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 풍자극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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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발견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 그중에서도 누군가에게 권해줄 수 있는 나의 작가의 책을. 이것으로 이 책의 감상을 마칠까 한다.지만 오랜만에 쓰는 감상이니 만큼 살을 좀 붙이자면 <브루클린 풍자극>은 지금까지 읽어 본 오스터의 책 중에 가장 사랑스럽고 온기가 넘치는 포근한 책이다. 책의 표지를 보시라. 심리적으로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다는 노란색 표지다.

사실 책의 시작은 조금 절망적이다. 죽을 장소를 찾아 태어난 곳, 브루클린으로 돌아왔다는 전직 보험판매원 네이선의 이야기. 네이선은 얼마전까지 암을 앓았고 항암치료로 완치됐지만 와이프와는 이혼을 했고 하나밖에 없는 딸과는 연락을 끊기 일보직전인 인생의 기로에 서있는 예순의 노인이다. 인생은 60부터라는 희망적인 말도 있는데 네이선은 죽기 위해 브루클린으로 왔다. 하지만 인생이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수수께끼들의 놀이터가 아닌가. 이제 조금씩 그에게 '행복'이라는 놀라운 선물 보따리들이 하나둘 도착할 예정이다.

죽음을 찾아 브루클린으로 왔지만 그래도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네이선이 생각한 소일거리는 '어리석은 일'을 기록해 나가는 것이다. 미국의 중산층 은퇴노인의 전형인 네이선에게는 모자람 없는 돈이 있지만 하루하루는 무척 단조롭고 무료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그를 가장 괴롭힌 건 '외로움'이었다. 처음 그의 행복의 시작은 외조카인 톰을 고서점에서 우연히 만나고부터이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톰은 문학도를 꿈꾸던 건실한 청년에서 뚱뚱보 실직자로 변해있었다. 아. 절망스런 인생의 쓴 맛을 또한번 맛본 네이선. 하지만 외로웠기에, 너무너무 외로웠기에 톰과 자주자주 (거의 매일) 만나서 그동안에 톰에게 일어났던 드라마같은 이야기들을 듣는다. 물론 이 일들은 고스란히 네이선의 이야기 공책에 채워지고 있는 중이다.

톰을 통해 그가 일하는 고서점 사장인 해리 브라이트먼의 또 한편의 드라마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네이선은 자신에게 일어난 절망적인 현실은 잠시 옆으로 미뤄두고 점점 새롭게 알게 된 그의 주변 사람들의 인생에 관여하게 된다. 먼 발치에서 한 여인을 보며 쿵쾅쿵쾅 뛰는 가슴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조카를 위해 그의 마음 속의 여신을 현실 속의 이웃으로 만들어 준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분명히 불행했던 노인은 조금씩,조금씩 주변사람들의 마음 속에 행복을 불어 넣는다. 아마 그것은 스스로의 불행은 참을 수 있어도 마음이 쓰이는 주변인들의 불행과 절망만은 두눈 뜨고 가만히 지켜볼 수 없는 네이선의 자애롭고 따스했던 본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하지만 세상은 가끔 공평함을 보여줄 때가 있다. 타인에게 마음을 쓰던, 그리고 그의 남는 시간 거의 대부분을 다른 이를 위해 보냈던 네이선에게도 행복이 찾아든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과 사랑하는 이에게 받았기에 짜릿했고 무엇보다 값졌던 화해와 용서였다. 그가 얻은 행복이 값지고 빛났던 건 사실 그 행복은 네이선 스스로가 만들어 낸 그가 빚어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나 스스로를 멍청한 녀석이라고 한탄할 때가 있는데 그건 정말 스스로가 멍청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질릴 정도로 인생에 대해 투정을 하고 있을 때, 문득 현실을 직시할 때가 있다. 그건 나는 아무것도 안했으면서 무언가 바뀌기만을 간절히 바라기만 했다는 사실을 알게됐을 때다. 어리석다. 스스로는 손 놓고 그저 멍만 때리고 있었으면서 어째서 인생이 그대로냐고 감히 하늘을 보고 삿대질을 하려 했다니. (ㅋㅋ) 20대의 초반을 조금 우울하게 보내면서, 그리고 그런 날들을 회상하면서 나는 실은 누구보다 행복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스스로의 행복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만들어갔던 네이선의 이야기를 읽으며 '행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아직 행복이라는 실체를 보지도 못했으면서 너무 쉽게 행복과 불행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행복이라는 녀석은 어떤 모습일까. 더이상 두 손 놓고 '왜 그대로지'라고 오지 않을 기적은 바라지 않으련다.

1년에 한번 쯤 이기적인 나도 다른 이들의 행복을 맘껏 빌어주는 그날이 다가온다. 그날에는 그냥 아무 이유없이 째려봤던 커플들의 농밀한 애정행각도 자애롭게 미소지으며 넘길 수 있다. 왜? 그날은 '크리스마스'니까. 한가을에 크리스마스 타령을 하는 것은 테마가 '사랑'인 이 책을 읽으며 영화내내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던 영화 <러브 액츄얼리>가 생각났고 그 영화를 생각하니 크리스마스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커플들의 공습이 있을 거라는 솔로부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이 시내로 나가 사람들을 구경한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흘러 나오는 귀에 익숙한 캐롤과 분주하게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분위기를 내려는 시내의 그 풍경이 너무 사랑스럽다. 아마 그런 날에는 모두가 마음 속에 사랑과 행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 같아서, 그리고 나도 좀 착해지는 것 같아서 커플들에 치일 것을 각오하고 시내로 나간다. 단지 그 따스해보이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화려한 조명,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그 '미소'를 보기 위해서. All you need is love and All I need i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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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비지 가든
마크 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비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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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저택과 저택에 얽힌 비밀은 살가운 형제 관계는 아니더라도 이복형제뻘이 아닐까. 고혹한 분위기를 풍기는 대저택은 저택의 주인이었을 수십명의 사람들이 안고 있었을 수많은 비밀들을 품고 있는 곳일 것만 같다. 『새비지 가든』은 저택에 얽힌 얘기로도 모자라 그 앞에 딸린 넓은 정원에 담긴 비밀을 푸는 소설이다. 400여년전의 저택의 주인이 설계한 정원, 표면적으로는 죽은 아내를 추모하기 위한 정원이지만 조사를 맡은 애덤은 그보다는 더 추악한 진실을 품고 있는 정원임을 밝힌다. 미(美)로 가장한 한 인간의 자기고백서같은 정원, 그리고 현대로 넘어오면서 이 장소는 또 한번의 비극적인 사건의 배경이 된다. 이렇게 사연많은 정원과 저택에 담긴 비밀의 코드가 하나하나 벗겨진다.

『새비지 가든』에는 영리한 노인 '도치 여사'가 나온다. 그녀는 현명한 방법으로 피 하나 묻히지 않고 잘못 끼워진 단추를 바로 채운다. 한창 머리가 잘 돌아갈 전성기의 젊은이들을 제치고 그들의 머리 위에 앉아 노인 특유의 혜안과 지혜로움으로 일을 해결한다. 떳떳하지 못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소위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온 개뼉다구들을 조심해야 한다. 관습과 분위기에 젖지 않은 그들은 신선한 제3자의 눈으로 당사자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 훌륭한 조상님들이 괜히 '굴러 온 돌이 박힌 돌 뺀다.'라는 말을 남겨주신 게 아니다. 그 옛날 분명히 이런 일들 때문에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며 그분들의 한이 맺힌 절규일 수도 있을터, 죄 많은 사람들은 새겨들어야 한다.

세대를 거듭하며 일어나는 악재들을 후세사람들은 '저주'라고 부른다. 수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오래된 고성들은 저주와 꽤 잘 어울린다. 하지만 저주라는 건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른다. 원인이 분명한 사건들에도 저주를 덧씌우기 때문이다. 꽤 편리하고 잘 먹힌다. 저주라는 면죄부를 통해 이해받는 듯 보이지만 이 세상에는 영원한 비밀이란 건 없다. 죽음과 함께 비밀이 묻히는 것도 아니다. 호기심 많은 후대 사람들은 과거의 비밀을 비밀 자체로 남겨두지 않는다. 상상할 수 없는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마침내 기어코 비밀을 풀어낸다. 아마 먼 훗날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혜택을 누리며 심신이 편안해진 후대 사람들은 더 악착같이 과거의 비밀에 매달릴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나중에 눈을 감는 날, 뒤가 좀 캥기는 일을 저질렀다면 일기장과 편지는 깨끗하게 없애버리고 영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가장 좋은 방법은 추억 속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최후에 눈 감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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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본즈 모중석 스릴러 클럽 16
캐시 라익스 지음, 강대은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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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떤 분야에 대해서 그쪽 분야의 전문가가 쓰는 글은 깊이가 있는 반면에 너무 지나치게 설명조로 빠지는 경향이 짙다. 독자를 배려하는 건 고맙지만 이중삼중 이어지는 설명은 조금 지루함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인 캐시 라익스는 실제로도 법인류학자로 일하면서 그쪽에서도 상당한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라고 한다. 실제 현장에서 쓰이고 있는 감식기술에 대한 서술은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으로 이 책이 주는 장점이다. 

하지만 고고학과 법의학의 만남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초라하다. 영리하고 상식도 풍부한 작가답게 이야기에는 흥미있는 고고학적 사실과 법의학적 근거를 들려주지만 어쩐지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책의 거창한 포장이 궁색하게 느껴진다. <크로스 본즈>는 실제 있었던 고고학적 사실에서 결코 깊게 들어간다거나 왜곡하지는 않는다. 이야기는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실제 있었던 사실에 흠집하나 안 내고 그 안에 그럴듯한 개연성의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작가는 꽤 영리한 작가다. 그렇기 때문에 소재가 주는 발칙함에 비해서는 별로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다. 현대사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종교를 둘러싼 시끄러운 바깥 이야기에 대한 안타까움과 걱정은 옳은 소리지만 원론적인 이야기로 비춰질 뿐이다. 모험을 즐기지 않는 작가구나.라는 걸 느꼈달까.

이야기에서 가장 쉽게 써먹을 수 있으며 거기다 편리하기까지 한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건 이렇게 거창한 소재로 조금 부풀려진 이야기도 꽤 그럴듯한 결말로 느껴지게 한다. 그런 거 많이 보지않나? 악당에게 넘어가면 인류가 혼란에 빠지게 되고 선한 쪽은 죽을 힘을 다해 싸워서 가까스로 손에 잡지만 결국 결말에 가서는 서로 욕심부리다 보기 좋게 바다에 가라앉아버린다던지 불의의 사고로 아예 망가져버린다던지. 그리고 결국 없었던 일처럼 그저 잠잠해지는 조금 힘빠지는 결말들. 영리하게 잘 만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주로 그렇지. 때문에 결말이 주는 통쾌함보다는 과정에서 주는 박진감에 관객들은 더 높은 점수를 주기도 하고. 결말이야 어찌됐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 그런 영화들처럼 이 책도 결말은 조금 싱겁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 시리즈'의 책들은 어떤 건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통쾌한 재미를 안겨주기도 하지만 또 어떤 책들은 조금 밋밋해서 그저그렇게 느껴지는 텁텁한 책들도 있다. '템퍼런스 브레넌'이라는 매력적인 법인류학자는 센스있고 강단있는 캐릭터지만 책까지 센스있고 재밌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책이 교정이 조금 덜 된 것 같다. 오탈자가 더러 보이더란. 그나저나,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부부였었다는 '설'은 여기서도 보이는 거 보니 <다 빈치 코드>의 영향력인가.

나도 세례명이 있긴 하지만 종교가 이쪽이라고 말할 순 없다. 발길 끊은지 꽤 되니까. 다만 성서는 이야기로는 꽤 재밌는 편이다. 유대인들의 역사가 아닌가. 활자중독증이 정도가 좀 심했을 때는 성서를 즐겨 읽기도 했다. 내용은 가물가물하고 그 인물이 그 인물같지만 예수와 사도들의 이야기는 서양역사와 맞물려 꽤 흥미있는 부분이 많다. 관련 다큐멘터리도 재밌는 편이고. 종교적인 접근이 아닌 역사와 서사쪽으로 바라보면 이렇게 사연많고 흥미있는 소재도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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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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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우리말 제목이었음에도 나는 제목을 제대로 상상하지 못했다. 똥을 친다고? 똥을 어떻게 칠 수 있다는 거지? 똥을 공처럼 만들어서 치나? 빈약한 상상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독서를 했다. 역시나 중반 이후에도 '똥친'의 정체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거의 끝에 가서야, '똥친'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소박한 책의 표지처럼 이 소설은 고향의 정갈하며 소담스러운 풍경이 담겨 있다. 백양나무의 가지로 무난하게 살았으면 참 좋았을 어린 나뭇가지는 시골농부의 손에 꺾이게 되고 그후 이 나뭇가지는 회초리로 똥친 막대기로, 후에 가서는 소녀 재희의 든든한 호신도구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하지만 영리한 나뭇가지는 생명력을 점점 일어가는 자신을 보며 그 상태로 미라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결국 녀석의 시선에는 생명을 다해가는 마지막의 절박함이 묻어있다. 눈에 담아둘 수 있는 건 제대로 담아두자하는 마음으로.

백양나무의 가지였다면 절대로 보지 못했을 농촌마을의 풍경을 보며 짧은 여행을 떠났으며 그로 인해 훈훈하고 살뜰함이 넘치는 시골마을의 정을 느껴볼 수 있었다. 도시의 삭막한 아파트촌에서 거의 평생을 살아서 그런지 시골마을의 풍경이 담긴 이야기를 읽을 때면 겪어보지 못했던 그 따스함을 경험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고생 한번 안 하다가 시골농부에게 우연히 꺾여버린 신세가 되면서 '나뭇가지'는 절망을 겪게 되고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희망과 기적을 바라게 된다. 나뭇가지에서 한낱 막대기로 전락해버렸지만 말라죽기 전까지 얼른 촉촉한 토양에 뿌리를 내리게 되면 어미였던 백양나무처럼 멋지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한편의 짤막한 동화, 아이보다는 어른을 위한 동화, 술술 넘어가는 그래서 금방 소화시킬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하찮았던 것들에 대한 애정과 내가 있는 이 자리에 대한 소중함을 곱씹어 볼 수 있는 계기들이 담겨 있다. 제 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뭇가지였기에 마침내 뿌리를 내리기 전까지는 행운에 가까운 우연의 힘이 컸다는 건 조금 아쉽지만 책의 서정적이고 향토적의 분위기에 마음이 데워지는 따스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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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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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제목 <통곡>처럼 이 책은 지독하게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얼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큰 이슈가 됐던 아동유괴살인사건을 주요소재로 다룬다. 타인의 아픔을 뼛속 깊이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이해할 수는 있어도 그 아픔을 느낀다는 건 겪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일 수 있겠다. 쓰라린 상실감과 그에 따른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은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정신이 건강하다면 분명 어리석다 비웃을 수 있는 일들을 감행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책을 읽는다고 무려 4시간동안을 꼼짝않고 그 자세 그대로 앉아서 책을 읽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30분에 한번쯤은 딴짓을 하던 나인데, 역시 가을은 독서의 계절(?)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럴 수 있었던 진짜 힘은 바로 이 책에 있었지만. 앞으로 이 책을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면 한마디면 될 것 같다. "반전이 죽여~" 정말 반전이 끝내준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반전은 서술이 트릭이라는 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반전을 눈치채기란 아무리 생각해도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두개의 이야기가 번갈아 교차하는데 두가지 이야기 모두 뼈대도 튼튼한데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심리를 번갈아가며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흥미요소다.    

타인에게 강한 모습만 보이며 살아온 소설 속 인물을 보며, 그리고 그로 인해 그가 감당하고 살았던 후회를 바라보며 진정으로 강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봤다. 폭풍이 불어올 때, 가장 잘 쓰러지는 나무는 강한 나무라고 한다. 부드럽고 유연한 작은 나무들은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몸을 뉘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 견딘다고 한다. 사실 가장 잘 부러지는 나무도 단단하게 보였던 녀석이다. 수분을 머금은 풀이 죽은 나무는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부드러움 속에 강함이 있다. 그리고 또하나 얻은 삶의 교훈, 마음에 담고 있는 타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도 표현해야 아름다운 것이라고. 들어줄 사람도 없는 "사랑해"라는 속삭임은 공허한 외침이 되어 내게 돌아온다. 상처라는 비수와 함께. 말해주지 않았는데, 표현해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나의 진심을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나중에 가서 하는 후회는 어쩌면 너무 늦은 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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