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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비지 가든
마크 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비채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고저택과 저택에 얽힌 비밀은 살가운 형제 관계는 아니더라도 이복형제뻘이 아닐까. 고혹한 분위기를 풍기는 대저택은 저택의 주인이었을 수십명의 사람들이 안고 있었을 수많은 비밀들을 품고 있는 곳일 것만 같다. 『새비지 가든』은 저택에 얽힌 얘기로도 모자라 그 앞에 딸린 넓은 정원에 담긴 비밀을 푸는 소설이다. 400여년전의 저택의 주인이 설계한 정원, 표면적으로는 죽은 아내를 추모하기 위한 정원이지만 조사를 맡은 애덤은 그보다는 더 추악한 진실을 품고 있는 정원임을 밝힌다. 미(美)로 가장한 한 인간의 자기고백서같은 정원, 그리고 현대로 넘어오면서 이 장소는 또 한번의 비극적인 사건의 배경이 된다. 이렇게 사연많은 정원과 저택에 담긴 비밀의 코드가 하나하나 벗겨진다.
『새비지 가든』에는 영리한 노인 '도치 여사'가 나온다. 그녀는 현명한 방법으로 피 하나 묻히지 않고 잘못 끼워진 단추를 바로 채운다. 한창 머리가 잘 돌아갈 전성기의 젊은이들을 제치고 그들의 머리 위에 앉아 노인 특유의 혜안과 지혜로움으로 일을 해결한다. 떳떳하지 못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소위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온 개뼉다구들을 조심해야 한다. 관습과 분위기에 젖지 않은 그들은 신선한 제3자의 눈으로 당사자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 훌륭한 조상님들이 괜히 '굴러 온 돌이 박힌 돌 뺀다.'라는 말을 남겨주신 게 아니다. 그 옛날 분명히 이런 일들 때문에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며 그분들의 한이 맺힌 절규일 수도 있을터, 죄 많은 사람들은 새겨들어야 한다.
세대를 거듭하며 일어나는 악재들을 후세사람들은 '저주'라고 부른다. 수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오래된 고성들은 저주와 꽤 잘 어울린다. 하지만 저주라는 건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른다. 원인이 분명한 사건들에도 저주를 덧씌우기 때문이다. 꽤 편리하고 잘 먹힌다. 저주라는 면죄부를 통해 이해받는 듯 보이지만 이 세상에는 영원한 비밀이란 건 없다. 죽음과 함께 비밀이 묻히는 것도 아니다. 호기심 많은 후대 사람들은 과거의 비밀을 비밀 자체로 남겨두지 않는다. 상상할 수 없는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마침내 기어코 비밀을 풀어낸다. 아마 먼 훗날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혜택을 누리며 심신이 편안해진 후대 사람들은 더 악착같이 과거의 비밀에 매달릴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나중에 눈을 감는 날, 뒤가 좀 캥기는 일을 저질렀다면 일기장과 편지는 깨끗하게 없애버리고 영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가장 좋은 방법은 추억 속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최후에 눈 감는 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