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신들의 폭풍 속에서도 결국 노를 젓는 것은 인간이었다
✍🏻 저자 : 호메로스 Homeros, Homer
🏢 출판사 : 클래시카

🎯 호메로스의 오래된 서사에는 인간의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신은 변덕스럽고 바다는 갑자기 뒤집히며, 어렵게 얻은 것조차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 낯선 신화의 풍경이 아주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 책이 바라보는 것은 오디세우스가 얼마나 대단한 영웅이었는가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세계에서 그가 무엇을 붙잡고 계속 노를 저었는가에 가까웠다. 계획대로 되는 날보다 예상 밖의 일에 방향을 수정해야 하는 날이 더 많은 것이 지금의 삶이기도 하니까.

🔖 칼립소의 섬을 읽으며 이상하게 폭풍보다 평온이 더 위험해 보였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삶, 누구도 나를 해치지 않는 장소인데 오디세우스는 바닷가에 앉아 운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기 삶을 살고 있지 않아서 운다는 해석 앞에서 ‘안전하다’와 ‘살아 있다’는 전혀 다른 말이 된다. 나도 편안함을 삶의 정답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조금 불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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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렌 앞에서 오디세우스가 보여주는 지혜는 의지의 강함과는 조금 달랐다. 노래를 들은 뒤 버티는 대신, 듣기 전에 몸을 묶는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며 사람이 자기 약점을 아는 일이 왜 중요한지 다시 보게 된다. 유혹은 대개 노골적인 얼굴보다 칭찬과 안락함을 두르고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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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타카에서 활을 당기는 장면은 귀환의 통쾌함보다 그 활을 당길 수 있는 어깨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먼저 보게 한다. 하루의 책임, 알아주는 이 없는 반복, 별것 아닌 듯한 수련이 쌓여 어느 날 자격으로 드러난다. 자격을 큰 소리로 선언하기 전에 손이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대목도 그래서 날카롭다. 오늘 하루가 삼천 번 반복되어 십 년이 된다는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미래는 멀리 있는 목표라기보다 지금의 자세에 더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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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타카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는데 책은 오히려 그 뒤의 항해를 꺼내 놓는다. 오디세우스에게는 다시 노를 메고 떠날 일이 예언되어 있다. 그래서 이타카는 종점보다 잠시 닻을 내리는 자리처럼 읽힌다. 지난 나를 부정하지 않고 지금의 나를 과장하지 않은 채 다음 바다를 받아들이는 것. 완성이라는 말도 조금 달라진다. 삶이 계속되는 한 도착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찾는 이타카도 하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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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을 선택할 수는 없어도 노를 놓을지 다시 잡을지는 아직 내 손에 있다는 것. 다만 고전의 복잡한 층위를 오늘의 삶과 자기 성찰의 언어로 빠르게 연결하는 만큼, 호메로스의 서사를 더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해석이 앞서간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듯하다. 그래도 지금 어디로 가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자기 몫의 노를 젓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어주길 바란다. 이타카는 도착한 사람만의 이름이 아니라, 아직 항해하는 사람이 잃지 않은 방향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