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짭조름한 여름날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52
오채 지음 / 비룡소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들의 짭조름한 여름날│오채│비룡소│2011.07.05
 

"화학 반응 전후에 있어서 반응물의 모든 질량과 생성물의 모든 질량은 같다."라는 낯익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어디쯤일까, 기억을 더듬어 올라갑니다. 질량보존의 법칙이라. 참 오랜만이라 오히려 반가움마저 쑥스러워요. p.8 "첫 번째 반응식은 용액 상태의 염화나트륨과 질산은을 혼합하면 뿌옇게 변하면서 앙금이 생긴다. 둘이 섞였다고 해서 이것들의 질량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대로 있다는 거지. 이해되냐?" 

이야기는 주인공 초아의 눈을 빌려 흘러 갑니다. 엄마처럼 살기 싫은, 그래서 늘 독립을 꿈꾸는 초아와 허영심으로 똘똘 뭉친 엄마, 배다른 동생 초록는 계모임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전라도 끝자락 서울에서 버스를 세번 갈아타고도 여객선으로는 4시간을 가야 하는 섬, 솔섬으로 피신을 하게 됩니다. 그 곳에는 16년 전 홀로 남겨두고 가출한 - 엄마는 초아를 낳고 처음 찾아가는, 초아는 존재도 몰랐던 - 외할머니가 살고 계십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겨주신 고문서를 찾아 내서 인생 역전을 노리는 엄마의 달콤한 계략이 있습니다. 초아는 그런 엄마가 못마땅하지만 자신의 독립을 위해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문득문득 엄마를 닮은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고장난 보물섬 솔섬에서, 마음이 고장난 이들의 이야기가 유쾌하게 펼쳐 집니다.

유독 비가 많은 끈적 끈적한 이 여름에 만난 <우리들의 짭조름한 여름날>에는 평생을 섬에 갖혀 지네 잡고, 바지락 캐며 외로움에도 무디게 살아가는 외할머니, 그런 엄마가 싫어 열아홉살에 무작정 엄마를 떠났던 양귀녀와, 책임감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외할머니가 평생 어렵게 모은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게 받아내는 인생의 목표는 오로지 '돈'뿐인 엄마를 벗어나고 싶은 박초아, 세 모녀의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득, 나에게도 아니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딸에게 엄마라는 존재로의 존경과 동시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겹쳐지는 끝없는 미움이 치밀히도 얽혀 있음을 느낍니다. 엄마가 조금 더 행복하길 바라는 진심이 심장을 떠나 입술에 담기면 날카로운 가시 돋힌 말들로 태어납니다. 한심한 엄마, 닮기 싫은 엄마, 떠나고 싶은 엄마... p.111 엄마가 시호한테 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찝찝한 건 또 뭔지.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하여.

뜨거운 여름과 잘 어울리는 책을 만났습니다. 오채님은 처음 만나는 작가인데, 활자는 뽐내어 유려하거나 뼈대는 없이 잔뜩 살만 붙여 무겁지 않도록 솔직하여 읽는 마음이 부담스럽지 않아 좋습니다. 좋은 문장은 분명히 이야기에 큰 힘을 보태지만 (오채님의 문장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마 청소년소설이기에 편안하고 친숙하게 다가오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합니다. 저는 특히, 성장소설을 편애하는데 아마도 내가 덜 자란 탓이겠지요. (푸훕) 십대의 찬란히 눈부신 성장통,을 나는 늦게나마 책으로 배우려는 모양입니다. 나는 먹을 줄 모른다며 딸기우유를 밀어내는, 수줍게 천 생리대 보따리를 내미는 외할머니에게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조 속눈썹은 포기하지 않는 아닌 듯 모르는 척 하지만 딸기우유로 화해를 건네는 엄마에게서, 고장난 것이 더 좋다고 말하는 누나가 먹어야 나도 먹겠다며 귀엽게 딸기우유를 내미는 청록이에게서 초아는 가족의 질량을 배웁니다. 어떠한 뜨거운 화학반응에도 어떠한 형태의 변화에도 사라질 수 없는, 그 질량을! 오늘은 생전 먹지도 않던 딸기우유의 그 찐뜩한 달콤함이 문득 그리워집니다. 우리, 딸기우유 한잔 할까요?


 

p.199

"사람이 죽을 힘이 있으믄, 그 힘으로 살믄 되는 것이여."

 


녀, 어른이되다.

copyright ⓒ 2011 by. Yuju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