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여우와 털장갑'은 우리 애가 서너살 무렵에 알게 된 책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인기가 있었지 않나 싶다.
난 별 정보도 없는데다,책을 열심히 읽어주는 엄마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큰 아이가 이 책을 다시 꺼냈다.
'엄마가 이걸 읽어주던 기억이 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림이 이쁘다'는 정도지만,지 딴에도 뭔가 푸근한 느낌이 들었는지
생전 동화책은 안좋아하는 애가 엎드려서 책을 읽는다.
책은 표지부터 아름답다.
레몬빛을 띤 엄마여우와 아기 여우가 달빛을 받으며 다정스럽게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이다.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장면이다.
(난 왜 쓸데없이 감성^^만 풍부한지..)
전체 내용은 엄마가 서너살 아기에게 소리내서 읽어주기엔 좀 긴 내용이라
다 읽어주려면 목이 좀 아팠지만,내 딴에도 아름다운 이야기라 생각해서였는지
이 먼 나라까지 끌고 왔다.
둘째에게도 읽어줘야지..하고.
그러나 우리 둘째는 데이케어 가랴,갔다오면 아빠랑 형아랑 놀랴,비디오도
보고 티비도 보랴..넘 분주해서 엄마가 책 읽어주는 걸 반겨하질 않는다.
혼자 폼잡고 거꾸로 들고 읽다가 내던지기 일쑤다.
울 큰 아이는 동생을 늦게 봤다.
그래서 한창 나이때 ^^ 혼자인데다,아빠는 공부한다고 한밤중에나 들어오고해서
어린이집 다녀오면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엄마와 이불위에 나란히 엎드려 함께 책을 볼 여유도 있었나보다.
그렇게 해서 둘이 머리를 맞대고,또는 저는 눕고 난 엎드려서 보게 된 책이
'아기여우과 털장갑'이었다.
아기의 손이 빨갛게 언 것이 안스러운 엄마,하지만 무서웠던 기억으로 함께
인간마을에 내려갈 엄두가 안나는 엄마는 한쪽 발을 손으로 둔갑시키고
동전 두닢을 쥐어서 아기를 마을로 내려보낸다.
무서운 인간들로 득실거리는 마을에 아기를 홀로 내려보내는 엄마의 맘이
오죽했으랴..는 내 상상이다.
암튼,아기는 어쨌거나 무사히 장갑을 사온다.
물론,애들이 으례히 그렇듯이,엄마의 당부를 잊어버리고 사람손이 아닌
여우발을 들이밀고 말지만..
사람을 무서워하는 여우,그 여우를 두려워하는 사람..사람은 엄마말처럼
무섭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는 아기 여우..제 각각의 생각들이 재밌다.
마지막에,'세상에는 정말 좋은 사람들도 있을까?'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는
엄마여우와 함께,나도 마지막 장을 넘기며 늘 같은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때 서너살이었던 큰 아이는 이제 10살이 되어서 내 품에서 많이 벗어났다.
엄마인 나는 하루도 맘을 놓을 수 없는 세상이라,내 눈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런 저런 당부가 늘어진다.
뿐이랴,행여나 아이가 실수를 해서 비웃음을 사지 않을까,예의에 벗어나지는
않을까..나의 당부는 현실로 되어서 모자간에 듣기좋지 않은 잡음이 지나가기도 한다..--;;
몇 년만에 다시 읽어본 이 책은 내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 내 아이가 때론 의젓하게,
때론 서운하게 비쳐지는 나이가 되고보니,난 내가 '엄마여우'가 된 느낌이다.
하지만, 내 아이는 한번의 모험을 마치고 다시 엄마품으로 돌아온 아기여우가
아니고 자꾸만 자꾸만 자기 세계를 향해서 나아가는 아이인 것이다.
그래서 난 가끔씩,'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은 걸까?'하고
혼자 중얼거려야 한다.
아..나도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커가는 아이를 보니..참으로 여러가지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