뛰어난 이인자가 모든 책임을 떠맡을 때 생기는 균열을 드러낸다. 그는 단종을 지키려 했지만 자신이 사라진 뒤에도 왕을 보호할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 “이인자의 역할은 자신이 없어도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라는 대목이 유난히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혼자 해내는 사람은 처음에는 든든해 보인다. 다만 그 사람에게 일이 몰리고 판단이 집중될수록 주변은 점점 움직이지 않게 된다. 나 역시 누군가의 유능함에 기대면서 그 부재를 생각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는지, 조금 불편하게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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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과 김홍집의 관계에서는 마음이 가장 무거워졌다. 고종은 난국을 헤쳐 갈 사람으로 김홍집을 불러 세웠지만, 힘을 실어 주지 않았고 여론이 나빠지자 책임까지 떠넘겼다. “죽었으면 죽었지, 역적이라는 이름을 안고 도망갈 수 없다”는 김홍집의 말은 충성이라 부르기엔 너무 처연했다. 그는 자신의 끝을 짐작하면서도 자리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희생을 감당한 사람의 진심과 그 희생을 이용한 권력자의 계산을 같은 충성의 이야기로 묶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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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과 책사』는 왕의 업적을 다시 평가하기보다, 그 업적과 실패가 어떤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살핀다. 김준태는 한국철학을 공부하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글을 써 온 저자답게 군신 관계를 오늘의 리더와 참모, 조직 안의 책임자와 구성원 문제로 자연스럽게 옮겨 놓는다. 관계는 쌍방향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도 그래서 역사 밖으로 금세 걸어 나온다.

다만 40개의 사례가 빠르게 이어지는 만큼 몇몇 관계는 더 오래 머물며 읽고 싶었는데 곧 다음 인물로 넘어가 아쉬움이 남았다.이 책은 좋은 리더만을 찾거나 충성스러운 참모만을 기다리는 태도에서 한 걸음 벗어나게 한다. 상대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맡긴 사람에게 실제 권한을 주었는지, 한 사람을 필요할 때만 불러내고 있지는 않은지. 당신이 맺고 있는 관계는 서로를 키우고 있는가, 아니면 한쪽을 조금씩 소모하고 있는가.

리더십을 개인의 능력보다 관계의 문제로 바라보고 싶은 이른 독자가 꼭 읽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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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잠 - 덕자전성시대 덕자의 장편소설
박보미(덕자전성시대) 지음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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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잠』- 깊은 밤, 한 번 깼다가 다시 드는 잠 속에서 너를 만났다.


✍🏻 저자 : 박보미 (덕자전성시대)

🏢 출판사 : 오픈도어북스


🎯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나는 쉽게 믿지 못한다. 위로처럼 들리는 문장은 많았지만, 정작 삶이 어긋났을 때 그 말을 붙잡기는 어려웠다. 『그루잠』을 펼치기 전에도 비슷한 선입견이 있다. 꿈과 현실이 뒤섞이는 이야기가 상처를 얼마나 깊이 건드릴 수 있을까. 익숙한 화면 속 이름이었던 덕자가 작가 박보미로 건너와 만든 세계라는 점도 낯설다. 짧고 즉각적인 장면이 아니라 긴 문장 안에서 사람의 내면을 따라가겠다는 선택. 나는 그 변화가 궁금했다.



🔖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을 이유를 처음으로 찾은 것 같았다.” 윤설은 엄마의 모든 것을 바꿔 태어난 존재였기에 자신이 완벽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쳐도 웃고, 힘들어도 웃는다. 웃음이 기쁨보다 상황을 빨리 끝내는 방법이었다는 사실. 선천적인 결함을 알게 된 날에야 처음 울 수 있었다니. 결핍이 오히려 숨을 돌릴 자리를 내어주는 순간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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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망은 상대를 갉아먹기 전에 먼저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야기의 방향을 조용히 돌려놓는다. 윤설은 자신을 해친 사람을 쉽게 용서하지도, 제대로 미워하지도 못한다. 그저 피하고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멀어진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 일이 곧 용서라고 착각한 적이 있었던가. 상처를 덮어 둔 채 괜찮은 얼굴로 사는 동안, 마음은 제자리에서 계속 같은 장면을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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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설이 커다란 철문을 지나 만나는 곳에는 판사도 검사도 없다. 사람의 삶은 등급과 수치로 나뉘고, 판결은 단말기가 내린다. 경찰차는 컨베이어벨트처럼 사람을 실어 나르고 교도소에는 영혼들이 빽빽하게 갇혀 있다. 모든 일에 이유가 붙어 있지만 누구도 타인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이유를 알면 편안해질 거라 믿었던 윤설에게 이곳은 이상한 반대편이다. 설명은 넘치는데 이해는 사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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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윤설이 쓴 이야기를 매번 처음 보는 것처럼 읽는 장면은 반복해서 읽은 문장 앞에서도 조금씩 다른 표정을 짓는 사람. 윤설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의 꿈에서도 가족과 강아지 우주는 한집에 모여 있고, 누구도 떠날 준비를 하지 않는다. 눈을 뜬 뒤 젖은 베개만 남는다. 치유가 완성되었다기보다, 이제야 울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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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잠』은 현실과 꿈, 기억과 시스템을 또렷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읽는 동안 자주 길을 잃는다. 어떤 장면은 미스터리처럼 다가오고, 어떤 장면은 사후세계나 상처받은 마음의 내부처럼 보인다. 그 모호함이 이 소설의 분위기를 만들지만, 중반 이후 세계의 규칙이 한꺼번에 제시되는 부분에서는 감정보다 설정을 따라가게 되는 순간도 있다.그럼에도 이 작품이 향하는 곳은 분명하다. 상대를 이해해야만 용서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더는 이유를 찾지 않는 선택으로 간다. 용서는 상대의 죄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내 안에서 반복되던 장면을 멈추는 일인지도 모른다. 박보미는 화장실의 서늘한 공기, 꺼지는 센서등, 검은 강아지의 숨소리, 젖은 베개 같은 것들로 보여준다.완벽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웃는 얼굴부터 익힌 사람, 이유 없는 상처 앞에서 자꾸 자신을 탓하는 사람, 미워하는 일조차 버거워 피하기만 했던 이른 독자가 이 책을 꼭 읽어주길 바란다. 답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잠깐 다시 잠든 사이 마음이 어디까지 다녀오는지 바라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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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고양이 한 마리에 강아지는 아직 없어요 - 신동신의 두 번째 시집
신동신 지음 / 하움출판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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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한 마리에 강아지는 아직 없어요』- 없는 것을 향해 먼저 걸어가는 시,아직 오지 않은 존재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마음


✍🏻 저자 : 신동신

🏢 출판사 : 하움출판사



🎯 고양이는 있고 강아지는 아직 없다는 말. 가볍게 웃고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아직’에서 눈이 멈춘다. 없다고 끝내지 않고 조금 더 기다리는 시간, 그 사이에 놓인 사람의 마음이 궁금해졌다.나는 그가 말한 스크롤 속 물상들을 천천히 따라가 보기로 했다.



🔖 “어디까지 가봤니 오늘은”이라는 첫 질문에는 선택지가 없다. 답이 없어도 된다고 해놓고, 시인은 계속 부르고 손짓한다. 존재하는 고양이와 아직 오지 않은 강아지 사이에는 결핍보다 움직임이 먼저 있었다. “내가 먼저 다가가고 있음은 없음을 지운다는 사실”을 읽으며 나는 부재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기다리는 사람을 앞으로 밀고, 닫힌 방의 스위치를 켜게 한다. 당신에게도 아직 대답하지 못한 채 남겨둔 질문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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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끄러미라는 말을 물뿌리개 밑에서 배웠다」에서는 깨진 물뿌리개와 새 물뿌리개, 반은 마르고 반은 살아 있는 화분이 나란히 놓인다. 물은 흘러나오고, 시선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늦은 것 같기도 하고 아직 늦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상태. 나는 이 시를 읽다가 ‘물끄러미’가 단순히 바라보는 말이 아니라, 손을 뻗기 직전의 망설임처럼 느껴졌다. 시인은 생활 속 작은 고장을 버리지 않고 오래 들여다본다. 그때 사물은 물건이 아니라 말을 기다리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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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의 꽃은 예쁘게 피어 있기만 하지 않는다. 병실에 놓이고, 무덤 속 4월을 깨우며, 때로는 사람의 멱살을 잡는다. 「목련꽃 스위치」와 「꽃피는 6인실」, 「바람개비 돌리기」를 지나며 꽃은 어머니의 몸과 죽음, 돌봄의 피로를 함께 품는다. “4월은 어둡다”는 문장은 봄을 거꾸로 세운다. 피어야 밝아질 것 같은 계절이 오히려 더 깊은 상처가 되는 순간. 어머니는 죽어서도 바람개비처럼 돌고,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못한다. 감정을 크게 말하지 않아서 더 가까이 들리는 장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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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망의 곡선, 비를 끌고 가는 바람, 허물어진 벽이 차례로 등장한다. 벽은 막는 사물이지만 여기서는 인사를 하고 움직이며 관계를 다시 잇는다. 날망에 놓인 의자는 쉬어가는 자리이면서 기억을 바라보는 자리다. 시인은 곡선을 지우지 말라고 한다. 반듯하게 정리되지 않은 가족의 시간과 고향의 흔적까지 그대로 두자는 말처럼 읽혔다. 바람도 목적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비를 끌고 가고, 사람을 지나가게 하고, 사라진 자리에서 다시 소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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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한 마리에 강아지는 아직 없어요』는 귀여운 동물과 계절의 풍경을 모은 시집이 아니었다. 고양이, 나무, 물뿌리개, 냉장고, 와이파이, 꽃, 벽 같은 것들이 사람 대신 외로움과 부재를 말한다. 익숙한 단어끼리 낯설게 부딪히고, 현실의 한복판에 갑자기 환상 같은 장면이 끼어든다. 처음에는 기발한 조합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죽은 어머니와 사라진 관계 앞에 서게 된다. 감정이 바로 오지 않고 뒤늦게 닿는 시들이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 이미 사라진 존재와 여전히 대화를 나누는 사람, 일상의 사물에서 이상한 위로를 발견하는 이런 독자가 꼭 읽어주길 바란다. 강아지는 아직 없지만, ‘아직’이라는 말 덕분에 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 나는 그 문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가만히 앉아 있는 장면을 한동안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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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ㅣ 철학 소설 시리즈
이근오 지음 / 운화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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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무너진 뒤에야 비로소 자기 목소리가 들렸다,빛을 잃어가던 한 인간이 끝내 붙잡은 것


✍🏻 저자 : 이근오 

🏢 출판사 : 운화



🎯 철학자의 이름보다 먼저 인간의 얼굴을 보게 하는 책이다. 니체라고 하면 단단한 문장과 날 선 사상부터 떠오른다.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 고통조차 사유로 정리했을 것 같은 사람. 『몰입』은 강단에서 숨을 삼키고, 타인의 인정에 흔들리며, 사랑과 우정 앞에서 번번이 무너지는 한 남자가 서 있다. 나는 그 낯선 니체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아직 그가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는 모른 채.



🔖 젊은 니체에게 바그너는 음악가 이상의 존재였다. “설명하려 드는 순간, 이미 본질에서 어긋나는 것입니다.”라는 말에는 인정받고 싶은 열망과 자신이 본 진실을 놓치지 않으려는 고집이 함께 있다. 둘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질수록 나는 오히려 불안해진다. 누군가를 위대하다고 믿는 일은 때로 자신의 눈을 빌려주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 눈을 다시 되찾는 데에는 얼마나 큰 상처가 필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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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워야만 비로소 보이는 별이 있는 법이니까요.” 처음에는 위로에 가까운 문장으로 읽었다. 그러나 니체가 교수직과 건강, 익숙했던 관계를 하나씩 놓치는 장면을 지나자 뜻이 달라진다. 별을 보는 일보다 어둠 속에 머무는 시간이 먼저다. 통증은 그를 특별하게 만들지 않았다. 체면과 직함을 벗겨냈을 뿐이다. 나에게도 끝이라고 여겼던 시간이 사실은 무엇을 덜어내는 과정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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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이 부러지고 손바닥에 피가 맺힌 뒤, 니체는 고통을 견디는 사람에서 문장을 쏟아내는 사람으로 움직인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익숙한 문장인데도 이 장면에서는 구호처럼 들리지 않았다. 강해졌다는 선언보다 아직 살아 있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차라투스트라는 완성된 현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세상과 섞이지 못한 한 인간의 균열에서 나온다. 그 거친 탄생이 이상하게도 더 믿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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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는 반유대주의를 경멸하면서도 분노 속에서 동생을 가혹하게 밀어낸다. 괴물과 싸우다가 자신도 괴물이 될 수 있다는 문장은 바로 이 모순 앞에서 무게를 실는다. 옳은 신념을 가졌다는 사실이 타인을 함부로 다뤄도 된다는 허락은 아니다. 책은 니체를 성인으로 만들지 않고, 자신의 폭력성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사람으로 남겨둔다. 나는 그 불편함 때문에 오히려 그의 문장을 조금 더 가까이 읽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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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입』은 니체의 사상을 차례대로 설명하는 철학 입문서가 아니다. 실제 생애를 토대로 대화와 내면을 덧붙인 역사소설에 가깝다. 그래서 철학의 계보를 정교하게 알고 싶은 독자에게는 몇몇 장면이 지나치게 극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생은 문장처럼 정확히 닫히지 않으니.

이근오작가는 철학자의 이름 뒤에 가려졌던 육체를 꺼내 놓는다. 머리를 찌르는 통증, 관계가 무너질 때의 모멸감,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공포. 니체의 사상은 그 모든 것을 이겨낸 뒤 얻은 보상이 아니라, 무너지는 동안 간신히 붙든 자기 목소리였을지 모른다.

삶이 한 번쯤 막다른 곳에 닿았다고 느낀 독자, 유명한 문장보다 그 문장이 태어난 밤을 보고 싶은 독자라면 꼭 읽어주길 바란다. 답을 건네는 책이라기보다,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조용히 묻는 책이다. 나는 아직 그 질문 앞에서 조금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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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이 내리는 시간
브루나 단타스 로바토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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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이 내리는 시간』- 화면 속 엄마를 집이라 부를 수 있을까,서로를 다 알지 못한 채 이어지는 밤


BLUE LIGHT HOURS

 
✍🏻 저자 : 브루나 단타스 로바토 Bruna Dantas Lobato 

✍🏻 옮긴이 : 김보람

🏢 출판사 : 다산북스



🎯 처음에는 멀리 떨어진 모녀가 매일 화상통화를 나누는, 작고 조용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브라질 나타우와 미국 버몬트 사이의 거리도 결국 화면 하나로 좁혀질 것 같았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그 푸른 화면은 두 사람을 이어주는 창인 동시에, 손을 뻗어도 통과할 수 없는 벽처럼 보였다. 


🔖 “엄마한테 들려줄 만한 일이 하나도 없어.” 딸은 수업과 과제, 그래놀라바와 도서관뿐인 하루를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엄마에게 딸의 미국 생활은 영화이고, 자전거 한 대조차 걱정해야 할 사건이다. 나는 이 엇갈림이 낯설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중요한 일을 전하려 하면서도 정작 별것 아닌 하루는 자주 생략한다. 어쩌면 사랑은 대단한 소식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지루하다는 말 뒤에 감춰진 표정까지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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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이 보낸 카드의 글씨를 엄마는 알아보지 못한다. 바뀐 필체는 딸이 멀리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조용한 증거였다. 잠들 때까지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엄마에게 읽어줄 포르투갈어 책이 방 안에 한 권도 없다는 장면에서는 잠시 멈췄다. 책과 전단, 일기장까지 영어로 채워진 방. 번역가인 작가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일을 설명하지 않고 이런 빈자리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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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은 미국에서 살 수 있을 미래를 상상한다. 비자를 지원해줄 직장과 오래된 집, 홍수에도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땅. 수중에는 109달러뿐이지만 화면 속 매물은 새로운 삶의 모양을 잠시 허락한다. 그 희망을 엄마에게 보여주려다 전화를 걸지 않는 순간이 이상하게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알리지 않는 게 나은 행복도 있는 법이다.” 독립은 떠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기쁨을 숨기는 법까지 배우는 일이라니. 나 역시 누군가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침묵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 🔹 


🔖 공항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서로가 진짜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엄마는 딸의 숨결과 촉감을 확인하고, 딸은 기억보다 작아진 엄마의 얼굴과 손을 만진다. 이후 엄마가 화면으로만 보던 쿠션과 그림, 소파를 하나씩 알아보는 장면에서 그동안의 통화가 비로소 공간의 기억이 된다. 어머니 역시 혼자 기다리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낯선 공항을 건너 딸에게 도착했다. 모녀가 함께, 또 떨어져 성장한다 이 재회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인다.


🔹───────── 🔹 



📌 『푸른빛이 내리는 시간』은 떠난 딸의 죄책감만을 크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남겨진 어머니 역시 자신의 외로움을 견디고, 결국 국경과 언어를 통과한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단순한 모녀애보다 서로의 삶을 완벽히 번역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읽었다. 연락이 사랑의 증명이 되기도 하지만, 전화를 누르지 않는 밤에도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엄마에게 전하지 않은 평범한 하루가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보게 됐다. 특별한 뉴스가 없어도 전화를 걸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아직 서로의 삶에 머물 자리가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집을 떠난 뒤 마음 한편이 계속 길 위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 부모의 나이를 뒤늦게 알아차린 사람, 다른 언어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찾고 있는 사람. 이런 독자가 꼭 읽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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