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지향의 일본인 - 이어령글방 1 이어령 라이브러리 31
이어령 지음 / 기린원 / 198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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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일본은 산업부분에서 축소 지향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일본은 각종 시계나 오토바이 등 공업 제품을 작고 편리하며 고장이 적게 만들어 엄청난 수출을 해 왔다. 영국의 검은 우산, 미국의 카우보이 모자, 독일의 카메라 같은 각국의 상징적인 상품조차 일본에서 제조되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대로 라면, 일본이 확대 지향적이 되었을 때 언제나 패배하였다. 국내에서는 그렇게 예의를 잘 지키는 일본인들이 해외에 나가면 '여행중의 창피는 버리고 오면 된다'는 식으로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일본 국내에서는 각종 외국어를 열심히 배우지만, 외국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곳은 적다. (이것은 약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최근 신문 기사에서 일본 대학에서도 다른 나라 유학생들을 많이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외국인들도 일본어를 많이 배운다고 들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이나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것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일본이 섬나라로서 문화 발전에 어려움이 많았던 것만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문화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열등감도 상당히 강했던 것 같고, 그래서 더욱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다른 나라에게 배운 기술이나 사상을 열심히 갈고 닦아 보다 좋은 것을 만들어 내지만, 정작 자신이 창조한 것은 없다는 부끄러움은 '왜'로 불리던 옛날이나 현대 일본 모두에게 계속 따라 다녔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앞으로도 국외로 진출할 때 계속 그렇게 실패할 것인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이 글이 쓰여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이미 일본 내의 인건비가 많이 올라서 소니 같은 일본 회사도 '메이드 인 재팬'이 아니라 '메이드 인 말레이시아'인 경우가 많다. 일본계 회사들조차 여러 국적의 자본과 손잡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일본 회사'인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이 글은 현재의 일본 경제 침체를 설명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것 같다.

필자는 이미 일본에 대하여 열등감을 느끼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글에서 중점을 둔 것도 일본의 경제적 성공 부분이다. 같은 동양인으로서, 서양을 따라 잡고 혹은 서양을 능가한 일본이 너무 밉기에 이 글을 쓴 것 같다. 일본인의 축소 지향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그들의 단점을 폭로하고, 장점을 옹호하는 척 하다가 '지금의 국제화 시대에는 너희들의 축소 지향성은 쓸모가 없다. 너희는 확대 지향성이 요구될 때 모두 실패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하고 싶은 지도 모른다.

일본이 진정 축소 지향적인지, 문화를 한 가지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지, 또 정말 축소 지향적인 성향이 나쁜 것인지 좋은 것인지 혹은 둘 다 생각해야 할지 계속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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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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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주제는 '극(極)과 극은 서로 통한다.'인 것 같다. 서로 대비되는 남성과 여성, 강대국과 약소국(소련과 체코슬로바키아, 베트남과 캄보디아), 무거움과 가벼움, 보수와 진보, 육체와 영혼(혹은 정신), 사회와 개인이 아주 명확하게 구분되어 갈등하는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두 상충되는 것들은 서로 통하는 면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근대까지의 사상이 이성과 감정을 명확해 오던 것을 뒤집는 새로운 사상이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깨닫고 공산주의를 받아들인 체코가, 다시 공산주의를 ‘배신’한다고 해서 자본주의와 ‘화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것은 체코의 운명인 동시에, 여러 나라를 전전하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과, 체코 출생으로서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저자 모두에게 동시에 적용된다.

특히 스탈린의 아들이 변소를 똥으로 더럽게 하였다고 영국인들에게 모욕을 받자, 분노를 못 이겨 스스로 죽은 것을 두고도 오히려 ‘제국의 영토를 보다 동쪽으로 넓히기 위해 생명을 바친 독일인들이나 조국의 세력을 보다 먼 서쪽까지 뻗어나가게 하기 위해 죽은 러시아인들’ 보다 훨씬 형이상학적인 죽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저자가 가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회의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여러 나라를 방황하며 떠돌아다니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과 저자-어쩌면 이것은 지금 한국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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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 소나무총서 31
박현채 지음 / 소나무 / 199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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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50여년이 넘는 한국 현대사를 책 한 권으로 소화한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은 상당히 어렵다. 그리고 각 사건에 대해 자세한 설명 없이 그것을 역사적으로 해석해 놓았다. 제주 4.3사건이 '언제 어떻게 발생했다'를 설명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역사적 의미를 쓰는 식이다. 그러므로 역사에 대해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은 나중에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다양한 필자가 자기의 전공 분야에 따라 쓴 글들은 깊이가 있었고, 어느 한 견해에 치우치지 않았다. 특히 박명림 씨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 부분은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던 것들을 상당 부분 고칠 수 있게 했다.

이 책이 쓰여진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과거의 사실을 보는 견해가 많이 달라졌다. 1991년에 본 박정희와 2002년에 본 박정희가 같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 책에 쓰여진 논리적으로 정성들여서 쓴 글들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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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10 - 제3부 불신의 시대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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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주인에게 버림 받은 나복남이 복수를 결심하다가 전태일의 분신 죽음 이야기를 듣고 감동받아 복수를 포기하고 김진홍 목사가 죽어가는 환자를 들고 다니다가 병원에서 가난하다고 받아주지 않아 결국 환자가 죽게 되자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절망의 순간에서 예수님을 만나며 김선진이 고시에서 계속 낙방하다가 결국 한강에서 투신 자살하는 모습...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부분이었다.

이로써 조정래씨의 3부작을 다 읽게 되었다. 한강은 앞서 쓰여진 두 소설보다 가장 현대적이다. 그런 만큼 어떤 사실에 대해 해석을 내리기도 힘들고, 글 쓰기에서도 외부의 억압이 많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작가는 탁월한 역사의식과 좌, 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식견으로 현대를 그리고 있다. 특히 태백산맥이나 아리랑과는 달리 일상적인 개인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그려내었다. 등장인물들은 소설 속에서 생생히 숨쉬고 있어서 마치 나의 아버지나 어머니, 동네 아주머니를 소설 속에서 만나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조정래 씨의 소설은 재미있다.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와 60, 70년대의 추억거리 묘사(전차, 통금시간 통제, 장발단속), 인물들의 내면 묘사 등은 독자를 계속 책 속에 빠져들게 한다. 광주 사태 이후의 모습을 그려내지 못한 것은 아쉽다. 하지만 그것은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써 내려가야 할 몫이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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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의 라이벌 - 역비의 책
역사문제연구소 / 역사비평사 / 199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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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중심의 역사는 위험하다. 분명 그 '영웅' 뒤에는 수많은 민중의 땀과 눈물이 있었다. 몇몇의 위대한 사람이 역사를 만든다는 논리는, 역사를 겉만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를, 대립이 분명한 라이벌들을 통해 살펴 보는 것은 의미있다. 특히 일제시대와 해방 정국 시기에는 좌익과 우익, 좌익 내에서도 민족문제 를 중시하는 사람과 계급문제를 중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끝임없이 내분이 일어났기에 그렇다. 이 책은 여러 라이벌 관계를 살펴 봄으로써 과연 우리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어떻게 살아야 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부문은 김일성과 박헌영의 비교였다. 특히 박헌영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김일성과의 비교를 통해서 그의 특징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정인보와 백남운, 두 역사학자는 서로 대립되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냈다. 라이벌 관계가 꼭 부정적인 영향만을 가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인생에서 라이벌, 경쟁상대를 안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대립 관계를 넘어서 협력할 수 있다면, 오히려 자신과 경쟁상대 모두에게 도움을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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