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가시나무의 기억 문학과지성 시인선 128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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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의미는 무엇일까?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와 <남해금산>(1986) 등의 시집을 통해 유명해진 이성복 시인의 이 시집은 그의 파리 체류시의 외로움과 그리움 및, 정제되고 균형잡힌 새로운 시적공간의 창출 등을 노래하고 있다. 특히 오생근 선생이 해설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이전의 시들보다 자아와 내면의 세계로 더 깊이 침잠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높은 나무 흰 꽃들은 燈을 세우고'와 같은 긴 연작시나 II부 '천사의 눈'에서 씌여진 일련의 구체적이거나 추상적인 대상들에 대한 묘사는 분명 자아의 시선을 조용히 관찰한 것이다. 개인의 작은 기억이나, 취향, 시선, 삽화, 의미들을 탐구하는 것이다. 일종의 내성법(introspection)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려는 시인의 의도가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인의 묘사는 아름답다. 자신이 사랑한 대상들을 조용히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손길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것은 헤어진 연인을 기다리는 시인의 손길이 대상에로 투여한 따스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너무나도 미묘한 삶의 淨化 아니겠는가?

데카르트는 이 세상에서 의심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생각한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삶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살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세상에서 의심할 수 없는 것은, '내가 감각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마저도 어쩌면 統覺하는 것이라고. 이성복 시인의 시를 읽으면 그것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살갗, 이 모든 감각이 행해지는 우리는 피부, 그 층위에서 세상은 돌아가고 구성되는 것 같다.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이 관계, 나와 너가 무엇을 느낀다는 이 관계 뿐이지, 나의 동일성도 너의 동일성도 부차적인 요소라고 생각된다.

그래서일까? 이성복 시인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참 맑아진다. 그 모든 기억도, 나에게 던져진 상처도 다 용서하고, 우리가 걸어왔던 곳으로 回歸하는 마음. 돌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쓰여진 미소를 볼 수 있다고나 할까? '아침에 문 열고 커튼을 열어젖히면 햇빛도, 햇빛 그림자도 없다'(「높은 나무 흰 꽃들은 燈을 세우고 30」) 과연 이보다 더 확실한 사실이 있을까?

나는 영국경험론의 버클리 주교의 주장을 좇는 것이 아니다. 감각만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너무나 여실하게 다가와 우리의 얇은 신경들을 섬세히 찌르는 이 감각들이 또렷하다. 당신도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이것을 똑같이 느낄 수 있을텐데. 저 깊이 交通하는 우리의 의미와 우리의 사랑을 좀 더 소중하게 느낄텐데. 이젠 너무 늦었나? 이성복의 시집을 읽으며 이젠, 그 기억들을 하나 둘씩 지워나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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