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중세 문명 현대의 지성 65
자크 르 고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쟈크 르 고프는 아날 학파의 주축이다. 아마 페르낭 브로델과 함께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아날 학파의 학자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주요 주장 가운데 하나는 '장기지속'인데, 거칠게 말하자면 중세의 망탈리테(mentalite)나 문화생물학적 요소, 그리고 종교(기독교)는 중세를 넘어서까지 지속적인 위력과 영향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흑사병은 1720년 마르세이유에서 마지막으로 살인적으로 등장하기까지 3세기 반 동안 르네상스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양의 인구 통계학적·생물학적·심리적 역사를 무겁게 짓누른 장기 지속적 현상이었다(13쪽)'

결국, 중세의 문화적 요소들은 물질적 현실과 상징적 현실의 혼합구조로서 현대를 사는 서양인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여러 요소들이 설령 물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중세적 요소와 완전한 단절을 이루고 있다 할지라도, '사회적 가상(imaginaire)'에 있어서는 중세적 표상이 잔존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르 고프의 책은 흥미롭다. 특히 본문의 내용은 저자 자신이 밝혔듯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재미와 전문성을 균형있게 보여준다는 점에 있어서 독자의 한명으로 독서 내내 즐거웠다.

특히 책의 구조에 있어서 1부에는 역사적 사건을 먼저 배치함으로써 독자들이 익히 알고 있던 사전지식을 충분히 활용하여 흥미를 돋우고 있다. 또한 각 장마다 결론에서 독자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를 공정하게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 연속인가 단절인가?', '중세적 '도약': 외적 자극인가 내적 발전인가?', '중세 공간의 조직: 도시인가 국가인가?', '중세의 위기: 총체적 침체인가 진보의 조건인가?'와 같은 것이 그러하다. 여기에 대해서 독자 나름의 판단이 없다면 책을 읽어나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은 대학생들의 中世史 강의시간에 쓰여도 좋을만큼 지적인 자극을 준다.

그러나, 이것이 이 책의 끝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일반독자를 위한 배려이다. 2부에서는 르 고프의 치밀한 분석이 이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중세의 물질생활을 가능하게 했던 '공간과 시간의 구조'와 정신적 표상이었던 '기독교'의 의미를 잘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것을 잘 알아낸다면 바로 중세인들의 망탈리테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불안감, 사랑, 스콜라 정신, 예술, 감수성, 음식과 옷은 과연 어떤 의미로 그들에게 이해되었던 것일까? 이 책을 읽고, 독자 여러분들도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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