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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16인의 반란자들 (Rebeldia de Nobel )
사비 아옌 │스테이지팩토리 │2011.12.26│p.295
검은색 양장본의 위엄에 금색 바탕체로 ‘16인의 반란자들’ 이라는 제목이 또각또각 신사답게 쓰여 있습니다. 어떠한 화려한 꾸밈도 없이 두꺼운 책은 억지스럽지 않아 믿음직스럽습니다. 노벨상이라니 호기심이 기웃거리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은 나와 같이 독서를 취미로 향유하던 사람에게 노벨상의 문학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라는 적잖은 주눅인지. 텍스트의 무게가 어떠한 저울로도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책들도 있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호기심의 질량이 조금 더했던 덕분에 깊은 호흡으로 준비하며 텍스트를 더듬어 살핍니다.
주제 사라마구, 텍스트로 만났던 작가는 한 사람 뿐입니다. - 그의 작품 <눈 먼 자들의 도시>는 정말 즐겁게 만났었다. <눈 뜬 자들의 도시>와 <도플갱어>는 그에 미치지 못했지만 - 오르한 파묵의 책은 책장에서 숙성중이고 토니 모리슨은 유명한 여성 작가구나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아주 잠시 부끄러워야 하는지 망설였습니다. 부끄럽지 않으니 나는 책장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책은 문학전문기자 사비 아옌과 사진기자 킴 만레사가 킴 만레사의 사진집에 어울리는 한 마디 헌사를 해 줄 작가를 섭외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16인의 반란자들’ 의 문학을 조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 전체를 아우르며 이야기합니다. 프롤로그에 담았듯 작가들이 실제 거주하고 있는 집을 방문하되 작업실만이 아니라 주방까지 살피고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고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사는 도시나 그들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곳을 함께 찾았습니다. 인류에게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해 준 뛰어난 문학 작품을 쓴 작가들에게 수여하는 노벨문학상, 그 이름에 걸맞게 그들의 삶은 끊임없이 이상(理想)을 향한 갈망을 멈추지 않습니다.
- 주제 사라마구 (Jose Saramago)
" 선생의 인생은 어떠했다고 생각하십니까?"
" 기적이었어요. 기적이 존재한다면……. 나는 독학을 했어요. 우리 가족은 달리 살아갈 방도가 없었지요. 나는 청색 작업복을 입고서 2년 동안 기계공으로 일했고, 그 뒤로도 다양한 직업을 거쳤어요. 내 문학교육은 공공도서관에서 이뤄졌는데, 집에는 책 한 권 없었고 모친은 일자무식이었어요. 당시에는 내가 걸어갈 길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니 겨냥할 게 없었지요. 스물다섯에 첫 소설을 시도한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창작의 길로 들어선 것은 <디아리우 데 노티시아>지에서 기자 일을 잃었을 때였소. 그때 내 나이 오십이었지요. 누군가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나는 진지하게 이렇게 대답해요. 아무것도 쓸 게 없었다고."
- 오에 겐자부로 (Oe Kenzaburo)
" 나는 오전 7시에 일어나요. 아침은 거르지요. 네댓 시간 동안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다시 일을 해요. 저녁에는 수영장에 가지요.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아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조금 있다가 잠자리에 들어요. 나는 항상 이 테이블에서 글을 쓰고, 그사이 히카리는 TV를 보거나 음악을 들어요. 나는 불운하지 않고, 다른 일들로 인해 내 세계가 흔들리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아요."
- 토니 모리슨 (Toni Morrison)
" 내가 절도범이나 창녀 같은 평범한 이들에 대해 관심이 많은 건, 그들이 역사책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에요. 마치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처럼 말이에요. 나는 그들에게 그들의 삶을 되돌려주고 싶었어요."
- 다리오 포 (Dario Fo)
" 나는 마치 놀이처럼 시작했어요. 나는 지방 출신이오. 하루 내내 환상적인 우화가 끊이지 않는 곳, 일찍부터 애송이들이 만평이나 풍자로 바꿀 만한 우울한 상황을 찾아 나서는 곳 말이오. 나는 건축을 공부했고 그 일을 했지만, 어느 날 내가 일하는 작업실의 일감이 관청이나 정당에 건넨 뇌물 덕분에 들어온 것임을 깨달았어요. 그 충격으로 극도의 우울증을 겪다가 의사를 찾아갔어요. 그랬더니 좋은 친구였던 그가 이렇게 충고하더군요.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 뭐랄까. 늘 꿈꾸던 그런 거 있잖아.' 그렇게 해서 연극이 정신병으로부터 나를 구원했고, 내 나이 스물네 살에 나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어요."
- 오르한 파묵 (Orhan Pamuk)
" 나는 서른 살까지 돈을 벌지 못했고, 그래서 강의를 시작했어요." 그의 모친은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믿었다. " 우리 어머니는 위대한 자기 확신을 물려주셨어요. 다섯 살 때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그리고 있으면, 그때마다 이렇게 소리치셨어요. ' 이 녀석은 천재야, 천재!' 아,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 그러니 지금 여기 있지 않소?"
- 도리스 레싱 (Doris Lessing)
"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어요. 내 책에서만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그래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각자가 외롭지 않기 위해서 함께 살기를 원하는 두 종류의 인간일 뿐이에요.”
- 윌레 소잉카 (Wole Soyinka)
" 노벨상을 받았을 때 내 머릿속은 온통 돈 생각뿐이었소. 우리 가족 전체가 수세대에 걸쳐 번 돈보다 훨씬 많은 액수였기 때문이오. 나는 작가들을 위한 작업실을 만들고 싶었어요. 누구나 찾아와서 차분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 말이오."
- 나딘 고디머 (Nadine Gorfimer)
" 당신은 내 바지 뒤쪽 호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을 만큼 왜소하지만, 몸집 외에 모든 것은 거인입니다. "
(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투투 주교가 나딘 고디머에게 했던 말)
- 가오 싱젠 (Gao Xingjian)
" 문학은 인간이 의미하는 것을 심오하게 일깨워주는 도구이지, 다른 것을 얻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돼요. 실제로 예술가는 세상을 구원하지 못했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자신의 내적인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구현하는 존재이니까요."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Gabriel Garcia Marquez)
" 아주 환상적인 일을 찾아냈어요. 침대에서 책을 보는 거! 여태껏 시간이 없어서 미뤄두었던 책들을 찾아 읽고 있어요. 예전에는 글을 안 쓰면 골이 텅 빈 느낌이 들어서 오후 3시까지는 살기 위해서, 밀려드는 초조함을 잊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해야 했지만, 지금은 아주 평온해요."
- 권터 그라스 (Gunter Grass)
" 내가 진짜로 미안해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소? 그건 내가 이미 털어 놓았던, 40년 동안 숨기고 싶어 했던 그런 게 아니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나한테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던 그것은, 바로 내가 했던 모든 것과 그 시절에 일어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오. 전쟁 초기에 그들은 내 사촌을 총살했고, 학교에 있는 내 급우와 교사를 데려갔소. 그리고 여호화의 증인이었던 어떤 병사는 총살 집행인으로 뽑히는 것을 거부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졌소. 나는 그들을 향해 왜 그러느냐고도 묻지 않았고, 그들을 쳐다복 싶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들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수용소로 데려갔찌만, 그때마다 나는 다른 쪽을 쳐다보고 있었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게 내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고통이자 내가 결코 떼어낼 수 없는 고통이오."
- 나기브 마푸즈 ( Naguib Mahfuz)
" 기억이 없어요. 나를 공격했던 그 젊은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면, 혹시 그자가 나를 존경한다고 생각하고서 내가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손을 내밀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아마도 난 평생 트라우마를 겪었을 거요. 실제로 내가 손을 내밀었다고들 하는데, 내가 기억하는 것은 내가 자동차 안에 있었다는 것뿐이오. 그게 전부요. 이렇게 불행한 일들을 선별해서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내려진 성스러운 은총이오."
- V.S. 네이폴 ( V.S. Naipaul)
" 나는 종교인이 아니오. 내 삶은 글을 쓸 뿐, 그게 다요. 쓰는 게 내 종교요. 그게 존재할 수 있는 종교들 중에서 가장 높은 종교요."
- 임레 케르테스 (Imre Kertesz)
" 친구들, 아직도 부족해요? 자, 기운을 차리기 위해서 나한테 소시지 피자를 주문하도록 허락해주시오. 아, 그리고 맥주도! "
- 데릭 월콧 (Derek Walcott)
" 비록 좋은 시가 어떤 고통을 제거해주지는 못하지만, 놀라운 것은 공포로부터 아름다움을 분출한다는 것입니다. "
-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Wislawa Szymborska)
" 나는 결점이 아주 많은데, 장점도 하나 있어요. 매사에 호기심을 갖는다는 거. 그게 바로 나의 원동력이에요."
책장은 미끄러지듯 유영(游泳)하며 거침없이 넘어가기도 하다가 묵직한 추를 매단 듯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수 없이 맴돌기도 합니다. 그러나 책에 담긴 사진들엔 오래도록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흑백의 사진이 담은 색채는 그 어느 색상으로도 표현 하지 못할 만큼 아름답네요. 손, 세월의 굽이 굽이 그 시간의 굴곡만큼 주름 진 손이 텍스트보다 가득한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작가의 손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나도 사람들의 손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가지런히 다듬어진 손톱 혹은 굵은 마디, 굳은 살, 그렇게 손은 저마다의 모양으로 고스란히 인생을 담았습니다. 재미있네요.
16일의 시간동안 ‘16인의 반란자들’ 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만나며 나 밖에 보지 못했던 옹졸한 내 시야(視野)를 새삼 실감합니다. 내 몫의 삶 조차 버거워 바동거리던 나의 걸음에 이제야 조바심이 납니다. 아마도 ‘16인의 반란자들’ 을 모두 텍스트로 만나지는 못할테지만 - 만나고 싶은 작가들의 작품은 책을 읽으며 메모해두었다. - 이렇게 책은 나에게 나의 안일했던 삶을 조심스럽게 흔듭니다. 그 흔들림이 시린 겨울을 보내고 만난 봄바람처럼 반갑고 반갑습니다.
종이책읽기를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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