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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 - 강세형의 산책 일기
강세형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4월
평점 :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다시 살아가는 힘을 건네는 책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신다. 수화기를 든 채로 혀로 입안을 둘러본다. 아, 지금도 여기 여기 헐어 있긴 하구나. 나는 사실 한두 군데 헐어 있을 땐, 헐어 있는지도 모를 때가 많다. 내가 너무 통증에 둔해진 걸까. 남부럽지 않게 건강해 본 적이 없어, 이게 크게 불편하지 않은 걸까. 역시 모든 건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p51
**무릎 아래로 바지가 더 젖어 무겁다. 그러곤 또 깨닫는다. 나에겐 반바지가 없구나. 더위는 거의 타지 않고 추위만 타니 반바지를 사 본 적이 없다. 맑은 날에도 안 나가던 애가 비 오는 날 이렇게 걸어 본 적이 없어니, 허허. 다시 깨닫는다. 밖에 나가려면 참 많은 게 필요하구나. -p89
**사는 동안 많은 결정과 선택을 했다. 앞으로도 나는 또, 많은 결정과 선택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p388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일상이 시詩가 되었다."
이토록 조용하고, 감정적이며, 아름다운 에세이가 또 있을까. 《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는 작가 강세형이 1년 동안 매일같이 걷고, 기록한 산책의 순간들을 모은 산책 일기다. 집이라는 안온한 세계를 누구보다 사랑하던 그가 매일 바깥으로 한 걸음씩 나서며 관찰하고, 느끼고, 사유한 마음의 조각들이 다정하게 담겨 있다.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제목만으로는 선뜻 그 내용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첫 장을 넘기자마자, 나는 곧장 이 조용한 고백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작가의 문장은 솔직하고, 담백하며, 잔잔한 울림을 지닌다. 때로는 한 줄이, 때로는 작은 풍경 하나가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다.
길 위에서 마주친 낯선 이들을 향한 응원의 시선, 작디작은 생명에게 보내는 따뜻한 숨결, 그리고 한때 식물에 의지하며 스스로를 돌보던 과거의 자신에게 건네는 너그러운 이해까지. 작가 강세형의 문장은 소박한 일상 속에서 기어이 반짝이는 감정을 길어 올린다.

이 책은 우리를 위로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곁에 앉아, 조용히 말을 건넨다. "괜찮아, 너도 천천히 걸어도 돼." 라는 듯이.
매일 같아 보이는 길이 어느 날 문득 다르게 보이고, 지나치던 것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아주 작고 사소한 변화도 사랑스럽게 여겨지는 순간. 《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는 그 모든 미세한 떨림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 문장이라는 투명한 그릇에 고이 담아낸다.
익숙하지만 낯설고, 고요하지만 울림이 큰 이 책은, 혼자서도 충분히 따뜻해지고 싶은 이들에게 꼭 건네고 싶은 산책의 언어들로 가득하다.

삶이 조금 지치고 무겁게 느껴질 때, 하루의 끝자락에서 문득 외로워질 때, 이 책은 말없이 곁을 내어준다. 감성적이면서도 삶을 조금 더 단단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줄 책을 찾고 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선물할 것이다.
현관문을 여는 일이, 이렇게나 따뜻한 행위였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