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미와 나이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윤경 옮김 / 반타 / 2025년 6월
평점 :
책과 소정원 원고료를 제공받았지만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단편 속에 응축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미스터리 세계관을 경험하는 책


[추천 독자]
-추리소설을 좋아하지만, 사람의 감정선이 살아 있는 이야기를 찾는 사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만 읽어왔고, 단편의 진수를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
-사건 그 자체보다 인간의 죄의식과 본성을 해부하는 이야기에 끌리는 사람
-짧은 시간 안에 몰입해서 강렬한 독서 경험을 하고 싶은 바쁜 일상인
-문장보다 구조, 감정보다 반전의 묘미를 즐기는 정통 미스터리 애호가
건배는 긴장감이 감도는 어색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p9 (위장의 밤)
어두컴컴한 방에세 남자가 모여 테이블을 둘러싼 채 심각한 표정을 맞대고 있다. -p99 (덫의 내부)
탁, 탁, 하는 소리가 서재에 울렸다. 흑단 책상 위를 집게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소리다. -p281 (장미와 나이프)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가? 그렇다면 이 책은 책장 어딘가에 반드시 꽂혀 있어야 한다. 『장미와 나이프』는 단순한 단편집이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왜 히가시노 게이고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선명한 대답을 주는 결정적 작품이다. 오랜 팬에게는 작가의 원형을 되짚는 출발선이,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는 미스터리 장르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정통 입문서다.
이 작품은 작가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복간된 초창기 단편집으로,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그 밀도는 장편 못지않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탐정 클럽’이라는 사회 상류층 전용 비밀 조사기관이 있다. 각 에피소드는 이 기관의 의뢰를 따라가며 사건을 해결하는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힘은 단순한 사건 해결이 아닌, 인간 내면의 어두운 본능인 죄의식, 의심, 배신, 살의 등을 적나라하게 응시한다는 데 있다.
히가시노의 추리는 언제나 도덕의 잣대에서 벗어난다. 범죄의 동기와 결과를 편견 없이 들여다보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복잡하고 다면적인지를 조명한다. 특히 『장미와 나이프』는 작가가 본격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어떻게 정의하고 출발했는지를 그대로 담고 있어, 그의 이후 대표작들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읽는 내내 반전에 놀라고, 복선에 감탄하며, 마지막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품게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왜 일본에서 누적 판매 1억 부를 돌파한 국민 작가로 오랜 사랑을 받아왔는지를 이해하게 만든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해 ‘히가시노식 미스터리’라는 독자적 장르를 개척해온 그의 출발점이자, 작가 세계의 원형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이번 복간은 작가의 친필 사인이 포함된 한정판으로도 출간되어, 팬은 물론 수집가에게도 의미 있는 소장 기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다. 『장미와 나이프』는 한 시대의 문학을 만든 작가가 문학을 시작한 순간을 담은 작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교하고, 날카롭고, 완성도가 높다. 지금 히가시노 게이고를 읽는다는 것은 단지 소설 한 권을 읽는 것이 아니라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시대와 장르를 통과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세계의 정문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