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시전집
마종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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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은 의사이면서 시인이다. 그리고 그의 시전집은 내가 곧잘 읽는 책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마종기 시인의 시를 처음 접한 것은 우연히 병원에서였다. 그때 나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병원에 10개월가량 입원을 하면서 수술도 여러번 받았는데, 그때 만났던 것이 마종기 시인의 시였고,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특히 그 가운데, 「戀歌4」와 「戀歌9」는 白眉인데, 그 각각의 詩를 나는 지금도 외우고 있다.

그의 시는 간명하면서 삶에 대한 단면을 잘라 보여준다. 마치 우리의 살갗 밑을 방사선으로 찍어내어 그 속내를 들여다보듯이, 그는 시를 통해 삶의 단층면을 잘라보여준다고 나는 느꼈다(그는 실제로 오하이오 아동병원 부원장 겸 방사선과 과장이다). 의사의 직업이 가진 천명이랄까? 시인의 말마따나 사람들을 전송하면서 살고 있는 그가 그 친구들의 허전한 웃음 끝을 몰래 배우게 되는 그런 과정들 말이다. 그래서 그의 시집들을 차례대로 읽어나가면 조용히 그리고 부드럽게 흐르는 낮은 클래식 음악을 듣는 기분이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그런 음악 말이다.

삶과 죽음의 계보를 가로지르는 그의 시어의 음조들이 어우러내는 '평균률'을 들으며 나는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완쾌되는 병이 아니었기에 나는 허전한 웃음 끝을 의사들에게 보여줄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의 미안한 마음의 전송을 나는 알고 있었다. 삶은 그런 것이리라. 서로에게 작은 마음들을 비춰주고, 그들의 쓸쓸함을 조용히 어루만져 주는 그런 것.

나는 이번 겨울 다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어쩌면 다시 수술을 할지 모른다. 그럴 때, 몇가지 옷가지와 책을 챙겨갈 것이다. 물론, 잊지 않고 마종기 시전집도 들고가겠지. 그의 허전한 웃음 끝을 다시 한 번 음미하고 싶다. 그의 교훈을 다시 한 번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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