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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평점 :
『서리꽃 1』- 세월 앞에서 다시 시작된 사랑,사랑이 한 사람의 삶을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를 따라가게 되는 이야기
✍🏻저자 : 조정래
🏢 출판사 : 해냄

🎯『서리꽃 1』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차갑고 짧게 피었다 사라지는 사랑부터 떠올렸다. 그런데 책을 펼치자 먼저 마주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작가의 몸이었다. 복부대동맥 수술, 위궤양과 오른팔 마비, 다시 찾아온 병과 수술. 그 시간을 지나 조정래는 또 소설을 쓴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품 앞에 이런 기록이 놓여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소설을 가볍게 읽기는 어려웠다. 어쩌면 ‘서리꽃’이라는 말에는 소설 속 연인들만이 아니라, 사라지기 전에 무엇인가를 끝까지 피워내려는 사람의 시간이 함께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 이재이가 출판사 앞에서 시계를 바라보는 장면이 자꾸 눈에 걸린다. 초침 하나가 움직이는 동안에도 세월은 만들어지고, 그 세월이 사람을 바꾼다는 생각. 5년 전의 윤소인과 다시 만났지만 그녀의 퀭한 눈빛과 피폐한 얼굴은 그가 기억하던 시간을 그대로 돌려주지 않는다. 사랑의 재회라기보다 먼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가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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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소인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반 고흐를 이해하기 위해 이재이는 관련 책을 150권 넘게 읽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그 숫자가 지나치게 크게 느껴졌고, 그가 원하는 것은 지식을 자랑하는 일이 아니다. 상대가 바라보는 세계 가까이 가려는 쪽이다. “사랑이란 영혼과 육체의 혼연일체”라는 그의 말은 요즘의 사랑과는 꽤 다른 온도를 갖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취향을 안다는 것과 그 사람이 사랑하는 세계를 공부하는 것은 어디서부터 달라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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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소인이 “더 살기 싫고, 살 자신이 없었어요”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사랑은 낭만적인 감정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재이가 세운 목표는 단순하다. 그녀를 지하에서 벗어나게 하고 마음껏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 하지만 필요한 돈은 2억 5천만 원이고 그 앞에는 아버지와 형이 있다. 그는 그들을 암벽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처럼 바라본다.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은 아름답지만, 그 마음이 커질수록 무엇까지 내놓을 수 있는지가 따라붙는다. 여기서 사랑은 이미 선택의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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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에서 나온 이재이가 되뇌는 것은 거창한 사랑의 문장이 아니다. 맑은 공기, 밝은 햇볕, 영양 있는 식사, 스트레스 차단. 그는 곧바로 지도책을 펼친다. 이 대목에서 앞서 보였던 그의 사랑이 조금 다르게 읽혔다. 반 고흐에 관한 책을 수없이 읽는 일이 상대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식이었다면, 이제 사랑은 먹이고 쉬게 하고 살아갈 장소를 찾는 일이 된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해야 할 일이 먼저 늘어나는 것이다. 그 모습을 어디까지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나는 아직 판단을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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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래가 56년의 문학 인생에서 본격적으로 사랑을 화두로 꺼냈다는 사실은 『서리꽃 1』을 조금 특별하게 만든다. 다만 이재이의 헌신이 워낙 크고 단단해서 때로는 한 인간의 사랑이라기보다 작가가 세운 사랑의 이상형을 보는 듯한 거리도 생긴다. 그럼에도 병과 수술을 거치면서 “회한은 없다”고 적은 작가가 사랑과 삶을 함께 밀어붙이는 장면들은 쉽게 낭만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사랑을 감정보다 행동과 책임으로 생각해본 독자라면 이 이야기를 꼭 읽어주길 바란다. 나는 이제 2권에서 그 사랑이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