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마음 - 루시드 폴 詩歌
루시드 폴 지음 / 안테나북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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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의 음악을 처음 들었던 것이 언제였더라. 음악으로 먼저 만난 그였기에 그리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마주한 그는 내겐 다소 충격적이고 신선했다. 그리고 더 좋아졌다. 그의 음악은 한결같이 잔잔함이 다소 지루하고 졸음을 만드나 내겐 그러함이 좋았다. 특히나 비오는 날의 버스나 커피숍 창가에 앉았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비를 마주한다면 그 순간 배경음악으로 흘러준다면 드라마의 한 장면 같지 않을까. 그런 그의 노랫말들을 활자로 엮여 낸 책. 그의 노래가 낯설더라도 그냥 시를 읽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특히나 얼기설기 엉성히 엮인 밤이면 그 틈을 빼곡히 메워 줄. 

그는 유능한 공학도다. 서울대 화공과를 나와 스웨덴 왕립공대 재료과학 석사를 스위스에서 박사를 마쳤다. 2008년에는 일산화질소 전달체용 미셀 의료용 물질 미국 특허 출원을 낸, 소위 엄친아다. 거기에 타고 난 감성에 유머감각까지. 그리도 많이 그의 음악을 들었지만 활자로 마주한 음악은 사실 낯설기도 했다. 심지어 그 노래의 노랫말이 이랬던가, 하고 갸웃거린다. 아이폰에 담긴 음악들을 재생하며 멜로디에 담긴 활자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다.

너는 내 마음속에 남아

 

가을처럼 슬픈 겨울이 오면 그때는 내가 널 잊을 수 있을까.

지금보다 더한 외로움들이 그때는 나에게만 와주었으면.

 

아직도 작은 나의 창틈에 쌓인 했살 너에게만 안겨주고 싶어.

이러다 나도 지쳐 쓰러지면 널 잊을까.

그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모두 나의 이야기가 되어서 긴 호흡을 몇번이나 내뱉고서야 겨우 숨을 고른다. '음유시인' 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것이구나. ♪ 나의 하류를 지나 나는 이미 찾는 이 없고 겨울 오면 태공들도 떠나 해의 고향은 서쪽 바다 너는 나의 하류를 지나네. 언제 우리 만날 수 있을까. 어스름 가득한 밤소리, '모든 게 우릴 헤어지게 했어.' 모든 게 우릴 헤어지게 해. 모든 게 우릴 헤어지게 해. 종이배처럼 흔들리며 노랗게 곪아 흐르는 시간. ♪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네 왜 사랑은 이렇게 두려운지 그런데 왜 하늘은 맑고 높은지 왜 하루도 그댈 잊을 수 없는 건지 그 누구도 내게 일어주지 않았네. 그 누구도 내게 일러주지 않았네. 이대로 괜찮을까? 하늘에 구멍난 듯 쏟아지는 비에 우산 따위로는 피할 수도 없는 요즘의 비처럼, 그렇게 황망그레 놓여진 나의 마음을 천천히 욕심내지 않고 조심히도 만진다. 그 손길이 너무나 조심스러워 나는 그만 웃어버리고 만다. 그러한 노래들.

♪ 이젠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생각해보면 언제나 여름, 가을, 겨울, 봄 기억 속에서만 변하지. 변하지 않을 어떤 계절이 온다면 약속할게. 다시 널 찾겠다고. 그의 계절은 여름으로 시작해 봄으로 끝난다. 그래서일까. 그의 노래가 봄을 닮은 이유.

녀, 어른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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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했고 그녀도 했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 - 당신의 열정을 깨우는 가슴 뛰는 이야기
김이율 지음 / 카르페디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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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나는 유난히 자기개발서에 대한 거부감이 커다랬다. 그것은 역경과 고난을 극복한 영화같은 성공스토리에 대한 일종의 자격지심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부끄러워하고 결심해도 수없이 흐트러지기를 반복하는 나라서 시작도 하지 않으며 뻔한 결말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치(不治)의 미지근함에 조금씩 불씨를 지피고 있는 요즘이다. 곧, 서른. 하지만 나는 절대 늦지 않았으니까.

책에는 지금의 우리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놀라운 열정으로 그 상황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루어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팔·다리가 모두 없는 닉 부이치치, 한국전쟁으로 열네살에 가족과 헤어지고 포탄 파편에 맞아 생과 사를 넘나들던 이철호, 냉대와 멸시·이혼으로 얼룩진 김태연, 가장 낮고 비참한 어린시절을 보낸 룰라 대통령 등 그들에게 부여된 삶은 어떠한 삶의 희망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상상하기 조차 버거운 깊은 절망 가운데 놓여 있다. 그리고 그들이 갖은 또 하나의 공통점은 타고난 열정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도 분명 넘어지고, 분노하고, 절망하였다. 절망의 그림자는 그들을 발목을 움켜쥐고 절대 놓지 않으며 따라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가진 힘은 그러한 '위기'가그들의 열정을 불태우는 화력 좋은 땔감이 되었다는 것이다. p.27 "여러분도 일어설 수 있습니다. 왜 나만 힘들고 나만 괴롭고 나만 외로울까 하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저를 보십시오. 다시 일어섰고 지금 여러분 앞에 서 있지 않습니까."

또한 그들의 성공은 분명한 삶의 목표가 있기에 가능했다. 아마도 어린 시절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커다란 종이에 그리던 생활계획표를 기억할 것이다. 빼곡하게 채워진 생활계획표는 일주일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젠 그조차도 추억에 불과하니 내 삶은 과연 어느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것일까. 20대 초반에 세웠던 삶의 목표들이 흐릿하게, 떠오를듯 말듯 간지른다. 나는 욕심이 많아서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좋고 좋은 말로 다재다능하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특출나질 못했다. 이제 조금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삶을 방향으로 걸어가야 할 것 같아 서른이 되기 전에 해야 할 일 (이제 고작 5달인데...또 욕심이...)들을 끄적여 본다.

p.76

인생은 하루하루가 쌓여 완성된다.

그제와 어제가 쌓여 오늘이 되고 오늘을 지나야 내일이 된다.

또 수많은 내일들이 모여 인생이 되는 것이다.

서른이 되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적어보니 어느 사이 잊고 있거나 게을러진 일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1. 일본어 원서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일본어 공부 2. 노래하면서 연주할 수 있도록 기타연습 (첫번째 곡은 '황혼') 3.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안부전화 드리기 4. 가까운 곳이라도 혼자 여행 다녀오기 5. 내시경 받기 6. 요가 꾸준히 다니기 7. 국가자격증 준비하기. 이러한 하루들의 쌓여 내가 되는 것이리라. 여름 더위도 그렇고 많은 일들이 복잡하게 얽혀 짜증만 늘어가는 하루들이었는데, 늘 피곤하고 지쳐 잠은 부족했고 푸념은 더해졌는데 잔뜩 찌뿌린 마음에 조금씩 햇살이 나는 듯한 기분이다. 아침마다 알람시계는 고통의 신호탄이였는데, 새로운 하루의 나를 조금씩 기대해본다. 하지만 절대 무리하지 말아야지. 언제든 내게 맞는 속도로 감이 제일 중요하니까.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p.202

"왕자님, 왕의 기쁨을 조절해 줄 수도 있으면서  

또 절망했을 때는 용기를 줄 수 있는 그런 글귀가 있을까요?"

솔로몬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글귀를 넣으시오.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

 


 

녀, 어른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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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나카무라 코우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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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나서 그 사람 - 그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그녀의 엄마 하지만 그도 엄마, 라고 부르는 장모님이다- 과 함께 살게 되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나카무라 코우의 <여름휴가>는 내가 기대하는 그 이상의 뜨겁고 나른하고 의욕이 넘치지만 사실은 조금 피곤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년 내내 기다리는 나의 '여름휴가' 그만큼의 에네지가 그득하다. 조금은 지루한 듯 흘러가지만 간결한 문체는 오히려 생동감을 말하며 진지함에서 묻어나는 유머는 읽는 내내 즐겁고 호기심 나게 하였다. 어쩌면 나는, 일생일대(一生一大)의 거사(巨事)를 게임의 승부로 결정하려는 그들의 무모함이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삶에 대한 간절한 열의가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삶에서 감정을 조금 배제하고 한발 물러서서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그들의 냉정함이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들은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리라. p.59 비극이라고 하면 비극이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그게 우리의 인생이었어.

소설 <여름휴가>는 청약주택에 입주하는 것이 꿈인 평범한 신혼부부인 마모루와 유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유키의 절친한 친구인 마오코와 그의 남편 요시다 군의 이야기다. '꽈리고추를 먹었을 때 첫번째에 매운 게 걸릴 확률'에 상응하는 경쟁률을 뚫고 마모루와 유키는 청약주택에 입주하게 되었고, 그렇게 일상은 잔잔히 흘러가는 듯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요시다 군이 '열흘 정도 집을 비웁니다. 꼭 돌아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라는 쪽지를 남기고 사라지고, 유키와 마오코, 마모루는 요시다 군을 추격하기 위한 여름휴가를 계획한다. 고요한 수면 아래 내재되어 있던 문제들이 조용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성인이 되어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직은 채 성장을 마치지 못한 어른아이들의 해프닝들을 유쾌하나 진지하게 꼬집는다. 요시다 군의 갑작스런 컴백홈, 으로 그들의 계획은 꼬이고 꼬여 마모루와 요시다의 온천여행이 되어 버린다. 어색한 두 남자의 어리숙한 온천여행은 동성애자로 오해받으며 귀엽기까지 하다. p.192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습니다. 사태는 최악이라고 말해도 좋을지 몰라요. 하지만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가출이라든가 여행 같은 걸로 뭔가가 변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돌아왔으니까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작가는 부모세대의 과잉 사랑의 결과물로 어쩌면 혼자서는 어떠한 것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불안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던걸까? 유치원을 졸업하며 '엄마'라는 단어와도 졸업하는 분위기 때문에 노란색 세면기에 수도 없이 연습했어도 결국은 '엄마'라고 부르는 길을 선택한 유키와 '장모님'이라는 글자를 겁내고 아내를 따라서 장모님을 엄마라고 부르는 마모루. 마모루와 사귄지 2년쯤 되었을 때 프로포즈를 받았다며 어떻게 할 지 고민하는, 결혼할 상대를 엄마의 선택에 맡기는 유키(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였겠지만). 강변을 바라보고 맥주를 마시며 이혼할 때는 동시에 하자는 약속을 하는 마모루와 요시다. 요달랑 쪽지 한 장 남기고 가출하는 요시다는 그 이유 또한 가관이다. 요시다 군이 가출해서 한 일은 위클리 맨션에 잠복에 카메라를 분해한 일 뿐이다. 그런 요시다 군에게 난투게임으로 결투를 신청하는 유키와 마오코. 좀 어이가 없기도 해서 나는 마구 피식피식 웃어버렸다. 어쩌면 삶에 이렇게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삶에 과도하게 진중한 편이라서 이러한 가벼움이 마냥 신기하고 부럽다p.125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인생의 절반은 성공이다.

평온한 듯 지리한 그러나 뜨거운 여름날 금방 녹아내릴 듯한 살얼음판 위처럼 위태로운 일상을 지난다. p. 228 극복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시다 군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공평함을 극복했다. 요시다 군은 집을 나와서 결의하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 뒤에 패배하고, 껍집을 깨고 나온 것이다. 요시다 군은 두번의 난투 끝에 결국 승리를 거뒀다. 마모루도 사실은 유키와 마오코도 원하는 결과였으리라. 요시다 군이 조금 더 삶에 열의를 가지길 바랐으리라. 아마도 그들은 삶은 난투 후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와 있을테지만 그 안에서 한 뼘 더 쑥- 자라있을 것이다. 어떠한 성장소설 못지 않은 성장(成長)에 관한 이야기. p.161 그것은 여름휴가와 마찬가지로, 언젠가 끝나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줄 것 같았던 엄마의 가출 선언. 모르게 깊은 정이 든 마모루는 눈물이 핑, 돌지만 우리보다 개인적인 성향이 짙은 일본의 이야기라서 그럴까. 나의 엄마, 나의 장모님 이전의 그 삶을 존중하기로 한다. p.240 수컷 늑대는 어느 날 갑자기 무리를 나간다. 무리는 거것을 받아들인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전폭적인 신뢰와 애정이 기반이 되어 있지 않으면 그 자연스러움은 자리할 수 없다. 요즘 애청하고 있는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을 보면서 뭉글뭉글 왈칵왈칵 거리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부모는 가장, 아내, 부모라는 이름표가 제법 무거운 거 같아서 괜스레 죄송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숨겨 품어왔던 꿈을 위해 도전하는 머리 희끗한 진짜 청춘을 보면서 부끄럽기도 하였다. 이제 아흔을 바라보시는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꿈을 무엇이였을까. 오늘 저녁에는 꼭 전화를 해서 여쭤봐야지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여름휴가, 라고 하면 해수욕장이나 유명한 관광지을 바랐으나 어느 순간 정말로의 휴(休:쉴 휴, 따뜻하게 할 휴)를 가고 싶어 졌다. 그러한 휴가와 잘 어울리는 소설 <여름휴가>,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나카무라 코우를 만나서 참 반가운 시간이였다.   



 p.204

"승부를 거느냐 마느냐, 인생은 그것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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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도서관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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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이라는 맛있는 단어가 주는 설레임은 아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는 즐거움일테다. 더군다나 환상 도서관이라니! 과연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로움 가득 안고 마주한 얆은 책 한권. p.44 그리고 책이 공간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법칙을 뒤집을 방법은 없다. 책에 아무리 많은 공간을 할당해도 항상 부족하다. 처음에는 벽을 차지한다. 그 다음에는 발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하다. 천장만이 그 침공에서 유일하게 무사한 곳이다. 처음으로 책을, 아니 책에 욕심을 부리는 것이 어쩌면 정말 한낱 욕심일 수도 있겠구나 한다. 방을 둘러보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쌓인 책들이 순간, 무겁게 느껴지지만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계속 무거운 책을 쌓아나가리라.

단편은 뭐랄까, 차마 다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는 듯 같아서 변비날의 화장실처럼 개운하지 않다. (비유가 참...저렴하다) 그래서 단편은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6편의 도서관 이야기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오~'하고 감탄을 자아낸다. 가상의 공간에 존재하는 심지어 내가 미래에 집필할 책,의 정보까지 존재하는 <가상 도서관>, 우편함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 세계문학전집이 결국 집안 모든 공간을 차지한 <집안 도서관>, 무료한 주말이 두려워 찾은,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존재하는 <야간 도서관>, 죽은 이들에게 영원히 책을 읽는 벌을 내리는 <지옥 도서관>, 책을 덮었다 펼치면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초소형 도서관>, 어떠한 방법으로도 죽일 수 없는 페이퍼백과의 이야기를 그린 <위대한 도서관>. 캬- 정말 군침이 도는 이야기들이다.  

또한, 이야기는 단순히 책,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책과 얽힌 주인공 얽힌 주인공들의 삶을 살짝 건드린다. 시선을 책으로 유도하며 하고 싶은 이야기는 콕 찝어 들지 않고 살짝 뒤에 물러 놓는다. <가상 도서관>에서 자신이 쓰지 않은 이야기를 보면 분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크게 안심하였을, <초소형 도서관>에선 단 하나뿐인 그리고 무한정으로 쏟아지는 이야기는 훔치고 싶은 작가들의 고뇌를 (어쩌면 조란 지브코비치 역시 이렇한 집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집안 도서관>에서 매일 매일 우편함을 들척거리는, <야간 도서관>에선 주말이면 할 수 있는 일이 독서뿐인 그들이 갖은 것은 누릴 것이 무한한 이 시대의 사실은 질척거리는 외로움으로 소통할 것은 오직 책뿐인 서투른 이들의 이야기다. 책을 읽지 않아 죽어서 책만 읽어야 하는 벌을 받은 <지옥 도서관>과 하드커버 책에만 집착하는 <위대한 도서관> 역시 현대인들의 척박해진 마음에 메마른 정서를 비추어준다. 하지만, 너무 기대를 했던 탓일까. 많은 호평에도 <환상 도서관> 역시 단편에 대한 나의 갈증을 해소시켜주진 못했다. 조금 더 깊게, 그리고 진지하게 6명의 주인공과 나눌 수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며 아쉬움을 삼킨다.

그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구 작가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분명하니 작가가 표현하였듯 러시아식 샐러드의 향취가 풍기는 <가상 도서관>, 영양가 풍부한 소고기 수프같은 <집안 도서관>, 속 채운 고추같은 <야간 도서관>, 체리 파이맛 <지옥 도서관>, 크림을 넣은 커피 같은 <초소형 도서관>, 그리고 이 모든 맛을 섞어놓은 것 같은 <위대한 도서관>은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풀코스 만찬같다. 익숙해진 것들에 지리멸렬(支離滅裂 ) 책읽기가 지속된다면, 그러한 날에 청량제가 되어 줄 책. 단, 만병통치약은 아니니 과한 기대는 금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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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라비아 - 힘을 복돋아주는 주문
박광수 글.사진 / 예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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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컨데 내 사진책에는 네가 어쩌면 기대하는 아주 아주 멋진 풍경 따위는 없어. 왜냐하면 네가 기대했던 그런 풍경이 내 앞에 펼쳐질 때, 난 기민한 동작으로 카메라를 즉시 들지 못했거든...그래서 네가 보는 지금의 내 사진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막 지나간 찰나의 사진이야. 그러니 부디 내 사진을 보면서는 가장 아름다웠을, 사진의 바로 앞 순간을 상상해줘. 카메라를 바로 꺼내들 수 없었던 그 수많은 아름다운 풍경들과 나날을 말이야. 

수생각의 뽀리에 꽃혀 있던 학창시절에 손편지 마지막에 꼭, 맘에 담았던 한 장을 그려내 담아주었다. 한줄의 글이 한칸의 카툰이 가진 힘은 구구절절 풀어내는 열마디보다 나의 맘을 위로하였더랬다. 몇장을 고쳐쓰던 손편지도, 열심히 따라 그리던 뽀리도 이제는 뽀얀 먼지 앉은 기억이였는데 오랜만에 사진이 가득한 에세이로 다시 만난 박광수는 세월을 보태어 그래도 그만큼 많이 다져진 느낌이다. <앗싸라비아>를 실로 마주하기 전부터 들려 온 지인들의 호불호(好不好)에는 부디 흔들리지 말자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지나쳐 마지막장을 덮는다. 사진과 그의 이야기, 어쩌면 그보다 많은 유명인들의 주옥같은 한마디가 어쩌면 조금 식상하고 성의없어 보일진정 그가 에필로그에 고백하며 부탁하였듯 사진의 바로 앞 순간을 상상하는 조금 더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함께 하기로 한다.

p.74 겉보다 속. 결혼하기 전 울 엄니는 겉옷뿐만 아니라, 속옷까지 다리미로 반듯하게 다려 주시곤 했다. 아들 사형제와 아버지의 뒷수발만도 충분히 힘에 부치실 터인데, 속옷까지 다리미질을 하시는 엄니를 옆에서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사람들에게 보이지도 않는 속옷을 왜 그리 열심히 다리시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자 엄니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쓱 닦아내시고는, 다리미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내게 말하셨다. " 아들, 사람은 겉보다 속이 더 반듯해야 하는거란다."

기억을 소거해가는 엄니에게 바치는 마지막 책, 일지도 모른다는 첫 장의 그의 이야기에서 깊은 사랑을 느껴진다. 그가 이렇게 사람 마음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속옷을 다리미질하며 아들의 속을 반듯하게 키우고 싶으셨던 어머니의 곱고 바른 사랑 덕택이 아니였을까. 세계의 여러곳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은 언뜻 쭉 훑어보아도 '앗싸라비아'라는 주문답지 않게 칙칙하고 버거워보인다. 그의 모든 이야기에 맞아, 라고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것이 그대로 우리의 삶이 아닐까. 반짝반짝 웃으며 빨주노초 알록달록한 응원은 아니더라도 있는 구태여 꾸미거나 보태지 않고 그대로의 따뜻한 시선이, 가끔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그저 우리의 삶이니까. p.55 삶은 정답을 찾는 시간이 아니고, 질문을 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이므로.  

p.165 누군가가 그랬지. 나이가 드는 것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단풍이 잘 물들면 꽃보다도 아름답다고. 서른을 눈 앞에 두고는 생각이 많아졌다. 나의 이십대가 이대로 끝나가는 것이 억울하기도 하고, 서른이 되는 것이 막연히 두렵기도 했다. 이십대를 맞이했던 성인이 되는 설렘과 두려움과는 또 다른 그 두려움은, 많은 이들이 이십대에 이루어 낸 것들은 나는 하지 못했음에 부끄러움과 그리고 남들처럼 태연히 삼십대로 살아내야 할 삶의 무게가 농밀하게 섞인 애매한 그것이였다. 그러다 문득, 나는 이제껏 내게는 너무 버거운 남들과 닮은 삶의 잣대를 드리우고는 왜 그만큼 닿지 못하냐고 다그치며 실망하고 애태우며 시간을 보내 온 건 아닐까 싶었다. 내 삶에 내가 제대로 주인이 되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며 다른 이들의 인생에 조연으로 기웃거리니 실망의 무게가 버거울 수 밖에.  나는 이렇게 책을 읽으며 나의 모지람에 그대로 순응하며 내 몫의 삶을 살아갈 용기를 조금씩 보태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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