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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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 읽어낼 줄 알았던 얆은 한권의 책은, 더디고 묵직한 시간을 요구했다. 또한 작품마다 실려진 '해설'은 내겐 또 다른 짐이 되어서 그저 온전히 나의 시선을 따라가며 나의 그릇만큼 읽어내던 소설에서 정답지가 뒤에 붙어 있는 문제집을 풀듯 답을 헤매이며 명치 끝 어딘가에 얹어진 우둔해진 책임감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함에 대한 부끄러움까지 보탰다.


김애란│물속 골리앗

"장마는 지속되고 수박은 맛없어진다. 여름이니까 그럴 수 있다. 전에도 이런 날이 있었다. 태양 아래, 잘 익은 단감처럼 단단했던 지구가 당도를 잃고 물러지던 날들이...말하자면 세계가 점점 싱거워지던 날들이 말이다." 라는 농밀한 문단으로 시작하는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은 작가노트에서 p.51 맞다. 진짜 공포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라고 말했듯이 긴 장마의 축축한 끈적임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끊임을 모르는 장마의 공포는 그득 채워진 빗물에 녹아 들지 못하고 그 알갱이 알갱이가 그저 섞여 부유(浮遊)하고 있다. 어떠한 틈새도 없는 끊임없는 절망과 p.46 주위는 조금씩 밝아졌다. 놀랍게도 비가 거의 멎은 듯했다. 이러다 다시 내릴지, 완전히 개려는지 알 수 없었다. 라고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아득함 안에서도  p. 47 젖은 옷가지가 바람에 마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밖에 나오니 물속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추운 느낌이었다...."누군가 올 거야." 칼바람이 불자 골리앗크레인이 휘청휘청 흔들렸다. 라고 중얼대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p.51 그리고 문학이 할 수 있는 좋은 일 중 하나는 타인의 얼굴에 표정과 온도를 입혀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니 '희망'이란 순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용기 있는 사람들이 발명해내는 것인지도 모르리라. 그녀가 발명해내는 희망은 버거운 장마 끝 곱게 피어오른 무지개 빛이 아니라 갓 수그러든 빗방울에 찌뿌드드한 먹구름 사이의 여린 한 줄기 빛과 닮았다. 


김유진│여름

김유진의 소설 <여름>은 p.93 사소하고도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받는 감각들에 목적 없이 몰두하는 용기와 서로의 완벽한 다름을 강조함으로써 은연중에 그 다름 안에 같음이라는 균열이 발생하기를 꿈꾸는 과잉적 욕망의 표출만큼이나 에로틱한 것이 또 있을까. 라는 해설처럼 바람 한 점이 없는 뜨거운 여름날에 시계 바늘도 더위에 늘어진듯한 더디고 곰지락거리는 움직임. 소설 속 목소리를 따라 건물을 감싸안듯 가지를 드리운 늙은 체리 나무가 있는, 집안 구석 구석 먼지가 내려 앉은 - p.64 면을 가진 모든 것들 위에, 먼지는 있었다. 먼지는 살아 있는 듯 끊임없이 태어나고 이동했다. 번식했다. - 모습이 눈 앞에 살아 있다. 그런데 무어랄까. 아쉽다. 단편소설이라는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책상을 만드는 B와 녹취된 내용을 글로 만드는 Y는 뜨거운 여름날에 녹아버린 살얼음 위의 걸음처럼 불안하다. 살아있음을 들키고 싶어하지 않던, 개수구의 벌레와 마주치며 Y의 위태로움은 극에 달한다. 그러나 그저 쌓이는 먼지를 바라보고, 양말을 신고 잠자리에 들며, B와의 시간을 피해 일을 하며, 어두운 한 구석을 응시하는 것으로 두려움을 떨쳐 내던 Y는 p.85 Y는 힘껏 뛰어, 길게 늘어진 체리나무 가지를 꺾어 보였다. 로 삶에 의지를 보여 준다. 삶의 관객에서 배우로의 이동이랄까. 김유진의 소설 <여름>은 그렇게 못내 아쉽지만 그녀의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그녀의 이야기는 나른함을 가장(假裝)한 느린 템포로 지리하거나 꿈뜨지 않게 제 몫을 잃지 않으며 글의 무게는 흔들림이 없다. 

 
이장욱│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

소설은 허구이나 사실은 그대로가 삶이다. p.103~104 스틸녹스를 삼키고 잠을 청했지만 내내 얕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기분이었다. 바닥에 발이 닿는데도 숨을 쉬기 어려운 느낌이다. 깨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잠든 것 같기도 한, 그런 시간이 이어졌다. 어릴 적에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가면 화장실이 집 밖에 있었다. 몽환적인 노오란 불빛의 백열등 불빛이 구석구석을 밝히지 못하는 낡은 재래식 화장실이 무서워 엉거추춤한 자세로 제대로 볼일을 보지 못하고 급하게 뛰어 나오곤 했었는데(다행히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할아버지댁은 깔끔한 화장실을 갖춘 양옥집이 되었다), 순간도 견디지 못하는 그 작은 심장의 쿵쾅거림과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만드는 대상이 모호한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의 불안감. 이장욱의 소설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은 그 불투명한 공기가 배경음악처럼 깔려있다. p.128 운하를 흐르는 강물은 평화롭고, 성당들은 오랜 시간만이 줄 수 있는 온화하고 장엄한 아름다음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몸이 조금씩 서늘해지고 심장에서 바람 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히할 수는 없다. 이것은 감상적인 비유가 아니다. 말 그대로 물리적인, 그런 느낌이다.

 
이장욱의 작가 노트에서도 말했듯 p.131 나는 어두운 돌계단을 뚜벅뚜벅 걸어내려왔다. 밖은 여전히 흰 밤, 밤이며너 동시에 낮인, 어떤 기이한 경계이다. 끝나지 않는 백야의 날들에 그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었던 걸까?


김사과│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

김사과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는 무섭다. 이 공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그가 뿜어내는 분노에 대해, 그리고 그렇게 끊임없이 분노할 수 밖에 없는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p.143 난 나에 대해서 뼛속 깊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객관적인 전문가의 입장에서, 모든 것이 내 탓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난 내 의지로 뭘 해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p.144 안다. 난 지나치게 얄팍하다. 셀로판지 같다. 그러한 당연한 분노는 - 원인은 '나'가 아니라 나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외부의 것이지만 - '나' 안에서 어그러진 채로 하지만 잘 참아져 왔다. p.144 난 A의 옷을 벗긴 다음에 왼쪽에서 다섯번째 몽둥이처럼 생긴 커다란 선인장을 뽑아서 때리는 상상을 하기 시작한다. 그게 다 A의 반짝거리는 금빛 매니큐어 때문이다...그 손톱들을 모두 뽑아버리고 싶다. 뚜껑이 달그락거리며 금방이라도 넘쳐 버릴 듯 위태로운 냄비의 끓는 물처럼, 혹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뜨거운 연기를 뿜어내는 휴화산처럼. 왜 '나'는 금빛손톱 따위에 그렇게 분노하는 것일까.

p. 151 화가 난다. 더이상 이 분노를 차곡차곡 몸속에 쌓아만 둘 수는 없다. 왜? 어떠함이 그를 참지 못하게 하였을까. 웅그리고 있던 분노를 건드린 것을 무엇이었을까? 여자를 통해 삶을 본 '나'는 p.150 삶이 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다. 자꾸만, 난 울고 싶다. 두께를 가지고 싶다. 무게를, 색깔을 가지고 싶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나는 보호되어왔기 때문이다. 움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의 움직임은 깊은 폭령성으로 드러난다. 

김사과는 작가 노트에서 p.182 그러니까 사실 다들 스타벅스에 정말 가고 싶은 건 아니고 스타벅스에 가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서 스타벅스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아직은, 증명하기 위해서 가긴 가는데 역시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어리둥절해지는? 그런 식의 괴로움? 현대인의 삶의 고통? 그것에 대해 뭘 말하지? 라고 했다. 그녀는 이 소설을 통해 분노를 참지 못하는 세대, 사실은 분노의 대상을 찾지 못하고 헤매이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무엇이 자신이 원하는 삶인지도 모르고 타인의 잣대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 모든 것을 누리도록 이전 세대의 뼈를 깍는 희생 속에 모든 것을 누리게 된 허나 사실은 아무것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이제 움직여 보자고 스타벅스가 그 기준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것은 아니였을까.  

p.172
삶이란 견뎌내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삶에 대해 매우 이상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삶을 즐긴다는 견해이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이런 고통을 즐길 수 있단 말인가. 단지 견딜 수 있을 뿐이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 살아남고 싶다. 누구보다도 끝까지.

 
김성중│허공의 아이들

소설을 읽는 동안 김이환의 <절망의 구>가 내내 걸음을 따라다녔다. 사람들을 삼키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절망의 구'의 존재 앞에 놓인 인간의 내면, 인간다움의 존엄성을 버리고 본능에 지배당하게 되는,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그 과정을 긴장감 있게 그려냈던 소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떠한 의미일까? p.205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어른스러워졌다. 살아남으려면 빨리 철이 들어야 했다. 그 재앙의 한가운데에서도 성장을 멈추지 않던 소년과 달거리를 거르지 않는 소녀에게 과연 어떠한 어른스러움이 필요한 것인가. 허공의 집에서 증발해버린 소녀와의 기억과 홀로 남은 소년은 도대체 어떤 삶을 더 기록해야하는 것인지 막막하다. 뼈가 자라는 소리는 어떠한 희망이란 말인가. 지워지지 않는 물음표를 잔뜩 그려 놓고 그렇게 그만이다.


김이환│너의 변신

김성중의 <허공의 아이들>을 읽는 동안 김이환의 <절망의 구>가 발목을 잡았더랬다. 그만큼 처음 만났던 그의 소설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었다. 그래서 가득한 관심과 기대로 시작한 <너의 변신>은 동성애와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던 '너'가 결국은 '몸을 버리는' -p.263 완벽한 몸을 추구하던 네가 왜 몸을 버렸는지, 왜 나와 의사소통할 수도 없는 몸이 되었는지 알고 싶다. - 다소 극단적이지만 이 시대의 가치관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물질만능주의의 포화 속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의 어그러짐은 누구의 잘못인가. p. 240 "우리나라 성형수술 시장이 얼마나 큰데. 압구정에 가봐. 두 건물 건너 하나가 성형외과야."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의 그릇됨인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선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다리를 늘려 '나'보다 키를 키운 것? 발육이 부진했던 팔? 탐미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완벽한 몸?그도 아니면 여성의 성기?하루종일 오르가슴만 추구하는 실체가 없는 존재?  

p. 240 "외모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망과 인간다움의 윤리,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질 수 없는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나는 손을 떼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정용준│떠떠떠, 떠

p.277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겠지. 상처를 주면 두 배로 증식하는 플라나리아처럼 점점 많아질 뿐이야. 나는 지쳤어. 더이상 그것들에게 붐벼 거품처럼 버글대며 희미해지고 싶지는 않아. 더 이상 입술을 달싹거리며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자탈을 쓴 남자와 '갑자기' 잠드는 시간이 생각처럼 무섭지 않다고 말하는 판다탈을 쓴 여자의 사랑이야기는 달콤한 로맨스를 흉내내는, 사실은 어떤 사랑의 말도 전할 수 없는 굳은 혀와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웃고 있는 판다의 탈을 쓰고 '재롱을 떠는' 연기의 과정인듯 보여주어야 했던 쓰디 쓴 삶의 이야기다. 하지만 정확하게 발음되지 않는 말로 전하는 '사랑해'는 그저 삶을 비극 가운데 떨어트려 놓지 않는다.

정용준은 작가노트에서 p.310 시간을 앞당겨 어떤 방법을 서둘러 배우지 않겠다. 좀더 느려지고 둔감하기를 원한다. 뭔가를 지연시키려고 몸부림치는 소년처럼 언제나 새파랗게 쓰도록 힘쓰고 애쓰겠다. 라고 말했다. 그 마음이 쿵, 하고 나에게 내려 앉는다. 


이 책을 읽고 이렇게 성글은 리뷰를 적기까지 꼬박 2주가 넘는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고도 다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한 찜찜함이 퍽퍽하다.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는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누락된 듯, 대부분의 이야기는 씁쓸하고 암담하고 비극적이기까지 하다. 과연 소설의 역할은 무엇인가? "문학이 해야 할 일은 '치유'가 아닌 것 같아요. 따뜻함이나 위로를 바란다면 친구들을 만나고 맛있는 것을 사먹는게 훨씬 효율적이죠." 라는 글을 본 기억이 가물하다. 어떠한 확신의 과정을 거치고 이러한 정의를 내릴 수 있었을까. 휘청거리는 크레인 위에서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누구가를 희망하면서, 삶을 짓누르던 체리나무의 가지를 꺽으며, 혹은 뼈가 자라는 소리에 우리는 아무런 치유를 얻지 못하는가.

작품마다 덧붙여진 그럴싸한 해설도, 사실은 7편의 작품도 정말 잘 쓰여진 이야기인지도 나는 구분하기 어렵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이 시대의 젊은 작가들도 쓰기 위해 노력하고, 또 그들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내게 있어서 소설은 '즐거움'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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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보이는 것만 믿니?
벤 라이스 지음, 원지인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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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포비와 딩언은 잘 지내고 있어요?


'바이놀렛 크럼블'과 '체리 라이프'를 좋아하는 포비와 딩언은 캘리언의 상상 속 친구입니다. 캘리언의 오빠 에슈몰은 그런 캘리언을, 캘리언의 상상 속 친구를 믿어주는 라이트닝 리지 마을 사람들을 괴짜라고 생각하죠. 광산에서 오팔을 캐는 아빠는 어느 날 출근하면서 포비와 딩언을 데리고 가는데 맙소사,! 포비와 딩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포비와 딩언을 찾지 못하자 캘리언은 점점 건강을 잃어갑니다. 그런 동생이 안쓰러워 시작한 포비와 딩언 찾기는 어쩌면 정말 포비와 딩언이 존재했던건 아닐까, 하는 인정으로 변해갑니다.   

p.76

지금 라이트닝 리지가 있는 이 땅이 한때는 전부 바닷물로 덮여 있었고 지금은 화석이 된 온갖 종류의 바다 생명체들이 바위 속에서 발견되곤 한다는 말도 기억났다. 마른 땅에 불과한 이곳이 한때 바다였다는 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생각만 해도 등줄기를 타고 전율이 흘렀다. 그리고 갑자기 이 놀라운 일이 진실이라면,  포비와 딩언도 진실이 될 수 있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116

그전에 시드 아저씨에게 아저씨의 가족에 관해 물었다. 아저씨는 가족이 전혀 없으며, 아내는 20년 전에 죽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판사는 시드 아저씨에게 아내가 죽었지만 나몰래 죽은 아내에게 말을 거는 일이 있는지 물었다.시드 아저씨는 가끔 교반기 작업을 할 때는 그런다고 대답햇다. 아내가 자기보다 눈이 좋아서 오팔 먼지를 샅샅이 살필 때 자기를 도와주곤 했기 때문이라고. 

사실 나는 어릴 때에도 상상력이 풍부한 편은 아니라서, 우주라든지 바다 속 상상화보다는 풍경화가 정물화를 그리는 시간이 수월했습니다. 그런 자람 덕분인지 나는 도대체 캘리언은 왜 그렇게까지 아파야 하는지, 한편 고맙긴 하여도 포비와 딩언을 찾아 나서는 마을 사람들이 조금은 어리석게 여겨 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에슈몰의 변화와 함께 포비와 딩언은 사실 유령으로서의 '실체'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믿음에의 '존재'였음을 알게 됩니다. 사실은 나에게도 잊고 살았던 포비와 딩언과 같은 친구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p.132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 동생이 정말로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자주 잠을 이루지 못하고 동생에게 말을 건네곤 한다. 나는 학교에서도 동생에게 말을 걸고 오팔 거리를 걸어 갈 때도 말을 건다.그리고 험프 아저씨와 함께 무지엄에 있을 때면 둘이 함께 동생에게 말을 건다....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이 나중에 가서 고개를 돌리고 수군대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는다거나, 정말 구하기 어려운 것을 계속해서 찾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바보들이니까. 

사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진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중요할때가 많습니다. 사랑이나 우정처럼 감정, 우리 곁에 살았던 친구들, 가족들 혹은 어린 날의 추억이나 꿈은 그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긴 어렵지만 분명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우리 삶에 원동력이 되기도 하죠. 아마도 잊고 지내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한번 더듬어 기억해보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딩동! 포비와 딩언의 장례식 초대장이 도착하였습니다. 와주실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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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
신현림 지음 / 흐름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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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픈 가슴을 콕콕 찍어내어 눈물을 떨어트리는 이런 책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글이 어떠한 찬사를 받는 특히나 '엄마'라는 존재를 이야기하는 책에 나는 무턱대고 커다란 반감을 들어내는데 아마도 그것은 사춘기를 제대로 보내지 못한 탓이 아닐까 해요.

고등학교 입학 당시 이혼을 하신 부모님 때문에 나는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습니다. 겨우 중학생이 된 동생에게도 엄한 누나였고, 모든 일을 혼자서 척척 해내는 기특한 큰딸이어야 했습니다. 혹시라도 엄마 없는 아이라는 꼬리표가 붙을까 반듯한 틀안에 나를 가둬 두었습니다. 그렇게 십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 시간에 누려야 했을 상실감과 슬픔을 온전히 겪어내지 못해서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했습니다. 웃고 싶을 때 웃고, 눈물이 나는 날엔 실컷 울어 두는 것이 중요한 일임을 그때는 몰랐지요.

내 잘못이 아니였음에도 숨기고 숨겼던 그 상처는 안에서 곪을대로 곪아 이제는 아픈 줄도 모르는 그대로 내가 되어서 나는 한살배기도 표현하는 싫고, 좋음에도 서투른 어른 아이로 스물아홉이 되어 버렸습니다. 십년이 지나도 아직 '엄마'라는 단어가 시큰거리는 것을 보면 나에겐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가 봅니다. 큰 호흡을 몇 번이나 몰아쉬며 겨우 겨우 읽어냈습니다. 내게는 조금 버거운 시간이라서 이런 책을 선정해 준 알라딘, 을 살짝 원망도 해봅니다.

p. 226
'미안해'라는 말을 굴욕으로 생각지 않으며, 미안한 일이 생겼을 때 반드시 인사할 것. 무엇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고맙다'는 말. 사랑의 꿀이 가득묻은 이 말을 입 속에 맴돌게 할 것. 그만큼 감사하는 마음은 관계를 단단하게 만든다. 관계의 성장과 성공을 위한 필수 비타민이다.

책에 가득 베인 신현림 작가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사실 나는 온전히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나도 그녀처럼 마음껏 엄마라는 존재를 그리워하고 싶지만 내겐 그리움도 사치입니다. 백마디 말보다 본인의 생활에서 부지런하며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희생했고 불의에 굴하지 않으며 어려운 처치의 사람을 외면하지 않았던, 딸의 손을 잡고 서점에 가던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그리움의 대상이 될 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p.207
"우연히 엄마 젊을 때 사진을 봤는데, 세상에 롱치마에 하이힐 샌들을 신고 있는 거예요. '이게 우리 엄마 맞아?' 시퓨었어요. 엄마도 유행하는 좋은 옷만 입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참 신선했어요. 그땐 참 고우셨는데, 지금은 할머니나 입는 몸배 같은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오천 원짜리 시장표 가방을 매고 다니지를 않나, 마음이 짠했어요."

그래도 나이가 한살 한살 먹다보니 '엄마' 이전에 한 여자로서의 삶을 조금은 인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행복하기를 욕심 냈던 여자로서의 삶을 나의 '엄마'라고 해서 비난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마음은 온전히 해내지 못한 이해를 머리로 서툴게 되뇌어 새깁니다.

얼마 전 신형림님의 <딸아, 외로울 때는시를 읽으렴>이라는 시집을 읽었습니다. 주옥같은 시들이 가득 담긴 그 책에서도 말합니다. 누구나 다 외로운 것이라고, 삶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순간도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모든 시간들이 찬란히 빛날 우리의 삶에 영양분 가득한 밑거름이 되어 줄거라고 말이죠. 딸이 엄마에게, 그리고 엄마가 되어 딸에게 그 깊고 진득한 관계 맺음에서 우리는 살아감에 가득한 힘을 얻습니다. 내가 당신께 해 줄 것은 아마도 당신 그대로의 삶을 축복하는 일, 그것뿐일 것 같습니다.  

 

p.92

나무와 풀은 비와 바람으로, 햇빛으로 생명을 이어가고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넘나든다.  

사람살이도 그렇게 말없이 넘나들며 마음을 전하는 것일 게다.

우리의 생명은 늘 햇빛 찬란한 나날이 아니라

쓰나미와 지진 같은 슬픔과 아픔 속에서 흔들리며 사는 것임을  

엄마가 키우던 꽃과 나무에게서 나는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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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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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나는 여태껏 대통령 선거를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 하나도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날들에 국가나 정치에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고 핑계해 봅니다. 전 노무현 대통령 서거, 나는 그날에도 진실은 모르겠습니다. 손녀딸과 동네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먹는 모습을 보니 콧날이 시큰대서 하늘을 봅니다. 누구의 자잘못을 떠나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분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회가 괜찮은걸까요?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눈 감고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물론 나 한사람 고쳐먹은 마음이야 티도 나지 않겠지만 그렇게 모인 크고 작은 마음들이 사회를 이루는 거겠지 하구요.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25인의 인터뷰이와 김제동과의 편안하고 즐거운, 그러나 이야기를 잃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한동안 맘을 머물던 정호승님의 <수선화에게>라는 시를 김제동님도 좋아하셨다니 괜스레 반가움이 가득합니다.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p.224

● 그 속에서 갈등이 일어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떨 땐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느껴지다가도 어떨 땐 그런 믿음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느껴지더라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시대를 열심히 살아야죠.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버리면 안 돼요. 믿음을 버리면 지구가 사라질껄요? 전 70년대에 20대를 살았잖아요. 그때 어둠 때문에 완전히 호떡처럼 눌려서 살았다고 해야 할까.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면 어둠이 존재해요. 먼 역사를 봐도. 우리 현대사를 봐도 다 어둠의 순간이 있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 왜 어둠이 있느냐면 밝음을 위해서죠. 별을 지향하지만 별은 어둠이 존재해야 빛나요. 한 신부님이 하신 말씀인데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증오도 필요하다'는 거죠. 아마 2020년, 2030년을 사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밝아진 시대를 살지 않을까요?

<정호승 편>

밝음을 위해 존재한다는 어둠을, 열심히 살아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저처럼 이렇게 아둔한 사람에게도 고개 돌려 외면하던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한다고, 더 이상 눈을 감고 모른 척 해서는 안된다고 말이죠. 문득 아니 더욱 더 분명하게 김제동님이 부러워집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삶과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은 정말 축복인 것 같습니다. 혹여 책에 실리지 않은 더 진득한 이야기가 있지는 않을까, 억측하며 삶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터뷰이들의 이야기에 빠져 듭니다. 

p.103

● 사실 나는 그게 아닌데 사람들이 나를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 말예요, 그게 나를 옥죌 때가 있어요. 정말 싫어요.

그게 답답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 것, 그게 다 내가 한 일이고 나에게서 나온 거야. 내가 한 행동에 대해 그들이 판단하는 건 그들의 자유야. 남들의 생각까지 내 의도대로 맞추겠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권력욕이지. 내가 주장한 건 핑크였는데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검정이 될 때가 있지. 그 간극을 줄이겠다고 나서는 것은 잔류형 인간이야.

<고현정 편>

얼마 전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비쳐지던 타인의 시선 속에 나 때문에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배려'라는 이름을 붙인 그 행동이 '무관심'으로 개명[改名]하여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경험하면서 사실은 어디서부터 풀어내야 할 지 몰라 안절부절했었습니다. 새침떼기일 줄 알았던 고현정님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조금 수월해 짐을 느낍니다. 나를 보는 타인의 시선은 온전의 그의 몫으로 내어주기로 했습니다.

요즘 부쩍 제게 되묻습니다.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뭐지?' '재미있니?'라고. 사실은 요즘 나의 삶이 풍랑을 만난 돛단배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직업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은,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몫이니까,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을거야.' 라고 멈출 줄 모르고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 봅니다. p.65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산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박원순 편> 하지만, 나는 아직 용기가 부족합니다. 

p.59
● 결국 산을 좋아한 것이 바탕이 된 거네요. 10억 원 줄 테니까 에베레스트 정상 올라갔다 오라고 해서 선뜻 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목숨 걸어야 하는 일인데.

돈 밝히고, 이런 거 저런 거 따지다보면 아무것도 안 됐겠죠. 초심을 잃지 않고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는 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어요.

<엄홍길 편> 

p.170

은퇴 경기는 정말 가슴이 뭉클했다. 9회에서 땅볼을 치고도 끝까지 1루로 전력 질주하던 형의 모습. 그건 형의 야구인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모습이었다. 또 그건 양준혁을 기억하는 야구팬들에겐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쉽움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p.178

후배들한테 잔소리를 마이 하는데 결국은 본인이 느껴야지. 마지막 공 하나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땅볼로 날아간다고 뛰다 말고 돌아오는 거, 나는 인정 안해. 안타가 아니더라도 전력을 다하면 송구 에러가 나고 그게 안타를 만들거든. 그게 진정한 프로지. 내가 나를 돕고 최선을 다해야 남도 나를 돕고 기회가 생기는 이치지. 야구뿐 아니라 인생이 그렇다 아이가.

<양준혁 편> 
 

자신의 삶을 쓰는 사람들의 유쾌하나 가볍지 않게, 무겁지만 어둡지 않게 한 권에 가득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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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혼자 올 수 있니
이석주 사진, 강성은 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너 혼자 올 수 있니>는 간암 말기로 투병 중이던 2010년 4월, 서른도 안 된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뜬 사진작가 故 이석주의 유고 사진 에세이다. 죽음을 앞 둔, 훗카이도로의 여행. 눈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 책을 집은 것은, 사진작가의 '유고' 사진 에세이, 라는 것 때문이었다. 가벼운 동정심? 죽음을 앞 둔 사람에 대한 호기심? 이러한 마음들은 책을 읽는 그 순간 산산히 흐트러져 부끄럽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평온했다. 내가 온전히 읽어 내지 못한, 차가운 겨울을 마주한 그의 쓸쓸함과 삶에 대한 아쉬움들이 슬픔으로 가득 채워질 것 같았던 책장들은 의외로 가벼웠다. 그 가벼움은 무게 없음이 아니라, 삶을 평온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그리고 마지막의 순간까지 자신이 원함을 놓치 않았던 그의 열정 때문이 아닐까.

p. 299

당신이 말하고 싶었는데
말하지 못했던 것
당신이 보여주고 싶었는데
보여주지 못했던 것
당신이 껴안고 싶었는데
껴안지 못했던 것

그러나 나는 압니다
말하지 않아도 보여주지 않아도 껴안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우리 영혼이 닿아 있어
모든 것이 투명합니다

그러니 걱정 말아요

 
책 속 사진들이 참 따뜻하다. 그는 이렇게 따뜻한 사진을 남기기 위해, 얼마나 차가운 시간을 보냈을까. 겨울을 참 싫어하던 나였는데, 유독 눈이 많이 온 올해의 겨울은 더 달갑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겨울의 시림이 전처럼 밉지는 않다. 나도 나이를 먹으며, 삶에 그리고 세상에 조금씩 너그러워지는 것이리라. 부족한 단어들의 나열로의 서평을 부끄럽게 만드는 겨울이 가득 담긴, 겨울밤을 따스하게 다독이던 한권의 책. 그리고 故 이석주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soar0108

p.123

기억 속에서
날마다 더 아름다워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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