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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재작년 내가 한없는 애정을 듬뿍 주었던 완소드라마가 있었다. 드라마의 완성도와 정성에 비해서는 시청률에서는 지독히도 운이 없었던 드라마. 다시 봐도 여전히 사랑스럽고 달콤하지만 너무너무 슬퍼서 유난히 자주 눈물짓게 했던 드라마. K본부에서 방송됐던 <경성스캔들>이라는 드라마를 기억하시는지. 1930년대 식민지 시대의 경성에서 살았던 시대의 젊은이들이 꿈꿨던 혁명과 연애를 다뤘던 인상적인 드라마였다. 드라마의 마지막 방송에서 기억에 남았던 시청자에게 남기는 끝인사. "먼저 가신 분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소중한 이 땅에서 마음껏 연애하고, 마음껏 행복하십시오." 이 자막을 보고 마음이 참 아렸었다. 불운했던 식민지 시대를 살아갔던 젊은이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때론 유쾌하게 때론 진중하게 그렸던 센스있는 드라마였는데. 그 드라마에서 청춘은 언제나 봄, 하지만 조국은 아직도 겨울이라고 했던가.
일제의 가혹한 수탈과 폭압통치 속에서 참 질기게도 신념을 이어나가며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의 독립을 외쳤던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 시절, 일제가 뭉개버리지 못해서 안달이었던 조선의 젊은이들이 품었던 신념은 두가지가 있었다. 국체부정(독립)과 사유재산부정(사회주의), 1920년대 소련 '레닌'의 사회주의 지원정책의 후원 아래 이 땅의 젊은이들은 독립의 한 방법으로 '사회주의'를 모색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지금의 꼴수구들이 페인트로 붉은 색깔을 덕지덕지 칠하지 못해 안달인 그 지겨운 색깔논쟁의 연장선에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실제로 근현대사에서 가중 비중있게 다루는 것이 1920년대 '사회주의'와 '신간회'의 활동이다. 1920년대, 만주를 비롯한 국외에서는 독립군들은 '전투'를 벌였고 국내에서는 이렇듯 이념에 대한 갈등과 통합이 모색되었던 시기였다. 그리고 통합의 정점에 서있었던 것이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연대 단체인 '신간회'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통합도 오래가지 못했다. 신간회 내부의 분파간 갈등과 소련의 코민테른의 지시 아래 1930년대 신간회는 와해된다.
1930년대 시대의 틀을 나누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것이 1931년 터진 만주사변이다. 이때부터 일본은 중국본토를 손에 넣겠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야무지게 식민지를 넓혀갔던 일본이 본격적인 전쟁의 광기에 빠지기 일보직전의 일이다. 간도를 비롯한 만주땅에서는 산발적인 항일연군들의 독립활동이 있었다. 친일파 지주의 집을 습격하거나 인근 평안도지역까지 넘어와 일제의 관공서를 불태우기도 했다. 이들의 주요 활동지였던 간도의 위치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면 오른쪽이 북간도고 왼쪽이 서간도로 나뉜다. (간도라는 영토는 북한과 통일 후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다시 찾아와야 할 여러 이권 중에 하나에 속한다.)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는 1930년대 간도를 배경으로 한, 시대의 모순 속에서 살아간 젊은이들을 다룬 뜨거운 이야기다. 아니 이건 사실 이야기라기 보다는 외침에 가까운 읍소다. 불행했던 식민지 조선이 타국에서 낳은 청년들의 기막힌 삶과 채 피지도 못하고 꺾였던 수많은 젊은 꽃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에 가까운 소설이다. 간도라는 땅이 어떤 땅인가. 민족의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일제의 총칼에 쓰러져 갔던 곳이고 독립군과의 전투에서 지고 돌아온 일본군의 분풀이로 힘없는 조선의 동포들이 잔인하게 학살됐던 슬픈 비명이 깃든 곳이다. 조국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던 그 시절, 변방의 척박한 황무지에 배고픔과 내일을 위한 희망을 품고 이 땅을 떠난 수많은 조선인들의 절박했던 삶의 아픔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는 곳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났지만 엘리트 교육을 받은 김해연은 간도에서 연인 이정희를 만난 뒤, 그리고 그녀의 비극에 가까운 죽음을 겪으며 자신의 때 묻지 않은 곱디고운 여린 '손'을 저주한다. 처음엔 기계적으로 혁명에 뛰어들지만 그 안에서 이념의 갈등과 식민지 젊은이들의 의미없는 희생과 마주하면서 점점 강인하고 억센 '손'을 갖게 된다. 그토록 저주했던 그 손으로 상대에게 총을 겨누고 스스로가 경계라고 규정했던 살인까지 저지른다. 시대의 비극과 함께 김해연은 성장한다. 그리고 그가 어제까지 살았던 삶과는 전혀 다른 오늘을 살게 된다. 동지의 손에 죽어가는 또다른 동지들의 억울한 죽음을 목도하며 시대의 비극을 체감한다. 조선의 독립이 아닌 중국의 독립을 위해 투신해야했던 시대가 그들에게 안겨준 모순덩어리의 질곡진 삶. 그리고 그곳에서 쓰러져 간 수많은 조선의 젊은이들을 만나게 되는 소설이다.
불과 1년여 전에 이 나라에서는 참 아이러니한 사건이 일어났다. 조국 티벳의 독립을 호소하던 티벳의 젊은이들이 똑같이 식민지의 아픔을 겪었던 이 나라에서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들뜬 중국 유학생들에게 죽도록 얻어맞은 일이 있었다. 당시 이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던 이땅의 국민들과 경찰들이 있었다. 모순 아닌가? 이 나라처럼 과거로부터 전혀 배우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한때 시대의 약자였던 시절을 망각하고, 타지에서, 국경의 바깥 쪽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쓰러져 간 수많은 젊은이들의 영혼을 간직한 이 나라에서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과거 간도 땅에서 독립을 외치다 일제의 총칼에 쓰러져간 그 시절, 그 사람들과 저들이 무엇이 다른가? 타국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외롭게 호소했던 저 티벳의 젊은이들이 말이다.
2009년의 대한민국,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곳, 그리고 나의 국적은 일본이 아닌 대한민국. 우리가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이 사실들은 실은 당연한 게 아니다. 우리는 저 시절 치열하게 살다간, 스스로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잃어버리고 시대에 몸을 맡긴, 운명 따위는, 개인의 영달 따위는 꿈꾸지 않았던, 나라 없이 태어나 나라 없이 잠들었던 수많은 청춘들의 희생 위에 새겨진 투쟁의 결과이다. 하지만 저 시절 뿌리 깊게 반목된 갈등은 여전히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다. 그 갈등의 연속으로 이 땅은 둘로 갈라졌으며, 나라가 분단된 뒤에는 민주주의와 독재정치가 충돌했다. 수많은 혁명과 민중의 희생 뒤에 민주주의가 간신히 자리잡았다고 하는 지금 이 시대의 우리는 당파 간의 갈등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갈등, 진보와 보수의 갈등, 이 좁은 땅 덩어리 안에서 오늘도 우리는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분노하며 충돌을 반복하고 있다.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를 잊고 살면서. 내가 상대에게 겨눈 그 손가락, 하지만 그 손가락 중 4개가 실은 나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망각하면서.
그렇다고 해서 마음 속에 꿈을 간직하고 싸웠던 저 시대의 젊음들이 허황된 꿈을 좇았다거나 젊었을 적의 치기를 간직하고 의미없는 죽음을 맞이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혁명가 '체 게바라'는 말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고.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간직하자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실은 과거 저들이 꿈꾸었던 그 불가능한 '꿈'이었을지 모른다. 저들이 뜨겁게 피우려 했던, 그래서 가장 짙은 어둠의 외로웠던 '밤'을 견디게 해주었던 가슴 속에 품었던 '열망'이었을지 모른다. 저들이 그토록 부르고 싶어했던 '밤의 노래'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너무 쉽게 그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시대의 모순 속에서 조국을 위해 기꺼이 피를 흘렸던, 식민지 시대의 타국에서 아스라하게 져버린 수많은 청춘들이 목숨과 신념, 사랑과 맞바꾼 불가능해 보이지만 언젠가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던 달콤한 '꿈'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