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영화의 역사에 대해 물었을 때, 연대별 영화의 제목이나 배우의 이름만 나열한다면 당신은 아직 반만 알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움직이는 이미지가 소리와 색채를 얻고 서사와 의미를 가지며 신흥 예술 작품이 되어가는 지난 2세기 동안, 영화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양한 의미로 정의하며 역사를 기록해 왔다. 영화의 역사를 다시 이렇게 나열해보면 어떨까?

 

영화는 에디슨과 뤼미에르 형제의 발명품이었고 들뢰즈와 베르그송의 철학적 사유였으며, 대중의 호기심이었고 산업혁명 시대의 신종 사업 아이템이었다. 또한 1차 세계대전 전후의 새로운 시장과 산업이었고 신대륙을 개척해 할리우드를 탄생시켰으며, 단순한 출연자를 연기자나 스타로 만드는가 하면, 제작 노동자이던 감독을 예술가와 창작자로 변모시키고, 독립 영화사들 간 경쟁의 불씨가 되었으며, 다양한 일자리와 체제를 창출하고 세계 굴지의 거대한 기업들을 일으켰다. 그 자체로 자본이고 종교였으며, 여러 갈래의 사조가 되었으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산업과 예술의 영역 안에서 학문이 되었다.

이처럼 영화는 모든 시대의 다채로운 의미였다. 이 복잡다단한 과정 속에 대체 얼마나 놀라운 뒷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그러므로 이 책은 흔히 보는 연대별 영화작품 분석이나 미학으로서의 영화 이론은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는, 기계 장치로서의 영화와 창작물로서의 영화라는 두 가지 다른 개념을 의미론적으로 명확하게 구분 짓고, 시각 오락물에 지나지 않던 상업적 도구가 산업혁명과 세계대전을 거치며 어떻게 소리와 이야기를 입고서 시장과 돈, 대중과 문화를 움직이고 사조를 형성하며 영화의 시대를 열었는지를 세심하게 톺아본다.



저자는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와서는 20년 간 대학 강단에서 영화를 가르친 영화광이자 영화학자이다. 국내 출판 현실상 번역서 이외에 이렇다 할 영화 역사서나 참고서가 없음을 안타까워하다가, 직접 한국인의 시각과 정서로 본 세계 영화사를 쉽고 재미있게 새로 써 내려갔다. 덕분에 이 책의 문장은 저자의 육성을 그대로 품게 되었다. 글에 녹아있는 특유의 화법과 목소리는 그의 제자였다면 단박에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생생하다. 평생을 배우고 가르쳐 온 긴긴 시간만큼이나 영화를 대하는 저자 고유의 감성과 남다른 애정을 책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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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나는 비 오는 파리의 어느 카페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한 한국인 청년을 우연히 만났고, 영화를 학문적으로 탐구하고자 하는 그의 남다른 열정과 포부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 열정과 꿈이 드디어 25년이라는 시간의 각고를 거쳐 <영화의 역사>라는 역작으로 탄생했음을 확인하는 것은 참으로 감동적인 일이다.

이 책은 단순히 영화의 역사를 기술한 책이 아니다. 시네마토그라피라는 운동과 시간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발명품이 소리와 색채를 얻고 자본과 결합하여 리바이어든 같은 거대산업이 되기까지, 노동과 기술의 결합이면서 동시에 창작자의 생산품이 무한복제의 수익상품, 심지어 신식민지화의 대표상품이 되기까지, 렌즈를 통과한 빛이 만들어내는 현상이 삶과 세상을 읽는 철학이 되고 예술이 되고 가장 강력하게 대중을 사로잡는 이야기의 매체가 되기까지, 그 다채로운 영화의 정체성을 해부하고 복잡한 진화의 과정을 밝히고 있는 책이다.

 

영화의 역사를 이렇게 넓고 깊게, 이처럼 다층적인 시각으로 서술한 책은 한국은 물론이고 저자 자신이 공부한, 영화를 발명했던 프랑스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김성태의 <영화의 역사>는 감히 기념비적인 역작이라 할 만하다. 마침내 우리는 영화를 이해하고 사유하기 위해 서가 한쪽에 꽂아두고 언제나 찾아볼 수 있는 영화 관련 참고서를 한 권 얻게 되었다.

 

 

이창동(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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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갇힌 동성애자는 분홍 삼각형 표식이 주어졌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수용소에서 풀려난 사람들에게 미국으로 갈 수도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동성애자에게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왜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일까요?


그리스 로마, 고대 성서시대와 기독교 시대, 중세와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입장과 관점에서 동성애 혐오의 양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근대에 들어, 과학과 의학, 이데올로기와 관료체제, 그리고 부르주아 시민사회가 형태를 달리하며 교묘하게 권리를 제한하고 소외시키며 혐오를 조장하는 매커니즘이 다른 혐오들, 인종차별, 성차별, 외국인혐오 등과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지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호모포비>는 동성애 혐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인 동시에, 인간의 행위를 집요하게 부정하고 배격하는 또 다른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 볼 수 있습니다. 


"혐오는 혐오를 낳고 더욱이 여성과 아이, 약자로 흘러가는 매커니즘을 가진다. 특정 무언가를 옹호하는 글이 아니다. 혐오는 우리 모두에게 있기에 누구나 마주해야 하는 진실임을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독을 권한다." 서점인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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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영화이다. 언뜻 들으면 이상하게 느껴진다. '영화'의따옴표.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로는 영화 하나 뿐이어서 혼동이 인다. 이 한 단어 안에 최소한 크게 본다면 두 가지의 상태가 있다는 사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하나는 시네마로서의 영화와 또 다른 것은 필름들을 지시하는 단어로서의 영화다. 즉, 여기 이 제목이 요구하는 대상은 필름들이 아니라 시네마이다. 


필름들은 무수하다. 여전히, 당연히, 어쩔 수 없이 쏟아지고 있다. 산업적 크기로 보아 영화는 아주 거대하다. 그 거대함이 자연스럽게 다양하고도 새로운 영화들(필름들)을 요구하고 있다. 그만큼 생산되어야 하는 것은 필연이다. 때문에 필름들의 생산에 관해서 고민할 필요는 없다. 백년 전에 비해 생산량이나, 상품이 유통되는 영역이나 유통의 장은 너무나 넓어졌다. 다시 말해, 필름은 고민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히치코크의 영화는 아직도 미국이나 프랑스나 극장에서 틀어지고 여전히 향수어린 관객들과 현재 이십대의 관객들과 영화의 재미에 빠지고픈 관객들을 끌어모은다. 단지 잘 만들어서? 미국의 어떤 할아버지는 그럴 것이다. 존 포드의 서부극을 보면서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용맹담을 기초로 손자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것이다. 저게 미국이고, 저게 너희 증조 할아버지가 개척한 세계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고. 


이들 영화들도 모두 오락영화이다. 그렇다면 다른 영화들보다 더 잘만들었으니까 그럴까? 아니다. 시네마가 하는 일을 잘 감당하고 있어서 그러하다. 인간의 삶을 투영하고 그것이 지닌 가벼운 재미거나 깊고 심오한 면이거나간에 그것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기능에 충실해서이다. 그게 시네마의 기능이고, 이었다. 이 책이 고민하는 영화란 바로 그 시네마이다. 시네마가 이러한 일을 했기에 사람들은 그것에 관해서 떠들고 시네마의 자식인 개개의 필름들의 가치를 매겼으며 즐기고 신나했다. 언제나 시네마는 삶에 빛을 프로젝트해서 그것을 빛나게 만드는 기능을 해왔다는 말이다. 그게 일반적인 상업영화들이다. 예술 영화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시기쯤 되서부터 시네마는 어쩐지 이제 제 기능을 다하지 않는 듯하다. 아드레날린에만 목적을 지니고 있고, 한 터럭이라도 삶을 슬쩍 환기시키는 일은 사라졌다. 잘 만들어진 상품이기는 하지만 <매트릭스>가 하는 일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보는데만 빠져들도록 만든다. 그 영화가 담고 있다는 세계에 대한 해석은 사실 영화를 보면서 온데 간데 없어진다. 그것은 나중에 첨언된 것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예수와 영웅과 기독교와 설화들을 뒤범벅해서 재미있게 만든 서사에 지나지 않는다. 

보고 소비되는 것, 필름들은 더 많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변질되었다. 소비되기 위해, 팔리기 위해 존재한다. 모든 물건이 그렇지 않은가고 물을 수 있지만 경제의 기본원칙도 생각해보지 않은 말이다. 모든 상품은 단지 팔리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많이 사용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많이 사용될 수 있을 만한 기능을 지니고 있으니 잘 팔리는 것이고. 오늘날의 영화에겐 무언가 빠져있다. 많이, 오래도록 사용되는 가치는 잃어버렸다. 그것이 우리 삶을 투영하고 있고, 웃기게 만들어서 재밌어서 보는 것도 아니고, 감칠 맛나는 액션으로 우리 삶의 부조화, 정의를 교정하는 것이어서 보는 것도 아니고, 당대의 모습을 진솔하게 담고 있어서 보는 것도 아니다. 다만, 볼만해서, 두 시간동안 시간의 흐름을 잊을 수 있어서 보게 되는 상품, 그런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거창한 이론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몇몇 영화들에 대한 헌사를 던지는 평론의 모음집도 아니다. 아주 단촐해보이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빨리 주파할 수 있는 두께를 지닌 쉬운 책이다. 그저 생각의 길이 수월수월하게 쓰여있는. 하지만 이 책은 사실 수많은 함의를 담고 있는 의외로 묵직한 책이다. 물론, 독해는 쉽다. 알아듣기쉬운 언어로 쓰여있으며, 살짝 생각을 해보면 납득이 가는 언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그 단순한 언어들은 하나같이 줄기차게 지난 백년동안 시네마가 무엇이었는지, 왜 필름들이 시네마로서 기능해야 하는지를 써놓고 있다. 상품들은 역사가 없다. 소비품목에 무슨 역사가 있을까. 시간의 적체물이라는 의미 이외에는…… 


예컨대, 우리는 tv라는 형태를 기억할 뿐, 이십년전의 tv프로그램에 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프로그램은 그저 시간을 통과한 풍경 이미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tv의 역사란 프로그램의 역사가 아니라 시청자와 대화해온 방식으로서의 tv의 역사이다. 하지만 지난 세기에 영화의 역사는 필름들, 영화들의 역사였다. 그럴 수있었던 이유는 시네마라는 필름을 생산하는 방법으로서의 영화가 엄연히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말이다. 영화(필름)는 이야기를 던진다.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담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흥미있을 수도 있고, 아주 심오한 내면을 건드리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것이나 상관없다. 다 좋다. 다만, 여하간에 그것은 우리에 대해 말을 한다. 우리가 사는 방식과, 우리가 웃는 방식, 우는 방식 등등. 시네마는 우리에게 우리가 어떤 종족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필름들이 우리의 기억을 만들고 우리의 반성을 형성하고 우리를 즐겁게 하고 우리를 애석하게 해주었다. 그것은 우리의 을 채우는 것이다. 삶의 일부 시간을 잊게하거나 소비하게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래서 필름들, 프로그램들로서의 필름들이 뇌리에 남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시네마란 무엇이며, 그것을 본다는 행위와 그것에 대해 말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이 책은 바로 그런 물음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제공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성찰의 시간이 왔다. 우리가 어떤 영화들을 남길 것인지, 영화에 대해서 무엇을 생각해보아야 할지. 늘 떠들어온 것 같지만 투박하고 두터운 이론서, 이해하기 힘든 평론집, 까다로운 심오함을 지닌 어떤 영화들의 범주에 머물러 왔다. 이 책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기초적으로 영화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나 전공의 심연에 푹 빠져있는 이론적으로 사실상 모호한 전공자들에게나 다 두루 필요한 책이다. 우리로 하여금 그래, 영화는 이런거였지 하고 무릅을 치게 만들고 생각해보게 만드는 짧은, 쉬운, 맛나는 전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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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발로통 소설 [유해한 남자]의 리뷰를 발췌해봅니다.

#유해한남자


* 마치 연극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대사들에 리듬이 있듯 발로통의 문장에는 숨겨진 리듬이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몹시 시각적이다...

유해한 남자 속 발로통은 여전히 '파격'이라는 말을 벗어던지지 않는다. 그의 그림처럼 시점 또한 다양하게 던져둔다. 다양한 시점들이 가져오는 생동감. 어느 시점에 눈을 맞추느냐에 따라 진행이 달라지는 시간의 흐름처럼 그의 글이 그렇다...이 남자. 진심으로 유해하다. 뭔가 옭죄고 있는 것이 있다면 풀어헤치라고 큰 소리가 아니라 귓속말로 속살거린다. 거부할 수 없게스리..

사이즈 업 한 아아 한 컵 옆에 놓고 하염없이 읽기 좋은 책이네.(RS)


* 폭주 하는 전차를 타고 있는 듯한 상황에서 속절없이 당하고만 있어야 했던...그렇게 억울하거나 비참해져야만 했었던 기억들이 책을 읽으며 울컥울컥 튀어나와 숨이 턱턱 막혀 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무도 모르는... 아무도 모르게 간직하고 있어야만 하는 비밀스런 이야기들은 나를 유해한 여자로 만들어버린다.(KJH)


* 나로 인해(화자) 무슨 일이 또 생겨 누군가가 죽을까봐 불안해서 빨리 책을 읽어버리고 싶었었다.(MYM)


* 실존주의적 암호로 가득한 소설이다. 지은이 화가 펠릭스 발로통은 괴재(怪才)가 틀림없으며 '뜨거운 남프랑스의 카뮈'가 아니라 '서늘한 스위스의 카뮈'라고 할 만하다. 남프랑스는 카뮈의 고장은 아니다. 그는 지중해의 고독의 아들이며 남프랑스는 향유와 열정의 알퐁스 도데의 고장이다. 이 소설은 새 천 년의 이방인이다.(HDW)


* 펠릭스 발로통은 허우 샤우시엔의 <빨간 풍선>을 보고 처음 알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래 전 읽었던 쥘 르나르의 <홍당무>를 다시 읽자 내가 펠릭스 발로통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홍당무> 삽화를 펠릭스 발로통이 그렸던 것이다. 펠릭스 발로통의 그림을 볼 때마다 색감이 아름다워 마음이 충만해 지는 기분을 느꼈는데 동시에 쓸쓸함도 느꼈다. 어떤 그림이든 여운이 오래 남았다. 그가 쓴 소설 <유해한 남자>는 펠릭스 발로통의 그림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줄 것이다. 죽을 줄 알면서 살아가고 이별할 줄 알면서 사랑을 하는 아이러니.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는 공감 말이다(MC)


* 디테일과 생경함이 신선한 자극을 준다. 풍경, 사물, 움직임 등을 묘사할 때 바람과 빛, 질감과 색감까지 고집스럽다. 화가의 소설이란 이런 것이었다.(KS)


* 펠릭스 발로통의 소설 <유해한 남자>의 자크 베르디에는 자신에게 부여된 살인자의 운명에 대항해 자기 삶의 종식을 기획한다. 그는 석양의 그림자 살인으로 다음 세기 전무후무한 정오의 태양 살인의 전조가 된다.

 

* <유해한 남자>, 원본 언어인 프랑스어 이외에 영어 번역본과 스페인어본이 있고, 그리고 한국어본이 생겼다. 전 세계 단 4개의 언어로 번역되어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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