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네 번째, 전쟁 속으로 ㅣ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E. M. 델라필드 지음, 박아람 옮김 / 이터널북스 / 2025년 6월
평점 :
[도서협찬] 전쟁 한복판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은 여인의 일기를 따라가는 책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생각하면 일상의 사건을 기록한 일기가 후대에 굉장한 역사적 가치를 갖지 않겠냐고 남편 로버트에게 물어본다. 그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한다. -p7
밤새 공습경보는 없었다. 새벽 2시에 깼을 때 사이렌과 비슷한 소리가(이런 소리는 언제든 날 수 있다고 들었다.) 잠깐 들렸는데 아주 작고 희미해서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잠을 청했다. -p101
요리사는 한없이 우울한 얼굴로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먼 교차로까지 가서 우유 통이 가득 실린 커다란 차를 몰고 나온 삼촌을 만난다. 그러곤 우유 통들 사이에서 여행 가방을 끼워 넣고 음울하게 말한다. 자기가 급하게 필요하면 언제든 옆 농장인 블로어에 전화하면 된다고. -206

전쟁은 언제나 비극이지만, 그 와중에도 일상은 멈추지 않는다.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네 번째, 전쟁 속으로』는 그 지속되는 일상을, 담담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낸 책이다. E. M. 델라필드 작가는 제2차 세계대전 초반, 한 영국 여성이 혼란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특유의 위트와 현실감으로 포착한다.
지방 중산층 여성의 소소한 삶, 문단 진출기, 북미 북 투어를 다뤘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작품은 전시 상황이라는 특수한 배경 아래 여성의 역할 변화, 공동체의 분투, 삶의 균열과 유머를 함께 담는다. 석유 배급, 공습 대비 훈련, 전시 자원봉사 신청까지. 전선이 아닌 일상에서 ‘싸우는 여성’의 모습이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이 책의 형식은 자전적 일기체 소설이다. 덕분에 독자는 당대 여성들이 느꼈던 불안, 회의, 애정, 유머를 한층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된다. 'BBC가 너무 밝게만 보도한다'는 주인공의 의심은, 정보에 대한 오늘날의 감각과도 겹친다. 유쾌한 문장 뒤에 드러나는 현실의 무게는 이 책을 단순한 희극으로 읽히지 않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창작자에게 귀중한 영감을 준다. 디테일한 일상, 날카로운 사회적 관찰, 생생한 말투와 정서는 캐릭터 설계나 시대극 구상에도 큰 도움이 된다. 거대한 전쟁사 대신 빵 반죽과 배급표, 라디오와 이웃으로 이야기를 짓는 방식은, 작가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좋은 예다.
지금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든, 그 안에 시대의 진동과 인간의 자존감을 담고 싶다면? 이 일기는 오래 곁에 두고 펼쳐볼 만한 문학적 레퍼런스가 되어줄 것이다.
woojoos_story 모집, 이터널북스 도서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