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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며, 마치 뱀파이어의 최면에 걸린 것처럼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그 기분 말이에요. 우연일까요? 19세기에 '영화'와 '뱀파이어'가 동시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이 매혹적인 책은 우리가 알던 뱀파이어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처음의 뱀파이어는 그저 시체를 뜯어먹는 우스꽝스러운 괴물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어떻게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거치며 우리를 매혹하는 존재가 되었을까요?

저자는 독특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없으면서도 있는 것', '상상 속에서 떠돌다 실재가 되는 것' - 바로 이 지점에서 뱀파이어와 영화가 만난다는 거죠. <블루 벨벳>에서 <샤이닝>까지, 수많은 영화들이 이 책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됩니다.

가장 흥미로운 건 저자의 도발적인 주장입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줄 알지만, 사실은 영화가 우리를 보고 있다." 마치 뱀파이어처럼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현실과 환상을 뒤섞는 영화의 마법 같은 속성이, 뱀파이어의 특성과 묘하게 겹쳐지는 거죠.

자, 이제 준비되셨나요? 뱀파이어의 눈으로 영화를 다시 보는 짜릿한 모험을 시작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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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화를 말하는 동시에 뱀파이어를 말한다. 당연히 뱀파이어에 관한 방대한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그의 탄생을 설명하기 위해 십자군 전쟁이 벌어지던 11세기 이전부터 근대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를 끌어온다. 드라큘라 가문의 시조는 물론 뱀파이어가 발아한 을 다루며, 수 세기 동안 기록으로 남겨진 종교적 일화와 기사, 관련 자료들을 함께 제시한다. 중세와 근대를 지나오며 시대에 따라 변천한 악의 역사와 인간 의식의 변화는, 추상이 어떠한 방법으로 구체가 되어 개념으로 자리 잡아 우리 눈앞에 현현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면서, 뱀파이어와 영화가 갖는 인접성을 증명한다.


죽었거나 혹은 나쁘거나, ‘뱀파이어

 

뱀파이어는 애초 산송장, 시체를 뜯어먹는 추잡한 괴물, 그러나 전혀 무섭지 않은 괴물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점차 우리가 익히 아는 속성들이 부여되더니 브램 스토커의 소설과 함께 지금의 뱀파이어, ‘용의 자식(악마의 자식-‘드라큘라’)’으로 자라났다. 악마의 자식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삶에 암약한 기독교적 악마도 아니다. 왜냐하면 뱀파이어는 눈에 보이는 십자가는 두려워하지만 정작 추상적 개념인 신앙은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속성의 변화를 추적하면, 우리가 어떻게 (본질로서의) 추상과 현상의 세계를 넘나들고, 어떤 위치에서 대상의 의미를 규정해 왔는지 알게 된다. 근대는 추상에서 현상으로, 본질에서 질료의 세계로 관심이 넘어온 시기이며, 본질은 버리지 않되 실체로 여긴 것을 개념으로 수용한 시대로, ‘영화가 탄생하여 인간 의식에 자리 잡는 과정과 흡사하다.

영화역시 인간 의식의 산물이다. 사람들은 19세기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움직이는 이미지를 가질 생각을 했으며, 눈에 보이는 세상을 보이는 대로 기록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다 알다시피 ‘(언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도구가 되었다. 저자는 이 움직이는 이미지의 탄생이 어떻게 뱀파이어의 탄생과 겹치고, 뱀파이어가 영화안에서 어떻게 개념화되어 나타나는지, 둘의 유사한 작동 방식을 들어 설명한다. 단순히 우연의 관점에서 둘의 유사성을 말하는 것이 아닌, 물질세계 저편에 있는 의식, 혹은 추상인 , ‘이 현상에 작동하는 방식에 비추어 뱀파이어영화가 가진 동일한 탄생과 속성을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누구도 쓰지 않은 책이다. ‘영화를 미학적인 입장에서 설명하는 이론서는 많았지만, 인간 의식의 역사와 영화를 연관 지어 규정하고, 그 속성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탁월한 장치의 하나로서 뱀파이어를 제시한 사람은 없다. 빛과 어둠의 히야투스, 간섭, 교차, 서로에 대한 욕망, 이렇게만 말해도 뱀파이어영화는 얼마나 친숙한가! 게다가 어떤 소재를 다루고 어떤 이야기를 하든, ‘영화는 계속해서 이 개념을 우리에게 전사하고 있다. , 이는 과거 이야기가 아니며, 지금 여기, 우리 눈앞에 움직이는 영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미지이며, 이미지의 힘이다.


뱀파이어와의 조우


오늘날 우리에게 뱀파이어는 호기심과 흥미를 제공하지만, 사실 악의 연대기를 몸에 지닌 중요한 문명사적 존재이다. 저자는 뱀파이어와 영화가 가진 개념적 장치의 유사성을 짚어내며 뱀파이어의 탐구가 곧 영화의 탐구임을 증명한다. 그리고 과 이 각각의 영화들, 놀랍게도 이들 모두를 관통하는 것이 도구적 관점에서의 영화임을 일깨운다.

영화는 하나의 이다. ‘영화는 언어는 아니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이 책은 뱀파이어영화의 연대, 그 은밀한 교접을 말한다. ‘영화뱀파이어’, 이들이 모두 19세기에 나왔다는 사실은, 이 시기가 인간 의식의 향방을 좌우한 중요한 분기였음을 시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뱀파이어는 단순한 소재가 아닌 우리 의식의 작동 방식이며, ‘영화는 그 근대의 작동 방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본질과 현상, 추상과 현실, 악과 인간 사이의 경계, <왕좌의 게임>의 북벽사실성 없는 놀라운 얼음벽은 이들 개념의 경계 위에 지어졌다. 이제 우리는 이 경계의 무너짐과 침투, 간섭, 뒤섞임 등에 대해 말할 것이며, 같은 경계를 지닌 영화들의 문제도 함께 들여다볼 것이다.


뱀파이어, 영화들, 그리고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동굴은 차원 너머에 있지 않다. <오즈의 마법사>의 회오리바람 속, 마법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둘 다,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에 보이지 않는 입구이다. 영화관도 마찬가지이다. 영화 <블루 벨벳>, <블로우 업>, <샤이닝>, <황혼에서 새벽까지>, <마부제 박사>, 그리고 <왕좌의 게임>까지, 이 책에서 언급하는 영화들은 모두 그 과정을 다루거나 더 나아가, 이 방 안에서 겪게 되는 앨리스와 도로시의 모험을 다룬다.

세계를 다루면서(<블루 벨벳>), 의식을 다루면서(<블로우 업>), 혹은 멕시코로 건너가다 잠시 들른 요란한 술집 이야기를 하면서(<황혼에서 새벽까지>), 오버룩 호텔의 끔찍한 공허, 즉 공포를 말하며(<샤이닝>), 저자는 이들을 통해, ‘작품으로서의 영화안에 담긴 도구로서의 영화를 발견하고 그 전율을 독자와 공유한다. 그리고 역설한다. 이 감독들이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영화가 우리를 보고 있다고 말이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영화도 우리를 보고 있다. 지난 1세기 동안 인류가 미친 듯이 빨려들었던 이 몽롱한 세계, <마부제 박사>는 살았거나 죽었거나 우리를 그 세계로 끌어들인다. 뱀파이어! 마부제 박사! 그가 곧 영화이며, ‘영화가 해온 일을 한다. 저자는 뱀파이어를 가리켜 노스페라투, 악과 삶, 실제로 우리 삶에 얹힌 두 차원의 묘한 뒤섞임을 선사하는 흡혈귀임을 밝히는 동시에 그의 또 다른 정체를 폭로한다. 그것이 바로, ‘영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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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트는 어머니에게 새벽 3시 반에 들판으로 나가 산책하는 것을 허락받는다. 그 시간에 깨워달라고 부탁한다. 누구보다 강하고 줏대있던 여성이었던 어머니 시도는 두말없이 3시 반이면 콜레트를 깨운다. 콜레트는 그 순간을 좋아했다.

해 뜨기 전의 그 푸르스름한 미명 속에서 ‘대지와 대기와 나무와 꽃과 벌레와 새와 낯선 동물들과의 교감’. <슬픔의 긍지>는 그 순간의 교감과 희열을 잘 드러내고 있다. ‘날개를 지닌 산문. 단어들의 속살. 살아있다는 기쁨’ 콜레트는 평생, 그 생의 기쁨을 위해 싸웠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장례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물론 그 전에 사이는 좋지 않았다. 어머니 시도는 매사에 간섭과 잔소리가 심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콜레트가 어머니 장례에 가지 않은 것은 바로 생과 죽음의 대한 콜레트의 고집(!)이기도 하다. "La mort ne m'intéresse pas, et surtout pas la mienne." (죽음에 관심없어, 특히 내 죽음은 더 아니지)

콜레트의 어머니는 적대적인 마을 사람들에게서 문을 걸어 잠그고는 콜레트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다. "잘 봐." 바로 창 밖의 정원, 그리고 들판과 숲. 살아 움직이는 것에 대한 관찰의 기술은 어머니에게 온 것이다. 그러니 콜레트가 죽음으로 향하지 않은 것 또한 당연한 것이리라.


클로딘 연작은 사실 첫 남편 윌리의 그림자 속에서 콜레트가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것일 뿐이다. 아버지와 함께 고전을 탐독했지만 글을 쓰는 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글을 쓰는 건 남성의 일이었다. 글쓰기가 고역이었던 콜레트, 남편 윌리의 치밀한 상업적 계산과 또 콜레트 자신의 어린 시절을 앗아간 시골 작은 마을 주민들에 대한 복수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콜레트의 재능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슬픔의 긍지>에서 부터다. 클로딘과는 전혀 다른 글쓰기, 콜레트만의 글쓰기가 시작된다. ‘모든 찌거기가 제거된 상상력과 정취’, 콜레트는 ‘지적인 방식이 아니고 지각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탐험한다’.

‘온전히 자기 세계를 지닌 작가는 사실 드물것이다. 콜레트는 그 드문 작가에 속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만큼 그의 삶 또한 매혹적이었던가. 글쓰기에 관능을 부여하는 작가. 콜레트.


스무 살에 결혼한 남자는 음악평론가이자 소설가. 출판사를 운영했다. 클로딘 연작은 콜레트에게 일종의 작가 수업인 셈이다. 과정이 어떻든 나중에 콜레트는 첫 번째 남편이 없었다면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13년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빈털털이로 혼자가 된다. 콜레트는 스스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 방편으로 마임배우, 무용수로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비로소 콜레트가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내게 된다. 여전히 궁핍했지만 버텨나갈 수 있었던 건 동성의 연인 마틸 드 모니의 경제적 도움이었다.

<슬픔의 긍지>에서 당시의 무용수, 배우로서의 생활을 볼 수 있다. 지저분한 극장 대기실, 가난하고 처량한 상황이지만 자신을 놓지 안으려 발버둥치는 콜레트... 그리고 극장 주변의 여성들과 소녀들의 애뜻한 풍경.

[마지막 불] [춤추는 여인] [흐린 날] 등은 책이 최초로 출간된 1908년 전후로 쓰인 글들로 모두 마틸 드 모니와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강렬함과 연약함, 나와 타자 사이의 근본적인 틈, 그 틈을 메꾸려는 갈망과 포기, 쓸쓸함이 복잡하게 얽혀나간다. 낭만적으로 사랑을 그려낸 마지막 작품이 1902년의 <파리의 클로딘>이라 말한다. 콜레트는 한 때 이런 말을 남겼다. "남자는 끔직하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남편은 귀족이자 언론인이었던 남자, 콜레트의 기자 경력의 시작이다. 이 시기 천 여편의 기사와 평론을 썼다. 콜레트는 평생 60여편의 작품을 남겼다. 글을 쓰는 게 고역이었던 사람치고는 엄청난 생산성이었다. 남작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콜레트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보러 전선으로 향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남작은 정치에 뛰어든다. 사랑을 잃고 우는 박새, 콜레트는 또 다시 복수를 감행하듯 남자의 아들과 사랑에 빠진다. 열 여섯 소년. 5년 동안의 관계는 남작과의 이혼으로 끝을 맺는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대공황의 시기엔 역시 생계를 위해 파리에 미용샵을 연다. 화장품과 향수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브랜드화 시킨다. 온갖 일을 도맡아 했다. 광고와 홍보 문구를 쓰고, 지방으로 방문 판매를 나서고, 샵에 온 손님들의 얼굴을 만졌다. 이 때의 이야기가 [화장]이라는 짧은 이야기다.

[지금의 우리는 화가들도 열광할 만큼 다양한 색조를 보유하고 있다. 미용술, 화장품 산업은 거의 영화 제작에 버금가는 자본을 움직인다. 여성에게 어려운 시대일수록 여성은 자신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려고 노력한다. 고단한 노동은 해가 뜨기도 전에 우리가 “연약한 생물”이라고 부르는 여성들에게서 짧은 휴식마저 빼앗아 간다. 오렌지 색조 화장과 커진 눈, 창백한 입술 위로 채색된 붉고 조그마한 입술로 대담하게 자신을 감춘 여자는 일상의 눈속임과 하루 분량의 인내, 그리고 절대 고백하지 않는 자존심 덕분에 자신을 되찾는다.](화장 중에서)



콜레트는 1925년 52세에 인생의 사랑을 만난다. 16세 연하의 남성. 10년 후엔 결혼을 하고 이 남자는 콜레트가 죽을 때까지 곁을 지킨다. 유대인인 남자가 게슈타포에 끌려가 수용소로 향할 처지에 놓였을 때 콜레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구출해왔다. 그는 콜레트와의 삶을 자기 삶의 황금기이자 가장 찬란했고 축복받은 시기라고 말한다. 고관절염으로 거의 불구로 지냈던 콜레트의 곁을 지키고 있는 아래의 사진으로도 충분히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제 한 해는, 계절에서 계절로 물결치며 리본처럼 풀어지는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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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 소크라테스 처럼 단독명으로 알려진 여성작가는 아마 콜레트가 유일할지도 모르겠다.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1873-1954)


프랑스의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작가이면서 동시에 프랑스 작가들의 유례없는 사랑을 받는 작가다. 2014년 콩쿠르 상 수상작가인 '리디 살베르'는 자신의 책에서 사춘기에 절대적 영향을 준 작가로 꼽고 있다.

콜레트는 프랑스 자전 소설의 선구자라 불리는데 사실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여성 작가는 제라르 두빌(Gérard d'Houville)로 알려진 마리 드 레니에, 바로 피에르 루이스의 연인이었던 작가가 있다. 이 이야기는 2019년 영화 큐리오사(Curiosa)에서 재밌게 다루고 있다.

북펀드 종료


여기서 굳이 여성 작가라 표현한 이유는 여자가 글을 쓴다는 걸, 그리고 작가로서도 인정하지 않았던 당대 1800년대 후반에 성공적인 작가로 인정받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를 위해서 어떤 희생을 치워야 했는지는 상상해 볼 수 있다.


2019년 키이라 나이틀리가 콜레트 역을 맡은 영화 Colette를 보신 분들이나 오래 전부터 아내의 글을 훔친 남편 작가 등 남성들에게 착취당한(?) 예술가들 이야기 속에서 콜레트를 발견한 분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낯선 작가이긴 하다. 콜레트 이야기는 현대 프랑스 문학의 아주 놀라운 이야기 중 하나다. 물론 콜레트의 소설이 다섯 편 정도 우리 말로 번역되어있긴 하다. 영어권에서는 <Gigi>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연극과 뮤지컬 영화로 수없이 만들어졌다. 콜레트가 직접 무명의 오드리 햅번을 캐스팅해서 무대에 올린 일화로도 유명하다.


남편의 이름으로 클로딘 연작 4편을 써냈는데 그게 20대인 1900-1903년까지다. 1년에 1편씩 썼다. 엄청난 생산성에 가혹한 착취 노동이라 할 만하다. 영화 속에서 이 클로딘 연작은 당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표현될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세기 최초의 사춘기 소녀'가 탄생한 것이다.

일상의 경험, 내밀한 감정, 사적 관계를 탐구하는 유연하고 서술적인 산문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문학적 경향, 내면의 복잡성을 포착하고 일상 생활의 세부 사항을 조사하려는 당시의 문학적 경향에 딱 들어맞았다. (물론 콜레트와 같은 작가들의 등장은 당대의 부르주아 사회의 변화된 풍경을 드러내는 것이기 하다. 사생활 개념의 탄생이라는)

콜레트는 이렇게 썼다.


사랑, 내 펜의 빵과 버터


역시 영원한 주제다. 그러나 콜레트에게서 이 주제가 힘을 얻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콜레트 자기 자신을 거침 없이 드러내는 데 있었다. 비옥한 생산성, 매혹적인 기질, 마음의 신비에 천착하고 자신을 전혀 감추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쓰려는 그 열망이 자기 작품만큼이나 자기 삶을 매혹적으로 만들었다.


*콜레트의 스무개의 짧은 이야기 모음 <슬픔의 긍지> 8월 출간을 준비 중이다.

원제<les vrilles de la vigne 포도 덩굴손>으로 '르 몽드'가 선정한 세기의 책 100선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콜레트의 작품이다. 작가 콜레트의 파격적인 삶과 작품을 관통하는 화살 같은 이야기들이다. 대중적인 만큼 수많은 불어권 스페인어권 유투버들의 낭송 영상을 볼 수 있다. 2023년엔 프랑스 대학 입학 자격시험의 프랑스어 시험에 등장. 어마어마한 양의 해설 영상들이 넘쳐난다.



<슬픔의 긍지> 출간에 맞추어

서점 리스본에서

번역자와 함께 책을 읽고

작가 콜레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bookshoplisbon 연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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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틴 스타니슬라브스키는 메소드 연기 이론의 창시자이지만, 정작 메소드 연기를 구현한 사람은 리처드 볼레스라브스키이다. 폴 뉴먼과 제인 폰다는 이미 스타의 대열에 들어섰음에도 스스로 연기 지도를 받기 위해 볼레스라브스키를 탐구했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서 폴 뉴먼의 연기는 그렇게 해서 나왔다. 전설의 감독 아서 펜의 <체이스>에서 제인 폰다는 이전과 다른 연기를 선보였다. 볼레스라브스키의 연기론, 매소드 이론이 없었다면 위대한 배우들의 탄생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콘스탄틴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연기론이 주로 연극과 무용 분야를 위한 것이었다면 볼레스라브스키는 그야말로 영화와 TV 드라마 연기에 적합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완벽하게 관통하는 연기 이론을 만들었다. 이른바 ‘캐릭터라이징’, 곧 배역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서 캐릭터 그 자체가 되는 일은 이제 미디어 연기에 있어서 필수이자 넘어야 할 산이 됐다. 


예컨대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스티븐 스필버그로부터 영화 <링컨>의 링컨 역을 제안받았을 때 2년을 기다려달라고 했고, 그는 2년간 오른손잡이에서 왼손잡이가 되었다. 실제 링컨의 몸무게에 맞추어 체중을 조절하고, 링컨처럼 턱수염을 길렀으며 (믿거나 말거나지만) 심지어 키까지 맞춘 채 스필버그 앞에 나타나 그의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배우는 연기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싹 바꿀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의 중요한 사례로 꼽히고, ‘자신을 싹 바꾸는 일’은 볼레스라브스키의 연기 교육 원칙의 세 번째에 해당한다. 볼레스라브스키는 육체적이고 기술적인 훈련(호흡, 발음, 노래, 팬터마임)으로 시작해 인문 교육(문학, 회화, 음악, 인체 해부학까지)으로 나아가고 궁극적으로는 영혼을 교육하고 훈련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링컨이 되기 위해 링컨의 영혼으로 스스로를 훈련한 셈이다. 


신학자들이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참회록』을 대하듯 연기자들에게 있어 리처드 볼레스라브스키가 쓴 이  『연기 6강』은 평생을 지니고 살아야 할 지침서이다. 『연기6강』의 내용 하나하나가 주옥이다. 대화로 이어진 강의록으로서의 장점은 구체성이 극대화되었다는 점이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콘스탄틴 스타니슬라브스키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말 그대로 이론을 창시하는 데 주력했다면 볼레스라브스키는 촬영 현장에서, 그것도 할리우드 시스템과 같은 공장형 체제에서 접목하고 실현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볼레스라브스키는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감독으로 전업했지만, 연출보다는 연기 수업에 전념했다. 아메리칸 래버러토리 시어터가 그 산실이었다.

 

볼레스라브스키는 축구로 말하면 히딩크이다. 히딩크는 선수 때보다 감독일 때 더 재능을 발휘하고 성과를 냈던 인물이다. 볼레스라브스키가 연출한 영화, 마를렌 디트리히와 샤를르 보와이에가 나왔던, <가든 오브 알라>(1936)는 이제 역설적으로 ‘듣보잡’ 영화가 됐지만 이 책 『연기 6강』은 그가 진실로 어마어마한 영화의 역사를 만들어 낸 인물임을 역설하고, 웅변하며, 입증한 업적을 보여주는 책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연기자는 영화를 남긴다. 볼레스라브스키는 『연기 6강』을 남겼다. 꼭 연기자가 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지금의 인생을 바꾸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필독서이다. 삶을 바꾸려면 삶의 태도를 바꿔야 하고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의 영혼까지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여섯 번의 강의만 들으면 된다. 그러니 이 『연기 6강』만 열심히 읽어도 된다. 당신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고 삶의 벼랑에 서 있는 느낌이라면, 더 나아가기가 버겁게 느껴진다면, 이 책을 권한다. 『연기 6강』은 스크린 연기를 넘어서 인생 연기를 위해 알아야 할 지침이다.

 - _오동진(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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