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 — 조르주 브라크의 화가수첩


프랑스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조각가로,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큐비즘(Cubism, 입체주의)을 발전시키며 20세기 현대 미술에 깊은 영향을 미친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의 예술적 사유와 철학적 깊이를 엿볼 수 있는 특별한 책 『낮과 밤』이 출간됐다.

브라크라는 이름은 흔히 피카소의 그늘에 가려지기 쉽지만, 사실 두 사람은 대등한 협력 관계 속에서 미술사의 가장 혁명적인 운동 중 하나를 함께 일궈냈다. 1911년 어느 평론가는 "입체주의란 무엇인가? 당연히 브라크-피카소 화파다"라고 말했다. 브라크는 파블로 피카소와 만남으로 예술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으며, 두 예술가는 1907년에 처음 만나 함께 큐비즘이라는 혁신적인 예술 운동을 창시했다. 


그리고 브라크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었다. 그가 죽기 2년 전인 1961년, 브라크의 아뜰리에(L'Atelier de Braque)라는 작품 회고전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렸으며, 브라크는 생존 작가로 루브르에 전시된 최초의 화가라는 인류사에 단 한 번뿐인 영예를 누렸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가 20세기 미술사에서 얼마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분명해진다. 


35년에 걸친 내밀한 창작 노트


『낮과 밤』은 브라크의 그림을 직접 담은 도록이 아니다. 이 책은 1917년부터 1952년까지 조르주 브라크의 수첩에 기록된 단상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창작 행위와 예술에 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고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약 35년에 걸쳐 간헐적으로 적어 내려간 이 짧은 메모들은, 완성된 논문이나 체계적인 이론서가 아니라 한 예술가의 내면이 살아 움직이는 현장 기록이다. 


브라크는 완벽하게 정리된 그림보다는 작업하는 과정의 감정과 사유를 중시했기에, 그의 미술은 단순히 시각적인 작품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표현이기도 했다. 형태의 해체와 색의 변화를 통해 존재의 본질과 인간 감정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예술을 보편적인 진리로 승화시키려 했던 그의 미학적 입장은, 창작노트 『낮과 밤』에서 짧고 간결하게 표현된다. 

이 짧은 문장들은 때로 격언처럼 읽히고, 때로는 수수께끼처럼 독자를 붙잡는다. 브라크는 명확한 답을 주는 대신, 질문 자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대립하는 두 세계 사이에서


책의 제목 '낮과 밤'은 단순한 시간의 구분이 아니다. 브라크가 펼치는 빛과 어둠, 존재와 무, 삶과 죽음의 상징적 대비는 인간의 인식과 예술의 본질을 파고드는 치열한 기록이다. 이 대립항들은 서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서만 의미를 가지는 긴장의 관계를 이룬다. 

『낮과 밤』은 단순히 미적 성찰을 넘어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탐구하는 동시에 현실과 상상이 만나서 벌이는 끊임없는 인식의 게임을 보여준다. 브라크는 독자에게 세상을 구성하는 대립을 지각하고 탐구하도록 초대한다. 


자연과 인간, 실재와 관념, 현실과 상상 등 우리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대립 사이의 균형에 관한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성찰은 예술과 삶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큰 영감을 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브라크가 이러한 대립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낮과 밤』에서도 그의 사고는 같은 어휘일지라도 시간의 흐름이나 상황 혹은 맥락에 따라 서로 상충하거나 모순을 내포하지만, 이는 언어의 자의적인 사용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하나의 생각에 갇히는 것을 지양하려는 의지일 것이다. 그것은 고정된 진리를 선언하기를 거부하는 예술가의 용기이다. 


화가에서 예술 철학자로


브라크의 회화 세계를 알고 있다면, 이 책이 그의 캔버스와 얼마나 닮아 있는지 놀라게 된다. 브라크의 그림은 주로 견고한 구성, 낮은 채도, 고요하고 명상적인 정물화로, 형태, 색채, 구성의 실험을 통해 사물의 형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으며, 전통적인 미술 기법을 넘어선 새로운 예술적 접근을 제시했다. 

이 절제된 미학은 그의 언어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브라크의 텍스트는 그 자체로도 시적이고 은유적인 특성을 갖는다. 그는 언어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설명하는 동시에, 그가 선택한 개념의 층위는 그가 단순한 미술가가 아닌 예술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브라크는 초기에 구상적 표현을 통해 현실을 묘사했지만, 점차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변모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 했다. 브라크의 예술은 언제나 과정과 변화에 초점을 맞췄으며, 브라크의 예술적 성장과 변화의 과정 또한 이 책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독자에게 건네는 초대


매우 추상적이고 때로는 자기만의 언어로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전개하는 브라크의 메모는 그의 예술 세계의 이해와 지적 토론의 장으로 충분하다. 무엇보다 독자는 그의 간결하고 철학적인 메시지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찾아가는 여정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미술 전공자나 예술사 연구자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 창작의 고통과 기쁨을 아는 사람,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무언가를 감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브라크의 짧은 문장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될 것이다.


『낮과 밤』은 예술적·철학적으로 중요한 작품으로, 오늘날까지도 인간의 존재와 예술에 대한 깊은 성찰을 촉구하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브라크가 수십 년에 걸쳐 홀로 수첩에 남긴 이 기록들은, 이제 한국 독자들에게도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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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발로통(Félix Vallotton, 1865~1925)은 주로 화가이자 판화가로 기억된다. 목판화에 신랄한 위트를 담아내고, 누드와 실내 풍경을 불안하리만큼 차갑고 고요하게 그려낸 스위스 출신의 나비파 화가. 그가 소설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며, 『유해한 남자』는 그 숨겨진 재능을 증명하는 가장 빛나는 작품이다.


발로통은 1907년 1월부터 1908년 1월 사이에 이 소설을 집필했다. 1909년 출판사를 찾으려 했으나 실패했고, 1925년 임종 직전 작가 앙드레 테리브에게 원고를 맡기며 출판될 수 있기를 바랐다. 출판의 역사 자체가 하나의 작은 비극이다. 진지한 문학적 힘을 지닌 작품이 생전에 거절당하고,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독자들에게 닿을 수 있었으니.


소설이 1927년 『메르퀴르 드 프랑스』에 연재되며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테리브는 이 작품을 "자전적 요소들이 감동적이고 끔찍한 허구와 뒤섞인 소설"이라 묘사했다. "그의 옛 어두운 유머의 판화들처럼, 눈에는 환각적이고 영혼에는 황폐한 그림들처럼, 세계에 대한 자연주의적 시각이 드러나 있다". 


범죄 현장 속의 고백


소설의 구조는 우아하면서도 불길하다. 스물여덟 살의 젊은 화가 자크 베르디에는 자택에서 스스로 머리에 총을 쏘았다. 조사를 위해 파견된 경감은 현장에서 '하나의 사랑(Un amour)'이라는 제목의 소설 원고를 발견한다. 1인칭으로 쓰인 이 원고는 작가가 살면서 유발했거나 유발한 것으로 보이는 일련의 죽음들을 서술하며, 그는 점차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이끄는 어두운 운명을 짊어지고 있음을 깨닫고, 이 불길한 저주에 대한 책임감에 시달린 끝에 자살 외에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학자들은 이 소설이 얀 포토츠키의 유명한 문학적 장치로부터 이어지는 '발견된 원고'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이중 액자 구조가 탄생한다. 독자는 주인공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의 삶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이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서스펜스가 아니라, 어떻게 그곳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느리고 서늘한 공포를 만들어낸다.


자크 베르디에: 악의 안티히어로


주인공은 함께하기 편한 인물이 아니다. 자크 베르디에는 그다지 공감하기 어려운 성격의 소유자다. 끔찍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이고 비관적이며 변덕스럽고 우유부단하다. 어린 시절 그의 서투름은 두세 차례의 치명적인 사고와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발로통은 단순히 괴물을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흥미로운 무언가를 해낸다. 자크 베르디에는 악의 안티히어로다. 악을 집요하게 추구하던 이전 세기의 루시퍼적 인물들과 달리, 발로통은 악이 그림자나 향기처럼 따라다니지만 결코 그것을 원하지 않는 인물을 창조했다. 베르디에는 대체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는 파리로 상경한 지방 청년으로, 거의 우연히 미술사가로서의 소명을 발견한다. 그의 삶은 창녀촌, 살롱, 카페, 편집실이라는 대도시의 예측 가능한 풍경 속에서 펼쳐진다. 그러나 베르디에는 자신이 무언가 심각한 것을 숨기고 있음을 안다. 악은 그의 영구적인 손님이며, 그의 손을 통해 그를 찾아오는 다양한 존재들에게 전달된다. 


이것이 이 소설을 단순한 자극적 이야기가 아닌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작품으로 만드는 지점이다. 주체성 없는 죄책감, 의도 없는 해악. 선택하지 않았지만 짊어진 저주에 대해 인간은 과연 책임을 질 수 있는가?


발로통이 탁월하게 구사하는 역설은, 베르디에의 불길한 삶이 베르디에 자신과 그의 고백을 듣는 독자 외에는 누구에게도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이 외부와 내부 사이의 간극을 만들어내며, 서사에 음울한 익살의 진동을 부여한다. 외부에서 보면 베르디에는 평범한 파리 지식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부에서 보면 그는 운명의 올가미에 천천히 목이 조여들고 있다.


산문 속의 화가의 눈


『유해한 남자』를 같은 시대의 많은 소설들과 구별 짓는 것은 관찰의 질이다. 발로통의 시각 예술가로서의 훈련과 실천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그 품질.


이 소설은 비평가들에 의해 "유사 자전적"이라 묘사된다. 주변 사람들에게 파멸을 예고하는, 그 시선 자체가 죽이는 것 같은 영리한 젊은이의 이야기. 한 장면에서 주인공은 여성 모델이 실수로 난로로 넘어지는 데 가담(?!)하고, 그 후 그녀의 가슴 하나는 "형체도 없이 부어오른 덩어리, 일종의 점성 있는 용암"으로 변한다는 묘사가 등장한다. 이 대목은 발로통의 묘사적 정밀함을 잘 보여준다. 화가가 임상적 거리감으로 장면을 그려내듯, 외면하기를 거부하고, 위안을 거부한다.


화가와 작가가 섬세하고 생생한 묘사 속에서 하나로 합쳐지고, 언어적 압축의 강렬함이 돋보이는 이 언어로 쓰인 어두운 이야기 속에서,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등장하는 공포가 평범함과 나란히 놓이다가 결국 독자에게 주먹처럼 다가온다. 


학자들은 또한 발로통이 이미지와 텍스트 양쪽에서 시각과 사회적 책임 사이의 관계를 위한 독특한 시각 언어를 발전시켰다고 지적한다. 그의 예술적 명성을 처음 확립시킨 파리 군중 장면들은 구경꾼이라는 현대적 유형의 중요성을 증명하며, 이는 도시적 관음의 매력과 복잡한 윤리를 나타내는 형상이다.  즉, 바라보는 것의 윤리 —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자의 태도 — 가 그의 판화와 소설 모두를 관통하고 있다.


블랙 유머와 균형 잡힌 어조


이 책의 진정한 놀라움 중 하나는 그 어조다. 자살, 우발적 살인, 성병, 강박이라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결코 끝없이 어두운 독서 경험이 아니다.


문체는 경쾌하고 부드러운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으며, 이 젊은이가 주변에 뿌리는 불행들을 읽다 보면 그의 순진함이 오히려 애처롭게 느껴져 결국 미소 짓게 된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이들이 확실한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라고 믿으며 살아왔고, 당연히 그의 행동은 이 치명적인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독자들은 발로통의 시각 작품을 통해 그를 알게 된 이후 그의 산문 속 재치에 놀라곤 한다. 한 독자는 이전에는 그의 회화와 판화만 알았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그가 천재임을 확신하게 됐다며, 신랄하고 냉소적인 문체와 "블랙 유머로 가득 찬" 서사가 첫 페이지부터 사로잡는다고 평했다.


자전과 허구 사이


발로통은 단순히 자전적 예술가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적 어려움이 실행 가능한 상상의 재료를 제공할 수 있음을 냉정하고 체계적으로 인식하는 예술가다.  파리를 항해하며 사랑, 미술 비평,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방인이라는 감각과 씨름하는 젊은 예술가인 주인공과 발로통 자신의 전기 사이의 연결고리는 분명하지만, 결코 조잡하지 않다. 소설은 경험을 단순히 옮겨 적지 않고, 아이러니와 형식적 기교를 통해 그것을 변환시킨다.


한 학술적 분석은 발로통의 소설들이 다양한 형식적, 도상학적, 문학적 관습을 '보호막'으로 사용하여 인간 본성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표현하면서도 스스로를 거리를 두고 보호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발견된 원고라는 구조는 바로 이 목적에 봉사한다. 고백을 죽은 자의 원고 안에 놓음으로써, 발로통은 친밀함과 거리감 모두를 성취한다. 독자는 비밀을 듣기 위해 가까이 몸을 기울이지만, 말하는 자는 이미 사라져 있다.


『유해한 남자』는 짧고 기묘하며 깊이 완성된 소설로, 발로통의 그림과 판화와 나란히 읽혀야 마땅한 작품이다. 함께 읽을 때 하나의 일관된 예술적 비전이 드러난다. 불안한 가정의 풍경, 폭력과 욕망을 향한 차가운 시선, 감상을 거부하는 유머. 이 작품은 누아르 소설, 사실주의 서사, 자전적 이야기 사이를 오가며, 사적인 불안이 거대한 사회적 불안과 공명하고, 비관적 인식들이 놀라운 서술의 힘으로 전달된다. 


발로통이라는 화가를 알고 있는 독자에게 이 소설은 붓질 뒤에 숨겨진 인간을 밝혀준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접하는 독자에게도 이 작품은 충분히 독자적인 매력을 품고 있다. 죄책감, 운명, 그리고 너무 가까이서 바라보는 것의 대가 — 혹은 너무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 자체의 대가 — 에 대한, 간결하고 신랄하게 아이러니컬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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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미셸(Louise Michel, 1830~1905)은 교사이자 혁명가, 그리고 작가였다. 1871년 파리 코뮌의 영웅적 인물로, 1873년 뉴칼레도니아로 유형을 떠났다가 1880년 파리로 귀환하고 이후 런던에 정착하여 무정부주의, 여성의 권리, 그리고 억압받는 모든 이들을 위해 지칠 줄 모르는 활동가이자 강연자로 살았다. 소설, 시, 희곡, 민담, 자서전에 이르는 그의 문학적 유산은 방대하고도 독창적이다. 


동시대인들에게 붉은 성녀(la Vierge Rouge) 라 불렸던 그는 오늘날까지도 매혹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파리 코뮌 당시 그의 고양된 기질을 비난하든, 그 영웅주의에 경탄하든, 정치적 판단력과 사회적 행동주의를 평가하든, 비관습적 교사로서의 면모에 감탄하든 — 그 이미지는 조금도 빛을 잃지 않았다. 


1886년 처음 출판된 『루이즈 미셸 회고록』은 그 비범한 삶에 대한 루이즈 미셸 자신의 이야기다. 소설화된 전기와 이른바 평전들이 넘쳐난다. 각 저자들은 그의 글을 뒤지고, 빌리고, 지우고, 고쳐 쓴다 — 그런데 그렇게 하는 순간, 그 글의 원래 주인인 루이즈 미셸 자신은 뒤로 밀려난다. 저자가 재구성한 '루이즈 미셸'이 남게 되는 것이다. 마치 루이즈 미셸의 '삶'을 알리기 위해서는 그 삶의 주인공이 바로 그 루이즈 미셀이었다는 사실을 먼저 잊어야 하는 것처럼. 『루이즈 미셀 회고록』은 그 모든 것을 단번에 걷어낸다. 여기, 마침내 루이즈 미셸 자신의 목소리가 있다.


 『회고록』에서 그는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 1870년 이전 교사로서의 초기 시절, 파리의 가난한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투쟁을 이야기한다. 1871년 코뮌 당시 최전선에 섰던 그는 베르사유 군사 재판소로부터 뉴칼레도니아 종신 유형을 선고받았고, 그곳에서 카낙 원주민들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사면된 뒤 귀환하여 혁명적 투사와 선동가로서의 삶을 이어가며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로 선언한다. 르클뤼 형제와 크로포트킨의 친구로서 프랑스와 유럽을 쉼 없이 누비며 거듭 감옥을 오갔고, 1883년에는 실업자 시위를 이끈 죄로 6년 중노동형을 선고받는다.


오트마른과 파리에서의 교사 생활을 다룬 부분은 19세기 유럽의 교육에 대한 귀중한 기록을 담고 있다. 파리 포위, 코뮌, 그리고 첫 번째 재판에 관한 장들은 주요 참여자의 시선에서 본 그 사건들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여성의 권리에 관한 장으로, 미셸은 그것을 독립된 투쟁이 아니라 남녀 모두의 권리를 위한 탐색의 일부로 바라보았다. 


이 책에서 독자는 장난기 넘치는 청소년, 페미니스트 교사, 확고한 혁명가, 뉴칼레도니아의 유형수, 아나키스트 전사, 예술과 과학에 열정적인 탐구자,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루이즈 미셸을 차례로 만난다. 또한 날카로운 펜과 날 것의 감수성, 무서울 것 없는 양심을 가진 사상가, 말하는 자, 글 쓰는 자로서의 루이즈 미셸을 발견한다. 


회고록이란 장르의 책은 작가 자신에게 쉬운 장르가 아니가. 미셸 자신도 그 어려움을 고집스럽게 지켜냈다. 서술은 반드시 연대순을 따르지 않으며, 당대 사람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사건들을 불쑥불쑥 환기시킨다. 비평적 주석이 이해를 돕기는 하지만, 책의 구조적 느슨함을 완전히 보완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루이즈 미셸의 의식적인 선택이었다 — 그는 다른 방식을 강요하려는 이들에 맞서 싸웠다. 


​독자들은 루이즈 미셸의 문체에 종종 당혹감을 느낀다. 논리도 없이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건너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은 그가 오트마른 지방의 저녁 모임에서 이야기하듯 쓴 것이다 — 하나의 주제가 다른 주제를 불러오고, 추억, 고통, 후회, 희망, 죽은 이들, 어머니, 친구 마리 페레가 이어지며, 그리고 미래를 향해 열린 채로 『루이즈 미셸 회고록』을 닫는 마지막 한 마디: "혁명!" 


이것은 문학적 허술함이 아니다. 담아둘 수 없었던 삶의 질감이다. 그는 필명 뒤에 숨는 대신, 자신의 이름이 지닌 공적 명성을 글쓰기의 도구로 삼았다. 나아가 독자들을 교육하고 아나키즘으로 이끌기 위해 자신의 삶을 하나의 모범으로 내놓는 대담함을 보였다. 이 회고록은 고백인 동시에 선언문이고, 동시에 전투 명령이다.


1880년대 주로 옥중에서 집필된 이 책에는 최근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깊이 배어 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거듭 선언하면서 —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사회혁명에 더욱 헌신하게 만든다고 쓴다. 미셸의 서술 속에서 고통은 장애물이 아니라 연료다.


 페미니즘, 계급, 그리고 여성의 이중 노예제


『회고록』은 19세기의 가장 강력한 페미니즘 문헌 중 하나다 — 미셸이 페미니즘을 독립된 투쟁이 아닌 더 넓은 혁명적 정치의 일부로 위치시키는 방식이 특히 인상적이다.

사생아로 태어난 그의 출생 — 그는 한 귀족의 하녀의 딸이었다 — 은 일찍부터 여성의 운명에 민감하게 눈을 뜨게 했다. 아버지가 죽자 성에서 쫓겨난 그는 필연적으로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지방에서 파리로 올라온 그는 "여성의 도덕적 향상을 위한 협회"를 설립해 여성들이 자신의 노동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여성 교육에 대해 그의 비판은 신랄하다. 『회고록』의 가장 유명한 구절에서 이렇게 쓴다: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성을 억압하려는 시도를 단 한 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리석음 속에서 키워지는 소녀들은 더 쉽게 속을 수 있도록 일부러 무장 해제된다 — 그것이 바로 원하는 바다. 이는 마치 수영을 배우는 것을 금지하거나 사지를 묶어 놓은 채로 물속에 던져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의 글은 극도로 강렬하다. 미셸은 무엇보다 정당한 복수로 여기는 투쟁에 어떤 한계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 투쟁을 더 넓은 틀 안에 위치시킨다 — 필요하다면 무력에 의한 혁명의 틀 속에. 오직 새로운 사회만이 사람들의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미셸은 작가와 투사 모두를 체현하며, 그 삶과 작품은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수렴한다 — 평등을 위한 투쟁은 오직 전면적이고 총체적일 수 있을 뿐이며, 모든 사회 계층과 억압받는 모든 민족을 아울러야 한다는 것이다. 


 뉴칼레도니아: 제국을 가로질러 피어난 연대


​『회고록』에서 가장 놀라운 대목 중 하나는 뉴칼레도니아 유형 시절을 묘사한 부분이다. 지배자들이 유형을 형벌로 의도했던 곳에서, 미셸은 그것을 연대의 교훈으로 바꾸었다.


그의 마음은 산업화 시대의 비참한 사람들을 품기에 충분히 넓었다 — 서양과 다른 문화와 기원을 가진 민족들, 1871년 파리 코뮌 이후 유형당해 머물렀던 누메아의 카낙 원주민들까지. 루이즈 미셸은 온 마음으로, 온 지성으로, 온 연민으로 간절히 바랐다 — 어느 식탁에도 빵이 모자라지 않기를, 소녀들도 교육의 기회를 누리기를, 여성이 남성과 동등해지기를.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에도 깊이 감동한다. 뉴칼레도니아 풍경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들을 남겼다. 이 회고록은 이념의 협소함을 거부하는 정신을 포착한다 — 아나키스트이자 박물학자, 시인, 말로 그림 그리는 자. 유형의 고통 속에서도 그는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았다.


『루이즈 미셸 회고록』이 1886년 2월 서점에 등장했을 때, 독자들은 이 유명한 코뮌 투사이자 아나키스트의 성장 서사에 대체로 주의 깊이 귀 기울였다 — 그리고 서술의 신선함에,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모든 것에 놀랐다. 그가 "어린 시절의 둥지"라 부르는 장은 큰 호응을 얻었고, 젊은 시절 붉은 성녀가 구혼자들을 물리쳤다는 이야기 또한 크고 작은 익살기를 머금고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교사 시절의 장난기 어린 에피소드들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 『회고록』은 루이즈 미셸의 여러 면모를 종합적으로 담아낸다. 오트마른과 뉴칼레도니아의 민담들, 시, 소설들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한다. 2021년에는  클로드 레타(CNRS/소르본 대학교 산하 연구소(UMR 8599) 소속 연구자로, 루이즈 미셸 전문가)가 편집·주석을 달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Folio Histoire 시리즈 304번으로 3월 4일 출판되었다.— 미셸이 출판사와 협상하여 지켜낸 원문을 최초로 복원한 판본이다.(Louise Michel, Mémoires, 1886, édition établie, présentée et annotée par Claude Rétat, avec dossier documentaire, Paris, Gallimard / Folio (« Folio histoire »), 2021, 576 p)


시대의 역사로서 기능하는 이 『회고록』그 모든 것을 직접 살고 나누기로 선택한 한 여성이 쓴 민중의 비참과 투쟁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루이즈 미셸과 평생 편지를 주고받았고 또 그녀를 위해 「남자보다 위대한」이란 시를 쓴 빅토르 위고 뿐아니라 시인 폴 베를렌도 1888년 그의 시집 『사랑(Amour)』에 「루이즈 미셸을 기리는 발라드」를 헌정하며 이 문학적 차원을 그의 생전에 이미 알아보았다.


루이즈 미셸의 『회고록』은 독특하고 필수적인 문헌이다 — 자서전인 동시에 선언문이고, 코뮌의 죽은 자들을 위한 만가(輓歌)다. 편안하거나 잘 정돈된 책이 아니며, 그 무질서함이 바로 그 정직함이다 — 이것이 전기 작가의 반듯한 책상에서가 아니라, 혁명적 삶의 내부에서 보면 어떤 모습인가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무엇을 얻는가? 루이즈 미셸과 그 동료들, 이상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 했던 모든 이들에 대한 무한한 경탄, 그 이상이란 세상을 더 좋고 더 공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장엄한 유토피아! 


19세기 프랑스사, 아나키즘과 페미니즘의 기원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든, 아니면 단순히 어느 시대에도 비견할 수 없는 하나의 인간적 목소리를 찾는 독자에게든, 『루이즈 미셀 회고록』은 대체 불가능한 무언가를 제공한다 —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고, 그로부터 한 세기 반이 지난 지금도 식지 않은 분노로 그것을 써 내려간 한 여성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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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저자의 『뱀파이어, 이미지에 관한 생각』(불란서책방, 2024)은 뱀파이어와 영화가 '이중적 질료성'이라는 공통 속성을 지닌다는 독창적 시각으로, 공포와 매혹의 존재인 뱀파이어를 통해 영화 이미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탐구합니다. 


"이중적 질료성"은 김성태의 책에서 핵심 개념입니다. 


쉽게 말하면, 뱀파이어와 영화는 둘 다 "실체가 없지만, 특정 조건을 만나면 잠깐 존재를 얻는" 존재라는 공통점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뱀파이어는 낮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밤이 되면 육체를 입고 나타납니다. 영화 속 인물은 현실에 없는 이미지에 불과하지만, 스크린에 투영되는 순간 관객은 그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느낍니다. 


둘 다 "허구 속 존재"이면서, 특정 조건(밤/스크린)을 만나야만 비로소 질료, 즉 몸·실체를 얻는다는 점이 같습니다. 이게 바로 이중적 질료성의 핵심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관객과 뱀파이어의 관계를 "흡혈"에 빗댑니다. 뱀파이어가 인간을 자신의 최면 속으로 끌어들이듯, 영화도 관객을 스크린 앞에 붙들고 현실감을 이식합니다. 


그래서 "뱀파이어는 영화 자체이고, 관객은 흡혈의 대상"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죠.


이중적 질료성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개념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꽤 정교한 '존재론적' '주장'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철학에서 질료(質料)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형상을 받아들이는 재료"를 뜻합니다. 조각상으로 치면 대리석이 질료이고, 그 돌에 새겨진 형태가 형상(形相)입니다. 그런데 뱀파이어와 영화는 질료가 두 겹으로 작동합니다. 


평소에는 질료가 없는 순수한 관념(이야기, 이미지)으로 존재하다가, 특수한 조건이 주어지면 일시적으로 질료를 얻어 현실에 침투합니다. 이 "이중성"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핵심입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침투가 완전한 현실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뱀파이어는 거울에 비치지 않고, 햇빛을 받으면 사라집니다. 영화 속 인물은 관객이 극장을 나서는 순간 다시 스크린 안으로 돌아갑니다. 둘 다 현실을 넘나들되, 결코 완전히 현실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 "경계에 머무는 존재"라는 특성이 두 존재를 더욱 묶어 줍니다.


또한 저자는 "매혹"이라는 공통점도 강조합니다. 뱀파이어는 공포스럽지만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관객은 스크린 위의 이미지가 허구임을 알면서도 울고, 웃고, 공포에 떱니다. 이 "알면서도 속는" 자발적 취약성이 흡혈의 메커니즘과 정확히 겹친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입니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영화론입니다. 뱀파이어는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영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우리가 왜 어두운 극장에 앉아 낯선 이야기에 감정을 내어주는지, 왜 허구인 줄 알면서도 스크린 앞에서 무력해지는지 — 그 불가사의한 경험의 구조를 "뱀파이어성"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한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은 이미 한 번씩 뱀파이어에게 목을 내어준 셈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도 기꺼이 극장에 앉는다는 사실이, 그 흡혈이 결코 불쾌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대부(大部)로 나뉘며, 그 앞에 짧은 서문 격의 글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전체 312쪽의 분량 안에서, 저자는 뱀파이어라는 존재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는 1부에서 출발하여 뱀파이어-영화라는 등식을 다양한 작품에 적용하는 2부로 넘어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책은 "건너기 전의 다리 이 편에서"라는 제목의 서두로 시작합니다. 제목 자체가 의미심장한데, 저자가 앞으로 펼쳐갈 논의 전체를 "경계를 건너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뱀파이어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듯, 이 책 자체도 공포 문화사와 영화 철학 사이의 경계 위에 서 있음을 처음부터 예고합니다.

1부: 드라쿨레아에서 노스페라투로

1부는 뱀파이어라는 존재가 어디서 왔는가를 묻는 역사적·문화적 탐구입니다. 저자는 19세기와 20세기를 각각 하나의 장으로 나눠 다룹니다.

첫 번째 장에서는 뱀파이어 이미지의 기원을 중세 유럽의 공포 문화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합니다. 악과 마법, 마녀, 흑사병, 십자군 전쟁 등 중세인들의 실존적 공포가 어떻게 뱀파이어라는 형상 안에 응결되었는지를 설명하며, 특히 블라드 3세(Vlad the Dragon), 즉 역사 속 실존 인물 드라쿨 3세가 뱀파이어 신화의 토대에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를 분석합니다. 십자군 전쟁 이후 신의 침묵 앞에서 생겨난 공백, 페스트가 만들어낸 죽음에 대한 공포가 뱀파이어라는 초자연적 존재를 필요로 했다는 논지는 단순한 괴물 기원론이 아니라 일종의 문명 공포사에 가깝습니다.

두 번째 장은 이 공포의 형상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영화의 탄생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다룹니다. 브램 스토커의 소설 속 드라큘라가 런던으로 '건너오는' 장면을 분기점으로 삼아, 뱀파이어가 근대 도시 문명 속으로 침투하는 과정을 추적합니다. 이어 무르나우의 무성영화 〈노스페라투〉(1922)와 〈파우스트〉를 경유하면서, 뱀파이어가 영화라는 매체를 만나 어떻게 새롭게 변형·재탄생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최면 이미지의 힘"을 다루는 소절은 이중적 질료성 개념의 직접적인 서막으로, 카메라 앞에 선 이미지가 관객을 최면 상태로 이끄는 구조를 뱀파이어의 흡혈 행위와 겹쳐 읽습니다.

2부: 어지러진 사건의 지평선

2부는 더욱 자유롭고 넓게 펼쳐집니다.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는 물리학적 개념, 즉 블랙홀의 경계면으로부터 은유를 빌려, 저자는 뱀파이어-영화의 속성이 구현된 다양한 영화 작품들을 하나씩 불러냅니다. 각 소절은 사실상 개별 영화론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거론되는 작품들이 흥미롭습니다. 뱀파이어 영화가 아니라 안토니오니의 〈Blow-Up〉,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그리고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을 연상케 하는 노스트로모(우주선 이름)가 등장합니다.

저자는 이 작품들에서 뱀파이어적인 것을 찾아냅니다. 〈Blow-Up〉에서는 스크린 속에 존재하지 않는 공(Ball), 즉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사물을 뱀파이어적 허구성의 사례로 읽고, 〈샤이닝〉의 오버룩 호텔에서는 과거가 현재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초시간적 공포를 분석합니다. "나포당함, 끌려감"이라는 소절 제목은 영화 관람의 경험 자체를 뱀파이어에게 붙들리는 감각으로 표현한 것으로, 앞서 다룬 이중적 질료성 개념이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통해 검증되는 부분입니다.

2부의 마지막은 프리츠 랑의 〈마부제 박사〉 시리즈와 영화 일반을 직접 등치시키는 논의로 마무리됩니다. 마부제는 변신과 최면, 타인에 대한 지배를 능력으로 삼는 악당인데, 저자는 그가 뱀파이어-영화의 속성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캐릭터라고 봅니다. 영화 관객은 마부제의 피지배자이자, 스크린 앞의 흡혈 대상이라는 논지가 여기서 완성됩니다.

정리하자면, 1부에서 뱀파이어가 어떤 문화적 필요에 의해 태어났는지를 밝힌 뒤, 2부에서는 그 뱀파이어성이 영화라는 장치 안에서 어떻게 반복·심화되는지를 개별 작품들을 통해 입증합니다. 단순히 뱀파이어가 많이 나오는 영화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영화 관람이라는 행위 자체를 흡혈의 구조로 해석하는 영화 존재론에 가까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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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8830년 브롱쿠르 성의 하녀 마리안느 미셸과 성주의 아들 로랑 드마히 사이의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성주 조부모 밑에서 자라 사랑받으며 계몽주의 교육을 받고 독학으로 교사가 되었습니다. 세간에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두 분은 서로가 진심으로 사랑한 사이였다. 


나는 모든 종류의 글을 썼다. 시, 동화, 희곡, 소설 등. 1850년 빅토르 위고에게 내 첫 시를 보낸 이후 그가 죽기 전까지 편지를 주고 받았다. 내 편지의 서명은 그의 소설 레미제라블의 등장 인물 앙졸라였다. 1851년 드디어 나는 파리에서 빅토르 위고를 만난다.


1852년 나는 교사가 되었다. 당시 나폴레옹 3세 제정에서는 교사들의 충성서약을 의무화했지만 나는 서약을 거부하고 내 스스로 학교를 세워서 당시엔 금지되었던 라 마르세이예즈를 아이들과 함께 불렀고 세속교육과 남녀 평등을 가르친다.


나의 목표는 아이들 사이에서 인간성과 정의의 원칙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1890년 런던에 망명하는 동안에도 국제자유학교를 세워 기능, 예술과 과학 과정을 무상으로 공급하는 혁신적 교육을 펼쳤다.


1856년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나의 영혼의 동반자 테오필 페레를 만난다. 그는 파리 코뮌 탄압 이후 2만 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총살 당했다. 테오를 체포할 때, 그들은 나의 친구 병약한 마리를 그녀의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끌고 나갔다. 어머니에게 딸을 살리려면 아들의 이름을 대라고,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무의식 중에 몇 마디를 밷었다..그렇게 체포되었고 어머니는 몇 주후 완전히 실성하여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나는 사회 정의, 일자리 그리고 모두를 위한 교육을 위해 싸웠다. 장 조레스는 나를 세속의 성녀라 불렀다. 무엇보다 나는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 나는 여성이었고 여성으로 말해야만 했다. 


1871년 파리 코뮌의 아이콘이 되었다. 나는 바리케이드에서 무기를 들고 싸웠고 부상자들과 여성과 아이들을 돌봤다.  파리 코뮌 실패 이후 정부는 나를 잡겠다는 명목으로 어머니를 베르샤유 감옥에 가두었다. 나는 내 생명같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자수했다. 어머니는 한사코 감옥에서 나가길 거부했지만 오랫동안 설득했고 어머니는 결국 내 말을 들어주었다. 


파리 코뮌 군사법정은 한 마디로 나에게 전장이었다. 나는 마치 총을 쏘듯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다했고 그들 앞에서 당당했다. 나는 사형을 원했고, 겁장이들인 당신들이 나를 사형시키지 않으면 복수하겠다고 했다. 빅토르 위고는 내 모습을 보고 나를 위한 시를 남겼다. 남자보다 위대한.


결국 나는 사형 대신 누벨칼레도니 유배형이 선고되었다. 나는 그곳에서도 다른 유형수들과는 달리 원주민과 우정을 쌓고 그들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웠고 또 책으로 엮었으며 반제국주의자로서 원주민 봉기를 지지했다. 당시 대부분의 유형수들은 원주민 봉기 탄압에 동조했었다. 


​1870년 사면으로 파리로 돌아왔다. 수천 명의 인파가 역에서 나를 기다렸다. 나는 아나키스트로서 이후 수많은 강연에 참여한다. 


1883년 엥발리드 실업자 시위에 이은 빵폭동 주도 혐의로 수감된다. 세 곳의 빵집을 약탈했다는 혐의다. 정부와 언론의 비열한 수작은 끝이 없었다.   


폴 베를렌느는 이에 분개해서 나를 위한 시를 남겼다. 각 구절의 마지막은 '루이즈 미셸은 좋은 사람'이었다.


1886년 석방되었고 여전히 강연과 투쟁을 지속했다.


1880년 르 아브르에서 브르타뉴 지방의 한 남자로부터 권총 테러를 당해 머리에 총알 한 발이 박혔다. 나는 이걸 죽을 때까지 간직했다. 빼내는 건 너무 위험했다. 나는 이걸 훈장처럼 여겼다. 물론 나머지 17년 동안 고통스러웠다. 나는 내게 총을 쏜 자를 용서했다. 그가 감옥에 가지 않게 하려고 백방으로 뛰었다. 그의 잘못이 아니라 이렇게 만든 사회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의 가족을 돌보기 위해 모금도 했다.


나는 페미니스트로서 결혼 제도에 반대한다. 성매매와 결혼은 본질상 다르지 않은 거래관계라고 파악했다. 성매매에 강하게 반대하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나는 사회 문제를 구조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경제적 불평등, 범죄, 빈곤을 개인의 잘못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았으며, 사회적 억압이 이러한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1905년 알제리 강연을 다녀오고 폐렴 치료를 위해 마르세이유 요양중 생을 마감한다. 


내 장례식엔 경찰만 1만명이 동원되었다. 운집한 군중은 2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들은 나의 마지막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 내 이름이 붙은 파리 지하철 역이 있다. 단독으로 지하철 명으로 여성의 이름이 붙은 유일한 사례다. 그리고 전국에 수백개의 학교, 거리,문화센터, 공원, 광장에 내 이름이 붙어있다. 


나의 삶은 고단했으나 나는 한번도 고단함을 느끼지 않았다. 나의 삶은 언제나 약자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절망적인 상황들에서도 나는 언제나 희망을 보았다. 삶을 누렸다. 미래는 결국 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지금 해야할 것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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