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Coool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120% COOL

야마다 에이미│ 민음사 │2008.01.25│p.227

 

 

 

'내 아내의 입술은 애벌레다.' 처음 만난 야먀다 에이미의 소설은 <120% COOL>은 그렇게 첫 문장부터 강한 호기심으로 나를 매혹합니다. 빨간색 표지의 얇은 양장본은 읽어야지 했다가 잊고 있던 책입니다. 지난 해 말 민음사 북패밀리 세일에서 만나 반갑게 모셔왔는데 이제야 들추어 봅니다. 커다란 포부에 오히려 주눅이 든, 지지부진한 책 읽기에 지쳐 있던 나에게 마치 뜨거운 여름날 숨이 턱까지 차올랐을 때 머리카락을 살며시 흐트러트리는 작은 바람, 냉수 한 모금의 반가움이랄까. 아니 아니 얼음을 아그작아그작 깨물어 삼키는 그런 청량감! 그렇게 <120% COOL>은 나의 갈증을 잠재웁니다.

 

사실 그녀의 솔직함에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나는 솔직한 것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녀의 이야기 속 그녀들이 사랑 또한 내게는 낯선 방식입니다. 아마도 누군가는 그런 것에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단순히 '야하다'는 단어로 이 소설을 옭아매기에 그녀는 너무 당당합니다. 새삼 '쿨하다'가 어떤 뜻일까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털털하다? 시원시원하다? 뒤끝이 없다?

 

 

p. 135

"추억이 달콤하면 진짜 사랑이 아니에요. 당신처럼 젊은 남자는 잘 모르겠지만." 

 

 

풉, 하고 웃음을 터져 버렸습니다. 내 달콤한 추억들이 그녀의 한마디에 가짜 사랑이 되고 말았는데 억울하거나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며 나도 모르게 수긍하는 내가 바보같아서 웃음이 터져 버렸습니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말만이 위로가 아님을 나는 그녀를 통해 배웁니다. p. 172 쉽게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바로 어른의 불행이다. 9편의 짧은 이야기는 사랑이 시작되는 연인에게, 눈 먼 사랑에게, 눈물 나는 늦은 사랑에게 모두 조금 더 단단한 120% COOL을 선물할 것입니다.

 

 

 

p. 206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냥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난 아직 모른다.

 

 

 

 

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16인의 반란자들 (Rebeldia de Nobel )

사비 아옌 │스테이지팩토리 │2011.12.26│p.295

 

 

 

검은색 양장본 위엄에 금색 바탕체로 ‘16인의 반란자들’ 이라는 제목이 또각또각 신사답게 쓰여 있습니다. 어떠한 화려한 꾸밈도 없이 두꺼운 책은 억지스럽지 않아 믿음직스럽습니다. 노벨상이라니 호기심이 기웃거리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은 나와 같이 독서를 취미로 향유하던 사람에게 노벨상의 문학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라는 적잖은 주눅인지. 텍스트의 무게가 어떠한 저울로도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책들도 있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호기심의 질량이 조금 더했던 덕분에 깊은 호흡으로 준비하며 텍스트를 더듬어 살핍니다.

 

주제 사라마구, 텍스트로 만났던 작가는 한 사람 뿐입니다. - 그의 작품 <눈 먼 자들의 도시>는 정말 즐겁게 만났었다. <눈 뜬 자들의 도시>와 <도플갱어>는 그에 미치지 못했지만 - 오르한 파묵의 책은 책장에서 숙성중이고 토니 모리슨은 유명한 여성 작가구나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아주 잠시 부끄러워야 하는지 망설였습니다. 부끄럽지 않으니 나는 책장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책은 문학전문기자 사비 아옌과 사진기자 킴 만레사가 킴 만레사의 사진집에 어울리는 한 마디 헌사를 해 줄 작가를 섭외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16인의 반란자들’ 의 문학을 조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 전체를 아우르며 이야기합니다. 프롤로그에 담았듯 작가들이 실제 거주하고 있는 집을 방문하되 작업실만이 아니라 주방까지 살피고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고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사는 도시나 그들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곳을 함께 찾았습니다. 인류에게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해 준 뛰어난 문학 작품을 쓴 작가들에게 수여하는 노벨문학상, 그 이름에 걸맞게 그들의 삶은 끊임없이 이상(理想)을 향한 갈망을 멈추지 않습니다.

 

 

- 주제 사라마구 (Jose Saramago)

 

 " 선생의 인생은 어떠했다고 생각하십니까?"

 " 기적이었어요. 기적이 존재한다면……. 나는 독학을 했어요. 우리 가족은 달리 살아갈 방도가 없었지요. 나는 청색 작업복을 입고서 2년 동안 기계공으로 일했고, 그 뒤로도 다양한 직업을 거쳤어요. 내 문학교육은 공공도서관에서 이뤄졌는데, 집에는 책 한 권 없었고 모친은 일자무식이었어요. 당시에는 내가 걸어갈 길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니 겨냥할 게 없었지요. 스물다섯에 첫 소설을 시도한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창작의 길로 들어선 것은 <디아리우 데 노티시아>지에서 기자 일을 잃었을 때였소. 그때 내 나이 오십이었지요. 누군가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나는 진지하게 이렇게 대답해요. 아무것도 쓸 게 없었다고."

 

 

- 오에 겐자부로 (Oe Kenzaburo) 

 

 " 나는 오전 7시에 일어나요. 아침은 거르지요. 네댓 시간 동안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다시 일을 해요. 저녁에는 수영장에 가지요.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아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조금 있다가 잠자리에 들어요. 나는 항상 이 테이블에서 글을 쓰고, 그사이 히카리는 TV를 보거나 음악을 들어요. 나는 불운하지 않고, 다른 일들로 인해 내 세계가 흔들리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아요."

 

 

- 토니 모리슨 (Toni Morrison)

 

 " 내가 절도범이나 창녀 같은 평범한 이들에 대해 관심이 많은 건, 그들이 역사책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에요. 마치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처럼 말이에요. 나는 그들에게 그들의 삶을 되돌려주고 싶었어요."

 

 

- 다리오 포 (Dario Fo)

 

  " 나는 마치 놀이처럼 시작했어요. 나는 지방 출신이오. 하루 내내 환상적인 우화가 끊이지 않는 곳, 일찍부터 애송이들이 만평이나 풍자로 바꿀 만한 우울한 상황을 찾아 나서는 곳 말이오. 나는 건축을 공부했고 그 일을 했지만, 어느 날 내가 일하는 작업실의 일감이 관청이나 정당에 건넨 뇌물 덕분에 들어온 것임을 깨달았어요. 그 충격으로 극도의 우울증을 겪다가 의사를 찾아갔어요. 그랬더니 좋은 친구였던 그가 이렇게 충고하더군요.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 뭐랄까. 늘 꿈꾸던 그런 거 있잖아.' 그렇게 해서 연극이 정신병으로부터 나를 구원했고, 내 나이 스물네 살에 나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어요."

 

 

- 오르한 파묵 (Orhan Pamuk)

 

 " 나는 서른 살까지 돈을 벌지 못했고, 그래서 강의를 시작했어요." 그의 모친은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믿었다. " 우리 어머니는 위대한 자기 확신을 물려주셨어요. 다섯 살 때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그리고 있으면, 그때마다 이렇게 소리치셨어요. ' 이 녀석은 천재야, 천재!' 아,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 그러니 지금 여기 있지 않소?"

 

 

- 도리스 레싱 (Doris Lessing)

 

 "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어요. 내 책에서만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그래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각자가 외롭지 않기 위해서 함께 살기를 원하는 두 종류의 인간일 뿐이에요.”

 

 

- 윌레 소잉카 (Wole Soyinka)

 

 " 노벨상을 받았을 때 내 머릿속은 온통 돈 생각뿐이었소. 우리 가족 전체가 수세대에 걸쳐 번 돈보다 훨씬 많은 액수였기 때문이오. 나는 작가들을 위한 작업실을 만들고 싶었어요. 누구나 찾아와서 차분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 말이오."

 

 

- 나딘 고디머 (Nadine Gorfimer)

 

  " 당신은 내 바지 뒤쪽 호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을 만큼 왜소하지만, 몸집 외에 모든 것은 거인입니다. "

   (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투투 주교가 나딘 고디머에게 했던 말)

 

 

- 가오 싱젠 (Gao Xingjian)

 

 " 문학은 인간이 의미하는 것을 심오하게 일깨워주는 도구이지, 다른 것을 얻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돼요. 실제로 예술가는 세상을 구원하지 못했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자신의 내적인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구현하는 존재이니까요."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Gabriel Garcia Marquez)

 

  " 아주 환상적인 일을 찾아냈어요. 침대에서 책을 보는 거! 여태껏 시간이 없어서 미뤄두었던 책들을 찾아 읽고 있어요. 예전에는 글을 안 쓰면 골이 텅 빈 느낌이 들어서 오후 3시까지는 살기 위해서, 밀려드는 초조함을 잊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해야 했지만, 지금은 아주 평온해요."

 

 

- 권터 그라스 (Gunter Grass)

 

  " 내가 진짜로 미안해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소? 그건 내가 이미 털어 놓았던, 40년 동안 숨기고 싶어 했던 그런 게 아니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나한테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던 그것은, 바로 내가 했던 모든 것과 그 시절에 일어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오. 전쟁 초기에 그들은 내 사촌을 총살했고, 학교에 있는 내 급우와 교사를 데려갔소. 그리고 여호화의 증인이었던 어떤 병사는 총살 집행인으로 뽑히는 것을 거부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졌소. 나는 그들을 향해 왜 그러느냐고도 묻지 않았고, 그들을 쳐다복 싶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들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수용소로 데려갔찌만, 그때마다 나는 다른 쪽을 쳐다보고 있었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게 내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고통이자 내가 결코 떼어낼 수 없는 고통이오."

 

 

- 나기브 마푸즈 ( Naguib Mahfuz)

 

 " 기억이 없어요. 나를 공격했던 그 젊은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면, 혹시 그자가 나를 존경한다고 생각하고서 내가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손을 내밀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아마도 난 평생 트라우마를 겪었을 거요. 실제로 내가 손을 내밀었다고들 하는데, 내가 기억하는 것은 내가 자동차 안에 있었다는 것뿐이오. 그게 전부요. 이렇게 불행한 일들을 선별해서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내려진 성스러운 은총이오."

 

 

- V.S. 네이폴 ( V.S. Naipaul)

 

 " 나는 종교인이 아니오. 내 삶은 글을 쓸 뿐, 그게 다요. 쓰는 게 내 종교요. 그게 존재할 수 있는 종교들 중에서 가장 높은 종교요."

 

 

- 임레 케르테스 (Imre Kertesz)

 

  " 친구들, 아직도 부족해요? 자, 기운을 차리기 위해서 나한테 소시지 피자를 주문하도록 허락해주시오. 아, 그리고 맥주도! "

 

 

- 데릭 월콧 (Derek Walcott)

 

 " 비록 좋은 시가 어떤 고통을 제거해주지는 못하지만, 놀라운 것은 공포로부터 아름다움을 분출한다는 것입니다. "

 

 

-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Wislawa Szymborska)

 

" 나는 결점이 아주 많은데, 장점도 하나 있어요. 매사에 호기심을 갖는다는 거. 그게 바로 나의 원동력이에요."

 

 

책장은 미끄러지듯 유영(游泳)하며 거침없이 넘어가기도 하다가 묵직한 추를 매단 듯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수 없이 맴돌기도 합니다. 그러나  책에 담긴 사진들엔 오래도록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흑백의 사진이 담은 색채는 그 어느 색상으로도 표현 하지 못할 만큼 아름답네요. 손, 세월의 굽이 굽이 그 시간의 굴곡만큼 주름 진 손이 텍스트보다 가득한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작가의 손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나도 사람들의 손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가지런히 다듬어진 손톱 혹은 굵은 마디, 굳은 살, 그렇게 손은 저마다의 모양으로 고스란히 인생을 담았습니다. 재미있네요.

 

16일의 시간동안 ‘16인의 반란자들’ 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만나며 나 밖에 보지 못했던 옹졸한 내 시야(視野)를 새삼 실감합니다. 내 몫의 삶 조차 버거워 바동거리던 나의 걸음에 이제야 조바심이 납니다. 아마도 ‘16인의 반란자들’ 을 모두 텍스트로 만나지는 못할테지만 - 만나고 싶은 작가들의 작품은 책을 읽으며 메모해두었다. - 이렇게 책은 나에게 나의 안일했던 삶을 조심스럽게 흔듭니다. 그 흔들림이 시린 겨울을 보내고 만난 봄바람처럼 반갑고 반갑습니다.

 

 

 

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백의 그림자

황정은 │ 민음사  │ 2010.06.05  │ p.192

 

 

 

白,  흰색은 눈이나 우유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한 색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책은 하얀색을 흉내내지 않고 당당하게 전혀 밝고 선명하지 못한 채로 회색 혹은 크림색을 닮고 짙게 어두운 검은색의 그림자까지 갖고 있으면서 白이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너무 당당하면 - 설령 상대방이 틀린 듯 하여도 -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지요. 지난 해 자주 눈에 밟히던 책을 손에 쥐고도 한참이나 익히고 익혀 읽었습니다. 은교의 그림자가 자라듯 기대가 자라면 두려운 법입니다.  이야기는 당혹스러울만큼 덤덤한 빛으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아니 사랑한다는 말은 끝까지 내놓지도 않습니다.

 

그림자를 따라 나선 은교와 그런 은교를 말리는 무재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은교와 무재, 그들은 도심 한복판에 있는 퇴락한 40년 된 전자상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현실에 닿으려해도 싹둑싹뚝 매몰차게 잘라지는 그 공간에서 사람들의 그림자가 일어섭니다. 재개발로 상가는 하나씩 철거되고 그 곳에 공원에 들어서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작아 은교는 흠짓 놀랍니다. 길을 잃고 헤매이던 공간이 사실은 한 눈에 보이는 공원이 되었다니. 전자상가, 40년의 시간이 담긴 그 곳에서 삶의 쳇바퀴를 무던히도 밟던 사람들의 먹먹해서 너무 먹먹해서 슬프지 못한 이야기가 밋밋하게 흘러갑니다. 그것을 그대로 닮은 은교와 무재의 사랑도 그렇게 새빨간 붉은빛이 아니라 회색빛이 도는 붉은 그러니까 인디핑크, 그정도랄까.

 

마주 앉아 갈비탕과 냉면을 먹으며 - 은교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만큼 땀을 흘리면서 갈비탕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만 열심히 삼켜내지요 -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p. 39

은교씨는 갈비탕 좋아하나요
좋아해요
나는 냉면을 좋아합니다
그런가요
또 무엇을 좋아하나요
이것저것 좋아하는데요
어떤 것이요
그냥 이것저것을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 

 

 

은교와 무재의 대화는 늘 심심하지만 그 덤덤함이 따뜻하게 전해지는 것은 무채색이 지니는 채도탓일까요? 소란스럽지 않은 사랑, 그 사랑에서 억지스럽지 않은 진심이 가득 스며 번집니다. p. 123 무재 씨가 보내오는 공은 너무 높아서 힘껏 팔을 뻗어도 머리 위로 넘어가기가 일쑤였다. 높다고 불평하자 높아도, 언젠가 떨어지잖아요, 그때를 노리면 되죠, 라면서 무재 씨는 은근히 약 올리듯 말했다. 어느날엔가는 번성했을 그래서 높이 솟았던 전자상가 건물의 쇠락처럼, 우리의 삶도 언젠가는 떨어지는 것처럼.  떨어지지 않을 수는 없는거니까.

 

그리고 그림자.  (나는 이 책을 구입해서 한 번 더 읽을 량으로 작품해설은 앞 장을 좀 넘기다 덮었습니다.) 그림자와 관련된 시가 한 편 생각이 났습니다.

 

 

비둘기 그림자는, 비둘기 곁에서 콘크리트 바닥을 쪼아댄다. 제법 곁눈질이 늘어 비둘기보다 큰 부리로 비둘기보다 더 깊이 바닥의 침묵을 흠집 낸다. 기회를 보아 비둘기를 생포할 자세다. 그러나 비둘기가 날아오르면 제 아무리 큰 보폭으로 쫓아가도 얼마 못 가 비둘기의 속도를 놓쳐 버린다.

 

꽃이 꽃을 버리는 줄 모르고 꽃 그림자는, 홀로 취해 제 향기를 날린 적이 여러 번 있다.

 

  심언주. 『4월아, 미안하다 』 에서 <관계>

 

 

그림자,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것, 그림자와 내가 똑같은 크기인 순간이 존재할까요? 나보다 작거나 혹은 나보다 크거나 그러한 순간들. 내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그러나 내 것인 그림자. 그녀의 책을 읽는 동안 김애란이 떠오릅니다. 김애란보다 조금 더 덤덤하고 김애란이 조금 더 씩씩하고 김애란만큼 위트 있고 김애란만큼 문장력이 좋은 작가입니다. 삶의 터전의 몰락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노을이 지기 전 그림자가 가장 길어지는 늦은 오후의 나른함만큼 부들거리며 그러나 또박또박 흔들림없이 쓰여져 있습니다. 가슴이 터질 듯 위태롭거나 화려하진 않아도 쌀밥 한 공기처럼 은교와 무재의 사랑이 소박하게 담겨 있습니다. 두고 두고 읽고 싶은 소설을 만났습니다.

 

 

 

p. 141

 

마뜨료슈까는요, 라고 무재 씨가 강판에 무를 갈며 말했다.

속에 본래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알맹이랄 게 없어요.

마뜨료슈까 속에 마뜨료슈까가 있고 마뜨료슈까 속에 다시 마뜨료슈까가 있잖아요.

마뜨료슈까 속에 언제까지나 마뜨료슈까, 실로 반복되고 있을 뿐이지 결국엔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있던 것이 부서져서 없어진 것이 아니고, 본래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뿐이죠.

무재 씨, 그건 공허한 이야기네요.

그처럼 공허하기 때문에 나는 저것이 사람 사는 것하고 어딘가 닮았다고 늘 생각해 왔어요.

 

 

 

 

 

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프지 않은 마음이 어디 있으랴 - 비우고 숨쉬고 행복하라
바지라메디 지음, 일묵 감수 / 프런티어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아프지 않은 마음이 어디있으랴

바지라메디 │프런티어 │2012.01.10 │p.204

 

 

책을 읽지 않고도 이런 제목이라면 이미 적잖은 위안을, 그리고 어려웠던 마음에 당위를 충분히 얻을 수 있습니다. 사실은 알고 있어요. 책장을 넘기지 않아도 아픈 마음을 어떻게 어룰지 짐작을 하지요. 그럼에도 나는 무던히 반복되는 이러한 덤덤한 위로를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아마도 그런 듯 합니다. '알다'와 '깨닫다'의 차이, 아는 것은 머리의 깨닫는 것은 마음의 몫이지요. 알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 순간으로의 열망 그것이 나를 움직이게 합니다.

 

이야기는 총 3부로 나뉘어 짤막한 예화를 보태어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하며 천천히 마음을 어루만지려 합니다. 하지만 잔뜩 웅크리고 있는 나에게는 여전히 텍스트 그것일뿐입니다. '삶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비록 고통일지라도) 현재의 삶에 충실히 행복하여라,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채워진다 그렇게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 라고 말합니다. 언제나 내가 수 없이 나를 향해 다짐하는 이야기들입니다.

 

 

p. 41

"몬, 나에게 마법의 힘은 없습니다. 털어놓는 법을 알자, 그대의 고통이 저절로 완화된 것입니다. 기분이 나아진 이유는 조금이나마 고통을 털어놓았기 때문입니다. "

 

p. 43

'삽베 담마 날람 압비니베사야 sabbe dhamma nalam abhinivesaya.'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p. 100

그 본질은 상반되지만 비움과 채움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고 채우려면 비우지 않을 수 없다. 유리잔에 물을 다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도로를 달릴 수 있는 것은 도로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움은 채움에 대단히 유익한 것이다. 채움은 자신을 멋지게 부각시키며 비움의 가치를 드높여 주게 된다.

 

p. 125

● 고양이 가죽 가방│고양이 가죽으로 만든 가방은 깨끗하고 부드럽고 때려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누군가 당신을 자극할 때는 고양이 가죽 가방처럼 마을을 깨끗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 불쾌한 말들이 당신을 아무리 때려도 당신은 공명하지 않아야 한다.

 

p. 188

우리가 이별을 삶의 본질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까닭은 그 흐름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소중한 것들과 가장 행복하게, 가장 가치 있게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이별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과 최대한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직은 '깨닫다'에 가까이 닿지 못해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수없이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마음이 편했던 탓이겠지요? (미소) 그리고 고양이 가죽 가방 - 이 정말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고양이를 사랑하는데 고양이 가죽으로 가방을 만들어요? 아.... 마음이 쿡 쑤시네요. - 처럼 살고 싶다고 문득 생각합니다.

 

 

 

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꽃 - 개정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검은 꽃

김영하 │ 문학동네 │ 2010.02.16 │p.368

 

 

검은 꽃, 아주 작은 욕심에라도 바스라질 듯 위태로운 이름입니다. 김영하 작가님은 <퀴즈쇼>, <랄랄라하우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이후 4번째인데 그의 명성에 비하면 내겐 특별한 기억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내 기억이 흐릿해지는 그 시간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닿아 그를 만났기 때문이겠지요 아마도. 그래도 모두 '재밌었다.'라는 조금은 빛바란 한뭉치의 기억으로 묶여 있습니다. 그렇게 기억에 기대어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깁니다. 자그마치 1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나는 연수를 만났습니다. 책장은 멈춤이 없이 넘어가는데 마음은 자꾸 무게를 더해 바닥을 끝을 모르는 바닥을 칩니다.

 

1905년 4월 4일 1,033명의 조선인이 일포드호를 타고 멕시코를 향합니다. 개항이후 몰아 닥친 격변기 속에 그 자리를 잃고 거죽만 남은 양반, 부푼 꿈을 안은 농민과 군인들 그들의 희망은 곧 터질 풍선처럼 한껏 부풀어 올랐습니다. p.96 저기, 나는 안 돌아가려네.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다. 배에 올라탄 이래로 그같은 말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그까짓 나라, 해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돌아가겠는가. 어려서는 굶기고 철드니 때리고 살 만하니 내치지 않았나. 위로는 되놈에, 로스케 등쌀에, 아래로는 왜놈들 군홧발에 이리 맞고 저리 굽신, 제 나라 백성들한텐 동지섣달 찬서리마냥 모질고 남의 나라 군대엔 오뉴월 개처럼 비실비실, 벨도 없고 줏대도 없는 그놈의 나라엔, 나는 결코 안 돌아가려네. 주리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여기에서 버텨보려네. 땅도 사고, 그는 침인지 눈물인지를 꿀꺽 목구멍으로 넘기곤 말을 이었다. 물론 장가도 가야지. 새끼도 낳고. 멕시코에 도착한 조선인들은 에네켄 농장의 여기저기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들의 풍선은 하루도 되지 않아 차마 펑, 소리도 내지 못하고 피식피식 바람이 빠져버립니다. 약속한 4년의 시간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내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절망 그 앞에 어떠한 방패도 쥐지 못하고 맨몸으로 던져졌습니다. 에네켄의 가시가 손에 박히는 통증보다 가혹한 그 곳에서의 삶은 몰락한 조선보다 한치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나는 유난히 연수에게 시선이 머물지요. 여자도 남자처럼 배우고 일하고 제 의견을 펼치는 곳, 연수가 바란 땅입니다.

 

마뜩치 않은 연수의 삶, 나였더라면 조금 다른 선택을 했을까 조심스럽게 내게 묻습니다. 아니요. 나였더라도 다름이 없었겠지요. 연수의 선택은, 연수의 삶은, 그들의 불행은 누구의 잘못입니까. 그저 혼란스러웠던 시대, 가난하고 힘 없는 나라의 백성이었던 필연적인 운명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을까요. 지난 주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논하며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정이 연수를 찾아 왔을 때 박정훈이 연수에게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은 박정훈의 그릇된 이기심이었다고 말입니다. 연수가 이정이 자신을 찾아 왔음을 알았더라면 그녀의 삶이 그리고 이 이야기의 결말이 바뀌었을까요? 아마 수 없이 고민했겠지만 혼란스러웠을테지만 연수는 박정훈의 곁을 지키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정의 삶에 발을 들여 놓기엔 그녀는 이미 너무 거칠은 삶의 먼지를 온 몸으로 뒤덮고 지친 삶에 이제서야 겨우 야트막한 숨을 돌린 탓이지요. 아무도 그녀를 탓하지는 못합니다. 죄가 없는 자만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것처럼.

 

소설을 덮으며 아, 김영하 합니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됩니다. 쉼도 없이 더딤도 없이 그 척박한 구렁에서도 꽃을 피워냅니다. 그 꽃의 빛깔이 흑빛일까요.

 

그의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알맞습니다. 탄탄하게 준비된 스토리가 문체에 힘을 싣습니다. 눈 앞에 선명한 하나하나의 캐릭터 또한 철저한 계산 속에서 생동을 얻어 역동합니다. Podcast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에서 작가는 자신의 책을 읽으며 ' 사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중요한 소설은 아닙니다. 인물들이 모자이크를 이루며 하나의 직소퍼즐처럼  이야기를 구성하게 되는데요.'라고 덧붙었습니다. 나는 그 모자이크를 너무 가까이서 바라 본 까닭에 하나하나의 퍼즐이 어떤 그림을 이루는지 온전히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나의 내공이 아직은 부족한 탓이겠지만) 모든 캐릭터에 힘을 실어주다보니 다소 장황해져 마음 둘 곳을 자주 잃기도 했습니다. 또한 독자에게 어떠한 여지도 허락치 않는 깔끔한 에필로그가 조금 아쉽기도 하구요. 하지만 나는 김영하를 이제야 제대로 만난 기분입니다. 그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습니다.

 

 

 

p. 298

그건 몰랐군요. 그렇지만 나는 일본인이 되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이정의 말에 요시다가 웃었다.

언제부터 개인이 나라를 선택했지? 미안하지만 국가가 우리를 선택하는 거야.

요시다는 이정의 어깨를 툭 치고는 대통령궁으로 걸어들어갔다.

 

 

 

 

 

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