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 - 아무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을 때, 스스로 구원이 되어라 ㅣ 흔들릴 때마다 나는 OO를 읽었다 2
빅터 프랭클 지음 / 닻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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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 흔들리는 순간, 삶이 내게 질문을 돌려주었다 

✍🏻 저자 : 빅터 프랭클

🏢 출판사 : 닻



🎯 살다 보면 문제가 분명하지 않은데도 삶 전체가 흐릿해지는 때가 있다.프랭클이 견딘 강제수용소의 고통은 내가 쉽게 가져다 쓸 수 있는 위로의 재료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삶을 따라갈수록 내 쪽으로 질문이 돌아온다. 나는 지금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주어지지 않을 때 무엇을 탓하고 있는가.  크게 실패한 것도 아니고 당장 무너질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내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갑자기 알 수 없어지는 순간.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이 책이 그런 때 붙잡을 수 있는 단단한 문장들을 건네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빅터 프랭클의 삶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설명해줄지도 모른다른  생각이 들었다.




🔖 미국행 비자를 손에 쥔 프랭클에게 떠나는 일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그런데 부모 곁에 남기로 한 그의 선택을 읽으면서 나는 쉽게 ‘희생’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그가 두려움과 합리화를 구별하려 했다는 데 있어 보였다. 상황이 선택지를 좁힐 수는 있어도 마지막 태도까지 대신 결정해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선택이라고 믿었던 일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을 상황 탓으로 넘겨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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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용소에서 평생 연구한 원고를 빼앗긴 장면은 이상하게도 굶주림이나 추위에 대한 기록과는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그것은 종이를 잃은 일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붙들던 흔적까지 사라진 일이었을 것이다. 프랭클은 그 상실에 의미가 있다고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기억나는 문장과 단어를 다시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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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이 모든 것을 바로잡지는 않았다는 대목에서는 자유라는 말을 조금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억압에서 벗어난 뒤 과거의 고통을 이유로 타인을 해치는 사람도 있었고, 아무도 명령하지 않았는데 약한 사람을 돌보는 이도 있었다.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보다, 선택한 뒤 그 결과를 누구의 몫으로 둘 것인지가 더 불편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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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삶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먼저 묻는 데 익숙했다. 좋은 조건, 안정, 관계, 인정 같은 목록은 끝없이 늘어난다. 프랭클의 시선은 그 질문의 방향을 뒤집는다. 삶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묻기 시작하면 조건은 사라지지 않지만 핑계와 책임의 경계가 보이기 시작한다.다만 바꿀 수 없는 것 앞에서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완전히 끝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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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을 견뎌낸 프랭클의 삶이 강력한 만큼, 그의 태도를 평범한 삶에 곧바로 적용하면 현실의 조건과 상처를 개인의 의지 문제로 좁혀 읽을 위험도 있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강해지는 법’보다 질문의 방향을 바꾸는 책으로 읽고 싶다. 흔들리지 말라는 요구가 아니라, 흔들리는 자리에서 내가 무엇으로 응답할지를 묻는 것. 답보다 질문이 필요한 독자라면 이 책을 꼭 읽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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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오디세이아가 말을 하다 : 영웅 이야기 ㅣ 말을 하다
박찬영 지음 / 리베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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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오디세이아가 말을 하다 : 영웅 이야기』- 명화가 입을 열자, 흩어졌던 신화가 이어졌다,그림과 말풍선 사이에서 다시 만난 영웅들의 얼굴 


✍🏻 저자 : 박찬영 

🏢 출판사 : 리베르


🎯 그리스로마 신화는 아는 이름이 많아서 오히려 제대로 안다고 착각하기 쉽다. 제우스, 메두사, 트로이 목마, 오디세우스까지 장면은 익숙한데 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자주 헤갈린다. 이 책은 그 틈을 명화와 말풍선으로 메운다. 기자와 편집자로 오래 일한 박찬영저자는 이 여러 고전의 흐름을 다시 엮고, 그림 속 인물에게 직접 말을 시키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조금 가벼운 입문서처럼 보였는데 몇 장 넘기다 보니 이야기를 외우게 하기보다 장면을 눈앞에 붙잡아 두려는 책에 가깝다. 특히 한 장면을 먼저 보고 이야기를 읽은 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면, 화가가 무엇을 강조했는지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된다.



🔖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정면으로 보지 않고 방패에 비친 모습으로 접근하는 장면은 익숙한 영웅담인데도 다시 보게 됐다. 힘이 센 사람이 이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가 생사를 가른다. 잘린 머리의 피에서 페가수스가 태어나는 순간까지 이어지니 승리와 탄생이 한 장면 안에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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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이 목마 이야기는 결말을 이미 아는데도 대들보를 부수면서까지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들이는 대목에서 자꾸 시선이 간다. 카산드라는 경고했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고, 10년 만의 평화가 오히려 판단을 느슨하게 만든다. 밤이 되자 목마 속 병사들이 내려와 성문을 연다. 거대한 전쟁의 끝이 화려한 결전이 아니라 믿고 싶은 마음과 방심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묘하게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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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디세우스가 거지의 모습으로 자신의 활을 잡는 장면은 귀환보다 확인에 가깝게 느껴진다. 구혼자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활은 주인을 알아보는 듯하다. 열두 개의 고리를 통과한 화살 한 발로 오랜 부재의 시간이 갑자기 접힌다. 다만 그 직후 벌어지는 구혼자들의 죽음은 통쾌함만으로 읽기 어렵다. 집을 되찾는 일과 복수 사이의 경계가 생각보다 거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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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네이아스와 투르누스의 마지막 결투에서는 영웅에게 주어진 운명이 얼마나 공정한가를 자꾸 묻게 된다. 신들의 도움을 받는 아이네이아스와 점점 외면받는 투르누스의 조건은 처음부터 같지 않다. 아이네이아스는 그를 살려주려다가 팔라스의 허리띠를 보고 다시 칼을 든다. 새로운 나라를 향한 서사가 복수로 끝나는 순간, 영웅담의 빛나는 표면 아래 분노와 폭력이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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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0여 점의 명화에 말풍선을 입힌 방식은 복잡한 계보와 사건을 따라가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 다만 빠른 전개와 대화 중심의 구성 때문에 원전의 문장이나 인물의 내면을 더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신화가 이름 암기에서 자꾸 멈췄던 사람,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큰 흐름부터 잡고 싶은 이른 독자가 꼭 읽어주길 바란다. 그림을 본 뒤 다시 이야기를 읽으면 처음과 다른 장면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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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가 말을 하다 : 신과 인간의 공존 ㅣ 말을 하다
박찬영 지음 / 리베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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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가 말을 하다 : 신과 인간의 공존』- 명화가 입을 열자, 신과 인간 사이에서 발견한 욕망과 사랑, 저항의 얼굴 


✍🏻 저자: 박찬영 

🏢 출판사 :  리베르



🎯 신화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이야기다. 프로메테우스의 불, 이카로스의 날개, 오르페우스의 뒤돌아봄처럼 이름과 결말 정도는 여기저기서 이미 만났다. 그런데 박찬영저자는  신화를 텍스트 안에만 두지 않는다. 여러 고전을 연결하고, 300여 점의 명화를 끌어와 그림 속 인물에게 말풍선을 건넨다. 기자와 편집자로 오랫동안 글을 다뤄온 저자답게 복잡한 계보를 따라가기보다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먼저 보여주려는 방식이다. 그림은 설명을 돕는 삽화가 아니라 신화가 다시 움직이는 또 하나의 장면이 된다. 



🔖 신화의 시작을 읽는데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불을 훔친 사건보다 그 뒤에 이어지는 형벌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과 문명을 건넸고, 제우스가 알고 싶어 하는 운명까지 침묵으로 지킨다. 독수리와 사슬 앞에서도 복종하지 않는 모습은 단순한 희생보다 권위에 맞서는 인간의 오래된 태도처럼 읽힌다. 신들의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인간 쪽으로 자꾸 시선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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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들의 사랑을 따라가다 보면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다. 엔디미온을 영원한 잠에 두고 바라보려는 아르테미스, 사랑하는 오리온을 자기 손으로 죽이게 된 순간, 늙지 않게 해 달라는 부탁을 빠뜨려 티토노스와 어긋난 에오스. 사랑은 여기서 소유와 실수, 욕망과 상실을 한꺼번에 품는다. 특히 “현실보다는 꿈을 찾는 삶”이라는 문장 앞에서는 신화가 옛이야기라기보다 지금의 욕망을 비추는 장면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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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는 익숙한 사랑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의심이라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로 방향을 튼다. 얼굴을 보지 말라는 약속 앞에서 프시케는 결국 등불을 들고, 에로스는 “사랑은 의심과 함께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며 떠난다. 그런데 나는 프시케의 행동을 배신이라고만 읽기 어려웠다. 사랑하면서 상대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역시 자연스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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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시포스가 굴려 올린 바위는 정상에 닿자마자 다시 떨어진다. 끝을 알면서도 같은 일을 되풀이해야 하는 형벌이다. 탄탈로스와 벨레로폰까지 이어 읽으니 신에게 도전한 인간에게 내려지는 벌의 강도가 유난히 선명하다. 그런데 책은 그 도전을 단순한 오만으로만 닫지 않고 ‘인간 존재의 새로운 자각’일 수도 있다고 적는다. 그 순간 신화의 경계가 조금 흔들린다. 신을 시험한 죄인가, 인간이 스스로를 인식하기 시작한 순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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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을 넘길수록 신화보다 인간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사랑해서 소유하려 하고, 권위에 맞서고, 의심하고, 자신에게 허락된 경계를 넘어선다. 명화에 말풍선을 넣은 구성은 복잡한 관계를 기억하는 데 꽤 효과적이고, 그림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외워야 할 이름들의 계보가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이야기로 다시 만나고 싶은 독자라면 꼭 읽어주길 바란다. 명화 속 말풍선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말이라면 무엇을 넣었을지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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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ㅣ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2
호메로스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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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신들의 폭풍 속에서도 결국 노를 젓는 것은 인간이었다 


✍🏻 저자 : 호메로스 Homeros, Homer 

🏢 출판사 : 클래시카


🎯 호메로스의 오래된 서사에는 인간의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신은 변덕스럽고 바다는 갑자기 뒤집히며, 어렵게 얻은 것조차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 낯선 신화의 풍경이 아주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 책이 바라보는 것은 오디세우스가 얼마나 대단한 영웅이었는가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세계에서 그가 무엇을 붙잡고 계속 노를 저었는가에 가까웠다. 계획대로 되는 날보다 예상 밖의 일에 방향을 수정해야 하는 날이 더 많은 것이 지금의 삶이기도 하니까. 




🔖 칼립소의 섬을 읽으며 이상하게 폭풍보다 평온이 더 위험해 보였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삶, 누구도 나를 해치지 않는 장소인데 오디세우스는 바닷가에 앉아 운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기 삶을 살고 있지 않아서 운다는 해석 앞에서 ‘안전하다’와 ‘살아 있다’는 전혀 다른 말이 된다. 나도 편안함을 삶의 정답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조금 불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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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렌 앞에서 오디세우스가 보여주는 지혜는 의지의 강함과는 조금 달랐다. 노래를 들은 뒤 버티는 대신, 듣기 전에 몸을 묶는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며 사람이 자기 약점을 아는 일이 왜 중요한지 다시 보게 된다. 유혹은 대개 노골적인 얼굴보다 칭찬과 안락함을 두르고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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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타카에서 활을 당기는 장면은 귀환의 통쾌함보다 그 활을 당길 수 있는 어깨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먼저 보게 한다. 하루의 책임, 알아주는 이 없는 반복, 별것 아닌 듯한 수련이 쌓여 어느 날 자격으로 드러난다. 자격을 큰 소리로 선언하기 전에 손이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대목도 그래서 날카롭다. 오늘 하루가 삼천 번 반복되어 십 년이 된다는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미래는 멀리 있는 목표라기보다 지금의 자세에 더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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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타카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는데 책은 오히려 그 뒤의 항해를 꺼내 놓는다. 오디세우스에게는 다시 노를 메고 떠날 일이 예언되어 있다. 그래서 이타카는 종점보다 잠시 닻을 내리는 자리처럼 읽힌다. 지난 나를 부정하지 않고 지금의 나를 과장하지 않은 채 다음 바다를 받아들이는 것. 완성이라는 말도 조금 달라진다. 삶이 계속되는 한 도착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찾는 이타카도 하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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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을 선택할 수는 없어도 노를 놓을지 다시 잡을지는 아직 내 손에 있다는 것. 다만 고전의 복잡한 층위를 오늘의 삶과 자기 성찰의 언어로 빠르게 연결하는 만큼, 호메로스의 서사를 더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해석이 앞서간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듯하다. 그래도 지금 어디로 가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자기 몫의 노를 젓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어주길 바란다. 이타카는 도착한 사람만의 이름이 아니라, 아직 항해하는 사람이 잃지 않은 방향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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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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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2』- 사랑은 어디까지 한 사람의 삶을 움직일 수 있을까,한 장의 그림을 지나며 달라지는 사랑의 온도


✍🏻 저자 : 조정래

🏢 출판사 : 해냄






❄️🎯  1권을 지나 『서리꽃 2』를 펼치면서 나는 이미 두 사람의 관계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권은 그 익숙함을 조금씩 흔든다. 함께하는 시간보다 그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자꾸 시선이 간다. 기도와 여행, 시와 그림처럼 별개의 장면으로 보였던 것들도 어느 순간 서로 가까워진다. 특히 책 속에 딱 한 장 실린 그림 앞에서는 페이지를 넘기기가 아까웠다. 왜 수많은 장면 가운데 작가는 이것만 직접 보여주었을까. 




❄️🔖  이재이가 윤소인에게 절하는 법을 알려주는 장면은 종교적인 설명으로만 읽히지 않았다.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것을 돌아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말하게 하는 과정에 더 가깝다. 이재이는 기도가 사람 안에서 힘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윤소인은 그 말을 따라 천천히 몸을 낮춘다. 그런데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바라는 것은 정말 같은 것일까. 





❄️🔖  ‘시인의 숲’에서 두 사람이 한 편의 시를 만난다. 처음에는 여행 중 우연히 발견한 풍경처럼 읽었다. 그런데 시를 읽어가는 윤소인의 목소리가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대로 / 한몸으로 돌아가”라는 문장을 지나면서 소설 밖에 있던 시가 어느새 두 사람 가까이 들어와 있다는 느낌도 든다. 『서리꽃』에는 이렇게 처음 읽을 때는 대수롭지 않았던 말과 장면이 뒤에서 다시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나는 앞에서 무엇을 그냥 지나쳤는지 자꾸 몇 페이지 전을 되돌아보게 된다.




❄️🔖  『서리꽃 2』에서 내가 가장 유심히 본 것은 단 한 장의 이미지다. 반 고흐는 1권부터 두 사람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였으니 해바라기 자체가 낯설지는 않다. 이상한 것은 작가가 굳이 이 그림만 독자의 눈앞에 꺼내놓았다는 점이다. 소설로 상상하게 두어도 되었을 텐데 왜 보여주었을까. 네 송이라는 숫자까지 자꾸 세어보게 된다. 이 그림을 본 뒤에는 앞에서 이어져 온 반 고흐 이야기도 조금 다른 눈으로 다시  첫장 부터 읽게 만든다.




❄️🔖  2권으로 갈수록 나는 사건 자체보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말과 사물에 신경이 간다. 수첩, 그림, 시, 기도, 여행에서 오가는 짧은 대화까지 처음에는 각자의 자리에 놓여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읽다 보면 ‘이 장면을 앞에서 본 것 같은데’ 싶은 순간이 생긴다. 작가가 처음부터 어디까지 계산해 두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서리꽃』이라는 제목도 이제 처음 책을 펼쳤을 때와 똑같이 보이지 않는다. 왜 하필 서리꽃이었는지는 직접 마지막까지 가서 확인하고 싶어졌다.




❄️📌  조정래가 사랑을 전면에 놓았다고 해서 『서리꽃』이 연인의 감정만 따라가는 소설은 아니었다. 2권에서는 오히려 사랑 때문에 사람이 무엇을 믿고, 어디까지 움직이며, 상대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지가 더 눈에 들어온다. 다만 사랑을 바라보는 시선이 강하고 이상적인 만큼 독자에 따라 이재이의 태도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순간도 있을 듯하다. 나는 무엇보다 한 장의 해바라기가 궁금했다. 그 그림을 기억한 채 읽으면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들이 다시 말을 걸어온다. 아직 펼치지 않은 독자라면 그 연결만큼은 아무 설명 없이 직접 발견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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