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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가 말을 하다 : 신과 인간의 공존 ㅣ 말을 하다
박찬영 지음 / 리베르 / 2026년 8월
평점 :
『그리스 로마 신화가 말을 하다 : 신과 인간의 공존』- 명화가 입을 열자, 신과 인간 사이에서 발견한 욕망과 사랑, 저항의 얼굴
✍🏻 저자: 박찬영
🏢 출판사 : 리베르

🎯 신화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이야기다. 프로메테우스의 불, 이카로스의 날개, 오르페우스의 뒤돌아봄처럼 이름과 결말 정도는 여기저기서 이미 만났다. 그런데 박찬영저자는 신화를 텍스트 안에만 두지 않는다. 여러 고전을 연결하고, 300여 점의 명화를 끌어와 그림 속 인물에게 말풍선을 건넨다. 기자와 편집자로 오랫동안 글을 다뤄온 저자답게 복잡한 계보를 따라가기보다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먼저 보여주려는 방식이다. 그림은 설명을 돕는 삽화가 아니라 신화가 다시 움직이는 또 하나의 장면이 된다.

🔖 신화의 시작을 읽는데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불을 훔친 사건보다 그 뒤에 이어지는 형벌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과 문명을 건넸고, 제우스가 알고 싶어 하는 운명까지 침묵으로 지킨다. 독수리와 사슬 앞에서도 복종하지 않는 모습은 단순한 희생보다 권위에 맞서는 인간의 오래된 태도처럼 읽힌다. 신들의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인간 쪽으로 자꾸 시선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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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들의 사랑을 따라가다 보면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다. 엔디미온을 영원한 잠에 두고 바라보려는 아르테미스, 사랑하는 오리온을 자기 손으로 죽이게 된 순간, 늙지 않게 해 달라는 부탁을 빠뜨려 티토노스와 어긋난 에오스. 사랑은 여기서 소유와 실수, 욕망과 상실을 한꺼번에 품는다. 특히 “현실보다는 꿈을 찾는 삶”이라는 문장 앞에서는 신화가 옛이야기라기보다 지금의 욕망을 비추는 장면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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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는 익숙한 사랑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의심이라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로 방향을 튼다. 얼굴을 보지 말라는 약속 앞에서 프시케는 결국 등불을 들고, 에로스는 “사랑은 의심과 함께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며 떠난다. 그런데 나는 프시케의 행동을 배신이라고만 읽기 어려웠다. 사랑하면서 상대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역시 자연스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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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시포스가 굴려 올린 바위는 정상에 닿자마자 다시 떨어진다. 끝을 알면서도 같은 일을 되풀이해야 하는 형벌이다. 탄탈로스와 벨레로폰까지 이어 읽으니 신에게 도전한 인간에게 내려지는 벌의 강도가 유난히 선명하다. 그런데 책은 그 도전을 단순한 오만으로만 닫지 않고 ‘인간 존재의 새로운 자각’일 수도 있다고 적는다. 그 순간 신화의 경계가 조금 흔들린다. 신을 시험한 죄인가, 인간이 스스로를 인식하기 시작한 순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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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을 넘길수록 신화보다 인간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사랑해서 소유하려 하고, 권위에 맞서고, 의심하고, 자신에게 허락된 경계를 넘어선다. 명화에 말풍선을 넣은 구성은 복잡한 관계를 기억하는 데 꽤 효과적이고, 그림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외워야 할 이름들의 계보가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이야기로 다시 만나고 싶은 독자라면 꼭 읽어주길 바란다. 명화 속 말풍선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말이라면 무엇을 넣었을지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