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책이다 -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 이동진과 함께 읽는 책들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밤은 책이다│이동진│예담│2011.12.20│p.340

 

 

 

촘촘히 붙어 있는 그녀의 흔적을 눈으로 훑으며 방그레 웃음이 납니다. 닮고 혹은 다른 생각들을 더해 읽어내리는 책은 즐거움이 가득 부풀어 오릅니다. ‘밤’이라는 보드라운 질량에 대한 갈망으로 한참을 아껴가며 베개독서를 했습니다. 그 사이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만나기도 했구요. 아, 『빨간책방』은 책 전문 팟케스트입니다. 2회까지 올라왔는데 곧 두근콩두근콩 3회가.(야호) 영화평론가 쓰는 책 이야기니가벼우리라 생각했다면 예상보다 훨씬 다채롭고 풍요로운 이동진의 서재에 '제대로' 반할테니 준비하세요. '밤'을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더욱 더.

 

 

p. 18

말하자면 밤은 치열한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부드러운 동화가 시작되는 시간일 거예요. 괘종시계가 열두 번을 치고 나면 저마다의 가슴속에 숨어 있던 소년과 소녀가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밤에 쓴 편지를 낮에 부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낮의 어른은 밤의 아이를 부끄러워하니까요. 하지만 밤의 아이 역시 낮의 어른을 동경하지는 않을 겁니다.

 

 

편중되어 기우뚱되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균형 잡힌 그의 '책' 이야기는 자신의 해박함으로 독자를 짓누르는 법도 없습니다. 또한 자칫 감성에 젖어 놓칠 중요한 것을 잃지 않도록 유쾌한 리듬을 적절히 유지합니다. 소개하고자 하는 책의 일부를 발췌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배우가 너무 극한 감정을 쏟아내면 관객은 그 감정에 젖지 못하고 겉돌게 되는 것처럼 -  덧붙이는데 그의 텍스트가 조심히 흔들리면 나는 살금살금 감정의 웅덩이를 넘어야 했습니다. 혹여 휘정거리는 걸음의 무게가 파장을 일으키지 않도록. p.  50 떨어져서 보면 무척이나 화려해 보이는 삶이라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휘황함이 사실은 격렬한 에너지 소모와 붕괴의 흔적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p. 87 시간이 흘러 내가 기억하지 못해도 영수증은 끝까지 기억합니다. 일상의 진부했던 소재가 텍스트로 거듭났을 때 감탄과 질투가 고루 섞여서 빛깔을 가늠하기 어려운 감정이 무작정 소모되기도 합니다. 예전에 나도 그와의 데이트에서 사용되었던 영수증을 차곡차곡 모았는데 3년의 만남 후 영수증의 양이 어마어마해서 쓰레기봉투를 가득 채웠던 기억,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에도 불쑥 생각지 못했던 장소에서 발견되는 흔적이 이제는 새로운 기억이 되기도 합니다. p. 137 하지만 만일 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것은 흠 없고 고결하기 때문은 아니다. 주렁주렁 매달린 훈장이 아니라 곳곳에 감춘 흉터야말로 사랑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 당도하지 못하는 사랑, 되돌아가는 사랑, 심지어 끊어지고 마는 사랑까지 아름다울 수 있다고 강변하게 되는 근거는 명확하다. 사랑이란 도착 지점이 아니라 여정 그 자체를 일컫는 말이니까.

 

밤의 고요를 마주합니다. 또각또각 시계의 초침 소리가 분명해지는 시간, 나는 그 시간이 참 좋습니다. 가끔은 좋아하는 인디밴드의 음악을 듣기도 하구요, 더 가끔은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기도 합니다. 요즘은 소리내서 읽는 책의 기분이 좋아서 오롯이 혼자일 때가 더 많습니다. 알고 있어요? 눈의 침묵으로 읽어내린 텍스트보다 공기의 파동을 더한 텍스트가 훨씬 맛있다는 것을. 마지막 장을 덮으며 기분 좋은 포만감이 나를 감싸안습니다. 그의 서재에는 만권의 책이 있다던데 그의 또 다른 책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p.309

 

여행이나 산책이 삶에 유익한 것은 그런 건지도 모릅니다.

내가 없어도 그 자체로 아무 부족함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쓸쓸히 인정한 뒤에도,

저만치 혼자 피어 있는 꽃의 아름다움에 작은 탄성을 터뜨리는 것.

나지막하게 감탄사를 발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기회가

이 계절에 당신에게 꼭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하다.

copyright ⓒ 2012 by. Yuju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