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꽃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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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2』- 사랑은 어디까지 한 사람의 삶을 움직일 수 있을까,한 장의 그림을 지나며 달라지는 사랑의 온도


✍🏻 저자 : 조정래

🏢 출판사 : 해냄






❄️🎯  1권을 지나 『서리꽃 2』를 펼치면서 나는 이미 두 사람의 관계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권은 그 익숙함을 조금씩 흔든다. 함께하는 시간보다 그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자꾸 시선이 간다. 기도와 여행, 시와 그림처럼 별개의 장면으로 보였던 것들도 어느 순간 서로 가까워진다. 특히 책 속에 딱 한 장 실린 그림 앞에서는 페이지를 넘기기가 아까웠다. 왜 수많은 장면 가운데 작가는 이것만 직접 보여주었을까. 




❄️🔖  이재이가 윤소인에게 절하는 법을 알려주는 장면은 종교적인 설명으로만 읽히지 않았다.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것을 돌아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말하게 하는 과정에 더 가깝다. 이재이는 기도가 사람 안에서 힘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윤소인은 그 말을 따라 천천히 몸을 낮춘다. 그런데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바라는 것은 정말 같은 것일까. 





❄️🔖  ‘시인의 숲’에서 두 사람이 한 편의 시를 만난다. 처음에는 여행 중 우연히 발견한 풍경처럼 읽었다. 그런데 시를 읽어가는 윤소인의 목소리가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대로 / 한몸으로 돌아가”라는 문장을 지나면서 소설 밖에 있던 시가 어느새 두 사람 가까이 들어와 있다는 느낌도 든다. 『서리꽃』에는 이렇게 처음 읽을 때는 대수롭지 않았던 말과 장면이 뒤에서 다시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나는 앞에서 무엇을 그냥 지나쳤는지 자꾸 몇 페이지 전을 되돌아보게 된다.




❄️🔖  『서리꽃 2』에서 내가 가장 유심히 본 것은 단 한 장의 이미지다. 반 고흐는 1권부터 두 사람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였으니 해바라기 자체가 낯설지는 않다. 이상한 것은 작가가 굳이 이 그림만 독자의 눈앞에 꺼내놓았다는 점이다. 소설로 상상하게 두어도 되었을 텐데 왜 보여주었을까. 네 송이라는 숫자까지 자꾸 세어보게 된다. 이 그림을 본 뒤에는 앞에서 이어져 온 반 고흐 이야기도 조금 다른 눈으로 다시  첫장 부터 읽게 만든다.




❄️🔖  2권으로 갈수록 나는 사건 자체보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말과 사물에 신경이 간다. 수첩, 그림, 시, 기도, 여행에서 오가는 짧은 대화까지 처음에는 각자의 자리에 놓여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읽다 보면 ‘이 장면을 앞에서 본 것 같은데’ 싶은 순간이 생긴다. 작가가 처음부터 어디까지 계산해 두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서리꽃』이라는 제목도 이제 처음 책을 펼쳤을 때와 똑같이 보이지 않는다. 왜 하필 서리꽃이었는지는 직접 마지막까지 가서 확인하고 싶어졌다.




❄️📌  조정래가 사랑을 전면에 놓았다고 해서 『서리꽃』이 연인의 감정만 따라가는 소설은 아니었다. 2권에서는 오히려 사랑 때문에 사람이 무엇을 믿고, 어디까지 움직이며, 상대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지가 더 눈에 들어온다. 다만 사랑을 바라보는 시선이 강하고 이상적인 만큼 독자에 따라 이재이의 태도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순간도 있을 듯하다. 나는 무엇보다 한 장의 해바라기가 궁금했다. 그 그림을 기억한 채 읽으면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들이 다시 말을 걸어온다. 아직 펼치지 않은 독자라면 그 연결만큼은 아무 설명 없이 직접 발견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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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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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1』- 세월 앞에서 다시 시작된 사랑,사랑이 한 사람의 삶을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를 따라가게 되는 이야기


✍🏻저자 : 조정래 

🏢 출판사 : 해냄



🎯『서리꽃 1』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차갑고 짧게 피었다 사라지는 사랑부터 떠올렸다. 그런데 책을 펼치자 먼저 마주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작가의 몸이었다. 복부대동맥 수술, 위궤양과 오른팔 마비, 다시 찾아온 병과 수술. 그 시간을 지나 조정래는 또 소설을 쓴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품 앞에 이런 기록이 놓여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소설을 가볍게 읽기는 어려웠다. 어쩌면 ‘서리꽃’이라는 말에는 소설 속 연인들만이 아니라, 사라지기 전에 무엇인가를 끝까지 피워내려는 사람의 시간이 함께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 이재이가 출판사 앞에서 시계를 바라보는 장면이 자꾸 눈에 걸린다. 초침 하나가 움직이는 동안에도 세월은 만들어지고, 그 세월이 사람을 바꾼다는 생각. 5년 전의 윤소인과 다시 만났지만 그녀의 퀭한 눈빛과 피폐한 얼굴은 그가 기억하던 시간을 그대로 돌려주지 않는다. 사랑의 재회라기보다 먼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가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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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소인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반 고흐를 이해하기 위해 이재이는 관련 책을 150권 넘게 읽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그 숫자가 지나치게 크게 느껴졌고, 그가 원하는 것은 지식을 자랑하는 일이 아니다. 상대가 바라보는 세계 가까이 가려는 쪽이다. “사랑이란 영혼과 육체의 혼연일체”라는 그의 말은 요즘의 사랑과는 꽤 다른 온도를 갖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취향을 안다는 것과 그 사람이 사랑하는 세계를 공부하는 것은 어디서부터 달라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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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소인이 “더 살기 싫고, 살 자신이 없었어요”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사랑은 낭만적인 감정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재이가 세운 목표는 단순하다. 그녀를 지하에서 벗어나게 하고 마음껏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 하지만 필요한 돈은 2억 5천만 원이고 그 앞에는 아버지와 형이 있다. 그는 그들을 암벽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처럼 바라본다.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은 아름답지만, 그 마음이 커질수록 무엇까지 내놓을 수 있는지가 따라붙는다. 여기서 사랑은 이미 선택의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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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에서 나온 이재이가 되뇌는 것은 거창한 사랑의 문장이 아니다. 맑은 공기, 밝은 햇볕, 영양 있는 식사, 스트레스 차단. 그는 곧바로 지도책을 펼친다. 이 대목에서 앞서 보였던 그의 사랑이 조금 다르게 읽혔다. 반 고흐에 관한 책을 수없이 읽는 일이 상대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식이었다면, 이제 사랑은 먹이고 쉬게 하고 살아갈 장소를 찾는 일이 된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해야 할 일이 먼저 늘어나는 것이다. 그 모습을 어디까지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나는 아직 판단을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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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래가 56년의 문학 인생에서 본격적으로 사랑을 화두로 꺼냈다는 사실은 『서리꽃 1』을 조금 특별하게 만든다. 다만 이재이의 헌신이 워낙 크고 단단해서 때로는 한 인간의 사랑이라기보다 작가가 세운 사랑의 이상형을 보는 듯한 거리도 생긴다. 그럼에도 병과 수술을 거치면서 “회한은 없다”고 적은 작가가 사랑과 삶을 함께 밀어붙이는 장면들은 쉽게 낭만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사랑을 감정보다 행동과 책임으로 생각해본 독자라면 이 이야기를 꼭 읽어주길 바란다. 나는 이제 2권에서 그 사랑이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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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를 찍는 사람들 - 대한민국 대표 외식 브랜드의 성공을 가장 가까이에서 기록한 이야기
김지훈.송은경 지음 / 차선책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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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를 찍는 사람들』- 한 장의 사진 뒤에서 브랜드를 만든 선택들


✍🏻 저자 : 김지훈, 송은경

🏢 출판사 : 차선책



🍽️책 제목만 봤을 때는 음식 사진과 촬영 노하우가 중심일 거라고 짐작했다. 푸라닭, 교촌치킨, 굽네치킨, 두끼떡볶이처럼 익숙한 이름들이 줄줄이 등장하니 브랜드 성공 사례를 정리한 책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지훈·송은경 두 저자가 2008년 집에서 시작해 작은 지하 스튜디오를 거쳐 수많은 외식 브랜드의 현장을 함께한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관심이 조금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사진을 얼마나 맛있게 찍느냐보다, 한 장을 만들기 위해 어떤 기준을 세우고 무엇을 포기하지 않았는지가 자꾸 보게 된다. 



📷 월세 45만 원의 지하 스튜디오에서 시작해 서초동의 큰 공간에 이르기까지 읽고 나니, 눈에 들어온 건 장비보다 기준이다. 예쁜 공간보다 일하기 좋은 공간을 택하고, 접시 하나와 바닥재 하나까지 모아둔 이유도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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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수나무 돈가스 사진을 바꾼 뒤 전국 매장 매출이 평균 18%, 한 매장의 주문율은 50% 올랐다는 대목은 사진을 보는 방식을 바꿔놓는다. 메뉴판의 이미지는 장식이 아니라 손님이 맛보기 전에 먼저 만나는 선택지였다. 잘 팔리는 메뉴도 다시 찍었다는 결정이 흥미롭다. 촬영비를 비용으로만 보면 나오기 어려운 선택이다. 사진 한 장이 몇 년 동안 브랜드 대신 영업한다는 말이 여기서는 꽤 구체적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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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마로강정 촬영에서는 닭강정 조각 하나가 덩어리처럼 보이지 않도록 방향과 높이를 계속 바꾼다. 누군가는 알아채지 못할 차이를 붙들고, 짧은 일정 속에서는 거의 잠을 못 잔 채 다음 현장으로 향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열정’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진다. 완성된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선택이 겹겹이 들어 있다. 결국 사람이 책임지는 것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보다 그 전후의 판단들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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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인상적인 건 잘 찍는 기술보다 원칙을 놓지 않는 태도다. 억울한 상황에서 원본 파일을 넘기면 쉽게 끝낼 수 있었지만, 두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상업사진의 원본을 작업자의 자산과 기준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손해를 줄이기 위해 원칙을 조금씩 낮추다 보면 결국 무엇으로 기억될까. ‘외주가 아니라 파트너’라는 태도는, 브랜드를 찍는다는 말과 함께 책임진다는 뜻으로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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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음식사진 입문서라기보다 일을 대하는 기준에 관한 현장 기록에 가깝다. 실제 브랜드 사례와 수치가 많아 설득력이 있지만, 성공한 장면들이 빠르게 이어져 실패 이후의 망설임이나 갈등을 조금 더 깊게 보고 싶은 아쉬움도 있다. 그래도 사진가, 외식업 종사자, 예비 창업자뿐 아니라 자기 일을 브랜드로 키우고 싶은 독자라면 읽어볼 만하다. ‘잘 보이게 만드는 일’ 뒤에 얼마나 많은 선택이 숨어 있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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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 질문하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제럴딘 매코크런 지음, 김재용 옮김, 장시은 감수, 호메로스 원작 / 윌마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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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 질문하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돌아가는 길이 길어질수록, 영웅이라는 이름은 조금씩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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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저자 : 제럴딘 매코크런 Geraldine McCaughrean

✍🏻 원작: 호메로스 Homer 

✍🏻 옮긴이: 김재용

✍🏻 감수: 장시은

🏢 출판사: 윌마



🎯 외눈박이 거인과 마녀, 세이렌, 바다 괴수, 신의 저주까지.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장면들이 차례로 나올 것 같다. 그런데 제럴딘 매코크런이 다시 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자꾸 보게 되는 것은 괴물이 아니라 오디세우스의 선택이다. 트로이 전쟁 10년을 견디고도 다시 10년을 떠돌아야 하는 사람. 그에게 고향은 목적지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길을 가장 멀게 만드는 사람 역시 오디세우스 자신일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영웅이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보다 ‘왜 저 선택을 했을까’를 묻게 된다.




⚔️  폴리페모스의 눈을 공격하는 장면은 숨 돌릴 틈이 없다. 노를 깎고 불에 달군 뒤 거인의 외눈을 향해 돌진하는 순간에는 트로이의 전사였던 사람들이 다시 보인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단지 영리한 사람이 아니다.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벗어나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그 오만 때문에 포세이돈의 분노까지 불러들인다. 현명한 사람이 언제나 현명한 선택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이 오래된 영웅을 뜻밖에 가까운 인간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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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르케가 부하들을 돼지로 바꾸는 장면은 기괴한데, 스킬라와 카립디스 사이에서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오디세우스는 이미 알고 있다. 절벽에서 멀어지면 배 전체가 카립디스에게 삼켜지고, 가까이 가면 스킬라에게 누군가를 내줘야 한다. 모두를 살리는 답이 애초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지혜는 정답을 찾아내는 능력과 조금 달라 보였다. 내가 그 배의 지휘자였다면 여섯 사람의 희생을 알면서도 같은 방향으로 키를 잡을 수 있었을까.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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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걸인의 모습으로 활을 잡은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순간, 기다렸던 귀환이 완성되는 듯하다. 그런데 108명의 구혼자가 모두 죽고 연회장에 침묵이 내려앉자 나는 통쾌함만으로 이 장면을 넘기기 어려웠다. 페넬로페와 왕국을 되찾는 응징이면서 동시에 무서운 살육이기도 하다. 영웅의 폭력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 책은 오디세우스를 흠 없는 영웅으로 닦아 세우지 않는다. 그래서 귀환의 순간조차 생각보다 편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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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뒤의 부록이 의외로 꽤 쓸모 있었다. 작가 파일과 인물 사전은 복잡했던 이름을 다시 연결해 주고,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은 오디세우스의 실수나 가장 힘들었던 시련을 내 판단으로 되짚어 준다. 배와 항해, 왕궁 생활 같은 고대 그리스 세계의 설명을 읽으면 앞에서 지나쳤던 장면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야기를 다 읽고 덮는 책이라기보다 다시 앞장을 들춰보게 만드는 구성이다. 고전을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 이런 전개는 꽤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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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럴딘 매코크런은 방대한 원전을 그대로 압축하기보다 모험의 속도와 장면의 힘을 살리는 쪽을 택했다. 덕분에 고전이라는 부담은 줄었지만, 빠르게 넘어가는 몇몇 사건에서는 인물의 망설임이나 선택의 무게를 조금 더 붙잡고 싶기도 했다. 그래도 오디세우스가 용감하면서 두려워하고, 영리하면서 실수하며, 고향을 갈망하면서도 스스로 귀환을 늦추는 사람이라는 점은 선명하다. 완벽한 영웅보다 선택하고 책임지는 인간을 읽고 싶은 독자, 특히 《오디세이》가 어렵게 느껴져 아직 시작하지 못한 이른 독자가 꼭 읽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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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의 교양 - 알고도 모른 척해야 하는 지위의 법칙 ㅣ 세계척학전집 7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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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의 교양 - 알고도 모른 척해야 하는 지위의 법칙』- 서열을 읽고 나니, 사람보다 내 시선이 먼저 보였다. 

✍🏻 저자 : 이클립스

🏢 출판사 : 모티브


🎯 사람 사이의 관계를 승패와 우위로만 설명하는 책이라면 금방 피곤해질 것 같다. 늑대의 ‘알파’ 개념이 뒤집힌 과정을 읽다가 예상이 빗나갔다. 힘센 한 마리가 무리를 누르는 이야기가 아니라 관계와 관찰의 문제였다. 책은 누가 위에 있는지를 가르치기보다, 내가 왜 어떤 사람 앞에서 저절로 작아지고 또 누군가를 너무 빨리 판단하는지 그 보이지 않는 계산부터 들춰낸다. 이건 남의 서열만 구경하며 읽을 책은 아닌 듯했다.




🔖  힘센 수컷이 왕이 되는 단순한 판을 예상했는데, 드 발의 관찰은 정반대로 흘러간다. 싸운 뒤 다시 껴안고 털을 골라주는 화해, 그리고 혼자 강한 루이트가 결국 고립되는 장면. “당신이 무너질 때 함께 손해 보는 사람”이라는 기준을 대입하니 힘을 개인의 능력으로만 보던 시선이 조금 어긋난다. 강함보다 연결이 자리를 지킨다는 설명은 꽤 현실적으로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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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에 들어서자 책이 남의 서열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촌스럽다, 세련됐다, 유치하다는 말은 상대를 평가하는 동시에 내가 어느 세계의 기준을 익혔는지 드러낸다. 무엇이든 즐길 수 있다는 태도조차 새로운 지위의 신호가 될 수 있다는 대목도 묘하다. 취향은 자유롭다고 생각했는데, 그 자유를 말하는 방식에도 조건이 붙는다면 나는 무엇을 순전히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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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력주의’가 처음부터 칭찬의 언어가 아니었다는 대목에서 익숙한 단어가 갑자기 낯설어진다. 능력에 맞게 자리를 정하는 것과 그 결과를 사람의 가치처럼 굳혀버리는 것은 다른 일이다. 위에 선 사람이 자기 자리를 전부 자신의 능력으로 얻었다고 믿는 순간, 아래에 있는 사람의 실패도 개인 몫이 된다. 시험과 직업과 지위가 촘촘히 이어지는 사회를 떠올리면 이 논리는 멀리 있지 않다. 공정하다는 말이 누구의 확신을 키우는지도 다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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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서열을 읽고 이기는 기술만 밀어붙이지 않는다. 부버의 ‘나와 너’를 지나며 계산하지 않는 만남을 꺼내고, 높은 자리에 선 사람도 더 높은 무언가를 바라본다고 적는다. 앞의 날카로운 판독법과는 속도가 달라진다. 서열의 게임을 피할 수 없더라도 모든 관계를 그 안에 둘 필요는 없다는 것.몇 등인지보다 누구 앞에서 계산을 멈출 수 있는지가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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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볼 때 서열부터 찾아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이클립스는 드 발, 부르디외, 마이클 영, 부버 등 서로 다른 학자의 논의를 일상의 언어로 빠르게 이어 붙인다. 덕분에 복잡한 개념에 들어가는 문턱은 낮지만, 24명의 관점을 한 권에 연결하는 만큼 각각의 논의를 더 오래 붙잡고 싶은 독자에게는 전환이 빠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서열에서 이기는 법’보다 내가 언제 사람을 재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책으로 읽고 싶다. 이유 없이 누군가 앞에서 움츠러들거나, 타인의 인정과 비교에 자주 흔들렸던 독자라면 꼭 읽어주길 바란다.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의외로 순위가 아니다. 나는 누구와 있을 때 상대를 위아래로 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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