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쓸쓸한 날에 문학과지성 시인선 170
강윤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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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詩를 습작하고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전문적으로 그것을 공부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일까? 나에게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즐거움이다. 마치 신나고 재미있고 슬프고 혹은 딱한 삶의 이야기들을 듣는 기분을 느낀다. 또한 그런 체험들이 엮이고 얼어붙은 結晶과 같은 그들의 세계관을 본다. 그 세계관은 때론 너무 투명하고 깨끗해 세상을 보는 아름다운 안경이 되기도 한다. 내가 미처 못 보았던 부분, 보고서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한 성찰에로 인도하는 그런 안경 말이다.

강윤후라는 젊은 시인의 상상과 현실세계도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서른 남짓의 시인이 가진 체험들. 그 서울의 한 귀퉁이 성북에서 그는 '너'를 기다리고 있고 또한 '너'를 찾아서 떠나고 있다. 냉랭하고 메마르고 건조한, 통풍이 잘 되지 않는 도시의 공기는 그렇게 나를 어느 곳으로인가 옮겨놓고, 너를 어느 곳으로인가 옮겨놓는다. 그리고 둘은 간혹 우연히 스칠지는 몰라도 그것은 영화 속의 이야기일뿐. 만남은 없고 사랑도 없다. 다만 매일매일 누군가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말도 붙이기조차 어려운 그 딱딱함들. 그 속에서 시인의 현실세계는 상상세계로 전화한다. 마치 현실화될 수 없는 유토피아를 상상하듯, 사랑을 바라고 꿈꾼다. '더 먼 날에는 오늘의 누추함마저도 환한 빛으로 떠오르리라 믿으면서'. 지금 기억하고 있는 지난날의 빛나는 상처와 기억들을 밟고 올라서서 이 침침한 도시의 死角 공간에 틈을 내려는 것이다. 그 곳에서는 '너'와 나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쓸쓸하게 돌아온다. 상상만으로 도시생활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실은 그렇게 상상과 拮抗한다. 마치 투쟁으로는 상상세계를 실현할 수 없음을 깨달은 지친 전후세대 작가들의 방향 상실감이랄까? 그러나 강윤후 시인의 시세계는 그렇게 무기력하지만은 않다. 그는 성북역에서 아직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체념하고 잃어버리는 것들을 상상하며, 다시 '너'를 꿈꾸고 있다. 두 사람이 만날 방법을 꿈꾼다. 장소를 꿈꾼다. 그것은 우리에게 지금은 낯선만큼 이전에는 낯익었고 또 가까운 길이다. 그 사람이 무엇을 상상하는지는 계속된 작업의 궤적을 따라가봐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어떤 상상을 하고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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