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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길
김철순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평점 :
[도서만협찬, 뭉끄6기] 사과 껍질로 자연의 시간을 걷게 하는 책
[추천 독자]
-아이에게 자연의 시간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 사람
-메마른 일상에 사과 향기 같은 싱그러운 감각적 자극이 필요한 사람
-아이와 사과를 나눠 먹으며 세상의 다정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
-한국적 색감에서 깊은 평온을 얻고 싶은 사람
-'과정의 아름다움'을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은 사람

엄마가 사과를 깎을 때 길게 이어지는 껍질을 무심코 바라본 기억이 있는가. <사과의 길>은 그 사소한 장면에서 출발해,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시간과 생명의 깊은 결을 펼치는 그림책이다. 시인 김철순의 동시에서 태어난 이 이야기는 화가 김세현의 붓을 만나며 일상의 부엌을 자연과 우주로 잇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 과도가 사과 표면을 스칠 때 들리는 사각사각 소리는 어느새 꽃이 피고 비가 내리며 해가 아기 사과를 키워내는 시간의 리듬으로 변주된다.
<사과의 길>은 삼합 장지 위에 황토와 먹, 호분, 구아슈로 쌓아 올린 화면을 통해 사과의 껍질이 가진 질감과 색, 연노란 과육의 촉촉함과 향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김세현 화가는 대상을 꾸미거나 단순화하지 않고, 사과가 사과로 살아온 시간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그 결과 독자는 보는 것을 넘어 사과라는 존재가 견뎌온 계절과 기다림을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된다.
<사과의 길>이 독자의 가슴에 오래 남는 이유는 이 책이 아이들만을 위한 그림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인이 사과나무 두 그루를 직접 키우며 깨달았다는 '사과도 살아내고 있구나'라는 감각은 삶의 여러 계절을 통과해 온 어른의 마음에도 깊이 닿는다. 태풍을 지나고 볕을 머금으며 붉게 익어가는 사과의 길은 빠르게 결과만 요구받는 오늘의 삶 속에서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진다.
아이에게는 자연의 호연과 생명의 신비를, 어른에게는 인내와 시간의 의미를 건네는 <사과의 길>은 바쁜 걸음을 멈추고 알맞게 익은 사과처럼 단단한 위로를 가슴에 남긴다. <사과의 길>은 그렇게 우리 그림책의 토양을 한층 깊고 넓게 만들어 주는, 잘 익은 한 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