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생활
남궁문 지음 / 하우넥스트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인상깊은 구절
인야는 생활상의 자신을 무능하다고 자책은 하면서도, 화가로써의 자신의 역할을 탓하지는 않았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고, 적어도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엔 그것만큼은 지켜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정상적인 생활은 화가 남궁문의 자전적 이야기이며 그의 첫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작가 자신일수도 있는 인야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인야는 화가라는 꿈을 이루기위해 대한민국에서 미대하면 알아주는 대학을 나왔고, 본인은 결단코 유학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5년여간 스페인에서 생활하며 그림도 그리고, 그림도 팔고 멕시코 및 독일에서도 공부를 한 이력이 있는, 소위말하는 해외파 출신이기도하다. 언뜻보면 전혀 문제될 것 없어보이는 그의 삶의 한 단편이지만, 또 다시 떠난 스페인 여행이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인야앞에 놓인 건 밀린 공과금과 각종 독촉장들이다.

 

소설의 전체적인 배경은 그가 살고 있는 작은 아파트와 가끔씩 그가 외출하는 장소들이 대부분이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화가로써의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인야의 이야기는 처절하기만하다. 또 다시 떠난 스페인 여행은 친구 요석의 부탁으로 모든 비용은 요석 본인이 지불하겠다는 부탁 및 조건으로 다녀오게 되고, 대한민국에서 나름 화가로써의 입지를 다져보자는 마음으로 연 전시회는 관람하는 사람없이 빚만지고 끝나게 되고, 그나마 내 한 몸 쉴수있는 아파트는 생전, 인야의 어머니가 추후 이런 사태를 예상하셨는지 그의 명의로 남겨놓은 전세 아파트이며, 나중에 꼭 자신의 집을 장만하라며 남겨주신 청약통장도 생활고에 못이겨 결국 해지하게 되고, 먹을 쌀이 떨어져 삶은 달걀과 감자로 끼니를 때우고, 젊은 시절 도졌던 십이지장 궤양이 다시 재발해 피똥을 싸고, 한때나마 사랑했던 정인이 있었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헤어지게되고, 몇몇 여성들과도 인연이 있었지만 결국 그렇게 홀로 화가로써의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40대 중반의 외롭고 쓸쓸한 중년의 인야의 모습이며 작가의 모습이다.

 

그렇게 현실적으로 고되고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인야는 캔버스에 그날 일상의 경험과 생각들을 주제로 자신만의 그림을 드로잉한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그가 얼마나 그림을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지만 그 사랑하는 그림을 그리는 그 행위하나만으로 대한민국에서 인정받고 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삶을 제대로 살아낼 수가 없는 인야의 모습이 처연하고 안타깝기만했다. 그리고 도대체 어떠한 삶이 과연 정상적인 삶인가에 대해서도 인야는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누군가에게랄 것도 없이..

 

각종 비리와 뒷거래는 정치판에서만 있는 줄 알았는데, 미술계에서도 그런 모습들은 인야의 이야기를 통해 여지없이 드러난다. 유명한 미술대의 교수가 되기위해,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그림을 그려야 잘 팔리기에 자신의 신념과는 위배되는 그림들을 생산하는 화가들의 형태 등등 인야의 분노가 담긴 고백들을 읽어나갈땐 그처럼 소신을 가지고 그림을 그려나가는 화가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이 나라의 현실이 안타깝기도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힘든데, 이렇게 현실이 막막한데 왜 인야는 그런 시대의 흐름에 그냥 두눈 딱 감고 편승하지 않을까하는 불온한(?)마음이 살짝 들기도했다. 

 

또한 소설 곳곳에는 한때 그가 자신의 하루를 기록했던 일기들이 다른 형태의 글씨체로 등장한다. 비록 인야라는 허구의 인물을 등장시켜 소설을 써내려가고 있지만, 일기가 등장하는 부분은 분명 작가가 한때 자신의 심경과 그때 당시 느꼈던 오롯한 감정들을 글로 써내려간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더 실감이 나고, 현실적이게 느껴졌다. 그 시절의 풍토와(90년대말부터 2천년대 초반)기록들을 읽으면서 나도 잠깐 그 시절로 되돌아가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인야는 하루의 시작을 음악을 들으면서 메일을 확인하는 일로 시작을 하는데 그의 기대와는 달리 받은 메일은 늘 0통이다. 스페인에 있을때에는 그렇게 인야를 보고싶어하고, 고국에 오면 꼭 보자고 했던 사람들이 막상 귀국을 하니, 아무한테도 연락이 없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고 외출을 꺼려하는 인야이지만 그도 사람이기에 따뜻한 정이 그립고, 사람들이 그립다. 하지만 누구하나 선뜻 그를 찾는 이는 없다. 물론 가끔씩 그의 안부를 걱정하는 몇몇 제자들, 친구들, 형제들이 있지만... 그렇게 무기력하게 사람들의 연락만을 기다리는 인야의 모습을 보면서 답답하기도 했다. 그렇게 보고 싶으면 직접 찾아나서도 되고, 직접 연락해도 되지 않겠냐고 따져묻고 싶었는데, 나의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마지막 그의 고백이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먼저 연락을 한다면 자신의 현실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고, 만나자고 한 내가 먼저 밥한끼라도 사고 차라도 한잔 사야하는데 그런 여윳돈이 인야에겐 없다.

 

하긴, 나 역시 IMF당시 집안이 거의 망하다 싶이 했었는데, 나의 20대 청춘 - 돈 1만원이 없어서 아니, 지하철 표를 살 돈이 없어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조차 기피했던 적이 있었다. 이렇듯 곳곳에 등장하는 그의 현실적 이야기들은 나름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찌질해보이고, 나태해 보일 수 있겠지만 온전히 그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의 그런 삶을 탓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일정 부분 나 또한 공감하는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나 역시 얼마전에 어머니를 잃었기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인야 역시 독일 유학 당시 어머니가 쓰러져 귀국 후 돌아가시기 10개월까지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을 했었다.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묘소로 성묘를 하러 갔는데, 어느 덧 어머니의 나이 만큼 늙어버린 자신이 어머니의 묘소앞에 함께 데려올 자식 하나 없이 홀로 왔다는 그 모습에 알수없는 회한이 들면서 돌아서는 길가에서 인야가 눈물을 흘린 장면이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소설 정상적인 생활은 화가로써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아내야하는 작가의 자전적 리얼리티를 담고 있는 나름 의미있는 소설이다. 전문작가의 글이 아니기에 전체적인 글의 구성은 다듬어지지 않은 듯 거칠지만, 그래서그런지 오히려 옆집 아저씨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편하고 쉽게 읽혔던 것 같다. 다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겁고 애처롭고 서글프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그림 스타일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소신있게 그려나가는 화가로써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했다. 비록 현실에서 말하는 정상적인 생활상의 남자, 아버지, 형, 선배, 자식의 모습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화가로써의 그 자신의 모습은 세상의 기준으로 가타부타 섣불리 말할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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