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의 체크인
김미라 지음 / 니케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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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멈춰 있던 감정을 천천히 걸어가듯 회복시키는 책






여행이 인생에 그런 주름을 하나씩 만들어주면 나는 가끔 그 주름을 접었다 펴곤 했다. 그러면 아코디언이 접혔다 펴질 때처럼 어떤 음악이 들려왔다. 우산을 펴듯 여행이 만들어준 주름을 접었다 펴면 다시 걸어갈 힘이 생겼다. 여행은, 나를 둘러싼 질문에 해답을 얻는 시간이 아니라 그 질문을 껴안은 채 뚜벅뚜벅 걸아갈 힘을 기르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p309



“여행 안 좋아해요.” 그렇게 분명히 말했는데도, “어디 여행 가보셨어요?”를 끈질기게 묻던 사람이 있었다. 대화는 대화가 아니었고, 결국은 본인의 여행 자랑으로 끝났다. 그날 이후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이상하게 자랑의 기운이 묻어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여행 에세이를 자주 읽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열두 번의 체크인》은 달랐다. 이 책은 ‘어디를 갔는가’보다 ‘무엇을 느꼈는가’에 집중한다. 여행이라는 겉모습보다는 그 안의 감정, 감각, 깨달음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김미라 작가는 방송작가로 오랜 시간 살아오며 사람의 말과 마음을 다듬어온 이력답게, 평범한 풍경을 특별한 문장으로 길어 올린다. 모디카의 골목에서 마주한 인생의 쌉쌀함, 라구사 전망대에서 바라본 신의 시선 같은 장면, 허기와 외로움이 겹쳐질 때 따뜻한 음식으로 스스로를 돌본 시칠리아의 어느 날. 그 모든 감정이 ‘체크인’이라는 이름으로 정성스럽게 기록되어 있다.


무겁지 않은 문장, 그러나 가볍지 않은 진심. 페이지마다 배치된 QR 코드 속 음악들은 이 책을 또 다른 감각으로 확장시킨다. 글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다시 그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이 책은 내 마음을 부드럽게 여행지로 데리고 간다. 위로가 필요한 어느 저녁, 이 책은 오래된 친구처럼 곁에 앉아 말해준다. “괜찮아, 천천히 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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