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
리처드 J. 라이더 & 데이비드 A. 샤피로 지음, 김정홍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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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절반쯤 왔을때 깨닫게 되는 것들│리처드J.라이더·데이비드A.샤피로│위즈덤하우스│2011.05.15

얼마 전 소매물도에 다녀왔어요. 쓸모없는 생각의 단편들을 일말의 망설임 없이 비우고 오롯이 아름다움에 매혹될만큼 소매물도는 정말 예쁘더군요. 하지만 그 아름다운 광경보다 오래 내 마음을 잡아 둔 것은 소매물도 매점에서 일하시는 30대 초반의 여성분이였어요. 그녀를 보며 여행에 함께 했던 동생과 이 곳에 살고 있을까? 육지에서 출·퇴근을 하는걸까? 여기 살면 좋을까? 라며 추측이 난무한 설왕설래(說往說來)하였지요. 여행으로야 너무 좋지만 이런 곳에서 살면 재미없고 답답해서 말라 죽을거라는 완고한 동생과 그럼 동생의 기준대로 재미가 가득한 서울에 살고 있는 우리는 행복하냐며, 사실은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을 문제로 우리는 결국 침묵 했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으로의 질문은 여행 내내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 붙습니다. 아 - 마음을 비우고자 떠난 여행인데 말이죠.

그렇게 서른을 앞 둔 요즘, 나는 내 삶에 대한 확신이 자욱한 안개밭에 덩그러이 놓인 것처럼 흐릿하고 불안합니다. 아마도 이 때쯤 모두들 비슷하게 이러한 흔들림을 겪어내는지, 나와 같은 우유부단하고 무른 어른들을 위한 지침서가 많이도 눈에 띱니다. 읽는 순간에야 맞아맞아, 아차 싶다가도 돌아서면 그만인걸요. <인생의 절반쯤 왔을때 깨닫게 되는 것들>도 정말 꾸역꾸역 읽어냅니다. 전같으면 그냥 덮어버렸을테지만 내 맘을 흔들어 줄 단 한 줄을 바라며 차곡 차곡 읽어갑니다.

p. 26 성공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산다. 책에서는 끊임없이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행복하기 위한 방법이라구? 귀가 번쩍 뜨어야하는데, 도통 흥이 돋지 않습니다. 프롤로그에서 말해요. '앞으로의 삶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싶은 사람들, 이제껏 고수해 왔던 삶의 양식이 자신을 짓누른다고 느끼는 사람들, 원하는 것은 웬만큼 가졌으면서도 여전히 성취감을 못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구요. 그랬군요. 시기의 적절함이 결여된 책 읽기는, 초등학생을 대학생 강의실에 앉혀 놓고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고 말하는 꼴이군요. 물론, 몇몇의 과(?)성장한 아이들이야 주옥같은 삶의 진리를 얻어가겠지만 평범에도 겨우겨우 턱걸이하는 나로서는 도무지 지루할 뿐입니다.

책표지를 장식한 길 위의 여행가방처럼 저자는 인생을 여행으로 그리고 가방꾸리기로 이야기합니다. (생각보다 더 식상하군요) 얼마 전 2박3일의 여름 휴가 짐도 몇번을 싸고 푸르기를 반복했던 기억에 웃음이 납니다. 사실 저는 짐이 좀 무겁더라도 일단 갖고 가자, 는 편입니다. 그래서 가방은 늘 제일 무거운 편입니다. 비록 한번도 쓰지 않고 돌아오더라도 없어서 아쉬운 편보다 좀 수고로운 편을 택하는 미련함을 쿨, 하게 떨치지 못합니다. 아마, 그 2박 3일의 가방이 고스란히 제 삶인듯 합니다. 아마도? 언젠가는? 이라는 기약도 없는 시간을 위하여 버리지 못하고 늘려만 가는 미련함과 쓸모없는 욕심이라는 짐이 그렇게 나를 짓눌렀겠지요. 알고 있지만 고치지 못하니 이쯤이면 병인듯도 하구요. 30대에 암선고를 받고 시한부 선고를 받는 여자와 그녀를 사랑하게 된 남자가 행복한 삶과 죽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여인의 향기>라는 드라마 덕분인지 요즘 '버킷리스트'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가방을 다시 꾸리기 전에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기로 합니다.

'버킷 리스트 :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 죽음을 앞두고 더 좋은 집에서 살지 못한것을, 더 좋은 차를 타지 못한것을 후회하는 사람은 없을 듯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충분히 누릴 수 있었음에도 간과한 것들, 그러함에 아쉬움이 미련으로 남겠지요. 앞서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 책도 다른 무수한 자기계발서와 마찬가지로 식상함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한권내내 무한반복 버튼이라도 누린 듯 모양만 살짝 바꿔가며 같은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그래도, 진부함이 진리겠지요? 이런 믿음으로 나의 일주일을 보상 받아볼까 합니다.

아 참! 그럼에도 나를 제법 쿡, 찌르던 한 구절을 기억해봅니다. p.119 삶의 리듬을 되돌아보자. 대다수 직장인이 주말에는 그럭저럭 한가하고, 월요일에는 우울하며 수요일까지는 헐떡거리고 금요일이 되어서야 주말이 다가왔음을 신에게 감사해 하는 '쳇바퀴 리듬'에 갇혀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어느새 이 리듬에 길들여지다 못해 아예 내면의 시게가 되어 버렸다. 시간을 다르게 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행복한 계획으로 축복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 삭막한 황무지, 이 무미건조한 쳇바퀴에서 벗어나게 해줄 다른 길이 내 안에 분명이 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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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 시인 김선우가 오로빌에서 보낸 행복 편지
김선우 지음 / 청림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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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김선우│청림출판│2011.06.05

 

고른 숨을 내쉬기까지 한참을 버텨내야 했어요. 책을 집었다 놓기를 수없이 반복합니다. 그렇게 먹먹해진 마음에 익숙할 때 쯤, 겨우 이 책을 읽기 시잡합니다. '어디 아픈 곳이 없어?' 물음을 내게 툭 던져 놓는 것 같아서. 아니 '너 아프잖아. 괜찮은 척 하고 있잖아.'라고 이미 다 알고 있단 듯이 물어와서 그랬을까요. 그리고 이 책을 읽는 3일동안 나는 진짜 아파버렸거든요. 이런 책을 읽으니 아픈거라는 핀잔도 듣구요.

<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는 작가 김선우님이 잘 돌아오기 위해 떠난 오르빌에서의 기록입니다. 오르빌, 은 잘 행복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p.54 내가 쓸모있는 존재라는 자각, 이것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오르빌은 이러한 곳이예요. '새벽의 도시'라는 뜻으로 인도 남부 코르만젤 해안에 위치하는 직경 5킬로미터의 원형도시로 현재 40여 개국에서 온 2,100여 명의 주민이 크고 작은 130여개의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르빌리언이 되고자 하는 준비과정인 뉴커머와 게스트들까지 합치면 2,500여 명 정도가 함께 살고 있는 오르빌은 절반이 인도인, 절반이 외국인입니다. 오르빌에서는 황무지 개간, 유기농업, 보건의료, 교육 등 다양한 주민들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러한 활동은 '자신의 원함'에 기본을 두고 있어요. 저마다 내면을 풍요롭게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생태 공동체예요. - 하지만 오르빌은 완벽한 자급자족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 소수의 소외도 원치 않아 여전히 만장일치제도를 고집하는, 시험을 통과하고 자격과 지위를 얻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일구기 위한 교육을 지향하는 -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완전 무상교육, 무상급식이며 심지어 고등학교 아이들은 학교에서 용돈까지 받는다 - 오르빌은 마치 유토피아가 아닐까, 과연 이러함이 가능할까, 나는 실재(實在)의 공간 아니라 가상의 공간을 마주했던 것은 아닐까 혼돈스러웠어요.

하지만, 오르빌에도 엄연히 문제는 존재합니다. 점점 늘어나는 인구로 인한 주택난부터 시작하여,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는 겪게 되는 경제 문제부터 대학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실적인 문제들부터 열사의 땅이라고도 불리듯이 더울 때는 기온이 50도까지도 올라가는 근본적인 문제들까지 크고 작은 문제들이 산재합니다. 그럼에도 오르빌은 아름답습니다. p. 281 그러니까 오르빌은 처음부터 완전한 이상사회를 표방했다기보다 미완성 존재로서의 인간이 완성을 향해 노력해가는 변화 가능성에 대해 매우 낙관적 자세를 견지하는 셈.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 아이들을 사랑하고 자신의 욕심으로 타인을, 자연을, 그리고 자신을 해치지 않으며, 타인의 잣대에 자신의 행복을 끼워맞추지 않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분명 오르빌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존재하지만 가능성 또한 가득하기에 분명 오르빌은 발전하고 더욱 아름다워질테지요. 

잠깐은 오르빌의 그녀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오르빌의 숲길도, 해먹에 살짝 걸린 바람도 참 좋겠구나 했지만 정말 잠깐입니다. 내 안에 행복을 찾는 일은 내가 어느 장소에 있음이 결코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높은 연봉에 목숨거는 한국, 같은 명품 가방이 다른 나라보다 비싸게 팔리는 한국, 그러한 것들이 사람을 가치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는 한국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오르빌도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주진 못할테니까요. 짧은 시간에 비상한 발전을 이룩한 너무도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지만, 획인적인 가치 잣대에 휘둘리고 그 잣대에 매겨진 행복점수에 굶주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자본주의사회에서 '물질'에 온전히 자유로워지기란 불가능하지만 이제 우리 조금 호흡을 고르며 헐벗은 나를 살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삐그덕 거렸던 제 마음 탓인지, 문장이 매끄럽지 않아 자꾸 호흡이 목에 걸립니다. 제가 받은 책이 이상했던건지, 책장이 자꾸 후두둑 떨어져서 더욱 진도를 내기가 싫증납니다. 그녀의 글에서, 오르빌의 기록에서 나는 너무 쉽게 위안을 얻으려 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앞선 기대를 했나봅니다. 오르빌의 여행객들이 오르빌을 처음 마주하고 경험하는 실망처럼.  p.294 흐르는 삶을 사랑한다. 잘 흐른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잘 산다는 것. 지금 이 순간이 없으면 다음 순간으로 넘어갈 수 없다. 그러니 지금 이순간. 나는 나를 살아라. 내 안의 오르빌에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네봅니다. 시작이 중요한거지요. 그리고 그들의 오르빌,에도 언젠가 꼭 노크를 해보고 싶다고 다이어리 한칸을 채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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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짭조름한 여름날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52
오채 지음 / 비룡소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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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짭조름한 여름날│오채│비룡소│2011.07.05
 

"화학 반응 전후에 있어서 반응물의 모든 질량과 생성물의 모든 질량은 같다."라는 낯익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어디쯤일까, 기억을 더듬어 올라갑니다. 질량보존의 법칙이라. 참 오랜만이라 오히려 반가움마저 쑥스러워요. p.8 "첫 번째 반응식은 용액 상태의 염화나트륨과 질산은을 혼합하면 뿌옇게 변하면서 앙금이 생긴다. 둘이 섞였다고 해서 이것들의 질량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대로 있다는 거지. 이해되냐?" 

이야기는 주인공 초아의 눈을 빌려 흘러 갑니다. 엄마처럼 살기 싫은, 그래서 늘 독립을 꿈꾸는 초아와 허영심으로 똘똘 뭉친 엄마, 배다른 동생 초록는 계모임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전라도 끝자락 서울에서 버스를 세번 갈아타고도 여객선으로는 4시간을 가야 하는 섬, 솔섬으로 피신을 하게 됩니다. 그 곳에는 16년 전 홀로 남겨두고 가출한 - 엄마는 초아를 낳고 처음 찾아가는, 초아는 존재도 몰랐던 - 외할머니가 살고 계십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겨주신 고문서를 찾아 내서 인생 역전을 노리는 엄마의 달콤한 계략이 있습니다. 초아는 그런 엄마가 못마땅하지만 자신의 독립을 위해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문득문득 엄마를 닮은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고장난 보물섬 솔섬에서, 마음이 고장난 이들의 이야기가 유쾌하게 펼쳐 집니다.

유독 비가 많은 끈적 끈적한 이 여름에 만난 <우리들의 짭조름한 여름날>에는 평생을 섬에 갖혀 지네 잡고, 바지락 캐며 외로움에도 무디게 살아가는 외할머니, 그런 엄마가 싫어 열아홉살에 무작정 엄마를 떠났던 양귀녀와, 책임감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외할머니가 평생 어렵게 모은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게 받아내는 인생의 목표는 오로지 '돈'뿐인 엄마를 벗어나고 싶은 박초아, 세 모녀의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득, 나에게도 아니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딸에게 엄마라는 존재로의 존경과 동시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겹쳐지는 끝없는 미움이 치밀히도 얽혀 있음을 느낍니다. 엄마가 조금 더 행복하길 바라는 진심이 심장을 떠나 입술에 담기면 날카로운 가시 돋힌 말들로 태어납니다. 한심한 엄마, 닮기 싫은 엄마, 떠나고 싶은 엄마... p.111 엄마가 시호한테 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찝찝한 건 또 뭔지.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하여.

뜨거운 여름과 잘 어울리는 책을 만났습니다. 오채님은 처음 만나는 작가인데, 활자는 뽐내어 유려하거나 뼈대는 없이 잔뜩 살만 붙여 무겁지 않도록 솔직하여 읽는 마음이 부담스럽지 않아 좋습니다. 좋은 문장은 분명히 이야기에 큰 힘을 보태지만 (오채님의 문장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마 청소년소설이기에 편안하고 친숙하게 다가오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합니다. 저는 특히, 성장소설을 편애하는데 아마도 내가 덜 자란 탓이겠지요. (푸훕) 십대의 찬란히 눈부신 성장통,을 나는 늦게나마 책으로 배우려는 모양입니다. 나는 먹을 줄 모른다며 딸기우유를 밀어내는, 수줍게 천 생리대 보따리를 내미는 외할머니에게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조 속눈썹은 포기하지 않는 아닌 듯 모르는 척 하지만 딸기우유로 화해를 건네는 엄마에게서, 고장난 것이 더 좋다고 말하는 누나가 먹어야 나도 먹겠다며 귀엽게 딸기우유를 내미는 청록이에게서 초아는 가족의 질량을 배웁니다. 어떠한 뜨거운 화학반응에도 어떠한 형태의 변화에도 사라질 수 없는, 그 질량을! 오늘은 생전 먹지도 않던 딸기우유의 그 찐뜩한 달콤함이 문득 그리워집니다. 우리, 딸기우유 한잔 할까요?


 

p.199

"사람이 죽을 힘이 있으믄, 그 힘으로 살믄 되는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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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7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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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야식당7│ABE YARO│미우│2011.07.15

 

골목 어귀의 작은 밥집, 심야 0시부터 아침 7시까지 문을 열고 메뉴는 돼지 국 정식, 맥주, 청주, 소주…. 하지만 재료가 있다면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무엇이든 만들어주는 따뜻한 공간입니다. 다이나믹한 사건도, 스펙터클한 이야기도 없지만 우리네 삶의 어딘가를 꼭 닮아 문득 코 끝이 찡해지기고 하고, 피식피식 웃음도 쏟아 내며 제일은, 등장하는 음식마다 꼴깍꼴깍 군침도 삼키는 일! 그렇게 이야기 속에 빠져 듭니다. <심야식당>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호평을 받았는데 (드라마도 정말 정말 재밌게 보았습니다) 만화는 만화 나름의 매력이 있습니다. 대충 쓱~ 그려 낸 그림 같은데 말이죠. 특히나 어찌나 음식을 맛있게 먹는지. 늦은 시각, 심야식당을 마주하는 일은 정말 위험하고 대범한 행동입니다. (피식)

무언가 찐뜩한 사연을 품고 있을 것 같은 마스터가 만들어 낸 음식에는 우리가 있습니다. 7권에서 제일 탐나는 음식은 '어린이 런치'였어요. 다시 만난 아내에게, 어린 시절 가난 떄문에 늘 먹고 싶었다는 아내에게 선물한 어린이 런치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 나의 마음까지 보듬어 데워 줍니다. 그렇게 마스터의 음식은 단순한 허기보다 먼저 마음을 채워 줍니다. 튀김을 실컷 먹고 '먹튀'한 남자가 1년이 흐르고 아빠가 되아 아들과 마주하자 그 날의 기억이 부끄러워 다시 찾아오게 되는 이야기, 당근을 싫어하던 남자가 사랑을 통해 당근을 극복하는 이야기처럼 사실은 옆 집 아저씨, 동네 언니, 내 친구들의 이야기처럼 낯설지 않음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집 나간 여름 입맛을 'come back home' 시켜 준다는 어제의 카레 - 어제 먹다 남은 차가운 카레를 따뜻한 밥에 얹어 먹는 것 - 는 특별한 방법을 쓰지 않아도 시간의 흐름이 맛을 더해주는 지혜를 이야기합니다. 생각해보니 오랜 시간을 더해 맛을 가꾸는 음식들이 우리에게도 많습니다. 된장, 고추장도 그렇고 김치(신김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도 그렇고, 라면에 말아 먹는 밥은 막 지은 따끈한 밥도다 수분이 적당히 날아간 찬밥이 좋지요. 냉장고에 하루 묵은 차가운 치킨의 맛을 아시나요? (꿀꺽) 아마 우리의 인생도 음식처럼 시간이 제 몫을 하여 더해짐에 맛을 보태어 주는것이 아닐까 합니다. 

당신에게도 기억을 머무르는 음식이 있나요? 

작년, 혹은 제작년이었던가 함께 살던 친구와 <심야식당>을 함께 읽으며 먹었던 빨간 비엔나 소시지, 오므라이스, 고양이맘마, 버터라이스가 기억을 스칩니다. 그렇듯 마스터의 음식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요리가 많습니다. 심지어 인스턴트 음식을 사가지고와서 먹는 단골들도 있지요. 마스터는 싫은 법도 한데 오히려 자신도 그것이 맛있노라고 말합니다. 퍽퍽한 삶에 지친 이들이 버거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마스터는 따끔한 훈계나 날카로운 조언 대신 기억의 음식으로 위로합니다. 음식을 나눈 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근본적인 감정의 소통이 아닐까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야기로 울고 웃으며 머무르는 그 곳, 조금은 밍밍한 듯한 봄날의 반짝이는 강물처럼 조용히 흐르는 그 곳, 옷차림이나 주머니 사정에 맘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혼자라도 어색하지 않게 찾아가 옆자리 누군가와 친구가 될 것 같은 <심야식당> 나도 그렇게 심야식당을 닮아 당신의 마음이 머물 곳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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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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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창비│2011.06.20

 

근두근 내 인생? 파스텔톤 표지에 덮혀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철썩 믿어 버렸어요. 핑크색 팡팡, 날리는 알콩, 달콤한 로맨스이리라고. 그래서 한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켜도 모른 척 하였는데, 생각보다 제법 굳건히 자리를 지켜 내길래 '그래, 좀 가볍게 읽어내자' 하고 집어 들었습니다. 김애란? 낯익은 이름에 기억을 살피니 얼마 전 읽었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대상 수장자였네요. 긴 장마에 모든 것을 잃고 혼자가 되었던 소년의 이야기 <물속 골리앗>. 그녀가 말했죠. p.51 그리고 문학이 할 수 있는 좋은 일 중 하나는 타인의 얼굴에 표정과 온도를 입혀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니 '희망'이란 순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용기 있는 사람들이 발명해내는 것인지도 모르리라. 농밀했던 문장들에 감탄을 거듭하며 읽었던(정말 활자의 힘을 느끼게하는 작가였어요), 절망의 순간에 혼자 남겨진 소년은 먹구름 사이 한줄기의 여린 빛처럼, 그렇게 희망합니다. 그리고 그 위태로움 가운데에서도 슬픔의 바닥으로 꼬꾸라지거나 눈물로 얼룩져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그녀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슬퍼도 울지 않도록.

p.50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

"그리고 마음이 아플 땐 반드시 아이처럼 울어라."

 

<두근두근 내 인생>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아들의 이야기예요. 17살에 부모가 되고 그 아이는 이제 열일곱살이 되었지만 열여덟이 될지, 열아홉이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조로증'에 걸려 10배의 속도로 살고 있는 아이 '아름'이는 머리가 빠지고, 시력을 잃어가며, 심장은 시한폭탄과 같습니다. 너무 일찍 부모가 되어 누리지 못한 부모에게도 희귀병을 앓는 아름에게도 청춘은 한 발 물러서 쉽게 다가오지 않고 그대로 시들어 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청춘(靑春), 그 단어만으로도 두근두근 설레임이 가득찬 그 순간을 아름을 놓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울지 않습니다.

빠르게 자라버린 몸보다 어쩌면 훨씬 빠른 속도로 마음이 먼저 자라 버린 아름은 희귀질병을 앓게 되어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완벽한 존재가 완벽하지 않은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겠냐고 심드렁하게 대답합니다. 그렇게 담담해지기까지, 세상에서 제일 웃긴 아들이 되고 싶다고 말하기까지의 아름은 도대체 얼마큼의 마음을 키워버린 것일까요? p.79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나는 그 찰나의 햇살이 내게서 급히 떠나가지 않도록 다급하게 자판을 두드렸다.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그래서 아름은 글을 씁니다. 부모의 청춘, 그 푸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 p.44 모든 생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터져나오는' 거란 걸 어머니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게 터져 나온 생명, 아름은 바람이 불고 계절이 바뀌듯이 흐름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p.172

"그애들, 앞으로도 그러고 살겠죠? 거절당하고 실망하고, 수치를 느끼고, 그러면서 또 이것저것을 해보고."

"아마 그렇겠지?"

"그 느낌이 정말 궁금했어요. 어, 그러니까……저는……뭔가 실패할 기회조차 없었거든요."

"……"

"실패해보고 싶었어요. 실망하고, 그러고, 나도 그렇게 크게 울어보고 싶었어요."

 

p.208

나는 조금 더 성급해지고 경솔해져도 좋을 것 같았다. 특히 상대가 장씨 할아버지 같은 분이라면 더할나위없이 좋았다. 그게 정답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대답 속엔 누군가의 삶이 배어 있게 마련이고, 단지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당신들의 시간을 조금 나눠갖는 기분이었다.

 

단단하게 여문 김애란의 글은 한 순간의 쉼표도 없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재미있습니다. (아름이에게 조금 미안할 정도로요) 지난하여 으스대지 않고, 엉성하여 놓지치 않도록 살뜰이 살펴 갑니다. 하지만 그 풍요로움에 비하여 나는 비루한 끄적임조차 버겁습니다. 어떤 무용(無用)한 말조차 쉬이 허락치 않습니다. 아마도 작가에게 적잖히 주눅이 들어버린 탓이테지요. p.192 이곳 병원에도 가을이 왔다. 하늘을 양쪽에서 잡아당긴 듯 팽팽해진 공기가 가슴팍을 바쁘게 들락거렸다. 신의 입김이란 게 있다면 딱 이정도 온도이지 않을까 싶을 만큼 차고 맑은 기운이었다. 어쩜 이렇게.(감탄) 아주 잠깐이라도 그녀의 사전을 훔쳐보고 싶은 마음뿐이예요. 어떻게 이렇게 써내릴 수 있을까요? 감탄을 거듭해도 내 모양새는 나아질 줄 모릅니다. (거듭 실망)

지난 주 이사를 하며 책을 꾸리는데 제법 짐이 됩니다. 사실 한 번 읽으며 또 들춰보지 않는 책들이 대부분인데 왜 그렇게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지, 그리고 나는 왜 시간에 쫓기면서도 책을 읽고 그 시간을 쪼개여 볼품도 없는 글자를 끼워 맞추느라 끙끙대며 진땀을 빼고 있는건지 도대체 왜? 라는 먹먹한 물음표가 따라 붙습니다. 서평단 활동도 해보고, 이렇게 북로거로 지원을 받기에 내 글자들은 정말 조잡스럽기까지 하여 부끄럽다는 모양조차 죄송스러울 만큼 똑같은 글을 읽어내도 읽어냄이 다른 이들을 보면서 나는 정말 무얼하고 있나, 내게 끊임없이 묻고 물었습니다. p.260 어른이 되는 시간이란 게 결국 실망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글이란 게 그걸 꼭 안아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보다 '잘' 실망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무엇인지도 모르겠어. 아마도 나는 글을 통해 '잘' 실망하는 법을 배우며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제 갓 서른을 넘긴 그녀는 도대체 어떠한 글들로 그렇게 누군가를 도닥일만큼 어른이 되었을까요) 파릇파릇한 청춘, 누구보다 녹푸른 청춘을 가진 아름이를 통해 나도 한 뼘 자라난 마음입니다. 그리고 곧, 그녀의 다른 이야기들에게 달려갈 것 같습니다. 매력적인 이야기꾼, 김애란을 만나서 참 반가웠노라며.


녀, 어른이되다.

copyright ⓒ 2011 by. Yuju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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