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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기행문 - 세상 끝에서 마주친 아주 사적인 기억들
유성용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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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방기행문│유성용│책읽는수요일│2011.06.20 

 

p. 91 한마디로 다방은 배울 게 별로 없는 곳이다. 물론 커피도 맛없고. 하지만 그곳은 어쩌면 사라져가는 걸들과 버려진 것들의 풍경을 따라가는 이정표처럼 여겨졌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가고 있었다.

방? 의아함 한편으로 반가움이 넘실하게 차오르는 단어예요. 물론 나야 다방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야 없지마는 아직도 우리 시골 마을에 가면 다방이 제법 제 몫을 해서 내게도 김양 언니가 낯설지 않고 괜스레 반갑습니다. 하지만 생활여행자, 라는 맛깔나는 닉네임을 가진 그가 사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마냥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도대체 어떤 복을 차고 나오면 이렇게 여행을 삶, 으로 삼을 수 있을까 하는 뭉둥그레한 시기(猜忌)가 놀부 심보마냥 붙어 '네 이야기 좀 들어볼까?' 하는 뿔따구 난 비루한 맘도 있었지요. 그렇게 따라간 그의 걸음은 풍류(風流)가 번지지도 혹은 반짝반짝 빛을 낼듯 내지도 못하고 오히려 한 여름 살이 쩍쩍 붙어 버리는 낡은 인조 가죽 쇼파의 찐뜩함, 그러함이였어요. 작가는 말했어요.

"텅 비어 버렸다. 그래서 꽤 오래 나는 저절로 살아져버렸다. 누구는 나를 보고 속세의 어여쁜 액세서리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소외된 인간이다. ‘여행생활자’란 말을 만들어낸 나는 여행을 많이 하고 다녔고 이리저리 베이고 굴러다녔다. 그러다 어느 읍내의 쓸쓸한 밤거리에서 ‘달방환영’이라는 네 글자가 반짝이는 간판들을 보았다. 월세 손님도 환영한다는 글자들이었겠지만 나는 마치 달 위에 놓인 방의 환영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돈이 없어 가끔씩만 그런 여관방에서 잘 수 있었다. 대신 나는 땅콩만 한 스쿠터를 타고 바람처럼 전국의 다방을 싸돌아다녔다. 아니 어쩌면 바람이 아니고 바람에 쓸려 다니는 검은 비닐봉지 같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얼굴에는 늘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다녔다. 그러다 아무 다방에나 들러 세수를 하고는 ‘나는 세상에서 꽤 가치 있는 인간이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그대들과 마주 앉아 심심하게 커피를 마셨다. 간혹 정답기도 했다. 뒤돌아보면 사라지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약간 의심스러운 모양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 각도 만큼의 비뚜루한 시선으로 조금은 엉성그럽게 그러나 그러함이 더욱 애정이 깊어 그의 여정을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따라갑니다. 아마 나도 이번엔 제법 단단한 각오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였는데 (준비를 해 둔 것이 다행이지요) 다방, 은 그저 빛 좋은 구실에 불구하였고 그가 그들과 심심(深深:작가의 뜻은 이것이 아니였달지라도)하게 마신 커피처럼 제법 심심(甚深)한 이야기들이 가끔은 농담처럼 툭 불거져나오는 그 구절구절 한참을 만져봅니다. p.242 어쩌면 희망이란 건 하얀 소금 사러 소금 가게 갔다가 검은 연탄 사오는 격, 

사실은 적잖이 실망도 했습니다. 어쩌면 다방커피처럼 달착지근한 여행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책을 덮으며 떠오르는 장면은 2년 4개월, 계절이 8번은 족히 바뀌었을 그 시간임에도 불구하구 삼천포의 봄바다도 거제의 반짝이는 여름 바닷길도 아닌 암태도의 겨울 날선 바람을 가르며 차가히 달리는 스쿠터의 꽁꽁 얼은 얼굴이였어요. p. 252 길은 자주 비포장이고 귓가로 매서운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바람을 가르다 내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추우면 내 주머니에 손 넣어요." 그가 대답했다. "안 추워요." 장갑도 없으면서 안 춥긴……. 바람은 이미 칼바람이다. 속도를 조금 높이니 주머니에 손을 쏙 넣는다. 지금은 푹푹 찌는 더위로 열대야가 지속되는 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구, 뜨근한 아랫목에 차갑게 갈라진 언 손을 녹여 주고 싶은 마음이였어요. 그렇게 나의 주머니에 당신의 언 손을 녹이는 것이, 그것이 우리네 삶일까 하여 실망했던 마음이 조금 미안하여 얼른 감추어 버립니다.

 

(출처: 맹물다방http://maengmul.com/?page=19 4년전, 다방 기행 당시 찍은 부산 근처 바닷가)

p.208 진정으로 사귄다는 것은 혼자 느낄 고독감을 둘이서 하는 일. 세상에서 혼자 외롭다가 둘이서 외로운 일. 더욱이 꼭 안고 있는 정인의 품 너머 가인이 저리 곱게 웃고 있는 걸 어찌한단 말인가. 진정으로 사귄다는 것이 무엇일까. 모르긴 몰라도 그것은 다만 '마음으로 열심히'라는 말과는 다른 무엇일 것이다. 그는 혼자일 것이라고 제법 확고한 믿음(?)이 굳어 선 그쯤, 한 톨의 친절함도 내어주지 않고 그는 불쑥 아들 이야기를 꺼내어 놓습니다. 그것도 큰 아들이랍니다. 그럼 둘째 아이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한 가정의 가장이 그것도 아이가 둘씩이나 딸란 대한민국의 가장이 스쿠터에 올라 해를 바꿔가며 다방을 들낙거린다니 사실은 적잖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서투른 짐작으로도 그의 가족들이 그를 이해하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과 마음을 탕진하였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중에 써도 써도 남는 것이 마음이니 그쯤이야 좀 헤프게 써버린 듯 좀 어떨까 해봅니다.) 그리고 그 안의 그는 누구보다 더 외로웠을 그의 마음을 어설피 헤아리며 누구보다도 사귐에 굶주려 그는 그렇게 다방을 떠돌진 않았을까, 아마도 그는 여행의 특별함이 아니라 삶의, 퇴색되고 잊혀가는 오래 묵혀 수북히 먼지가 내려 앉은 어릴 적 일기장 같은 삶을 써내려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억측해 봅니다.p.95 아무래도 인간은 '나'로 태어나서 평생토록 '나' 아닌 다른 것이기를 꿈꾸지만 끝내 '나'로 죽는 우스꽝스러운 존재다.

신산하던 여름의 가운데 날들에 일주일도 넘게 이 책을 붙들고 있었더랬습니다. 아무리 서둘러도 속도를 붙이지 못하는 묵직한 이야기들이 손을 댈수록 엉켜 버리는 실타래만 같았습니다. 가족 휴가로 찾았던 한적한 바닷가 그늘막 아래 다방커피 맛과 제일 비슷할 법한 캔커피까지 준비해 자리를 잡았는데 조금 더 가벼운 이야기였다면 좋았을 걸, 약간의 아쉬움도 토해 봅니다. 그래도 언제나 타인의 삶을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들어다보는 일은 제법 즐겁습니다.

 

p.267

뭘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글쎄, 모르긴 몰라도 나를 계속 극복해나가야 하는 거 아니겠냐.

그럼 이상하네. 나중에는 나 아닌 누군가가 되려고 인생을 사는 거란 말이야?

이상하긴. 나로 태어나서 나 아닌 무언가가 되어 인생을 마치면 성공이지.

내가 끝나는 것이 온전한 죽음이야.

죽을 때도 여전히 나라면 아마 한 번 더 태어나서 또다시 살아야할걸?

하지만 빠뜨려선 안되는 중요한 게 하나 있지.

'사는 동안 끊임없이 나로 살아야만 나를 벗어날 수 있다는 거.'
 

 

녀, 어른이되다.

copyright ⓒ 2011 by. Yuju

 

그리고 그날의 바다 (무보정 in 학암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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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매미소리마저 뜨거운 8월, 지치도록 비 내린 7월, 이 더위와 비에 누구도 마음이 다치지 않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봅니다. "비극이라고 하면 비극이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그게 우리의 인생이었어" #나카무라 코우. <여름휴가> 여름휴가, 에 어울릴 7월의 신간들을 기대합니다. 

 

 

시간의 목소리 

원제 Bocas del Tiempo   

에두아르도 갈레아노│후마니타스│ 2011.07.25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이자 탁월한 이야기꾼,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에세이. 총 333편의 글로 이루어진 <시간의 목소리>는 간결한 언어와 짧은 글들로 유쾌한 웃음과 삶에 대한 교훈 그리고 현대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다.

책을 내고 난 뒤에도, 판은 물론 쇄를 거듭할 때마다 내용을 끊임없이 손보는 것으로 유명한(또는 악명이 높은) 갈레아노가 7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원래 6백 개 남짓 되었던 글을 333개로 추려 출간한 책이다. 글들은 하나같이 불필요한 언어의 옷을 벗겨 내는 과정을 거쳤기에, 아무렇게나 책장을 넘겨 펼쳐진 곳부터 읽을지라도 금세 빠져들 수 있을 만큼 재밌고 독립적이다.

그의 전작을 접한 독자들은, 갈레아노가 라틴아메리카 수탈의 역사를 그려내거나 현대사회의 다양한 병폐를 날카롭게 비판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책은 그런 익숙함에 더해 새로운 갈레아노를 보여 준다. 그것은 세상사와 인간사를 깊은 통찰로 응시할 줄 아는 작가로서의 면모이다.

그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인생을 이야기한다. 유년 시절, 우정, 존엄성, 사랑, 고통 같은 존재론적 테마를 위한 공간도 존재하며, 새나 나무, 물, 아메리카의 신화 등도 이 책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333편의 '시간의 목소리'로 세상과 인생을 직조한다.  

나의 책읽기가 얼마나 편협했는지, 시간 도서들을 뒤적이며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끊임없는 그의 손길로 다듬어진 그의 글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요?  휴가지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허나 가벼워 날리지 않도록 함께 하고 싶은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 

당신이 잊고 지낸 소중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   

김원│링거스그룹│2011.07.25 

창간 15주년을 맞이한 월간 「PAPER」의 발행인이자 Art director인 김원, 그의 첫 번째 작품집이다. 매달 PAPER를 통해 써왔던 '이달에 쓰는 편지'들을 엮은 글과 연필로 그린 듯한 선들이 간결한 느낌을 주는 그림, 익숙한 풍경에서 반짝거리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까지 김원의 모든 매력을 만나볼 수 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시원한 맥주잔을 들어 올리는 순간, 멀리서 친구가 보내온 연필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읽는 순간,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와락 껴안는 순간. 당신만이 알고 있는 그 소중한 이야기들, 당신이 좋아하는 그 풍경들, 당신 마음속에 잔잔히 남아 있다가 한순간에 떠올라 미소 짓게 만드는 추억들…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

김원은 특유의 발랄하면서도 재치가 묻어나는 질문들을 던지면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잊고 지낸 소중한 것들은 무엇인지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다시 김원 자신에게로 향한다. 김원의 작은 이야기들은 지치고 짜증나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상에서 하나의 따뜻한 '위로'로 귀결된다. 

고등학교 시절 즐거보았던 PAPER의 발행인이란다. 거기서부터 진득한 믿음은 틀을 갖추고, 그가 담아 낸 일상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특별하지 않아도 특별한 것들의 이야기가. 

 

 

 

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달│2011.07.20 

은희경, 등단 이후 첫 산문집. 은희경 작가가 소설을 연재하면서 틈틈이 썼던 글들을 모았다. 한 작가의 창작 노트이기도 한 이 책은 그렇다고 글쓰기의 이론을 담은 것이 아니라, 일상의 흐름들을 연결해 재미있고 유쾌한 읽을거리를 담았다. 열어놓은 집필실 창문을 통해 작가의 사생활 주변을 기웃거리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은희경 작가의 꾸밈없는 모습 그대로와 악수할 수 있다.

500쪽에 육박하는 장편소설을 완성해야 하는 긴 호흡의 집필 기간 동안, 작가가 어떤 생각을 했고 또 어떤 사소한 일들이 일어났었는지를 거꾸로 만날 수 있다. 소설을 집필하던 일산.서울 작업실과 원주, 그리고 잠시 머물다 온 독일과 시애틀에서의 생생한 이야기들 속에 조금의 보탬이나 과장 없이 사소한 일상의 모습을 오롯이 담았다.

근시교정 렌즈를 끼면서 우리네 내면의 마이너리티를 발견하기도 하고, 킬힐을 신고 스탠딩 공연을 보러갔던 아찔하면서도 짜릿한 경험과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했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한다. 또, 동생 책상 서랍을 우연히 열었다가 그곳에서 발견한 엽서 한 장이 소설의 첫 단추가 된 이야기, 글이 잘 써지지 않던 날에 사케집에 앉아 밤새 내리던 눈을 바라보던 일 등 소설을 쓰는 기간 동안 그녀가 만났던 크고 작은 풍경과 관계들을 하나씩 펼쳐놓는다. 

'은희경'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알라딘 저자 소개의 그녀가 참 예쁘다. "글을 쓰기 위해 자주 낯선 곳에 가고, 도착하면 맨 먼저 커피집과 산책로를 알아본다. 나무와 나무 이름에 관심이 많지만 집에 화분은 두지 않는다. 3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영화를 보고 3일이 있으면 여행계획을 짠다. 유럽 도시의 카페와 로키산맥 캠핑장 모두 좋아한다. 개콘과 소지섭과 못 밴드와 키비를 좋아하고, 예쁜 사람들을 편애한다. 무신경하고 무례한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평소에 쇼핑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급히 물건을 비싸게 산다. 정교하거나 독창적인 물건을 좋아하며 마음에 안 드는 건 갖지 않기 때문에 가진 게 별로 없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 마시며 여행계획 짤 때가 가장 즐겁다. 마음에 드는 소설을 썼을 때는 빼고. " 이미 지인들에게서 별점을 가득 받아, 기필코 리스트에 올려 둔 은희경님의 첫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 꼭, 함께하고 싶은. 

 

 

 

천국의 국경을 넘다 

이학준│청년정신│2011.07.25 

모나코 몬테카를로 TV페스티벌 최우수상, 영국 로리펙어워드 최우수상, 폴란드 카메라 웁스크라 그랑프리 등 국내외 16개 언론상을 수상하고, 국내 최초로 미국 에미상 후보작에 오른 휴먼 다큐멘터리 논픽션이다.

탈북자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으며 밀림을 헤매고, 작은 배로 폭풍이 몰려오는 바다를 항해하고, 공안과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하고, 외국대사관으로 쳐들어가며 몸으로 굴러 쓴 생생한 이야기들이 로드무비처럼 펼쳐진다. 서스펜스 소설과도 같은 긴장감과 휴먼 드라마와도 같은 감동 그리고 애끓는 사랑과 이별이 박진감 넘치는 필치로 펼쳐지는 한편의 대서사시다.

조선일보 크로스미디어팀은 2007년 3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을 지키며 강물을 넘나드는 북한 동포들의 삶을 생생하게 기록하였고, 신문과 방송을 통해 공개되면서 뜨거운 반응을 얻어냈었다. 신문기자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조선일보 이학준 기자가 현장을 뛰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한 권의 책에 기행문 형식으로 서술했다.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뜨겁고 진실된 삶을 마주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비극이라고 하면 비극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그 이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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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마음 - 루시드 폴 詩歌
루시드 폴 지음 / 안테나북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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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음악을 처음 들었던 것이 언제였더라. 음악으로 먼저 만난 그였기에 그리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마주한 그는 내겐 다소 충격적이고 신선했다. 그리고 더 좋아졌다. 그의 음악은 한결같이 잔잔함이 다소 지루하고 졸음을 만드나 내겐 그러함이 좋았다. 특히나 비오는 날의 버스나 커피숍 창가에 앉았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비를 마주한다면 그 순간 배경음악으로 흘러준다면 드라마의 한 장면 같지 않을까. 그런 그의 노랫말들을 활자로 엮여 낸 책. 그의 노래가 낯설더라도 그냥 시를 읽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특히나 얼기설기 엉성히 엮인 밤이면 그 틈을 빼곡히 메워 줄. 

그는 유능한 공학도다. 서울대 화공과를 나와 스웨덴 왕립공대 재료과학 석사를 스위스에서 박사를 마쳤다. 2008년에는 일산화질소 전달체용 미셀 의료용 물질 미국 특허 출원을 낸, 소위 엄친아다. 거기에 타고 난 감성에 유머감각까지. 그리도 많이 그의 음악을 들었지만 활자로 마주한 음악은 사실 낯설기도 했다. 심지어 그 노래의 노랫말이 이랬던가, 하고 갸웃거린다. 아이폰에 담긴 음악들을 재생하며 멜로디에 담긴 활자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다.

너는 내 마음속에 남아

 

가을처럼 슬픈 겨울이 오면 그때는 내가 널 잊을 수 있을까.

지금보다 더한 외로움들이 그때는 나에게만 와주었으면.

 

아직도 작은 나의 창틈에 쌓인 했살 너에게만 안겨주고 싶어.

이러다 나도 지쳐 쓰러지면 널 잊을까.

그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모두 나의 이야기가 되어서 긴 호흡을 몇번이나 내뱉고서야 겨우 숨을 고른다. '음유시인' 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것이구나. ♪ 나의 하류를 지나 나는 이미 찾는 이 없고 겨울 오면 태공들도 떠나 해의 고향은 서쪽 바다 너는 나의 하류를 지나네. 언제 우리 만날 수 있을까. 어스름 가득한 밤소리, '모든 게 우릴 헤어지게 했어.' 모든 게 우릴 헤어지게 해. 모든 게 우릴 헤어지게 해. 종이배처럼 흔들리며 노랗게 곪아 흐르는 시간. ♪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네 왜 사랑은 이렇게 두려운지 그런데 왜 하늘은 맑고 높은지 왜 하루도 그댈 잊을 수 없는 건지 그 누구도 내게 일어주지 않았네. 그 누구도 내게 일러주지 않았네. 이대로 괜찮을까? 하늘에 구멍난 듯 쏟아지는 비에 우산 따위로는 피할 수도 없는 요즘의 비처럼, 그렇게 황망그레 놓여진 나의 마음을 천천히 욕심내지 않고 조심히도 만진다. 그 손길이 너무나 조심스러워 나는 그만 웃어버리고 만다. 그러한 노래들.

♪ 이젠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생각해보면 언제나 여름, 가을, 겨울, 봄 기억 속에서만 변하지. 변하지 않을 어떤 계절이 온다면 약속할게. 다시 널 찾겠다고. 그의 계절은 여름으로 시작해 봄으로 끝난다. 그래서일까. 그의 노래가 봄을 닮은 이유.

녀, 어른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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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했고 그녀도 했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 - 당신의 열정을 깨우는 가슴 뛰는 이야기
김이율 지음 / 카르페디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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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나는 유난히 자기개발서에 대한 거부감이 커다랬다. 그것은 역경과 고난을 극복한 영화같은 성공스토리에 대한 일종의 자격지심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부끄러워하고 결심해도 수없이 흐트러지기를 반복하는 나라서 시작도 하지 않으며 뻔한 결말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치(不治)의 미지근함에 조금씩 불씨를 지피고 있는 요즘이다. 곧, 서른. 하지만 나는 절대 늦지 않았으니까.

책에는 지금의 우리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놀라운 열정으로 그 상황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루어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팔·다리가 모두 없는 닉 부이치치, 한국전쟁으로 열네살에 가족과 헤어지고 포탄 파편에 맞아 생과 사를 넘나들던 이철호, 냉대와 멸시·이혼으로 얼룩진 김태연, 가장 낮고 비참한 어린시절을 보낸 룰라 대통령 등 그들에게 부여된 삶은 어떠한 삶의 희망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상상하기 조차 버거운 깊은 절망 가운데 놓여 있다. 그리고 그들이 갖은 또 하나의 공통점은 타고난 열정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도 분명 넘어지고, 분노하고, 절망하였다. 절망의 그림자는 그들을 발목을 움켜쥐고 절대 놓지 않으며 따라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가진 힘은 그러한 '위기'가그들의 열정을 불태우는 화력 좋은 땔감이 되었다는 것이다. p.27 "여러분도 일어설 수 있습니다. 왜 나만 힘들고 나만 괴롭고 나만 외로울까 하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저를 보십시오. 다시 일어섰고 지금 여러분 앞에 서 있지 않습니까."

또한 그들의 성공은 분명한 삶의 목표가 있기에 가능했다. 아마도 어린 시절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커다란 종이에 그리던 생활계획표를 기억할 것이다. 빼곡하게 채워진 생활계획표는 일주일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젠 그조차도 추억에 불과하니 내 삶은 과연 어느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것일까. 20대 초반에 세웠던 삶의 목표들이 흐릿하게, 떠오를듯 말듯 간지른다. 나는 욕심이 많아서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좋고 좋은 말로 다재다능하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특출나질 못했다. 이제 조금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삶을 방향으로 걸어가야 할 것 같아 서른이 되기 전에 해야 할 일 (이제 고작 5달인데...또 욕심이...)들을 끄적여 본다.

p.76

인생은 하루하루가 쌓여 완성된다.

그제와 어제가 쌓여 오늘이 되고 오늘을 지나야 내일이 된다.

또 수많은 내일들이 모여 인생이 되는 것이다.

서른이 되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적어보니 어느 사이 잊고 있거나 게을러진 일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1. 일본어 원서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일본어 공부 2. 노래하면서 연주할 수 있도록 기타연습 (첫번째 곡은 '황혼') 3.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안부전화 드리기 4. 가까운 곳이라도 혼자 여행 다녀오기 5. 내시경 받기 6. 요가 꾸준히 다니기 7. 국가자격증 준비하기. 이러한 하루들의 쌓여 내가 되는 것이리라. 여름 더위도 그렇고 많은 일들이 복잡하게 얽혀 짜증만 늘어가는 하루들이었는데, 늘 피곤하고 지쳐 잠은 부족했고 푸념은 더해졌는데 잔뜩 찌뿌린 마음에 조금씩 햇살이 나는 듯한 기분이다. 아침마다 알람시계는 고통의 신호탄이였는데, 새로운 하루의 나를 조금씩 기대해본다. 하지만 절대 무리하지 말아야지. 언제든 내게 맞는 속도로 감이 제일 중요하니까.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p.202

"왕자님, 왕의 기쁨을 조절해 줄 수도 있으면서  

또 절망했을 때는 용기를 줄 수 있는 그런 글귀가 있을까요?"

솔로몬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글귀를 넣으시오.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

 


 

녀, 어른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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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나카무라 코우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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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나서 그 사람 - 그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그녀의 엄마 하지만 그도 엄마, 라고 부르는 장모님이다- 과 함께 살게 되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나카무라 코우의 <여름휴가>는 내가 기대하는 그 이상의 뜨겁고 나른하고 의욕이 넘치지만 사실은 조금 피곤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년 내내 기다리는 나의 '여름휴가' 그만큼의 에네지가 그득하다. 조금은 지루한 듯 흘러가지만 간결한 문체는 오히려 생동감을 말하며 진지함에서 묻어나는 유머는 읽는 내내 즐겁고 호기심 나게 하였다. 어쩌면 나는, 일생일대(一生一大)의 거사(巨事)를 게임의 승부로 결정하려는 그들의 무모함이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삶에 대한 간절한 열의가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삶에서 감정을 조금 배제하고 한발 물러서서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그들의 냉정함이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들은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리라. p.59 비극이라고 하면 비극이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그게 우리의 인생이었어.

소설 <여름휴가>는 청약주택에 입주하는 것이 꿈인 평범한 신혼부부인 마모루와 유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유키의 절친한 친구인 마오코와 그의 남편 요시다 군의 이야기다. '꽈리고추를 먹었을 때 첫번째에 매운 게 걸릴 확률'에 상응하는 경쟁률을 뚫고 마모루와 유키는 청약주택에 입주하게 되었고, 그렇게 일상은 잔잔히 흘러가는 듯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요시다 군이 '열흘 정도 집을 비웁니다. 꼭 돌아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라는 쪽지를 남기고 사라지고, 유키와 마오코, 마모루는 요시다 군을 추격하기 위한 여름휴가를 계획한다. 고요한 수면 아래 내재되어 있던 문제들이 조용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성인이 되어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직은 채 성장을 마치지 못한 어른아이들의 해프닝들을 유쾌하나 진지하게 꼬집는다. 요시다 군의 갑작스런 컴백홈, 으로 그들의 계획은 꼬이고 꼬여 마모루와 요시다의 온천여행이 되어 버린다. 어색한 두 남자의 어리숙한 온천여행은 동성애자로 오해받으며 귀엽기까지 하다. p.192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습니다. 사태는 최악이라고 말해도 좋을지 몰라요. 하지만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가출이라든가 여행 같은 걸로 뭔가가 변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돌아왔으니까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작가는 부모세대의 과잉 사랑의 결과물로 어쩌면 혼자서는 어떠한 것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불안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던걸까? 유치원을 졸업하며 '엄마'라는 단어와도 졸업하는 분위기 때문에 노란색 세면기에 수도 없이 연습했어도 결국은 '엄마'라고 부르는 길을 선택한 유키와 '장모님'이라는 글자를 겁내고 아내를 따라서 장모님을 엄마라고 부르는 마모루. 마모루와 사귄지 2년쯤 되었을 때 프로포즈를 받았다며 어떻게 할 지 고민하는, 결혼할 상대를 엄마의 선택에 맡기는 유키(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였겠지만). 강변을 바라보고 맥주를 마시며 이혼할 때는 동시에 하자는 약속을 하는 마모루와 요시다. 요달랑 쪽지 한 장 남기고 가출하는 요시다는 그 이유 또한 가관이다. 요시다 군이 가출해서 한 일은 위클리 맨션에 잠복에 카메라를 분해한 일 뿐이다. 그런 요시다 군에게 난투게임으로 결투를 신청하는 유키와 마오코. 좀 어이가 없기도 해서 나는 마구 피식피식 웃어버렸다. 어쩌면 삶에 이렇게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삶에 과도하게 진중한 편이라서 이러한 가벼움이 마냥 신기하고 부럽다p.125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인생의 절반은 성공이다.

평온한 듯 지리한 그러나 뜨거운 여름날 금방 녹아내릴 듯한 살얼음판 위처럼 위태로운 일상을 지난다. p. 228 극복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시다 군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공평함을 극복했다. 요시다 군은 집을 나와서 결의하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 뒤에 패배하고, 껍집을 깨고 나온 것이다. 요시다 군은 두번의 난투 끝에 결국 승리를 거뒀다. 마모루도 사실은 유키와 마오코도 원하는 결과였으리라. 요시다 군이 조금 더 삶에 열의를 가지길 바랐으리라. 아마도 그들은 삶은 난투 후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와 있을테지만 그 안에서 한 뼘 더 쑥- 자라있을 것이다. 어떠한 성장소설 못지 않은 성장(成長)에 관한 이야기. p.161 그것은 여름휴가와 마찬가지로, 언젠가 끝나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줄 것 같았던 엄마의 가출 선언. 모르게 깊은 정이 든 마모루는 눈물이 핑, 돌지만 우리보다 개인적인 성향이 짙은 일본의 이야기라서 그럴까. 나의 엄마, 나의 장모님 이전의 그 삶을 존중하기로 한다. p.240 수컷 늑대는 어느 날 갑자기 무리를 나간다. 무리는 거것을 받아들인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전폭적인 신뢰와 애정이 기반이 되어 있지 않으면 그 자연스러움은 자리할 수 없다. 요즘 애청하고 있는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을 보면서 뭉글뭉글 왈칵왈칵 거리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부모는 가장, 아내, 부모라는 이름표가 제법 무거운 거 같아서 괜스레 죄송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숨겨 품어왔던 꿈을 위해 도전하는 머리 희끗한 진짜 청춘을 보면서 부끄럽기도 하였다. 이제 아흔을 바라보시는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꿈을 무엇이였을까. 오늘 저녁에는 꼭 전화를 해서 여쭤봐야지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여름휴가, 라고 하면 해수욕장이나 유명한 관광지을 바랐으나 어느 순간 정말로의 휴(休:쉴 휴, 따뜻하게 할 휴)를 가고 싶어 졌다. 그러한 휴가와 잘 어울리는 소설 <여름휴가>,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나카무라 코우를 만나서 참 반가운 시간이였다.   



 p.204

"승부를 거느냐 마느냐, 인생은 그것밖에 없어." 



녀, 어른이되다.

copyright ⓒ 2011 by. Y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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