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저자의 『영화의 역사』는 단순한 연대기적 나열을 넘어, 영화라는 매체가 어떻게 인간의 사유와 기술, 그리고 예술적 형식을 변화시켜 왔는지를 깊이 있게 탐구한 역작이다. 이 책은 영화의 탄생부터 성장까지 그 방대한 흐름을 한국적 시각과 보편적 미학의 균형 잡힌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빛과 그림자의 연대기


1. 영화, 기술과 예술의 필연적 만남


김성태는 영화의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 가장 먼저 '기술적 토대'에 주목한다. 그는 영화가 다른 예술 장르와 차별화되는 지점이 바로 과학 기술의 산물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를 통해 '열차의 도착'을 상영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인류가 시간을 박제하고 복제할 수 있게 된 혁명적 사건이었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와 뤼미에르의 시네마토그래프를 비교하며, 개인이 들여다보는 방식에서 공동체가 함께 경험하는 '극장적 체험'으로의 전환이 영화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분기점이었는지를 상세히 분석한다. 이는 영화가 초기부터 대중 예술로서의 운명을 타고났음을 시사한다.


2. 형식을 향한 탐구: 무성영화의 황금기


책의 중반부에서 김성태는 영화가 단순한 기록의 수단에서 '언어'로 진화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조르주 멜리에스의 마술적 상상력과 에드윈 S. 포터의 편집 기술, 그리고 이를 집대성한 D.W. 그리피스의 서사 구조는 영화가 어떻게 고유의 문법을 갖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독일 표현주의와 러시아 몽타주 이론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독일 표현주의는 인간의 내면적 공포와 불안을 왜곡된 세트와 조명을 통해 시각화한 과정을 설명한다. 러시아 몽타주는 에이젠슈타인 등이 확립한 '충돌의 미학'이 어떻게 관객의 이성과 감성을 자극하는 정치적 도구가 될 수 있었는지를 깊이 있게 다룬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독자는 영화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쇼트와 쇼트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지적 장치'임을 깨닫게 된다.


3. 리얼리즘과 현대 영화의 태동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영화사 서술은 이 책의 백미다. 김성태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프랑스 누벨바그를 통해 영화가 어떻게 '스튜디오의 인공성'을 벗어나 '거리의 진실'로 나아갔는지를 서술한다. 비전문 배우의 기용, 야외 촬영, 느슨한 내러티브 구조 등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스타일의 변화가 아니라, 전쟁의 참상을 겪은 인류가 현실을 직시하려는 윤리적 태도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한다. 또한, 장 뤽 고다르와 프랑수아 트뤼포로 대표되는 누벨바그 운동이 어떻게 현대 영화의 문법을 해체하고 재구성했는지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4. 할리우드의 팽창과 한국 영화의 궤적


책은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제패한 할리우드 시스템의 명암도 놓치지 않는다. 장르 영화의 정형화와 스타 시스템이 가져온 대중적 영향력을 분석하는 한편, 그 안에서도 작가주의적 색채를 잃지 않았던 거장들의 분투를 기록한다.


김성태는 디지털 기술의 도입이 영화의 본질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필름이 사라진 자리에 0과 1의 데이터가 들어차고, 극장 대신 OTT 플랫폼이 대세가 된 시대에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다시 끄집어낸다. 그는 기술이 변해도 인간의 삶을 투영하고 타인과 공감하고자 하는 영화의 본질적인 힘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가상현실(VR)과 인공지능(AI)이 영화 제작에 개입하는 오늘날에도,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라는 인문학적 가치에 있음을 역설한다.


우리 모두를 위한 시네마테크


김성태의 『영화의 역사』는 전문가만을 위한 학술서가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자신이 탐닉해 온 영상 언어의 뿌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친절한 지도와 같다. 이 책은 인류가 쌓아 올린 빛과 소리의 유산을 향유하는 일임을 일깨워 준다. 방대한 사료와 깊이 있는 해석이 어우러진 이 저서는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필독서로, 영화 애호가들에게는 곁에 두고 오래도록 읽을 동반자로 손색이 없다.


"영화의 역사는 곧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역사이다."

저자의 이 메시지는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독자의 마음속에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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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배우들부터 연기 초보자까지, 수 세대를 거쳐 배우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은 연기의 고전.

스타니스라브스키의 '시스템'을 미국에 뿌리내린 메소드 연기술의 산파, 리처드 볼레스라브스키의 가르침.


연기란 무엇인가 — 90년을 건너온 질문

1933년 처음 출간된 리처드 볼레스라브스키의 『Acting: The First Six Lessons』는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전 세계 연기 학교와 배우 지망생들의 필독서로 읽힌다. 연기에 관한 책으로는 스타니스라브스키의 저서와 함께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힌다.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저자 볼레스라브스키가 한 여배우 지망생을 가르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여섯 번의 수업 — 대화체로 쓰인 이 책은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마치 실제 연기 수업 현장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생생함을 전달한다. 독자는 어느 순간 자신이 그 수업을 듣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이 배우 지망생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볼레스라브스키 자신이 명확히 말하듯 — 이 책은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보다는 그저 연기를 하길 바라는" 모든 이를 위한 책이다. 연기를 사랑하고, 배우라는 직업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6개의 강의는 무대 위의 배우만이 아니라 삶이라는 무대 위에 선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다.


The Six Lessons


여섯 번의 수업 — 집중에서 리듬까지


1st Lesson

집중

Concentration


2nd Lesson

정서 기억

Memory of Emotion


3rd Lesson

극적 행동

Dramatic Action


4th Lesson

성격 구축

Characterization


5th Lesson

관찰

Observation


6th Lesson

리듬

Rhythm



첫 번째 수업 〈집중〉은 연기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다. 무대 위에서, 카메라 앞에서, 완전히 현재에 존재한다는 것. 주의를 흩뜨리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오직 지금 이 순간 이 상황에 몰입하는 능력 — 집중은 나머지 다섯 수업 모두의 전제 조건이다.


두 번째 수업 〈정서 기억〉은 메소드 연기의 핵심 개념이다. 배우가 무대에서 느끼는 감정은 꾸며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감정의 기억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 이것이 스타니스라브스키 시스템의 정수이자, 이후 리 스트라스버그를 거쳐 더스틴 호프만, 알 파치노, 메릴 스트립 같은 배우들에게 이어진 메소드 연기의 핵심이다.


세 번째 〈극적 행동〉은 배우가 무대에서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수업이다.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 연기의 단위라는 것, 모든 장면에는 인물이 원하는 것과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다는 것. 네 번째 〈성격 구축〉에서는 자신과 다른 인물을 어떻게 창조하는가를, 다섯 번째 〈관찰〉에서는 일상에서 인물의 재료를 어떻게 발굴하는가를 다룬다. 마지막 〈리듬〉은 연기와 삶 전체를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박자에 대한 이야기다.


✦ ✦ ✦

메소드 연기의 계보 — 스타니스라브스키에서 할리우드까지

리처드 볼레스라브스키는 스타니스라브스키의 제자이자 조수였다. 모스크바 예술 극장의 배우로서 그 유명한 '시스템'을 직접 체득했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이를 전파했다. 볼레스라브스키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할리우드 메소드 연기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1923년 뉴욕에 '아메리칸 래버러토리 극장(American Laboratory Theatre)'을 설립했고, 이 극장에서 후일 그룹 씨어터(Group Theatre)의 핵심 멤버들이 배출되었다. 그룹 씨어터는 이후 리 스트라스버그의 액터스 스튜디오로 이어졌고, 액터스 스튜디오는 말론 브란도·알 파치노·더스틴 호프만·로버트 드 니로·메릴 스트립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을 길러낸다. 볼레스라브스키의 이 얇은 책 한 권이 20세기 연기 예술의 지형 전체를 바꾼 셈이다.


그리고 이 책이 탁월한 이유는 이론의 압축에만 있지 않다. 볼레스라브스키는 연기를 삶과 분리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 "예술을 위한 삶을 살라. 삶을 위한 예술을 살지 말고." 여섯 수업은 단순히 무대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살고 더 깊이 느끼고 더 깊이 관찰하는 인간이 되는 방법을 가르친다.


리처드 볼레스라브스키

Richard Boleslavsky, 1889~1937

폴란드 태생으로 러시아 제국에서 성장했다. 모스크바 예술 극장에서 스타니스라브스키에게 사사하며 그의 '시스템'을 체득했다. 이후 미국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에서 연기 교사, 연극·영화 연출가로 활동하며 스타니스라브스키 시스템을 영미권에 최초로 본격 전파했다. 1933년 출간된 『Acting: The First Six Lessons』는 그의 대표작이자 연기 교육의 고전으로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읽히고 있다.


이런 분께 강력 추천합니다

-연기를 처음 배우는 모든 배우 지망생/메소드 연기의 뿌리가 궁금한 분

-연극·영화학과 학생 및 관계자

-삶을 예술적으로 살고 싶은 모든 이

-집중·관찰·리듬에 대해 생각하는 분


배우를 위한 책이 아닌, 삶을 위한 책

『연기 6강』을 읽고 나면 이상하게 주위를 더 자세히 보게 된다. 지하철 맞은편 사람의 표정, 카페에서 들리는 대화의 리듬, 어제 나를 기쁘게 했던 감정의 질감 — 그것들이 이전과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볼레스라브스키가 가르친 집중, 정서 기억, 극적 행동, 성격 구축, 관찰, 리듬은 무대 위의 배우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무대를 더 깊이 살고 싶은 모든 이에게 유효하다.


190쪽이라는 간결한 분량 속에서 이 책은 거의 한 세기에 걸친 연기 교육의 정수를 전한다. 스타니스라브스키에서 볼레스라브스키로, 볼레스라브스키에서 그룹 씨어터로, 그룹 씨어터에서 액터스 스튜디오로 이어진 위대한 계보의 출발점. 불란서책방이 이 고전을 한국에 소개한 것은 배우를 꿈꾸는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자, 연기와 삶의 교차점에 관심 있는 모든 독자에게 드리는 선물이다.


90년을 건너온 연기의 고전, 드디어 한국어로

메소드 연기 계보의 출발점. 배우 지망생부터 삶을 깊이 살고 싶은 모든 이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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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trée littéraire.


프랑스 출판계의 가장 활기찬 시기를 이르는 말. 매년 8월 말부터 10월 말 사이에 수백 권의 문학 신간이 쏟아져 나온다. 주요 문학상이 발표되는 11월 초까지 이어진다. 공쿠르 르노도 메디치 페미나 등. 


작년 8월, 시즌을 시작하면서 "자기 연민에 빠진 셀카를 조심하라!"는 말을 남겼던 그라세 출판사 ceo 올리비에 노라가 모기업인 아셰트 그룹의 또 모그룹인 라가르데르의 뱅상 볼로레에 의해 최근에 해임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동네에서는 거의 '지진'이라는 표현도 쓰고 있다. 저간의 복잡한 사정을 내가 다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꽤나 정치적 입장(세계관)에 따라 갈리고 있는 것을 보면 이는 분명 이념적 문제일 듯하다.


작가와 출판인들의 말은 이렇다.


"오랫동안 산업 및 문화 활동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온 아셰트와 그라세가 속한 그룹은 이제 이념적 성향이 공개적인 논의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미디어 매체, 출판사, 플랫폼의 응집력 있는 전체로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의도적인 변화는 노동법이나 저작권법에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자들은 자신들의 출판권과 작품이 자신들이 반대하는 편집 방침을 가진 주주의 통제하에 놓이게 됩니다. 직원들은 자신들이 동의하지 않는 정치적 담론의 확산에 참여하게 되고, 출판사들은 자신들이 공감하지 않는 의미를 담은 작품들을 출간하게 됩니다. 직원들은 다원주의가 사라지고 단일 노선이 지배하는, 근본적으로 변화된 환경에서 일하게 됩니다.민주주의는 개인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선택하지 않은 대의를 위해 복무하도록 강요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서점 직원, 홍보 전문가, 심지어 팀 전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마케팅 활동에 휘말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프랑스 법은 이들을 위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 놓지 않았습니다. 그저 받아들이거나 떠나라는 선택지만 있을 뿐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수년간 쌓아온 근속 연수, 권리, 그리고 때로는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해 온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는다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부조화를 감수하는 것이며, 때로는 병가, 탈진, 그리고 조용한 의욕 상실로 이미 드러나는 실제적인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라세 출판사는 우리의 집이었고,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의견 차이가 거의 없는 작가들이 평화롭게 함께 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오늘날 우리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 바로 문화와 미디어 전반에 걸쳐 권위주의를 강요하려는 이념 전쟁의 인질이 되기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라세 출판사의 작가이거나, 그라세에서 책을 출간했거나, 그라세에서 출간 ​​예정인 책이 있지만, 다음 책은 그라세에서 출간하지 않을 것입니다"



올리비에 노라를 해임한 사람 벵상 볼로레. 이 사람의 말은 이렇다.


"이 분쟁은 메종 그라세의 매우 실망스러운 경제적 성과를 배경으로 발생했다. 2024년 1,650만 유로였던 매출액은 2025년 1,200만 유로로 감소했으며, 2024년 120만 유로였던 영업이익은 절반으로 줄어 2025년에는 60만 유로에 그쳤다. 이와 동시에 올리비에 노라(Olivier Nora)의 연봉은 83만 유로에서 101만 7천 유로로 인상되었는데, 아셰트(Hachette)가 지급한 이 보수의 절반만이 그라세 측에 청구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라세의 겉보기 비용이 개선되었으며, 이에 따라 발표된 실적 또한 실제보다 부풀려지는 효과를 낳았다.하지만 그라세(Grasset)를 이끌었던 올리비에 노라의 사임은 엄청난 언론의 관심과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일부 언론은 이를 "지진" 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수백만 프랑스 국민의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심각한데, 어떻게 이 사건이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Grasset은 계속 운영될 것이며, 떠나는 사람들은 새로운 작가들이 출판되고, 홍보되고, 인정받고,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이는 단지 소수의 이기적인 집단, 즉 스스로를 모든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집단, 서로를 포섭하고 지지하며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집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셰트 경영진은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경영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두려워하지 맙시다! 그라세는 계속될 것이며, 떠나는 사람들은 새로운 작가들이 출판되고, 홍보되고,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저는 가족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문학을 깊이 사랑해 왔으며, 더 많은 작가들이 더 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데 헌신하고 있습니다. 제 "이념 "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저는 기독교 민주당원이며, 아셰트의 경영진은 출판을 원하는 모든 작가들의 작품을 계속해서 출판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영업이익은 줄고 ceo 연봉은 올랐는데 그라세가 반반 장부에 올리고 나머지는 아세트에서 댔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영업이익이 났다는 이야기다. 이 뻔한 이야기에는 그저 그렇다고 치고.


저자, 출판사직원, 그리고 출판사가 자신들의 출판권과 작품이 자신들이 반대하는 편집 방침을 가진 주주의 통제하에 놓이게 될때 노동법이나 저작권법에 이를 반영할 수 있는 법을 만들라는 게 핵심.


여튼 우리도 알만한 프랑스 작가들 300 여명이 그라세를 떠난다고 하는데 여기에 계약 문제 저작권 문제 상당히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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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포비』가 분석한 3천 년의 배제


우리는 흔히 혐오를 개인의 미성숙한 감정이나 특정 대상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법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다니엘 보릴로와 변호사 카롤린 메카리는 그들의 저서 『호모포비』를 통해, 동성애 혐오가 결코 우연적인 감정의 산물이 아님을 입증한다. 이 책은 170쪽이라는 짧은 분령이지만 압도적인 밀도로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3천 년에 걸친 혐오의 뿌리를 추적하며, 이것이 어떻게 사회적·제도적으로 구조화되었는지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1. 혐오의 기원과 가부장제의 공모

이 책의 가장 강력한 통찰 중 하나는 동성애 혐오가 가부장적 세계관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고대 그리스-로마와 유대-기독교라는 대조적인 두 세계를 분석한다. 먼저 그리스-로마는 동성애를 사회적 통과의례로 수용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유대-기독교는 잘 알려져 있듯 동성애를 철저히 부정하고 박해했다. 겉보기에 정반대인 두 세계는 그러나 사실 ‘강력한 가부장적 질서’ 위에 세워진 사회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즉, 혐오는 이성애 우월성을 고착화하고 남성 중심의 가족 제도와 혼인 규범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가 필요로 했던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2. ‘죄악’에서 ‘질병’으로: 혐오의 진화와 합리화

저자들은 호모포비아를 크게 두 가지 층위로 분석한다. 첫째는 유대-기독교적 전통에 기반한 '종교적·도덕적 혐오'이며, 둘째는 근대 의학 및 법률이 만들어낸 '과학적·제도적 배제'다.

과거에 동성애가 종교적 단죄의 대상인 ‘죄악’이었다면, 근대에 들어 심리학과 정신의학은 이를 ‘질병’으로, 법률은 ‘반사회적 범죄’로 재정의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단 하나의 사실은, 동성애가 언제나 ‘정상’의 범주를 확립하기 위한 ‘비정상’의 거울로 동원되었다는 점이다.


3. 차별의 위계화와 권력의 작동

이 책은 호모포비아가 어떻게 ‘차이의 위계화’를 수행하는지 밝혀낸다. 저자들은 이 현상이 단순히 동성애자를 싫어하는 마음이 아니라, 이성애적 결합만을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것으로 설정하여 권력의 우위를 점하려는 적극적인 사회적 실천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동성애자들이 유대인 희생자들과 달리 해방 후에도 그 어떤 인간적 권리도 부여받지 못했던 처절한 사실은, 혐오가 어떻게 역사적·이념적으로 공고하게 구축되었는지를 냉철하게 증명하고 있다.


4. 법의 역할과 민주주의의 완성

법은 다수자의 도덕을 수호하는 도구가 아니라,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보루가 되어야 한다. 저자들은 동성애의 비범죄화를 넘어 평등한 시민권(결혼, 입양 등)의 획득이 왜 민주주의 완성의 필수 요건인지를 역설한다. 결혼 제도를 남녀 간의 결합이 아닌 ‘성 중립적 공동체’라는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급진적이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성애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소수자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사회 관습의 코르셋에서 모두를 해방시켜 만인의 자유를 향상시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혐오의 언어 뒤에 숨은 거대한 차별의 역사를 직시하고자 하는 독자들, 인권과 젠더 이슈에 민감한 20-30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170페이지에 인류 역사의 단면을 닮아냈다. 역사책으로도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다.

제도적 혐오의 구조 등 현대 사회의 차별 기제를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싶은 독자에게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책이다. 그리고 법이 어떻게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민주주의의 보루가 될 수 있는지 탐구하는 독자 또한 유익한 독서를 제공할 것이다.


"혐오를 알아야 혐오와 싸울 수 있다."


혐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제조된 것이다. 『호모포비』는 우리가 지켜야 할 인권의 최전선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정직한 지도라 할 수 있다. 혐오를 멈추는 것은 단순히 친절해지는 것이 아니라, 위계적 질서에 균열을 내고 모든 인간이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세상을 설계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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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오랫동안 정신과 육체의 분리를 고집해 왔다. 이성은 욕구를 초월한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사유는 고귀하고, 소화는 부끄러운 것이라고. 1989년 출판된 미셸 옹프레의 첫 번째 에세이는 이 모든 전통을 향한 유쾌한 공세다. 그 핵심 주장은 단순하면서도 전복적이다. 철학자들의 음식 선택을 통해 그들의 사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 당신은 당신이 먹는 것이고, 당신의 철학 또한 그럴지 모른다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생각할 때 대부분 자신의 몸을, 특히 먹을 때 몸속에 쌓이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을 잊는다. 그러나 사유와 위장 사이에는 복잡한 친화성과 고백의 그물망이 존재하며, 이것을 성찰이 무시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옹프레는 이 영역을 가스트로필로소피(gastro-philosophie), 즉 미식철학이라 부르며, 『철학자들의 뱃속』은 그 창립 선언문이다.


위장과 뇌는 낯선 사이가 아니다


이 책의 지적 도박은 옹프레 특유의 활기로 펼쳐진다. 디오게네스가 날것의 문어를 즐겨 먹지 않았다면 과연 그토록 문명과 그 관습에 적대적인 반대자가 되었을까? 『사회계약론』의 루소는 평소 식단이 유제품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검소함을 그토록 옹호했을까? 악몽이 게로 가득했던 사르트르는 갑각류에 대한 혐오를 평생 이론의 영역에서 치르며 살지 않았을까?


이것들은 가벼운 농담이 아니다. 진지한 철학적 방법론의 전제들이다. 옹프레는 한 사상가의 음식과의 관계 — 무엇을 먹고, 거부하고, 집착하고, 두려워하는지 — 가 전기적 각주가 아니라 인식론적 열쇠라고 주장한다. 식이 요법은 이 독해 방식에서 철학자들이 기록에서 지우려 애써온 자서전의 한 형식이다.


철저히 니체적인 이 에세이에서 옹프레는 대구, 보리 수프, 와인, 앙두이예트, 향이 든 커피, 심지어 오드콜로뉴에까지 철학적 존엄성을 되돌려 주기로 했다 — 이것들은 푸리에에서 마리네티까지, 칸트에서 실존주의자들까지, 기쁨의 학문에 이르는 뜻밖의 경로들이다. '식이적 이성 비판'이라는 부제는 칸트에 대한 의도적인 메아리다 — 칸트는 적절히도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사례 연구 중 하나로 등장한다.


철학자들의 메뉴


이 책은 각 사상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맛과 거부로 그려진 철학적 초상화처럼 기능한다. 등장인물은 디오게네스, 루소, 칸트, 샤를 푸리에, 니체, 미래주의자 마리네티, 그리고 장폴 사르트르다. 각 장은 한 철학자의 신체적 습관 — 쾌락, 공포증, 과잉, 결핍 — 이 그들이 공언한 사상을 어떻게 표현하고 또 어떤 모순이 있는지를 밝힌다.


철학자들에 이르기 전, 옹프레는 유머로 가득 찬 서문을 통해 독자의 입맛을 열어준다 — 풍자적이고, 달콤 쌉싸름하고, 매콤한 맛의 전채 요리처럼. 이것은 독자가 이 에세이를 즐거운 잔치의 연속으로, 우리의 뇌라는 미각에 제공되는 훌륭한 정신적 요리로 이어서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서문은 또한 주목할 만하게도 자전적이다. 독자는 옹프레의 어린 시절 궁핍함, 대학생 시절의 음주, 그리고 스물여덟 살에 겪은 심장마비를 발견한다. 자신의 미식 자서전으로 책문을 열면서 옹프레는 스스로를 분석 대상에 위치시킨다.


식탁에 앉은 철학자들


디오게네스는 옹프레의 영웅이자 자연스러운 모델이다. 키닉 철학자는 "자기 시대의 불량한 양심"으로 정의되는 진정한 철학자의 상징적 형상이다. 그는 습관을 통해 순응주의를 폭로하려는 완강한 의지의 담지자다. 니체가 냉소주의를 "지상에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것"으로 정의한 데 힘입어, 우리는 디오게네스가 누볐던 영역으로 평온히 들어설 수 있다. 날것의 문어를 먹고 익힌 음식을 경멸하는 그의 식단은 단순한 기행이 아니라 먹는 행위로 실현된 철학적 태도 — 문명의 정제를 식사마다 거부하는 몸짓이다.


루소는 좀 더 회의적인 시선을 받는다. 옹프레는 이 18세기 작가를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 루소의 소박한 시골 음식에 대한 취향, 우유와 유제품에 대한 찬사, 전형적인 '고귀한 야만인'식 채집 습관을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옹프레는 루소의 채식 성향과 유제품과 소박한 식사에 대한 애호를 그의 자연 이상화 및 금욕 철학과 연결하며, 두 가지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비평가들은 이 독해가 다소 편향되었다고 반론을 제기했는데, 루소가 좋은 와인을 즐겼다는 사실 — 장프랑수아 레벨이 기록한, 루소가 와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여관을 떠나 마음에 드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일화 — 을 완전히 누락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칸트는 이 책에서 가장 유쾌한 놀라움을 주는 장이다. 냉철하고 금욕적이며 강박적인 건강염려증 환자를 기대했던 독자는 프로이센 도시의 거리에서 만취한 채 발견된 칸트와 마주치게 된다. 순수 이성의 철학자는 알코올과의 관계에서는 순수함과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옹프레는 또한 칸트의 후각 경시에 주목한다. 쾨니히스베르크의 현자는 후각을 너무 비자발적이고 사회적이어서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폄하했다.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동시에 모든 사람과 같은 것을 맡는 것 — 타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감각을 공유하도록 강제하는 필연이며, 따라서 자유에 위배된다고 칸트는 주장했다. 옹프레에게 이 후각 철학은 통제되지 않는 감각적 경험에 대한 칸트의 더 넓은 공포를 완벽하게 반영한다.


사르트르는 이 책에서 가장 길고 가장 신랄한 초상을 받는다. 장폴 사르트르의 갑각류에 대한 혐오는 너무 극단적이어서 공포증에서 비롯된 환각까지 경험했다 — 시몬 드 보부아르는 『나이의 힘』에서 그가 정말로 바닷가재 한 마리가 자신을 뒤따라 다닌다고 확신했다고 기록한다. 옹프레는 사르트르에게서 음식이 철학자를 자기 몸의 영원한 적으로 지목한다고 결론 내린다. 자유와 급진적 선택의 실존주의 사상가가 일상적 신체의 삶에서는 합리화도, 극복도 할 수 없는 혐오에 예속되어 있었다. 알코올 중독, 온갖 종류의 약물에 절어 있고, 줄담배를 피우며 아무것이나 먹어대는 사르트르의 끔찍한 자기 관리는 옹프레의 분석에서 자아를 향해 체계적으로 선포된 전쟁처럼 읽힌다.


니체는 책 전체에 걸쳐 옹프레의 일차적인 철학적 선조이자 영감으로 등장한다. 부제가 칸트를 메아리치는 것도 니체적 몸짓이다.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영양의 문제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신학적 호기심보다 더 중요하다고 썼다. 옹프레에게 소화의 영역을 철학적인 것으로 끌어올린 이 행위는 정직하고 체현된 철학 — 아무 곳도 아닌 곳에서 생각하는 척하지 않는 철학 — 의 창립 행위다.


방법론으로서의 미식철학


옹프레가 흥미로운 초상들 너머에서 제안하는 것은 철학적 전기의 진정한 방법론적 확장이다. 먹는 것의 예술은 결국 모든 것의 예술이다. 푸코는 이렇게 썼다. "삶의 예술로서 식이 요법의 실천은… 몸에 대해 정당하고 필요하고 충분한 배려를 갖는 주체로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하나의 전체적 방식이다." 윤리와 미학이 합쳐진 것 — 하나의 반추된 삶의 형식으로서의 식이 요법.


이 책의 근저에 있는 주장은, 텍스트와 논증과 체계에 집중해온 전통적인 철학사가 사유의 체현되고 욕구적인 차원을 체계적으로 무시해왔다는 것이다. 그 접근이 아무리 탁월하다 해도, 가장 풍요로운 정신도 기본적인 영양 연료 공급에 생존이 달려 있는 복잡한 신체 기계와 연결된 소화관이 없지는 않다.


구두장이가 가장 신발을 못 신는 법이 없어야 한다는 근본 원칙에 충실하게, 옹프레는 자신의 습관대로 높고 크게 윤리를 외치면서도 선언된 원칙들과는 천문학적으로 거리가 먼 일상을 살아가는 이중성을 추적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철학적 정직함에 관한 책이다 — 사상가들이 실제로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지에 관한.


이 책은 옹프레의 첫 번째 주요 출판물이었고, 그를 프랑스에서 가장 읽기 쉽고 도발적인 대중 지식인 중 한 명으로 부상시켰다. 철학에 평소 거리감을 느끼던 독자들에게도 진정으로 접근 가능한 입구를 제공했다. 입을 통해 철학에 들어가는 예술.


비평적 반응은 호의적이었지만  일부 평론가들은 접근법의 재치와 독창성을 칭찬하면서도 일부 결론들이 다소 성급하게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 전기적 세부 사항에서 포괄적인 철학적 판단으로 너무 빠르게 넘어가는 순간들. 루소에 대한 처리는 특히 이념적으로 편향된 선택적 독해라는 비판을 받았다.


더 근본적으로, 일부 철학자들은 옹프레의 방법이 특정한 결정론의 위험을 안고 있지 않은지 의문을 제기했다. 한 철학자의 사상이 식단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그 사상을 설명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다시 묘사하는 것인가? 이 책이 이 질문에 항상 엄밀하게 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이 책의 목적이 아닐 수도 있다. 증명하기보다는 도발하고, 이미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상가들을 다시 보게 만드는 것 — 이번에는 조금 더 배가 고프고, 더 호기심이 많은 눈으로.


『철학자들의 배』는 근엄함을 거부함으로써 진실한 무언가를 밝혀내는 일조의 진정한 지적 재기로 가득한 책이다. 소화 불량이 두렵지 않도록, 적당한 분량씩 음미하며 천천히 섭취해야 할 책이다.


이 책은 철학사에 대해, 긴 대화에서 훌륭한 음식이 하는 역할과 같은 것을 해낸다 — 모든 것을 더 따뜻하게, 더 구체적으로, 더 생생하게 만든다. 디오게네스의 날 문어, 칸트의 프로이센식 음주, 사르트르의 환영 속 바닷가재 — 이것들은 위대한 사상들의 각주가 아니다. 옹프레의 손에서 이것들은 사상 그 자체가 된다, 더 정직한 각도에서 바라본. 철학자도 결국 모든 다른 동물처럼 먹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를 우리가 무시한다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라 밝히고 있다.


리뷰: 미셸 옹프레의 『철학자들의 뱃속』

(Le Ventre des philosophes — Critique de la raison diététique, Grasset,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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