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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ㅣ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2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오정환 옮김 / 한길사 / 199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마키아벨리와 '군주론'을 접한 건 당연히 고교시절 세계사시간에서였다. 그 당시에,멋모르는 내게 마키아벨리는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악의 근원'과 같았다. 그 무식이 얼만 오래 갔던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날 완전히 사로잡았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탈리아 역사를 그녀의 책들을 통해서 많이 접할 수 있었다는 것 외에도,그녀의 명쾌한 문체와 인물과 사건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글재주는 책을 손에서 놓기 힘들게 한다.
그녀의 '마키아벨리'를 만나게 된 것도 순전히 이런 맥락에서였지,마키아벨리에 대해 별다른 호감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하지만,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가졌던 편견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마키아벨리는 내가 상상했던 근엄하고 사악한 학자도 아니었고 명문의 자제도 아니었다. 어찌보면 시대를 잘못만난 불운한 천재였지만,학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관료이되 '비직업관료'로서 온갖 잡무로 이리뛰고 저리 뛰며 적은 월급으로 허덕이며 살던 실질적인 인물이었다. 이런 그에게서 시대를 거스르는 이론이 나왔다는 건 '천재'였다고 밖에는 설명이 안된다. 더구나,그는 사람을 좋아하고 유머를 즐겼던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었나보다.
하지만,이 책이 마키아벨리만을 다루었다면 좀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라는 축을 중심으로 피렌체와 다른 이탈리아도시국가들,주변 열강들이 얽히고 설키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체사레 보르자,레오 10세등의 우리가 이름만 들었던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흥미진진한 소설같지만 실화인 이야기들이 그녀 특유의 싱싱한 문장으로 펼쳐진다.
사놓고 이년여를 책꽂이에서 잠만 자던 책이 드뎌 빛을 보았다. 다 읽고나니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그녀의 다른 책들이 읽고싶어서 몸살이 날 지경이다.
덧붙여서,피렌체.. 열강에 둘러싸여있으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10인10색에 말도 많고 탈도 많고..경기와 정치 모두 불안한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떠나온 내 나라를 생각나게 해서 조금은 우울했다.. 우울하다고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