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푸른빛이 내리는 시간
브루나 단타스 로바토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7월
평점 :
『푸른빛이 내리는 시간』- 화면 속 엄마를 집이라 부를 수 있을까,서로를 다 알지 못한 채 이어지는 밤
BLUE LIGHT HOURS
✍🏻 저자 : 브루나 단타스 로바토 Bruna Dantas Lobato
✍🏻 옮긴이 : 김보람
🏢 출판사 : 다산북스

🎯 처음에는 멀리 떨어진 모녀가 매일 화상통화를 나누는, 작고 조용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브라질 나타우와 미국 버몬트 사이의 거리도 결국 화면 하나로 좁혀질 것 같았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그 푸른 화면은 두 사람을 이어주는 창인 동시에, 손을 뻗어도 통과할 수 없는 벽처럼 보였다.
🔖 “엄마한테 들려줄 만한 일이 하나도 없어.” 딸은 수업과 과제, 그래놀라바와 도서관뿐인 하루를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엄마에게 딸의 미국 생활은 영화이고, 자전거 한 대조차 걱정해야 할 사건이다. 나는 이 엇갈림이 낯설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중요한 일을 전하려 하면서도 정작 별것 아닌 하루는 자주 생략한다. 어쩌면 사랑은 대단한 소식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지루하다는 말 뒤에 감춰진 표정까지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 🔹
🔖 딸이 보낸 카드의 글씨를 엄마는 알아보지 못한다. 바뀐 필체는 딸이 멀리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조용한 증거였다. 잠들 때까지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엄마에게 읽어줄 포르투갈어 책이 방 안에 한 권도 없다는 장면에서는 잠시 멈췄다. 책과 전단, 일기장까지 영어로 채워진 방. 번역가인 작가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일을 설명하지 않고 이런 빈자리로 보여준다.

🔹───────── 🔹
🔖 딸은 미국에서 살 수 있을 미래를 상상한다. 비자를 지원해줄 직장과 오래된 집, 홍수에도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땅. 수중에는 109달러뿐이지만 화면 속 매물은 새로운 삶의 모양을 잠시 허락한다. 그 희망을 엄마에게 보여주려다 전화를 걸지 않는 순간이 이상하게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알리지 않는 게 나은 행복도 있는 법이다.” 독립은 떠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기쁨을 숨기는 법까지 배우는 일이라니. 나 역시 누군가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침묵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 🔹
🔖 공항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서로가 진짜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엄마는 딸의 숨결과 촉감을 확인하고, 딸은 기억보다 작아진 엄마의 얼굴과 손을 만진다. 이후 엄마가 화면으로만 보던 쿠션과 그림, 소파를 하나씩 알아보는 장면에서 그동안의 통화가 비로소 공간의 기억이 된다. 어머니 역시 혼자 기다리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낯선 공항을 건너 딸에게 도착했다. 모녀가 함께, 또 떨어져 성장한다 이 재회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인다.

🔹───────── 🔹
📌 『푸른빛이 내리는 시간』은 떠난 딸의 죄책감만을 크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남겨진 어머니 역시 자신의 외로움을 견디고, 결국 국경과 언어를 통과한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단순한 모녀애보다 서로의 삶을 완벽히 번역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읽었다. 연락이 사랑의 증명이 되기도 하지만, 전화를 누르지 않는 밤에도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엄마에게 전하지 않은 평범한 하루가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보게 됐다. 특별한 뉴스가 없어도 전화를 걸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아직 서로의 삶에 머물 자리가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집을 떠난 뒤 마음 한편이 계속 길 위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 부모의 나이를 뒤늦게 알아차린 사람, 다른 언어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찾고 있는 사람. 이런 독자가 꼭 읽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