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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함께 살아보기로 했다 - 트라우마와 삶 사이, 멈추지 않고 걸어온 기록
이안나 지음 / 미다스북스 / 2026년 1월
평점 :
[도서만협찬] 버티는 삶에서 벗어나 ‘오늘’을 선택하게 하는 책



[추천 독자]
-오래된 상처를 혼자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
-'이제는 괜찮아야 하는데'라는 말에 지쳐 있는 사람
-완벽한 극복보다 솔직한 회복을 원하는 사람
-엄마, 직장인, 딸 등 여러 역할 사이에서 나를 잃어버린 사람
-조용하지만 단단한 위로가 필요한 사람



"왜 다 지나간 일로 힘들어 해? 그정도는 스스로 극복해야지!" 이런 말을 들으면 대꾸도 하기 싫어진다. 우리는 흔히 상처는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배운다. 깨끗이 씻어내야 할 얼룩처럼, 혹은 빨리 지나쳐야 할 어두운 터널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안나 작가의 신작 에세이 <이제는 함께 살아보기로 했다>는 전혀 다른 길을 제시한다. 상처를 억지로 떼어내려 애쓰는 대신 그 아픔과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걷는 '공존'의 기술을 이야기한다.
낮에는 연구원으로 냉철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밤에는 두 아이를 돌보는 엄마로 살아가는 저자의 이력은 이 책의 진정성을 더한다. 가장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할 세계에서 살아왔지만 정작 자신의 삶 속에는 숫자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오래된 상처'가 도사리고 있었음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폭력과 가스라이팅, 고립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의 기억은 마흔이 된 저자의 발목을 수시로 붙잡는다.

작가가 <이제는 함께 살아보기로 했다>에 남긴 문장들은 수많은 트라우마 생존자들에게 뭉클한 위로를 건넨다. 우리는 흔히 고통을 견딘 이들을 보며 '기적'이라 부르지만, 그 이면에는 매일매일 포기하지 않고 '오늘'을 선택해 온 지독하고도 숭고한 싸움이 있었음을 작가는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다. 문을 열 때마다 쏟아지던 냉기와 습기 같던 공포를 지나 이제는 상처 입은 어린 시절의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은 읽는 내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각자의 자리에서 아내로, 엄마로, 사회인으로 1인 다역을 수행하며 자신을 뒷순위로 밀어두었던 여성들에게 이 책은 멈춤의 미학을 가르쳐준다. 완벽하게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오늘 하루를 상처와 함께 평화롭게 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하다고 다독인다.
<이제는 함께 살아보기로 했다>는 단순한 치유 에세이를 넘어 삶의 불청객인 고통을 어떻게 하면 내 삶의 풍경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성숙한 성찰의 기록이다. 과거의 기억에 잠식되어 오늘을 잃어버린 이들이라면 작가가 건네는 다정한 손을 잡고 이제는 어제가 아닌 내일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딜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문틈으로 다가왔다. 문을 닫는 일도 여는 일도 나는 혼자 배워야 했다. 말하지 못한 시간이 있다. 멀쩡해 보였던 날들 속에는 겁에 질린 아이의 소리 없는 외침이 있었다. - P9
울음을 들키지 않는 법부터 배웠다. 도움을 기대하기보다 내 안의 문을 닫아두었다. 어른이 어제든 나를 도와주러 올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오지 않거나 늘 너무 늦었다. - P23
하루는 별일 없이 살아낸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나는 상처 속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데리고 걸어가고 있다. 오늘을 어떤 마음으로 버텨냈는지, 보이지 않는 기적들은 어디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었는지 조용히 돌아본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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