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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 개정판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검은 꽃
김영하 │ 문학동네 │ 2010.02.16 │p.368
검은 꽃, 아주 작은 욕심에라도 바스라질 듯 위태로운 이름입니다. 김영하 작가님은 <퀴즈쇼>, <랄랄라하우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이후 4번째인데 그의 명성에 비하면 내겐 특별한 기억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내 기억이 흐릿해지는 그 시간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닿아 그를 만났기 때문이겠지요 아마도. 그래도 모두 '재밌었다.'라는 조금은 빛바란 한뭉치의 기억으로 묶여 있습니다. 그렇게 기억에 기대어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깁니다. 자그마치 1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나는 연수를 만났습니다. 책장은 멈춤이 없이 넘어가는데 마음은 자꾸 무게를 더해 바닥을 끝을 모르는 바닥을 칩니다.
1905년 4월 4일 1,033명의 조선인이 일포드호를 타고 멕시코를 향합니다. 개항이후 몰아 닥친 격변기 속에 그 자리를 잃고 거죽만 남은 양반, 부푼 꿈을 안은 농민과 군인들 그들의 희망은 곧 터질 풍선처럼 한껏 부풀어 올랐습니다. p.96 저기, 나는 안 돌아가려네.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다. 배에 올라탄 이래로 그같은 말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그까짓 나라, 해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돌아가겠는가. 어려서는 굶기고 철드니 때리고 살 만하니 내치지 않았나. 위로는 되놈에, 로스케 등쌀에, 아래로는 왜놈들 군홧발에 이리 맞고 저리 굽신, 제 나라 백성들한텐 동지섣달 찬서리마냥 모질고 남의 나라 군대엔 오뉴월 개처럼 비실비실, 벨도 없고 줏대도 없는 그놈의 나라엔, 나는 결코 안 돌아가려네. 주리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여기에서 버텨보려네. 땅도 사고, 그는 침인지 눈물인지를 꿀꺽 목구멍으로 넘기곤 말을 이었다. 물론 장가도 가야지. 새끼도 낳고. 멕시코에 도착한 조선인들은 에네켄 농장의 여기저기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들의 풍선은 하루도 되지 않아 차마 펑, 소리도 내지 못하고 피식피식 바람이 빠져버립니다. 약속한 4년의 시간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내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절망 그 앞에 어떠한 방패도 쥐지 못하고 맨몸으로 던져졌습니다. 에네켄의 가시가 손에 박히는 통증보다 가혹한 그 곳에서의 삶은 몰락한 조선보다 한치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나는 유난히 연수에게 시선이 머물지요. 여자도 남자처럼 배우고 일하고 제 의견을 펼치는 곳, 연수가 바란 땅입니다.
마뜩치 않은 연수의 삶, 나였더라면 조금 다른 선택을 했을까 조심스럽게 내게 묻습니다. 아니요. 나였더라도 다름이 없었겠지요. 연수의 선택은, 연수의 삶은, 그들의 불행은 누구의 잘못입니까. 그저 혼란스러웠던 시대, 가난하고 힘 없는 나라의 백성이었던 필연적인 운명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을까요. 지난 주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논하며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정이 연수를 찾아 왔을 때 박정훈이 연수에게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은 박정훈의 그릇된 이기심이었다고 말입니다. 연수가 이정이 자신을 찾아 왔음을 알았더라면 그녀의 삶이 그리고 이 이야기의 결말이 바뀌었을까요? 아마 수 없이 고민했겠지만 혼란스러웠을테지만 연수는 박정훈의 곁을 지키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정의 삶에 발을 들여 놓기엔 그녀는 이미 너무 거칠은 삶의 먼지를 온 몸으로 뒤덮고 지친 삶에 이제서야 겨우 야트막한 숨을 돌린 탓이지요. 아무도 그녀를 탓하지는 못합니다. 죄가 없는 자만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것처럼.
소설을 덮으며 아, 김영하 합니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됩니다. 쉼도 없이 더딤도 없이 그 척박한 구렁에서도 꽃을 피워냅니다. 그 꽃의 빛깔이 흑빛일까요.
그의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알맞습니다. 탄탄하게 준비된 스토리가 문체에 힘을 싣습니다. 눈 앞에 선명한 하나하나의 캐릭터 또한 철저한 계산 속에서 생동을 얻어 역동합니다. Podcast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에서 작가는 자신의 책을 읽으며 ' 사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중요한 소설은 아닙니다. 인물들이 모자이크를 이루며 하나의 직소퍼즐처럼 이야기를 구성하게 되는데요.'라고 덧붙었습니다. 나는 그 모자이크를 너무 가까이서 바라 본 까닭에 하나하나의 퍼즐이 어떤 그림을 이루는지 온전히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나의 내공이 아직은 부족한 탓이겠지만) 모든 캐릭터에 힘을 실어주다보니 다소 장황해져 마음 둘 곳을 자주 잃기도 했습니다. 또한 독자에게 어떠한 여지도 허락치 않는 깔끔한 에필로그가 조금 아쉽기도 하구요. 하지만 나는 김영하를 이제야 제대로 만난 기분입니다. 그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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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98
그건 몰랐군요. 그렇지만 나는 일본인이 되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이정의 말에 요시다가 웃었다.
언제부터 개인이 나라를 선택했지? 미안하지만 국가가 우리를 선택하는 거야.
요시다는 이정의 어깨를 툭 치고는 대통령궁으로 걸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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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읽기를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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