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1 - 스완네집 쪽으로 - 콩브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1
마르셀 프루스트 원작, 스테판 외에 각색 및 그림, 정재곤 옮김 / 열화당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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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고 어려운 책에 도전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은 하였으나 그 어마어마한 양의 글과 모두가 한입으로 말하는 '정말 끝까지 읽기 힘든 책'이란 엄포에 두려움만을 가진 채 시간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르셀 프루스트라는 이름만이 기억 속에 잔재처럼 남아있을 무렵 스테판 외에라는 프랑스 만화작가가 이를 만화화한다고 화제가 되었고 '만화라면...'이라는 생각 하에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만화라고는 하지만 프루스트의 글을 고치거나 해석한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발췌해 어찌보면 원작의 축약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프루스트의 독특한 화법을 손상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와 같은 입문자들이 읽기 쉬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 전의 준비 단계인 가이드북과도 같은 역할을 해준다.

아주 우연한, 그리고 순간적으로 우리의 오감이 과거의 기억에 의해 머리 속 깊은 곳에 저장되었던 감각적인 향기에 의해 자극되었을 때 마치 컴퓨터의 입력키를 친 것처럼 쏟아져 나오는 기억의 홍수들. 작가는 그것을 잃어버린 시간이라 칭했으며 우리 모두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심지어는 죽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기억들이 내 안 깊숙한 다락방에서 주인이 언젠가 다시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그 모든 시간의 주인이였던 당사자마저 존재조차 깨닫지 못했던 그 기억의 방문을 아주 우연한 기회에 감각이라는 열쇠를 손에 얻게 되어 기억의 파편들이 다시 현재의 시간 속에서 모아지고 조립되면 재해석될 때 나의 현재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 지를 너무나 화려하게, 그리고 종횡무진으로 묘사해간다.

그리고 스테판 외에의 그림은, 글로 빽빽히 채워질 수 있는 그 엄청난 묘사들을 하나의 장면으로 간략히 표현하며 글과 그림간의 아름다운 조화와 이해를 구해낸다. 특히 시작과 끝, 그리고 중간 중간에 나타나는 주인공의 두 눈을 통한 과거가 의식의 표면에 이르는 순간에 대한 묘사는 참으로 매혹적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은 대형 박물관에 귀중히 보관되어 있는 하나 하나의 예술품처럼 감동적이며 섬세하다. 아마 스테판 외에의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끝까지 이 책을 읽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원작을 읽진 않았지만 그리고 전편을 다 읽게 될 수 있을 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꼭 그렇게 다 읽지 못한다 하더라도 스테판 외에의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프루스트를 좀 더 편안하게 만날 수 있으며 이 재창조된 그의 예술 또한 프루스트의 작품만큼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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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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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는 영문학을 전공한 친구에 의해 소개를 받았습니다. 원래는 뉴욕 삼부작을 읽고자 그 책을 구하기 위해 헤매다 결국 실패하고는 한참의 고민끝에 고른 책입니다. 폴 오스터는 이 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소탈하고 솔직하게 풀어냅니다. 친구들과 어울러 앉아 삼겹살 안주에 소주를 곁들여 가며 듣는 군대 이야기 만큼이나 개인에게 있어 특별한-타인에게 있어서는 단지 그렇고 그런 이야기- 경험이야기를 편안하고 격없이, 때로는 감상적으로 풀어내, 읽는이는 가끔은 키득거리며 동조하며 때론 지루하게 하품을 하며 부담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담을 풀어놓는 가운데, 경제공황을 지나 태어나 월남전 반전운동의 시대에 대학시절을 보내고 우드스탁과 히피 문화에 청년기를 보낸 그 시대의 젊은이들의 보편적 모습이 농담 너머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현재 미국 문학의 주류를 구성하고 있는 다른 모든 작가들처럼 폴 오스터 역시 불안했던 60-70년대의 청년기의 경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 역시 물질만능, '돈' 중심의 사회를 비판하고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토피아, 개인적으로는 글쓰기를 맘껏 할 수 있는 기회를 꿈꾸었던 자신의 모습을 빌어 그 시대의 대표적인 청년의 삶과 꿈, 그리고 현실을 치열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조화로운 삶>의 니어링 부부가 현실과 이상의 합리적 조율로 풍요로운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이 성공담을 글로 써냈던 것과 대조적으로 폴 오스터의 자전 소설은 현실(특히 돈)과의 관계에 실패하고 책의 첫머리에서 밝혔던 것처럼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그려내었습니다. '힘든 시절을 겪었지만 결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나의 이상을 지켰다'는 식의 영웅담이 아닌, 이상에 사로잡혀 있던 젊은이가 경시하고 무시했던 '돈'에 의해 그가 추구했던 삶이 어떤 좌절을 맛보고, 궁핍으로 인해 차츰 차츰 나락으로 떨어져 마침내는 부끄러움도 잊고 결국은 '돈'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야 했는지, 그리고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으로 인해 공황상태에 빠져 단지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싸구려로 팔아치우게 되는 슬프다 못해 굴욕적이기까지한 노력이 자행되었는지에 대한 작가의 솔직한 고백은 상당한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지독한 궁핍에서 극적으로 구해준 것은 그 자신이 경멸해 마지 않던 인색했던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였다는 것. 그 유산은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어 다시 안정을 찾고 그의 꿈은 계속되어 질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어떤 극적인 소설보다도 냉혹한 결말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그의 글에서는 사실적인 비참함과 더불어 그 시절을 견디었던 젊음에 대한 유머가 느껴지며 궁극적으로는 꿈을 지켰던 자신의 노력에 대한 겸손한 평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사족으로 지금은 유명 작가가 되어있는 폴 오스터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비참하고 끔찍했던 시절에 대한 글쓰기를 한 것은 글의 중반부에 나오는 크리스토퍼 스마트 상을 창설했던 기억과도 맞물려있는 것 같습니다. 그가 학창시절에 창설했던 실패자에게 주는 상, 일상적인 좌절 이나 실수가 아니라, 엄청난 타락과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가 대상이였던 상, 그 시절의 꿈을 잊지 않고 써내려간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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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6
존 르 카레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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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스파이였던 작가가 썼다는 사실, 그래서인지 다른 여느 스파이 소설처럼 완벽하고 화려한 내용이 아닌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와 서늘하기까지 합니다. 주인공 리머시는 국가를 위해서도, 이념을 위해서도 아닌 그저 직업이기에 스파이 활동을 합니다. 그리고 노년을 편안히 보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마지막
작전에 자기 자신 전부를 던져넣습니다.

계속된 거짓말과 위장으로 인해 진짜 자기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스파이, 국가와 이념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치밀한 상황조작은 물론 무고한 사람들까지 희생하는 정부 조직들, 서로를 속이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냉혹한 스파이 세계에 대한 묘사가 압권입니다.

시작부터 끝에 이르기까지의 비약없는 차근차근한 전개는 책을 읽음과 동시에 그 정보 또한 독자에게 치밀하게 전달되어 '리머스는 그 순간 오랫동안 농락당해 온 사나이의 놀라운 명석으로 이 잔인한 트릭의 전모를 알았다'는 글과 동시에 독자또한 그 모든 사건의 전모를 한순간에 파악하게 합니다. 그 순간에 느껴지는 충격은 글의 내용상의 충격 뿐 아니라 스파이 작전을 짜는 것처럼 치밀하게 계획된 작가의 글쓰기에 있습니다. 주인공 리머스와 함께 한걸음 한걸음 내딛으며, 호흡해온 독자들이 받는 충격은 리머스가 받는 충격에 완충작용 없이 100% 순도로 다가옵니다.

지금까지 나온 최고의 스파이 소설이라는 찬사가 결코 거짓이 아닌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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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여인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1
윌리엄 아이리시 지음, 최운권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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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오는 글자는 '1. 사형집행 150일전' 이라는 소제목입니다. 이 소제목으로 부터 주인공이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추측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주인공이 사형선고를 받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책읽기를 시작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독특한 '사형집행 000일전'이라는 소제목은 무의식적으로 시간에 쫓기는 강박감을 주어 책을 읽으면서 초조하게 몰입하게 되고 이 소설을 재미를 배가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핸더슨은 어느 날 밤 아내와 말다툼을 하고 집을 나와 바에서 처음 만난 여인과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게 됩니다. 서로의 개인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하고 낯선 여인과 바에서 술을 마시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극장에서 쇼를 관람한 뒤 헤어져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돌아온 후 그가 발견한 낯선 사내들... 그리고 알게 된 아내의 죽음. 모든 상황증거들은 그가 범인임을 가르키고 그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 줄 그날 밤 그 여인을 찾는데... 그 여인을 아는 사람은 한명도 없고 오히려 그날 밤 그녀와 함께 있었던 장소들에 있던 다른 증인들은 핸더슨이 혼자였다고 주장합니다. 핸더슨은 음모에 빠진 것일까요, 아니면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요.

이 책의 묘미는 다른 추리소설과는 달리 주인공의 유죄/무죄를 밝히기 위해 진범을 잡는는 데 있다기 보다 제목 그래도 주인공의 알리바이를 밝혀줄 환상의 여인이 존재하는 가 그렇지 않는 가에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진짜 환상의 여인이 존재했었던 것인지, 아니면 핸더슨의 착각으로 인해 존재하지도 않은 여인을 꾸며낸 것인지 독자도 함께 혼란스럽게 되어갑니다. 게다가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핸더슨이 아닌 그를 믿는 몇몇의 사람들에 의해 진행되다보니 소설의 짜임이 아주 독특하다는 것입니다. 즉, 소설의 초반부에서 주인공은 핸더슨이지만 후반부로 갈 수록 핸더슨이 아닌 주변 탐정(?)들의 탐문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인공이 핸더슨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즉,핸더슨의 심정에 대해 동감하면서 동시에 제 3자들의 추적행위를 상당히 객관적으로 쫒을 수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

발표된 지 오래되었고 그래서 요즘의 형사 추리물에 비해서는 약간 엉성한 면이 없지 않지만 이런 독특한 구조 덕에 한번 손에 잡으면 놓기가 쉽지 않고 정통추리소설로서의 재미를 상당히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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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이탈리아 - 낯선 곳으로의 열정
미쉘 피에르 지음, 김이정 옮김 / 효형출판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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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제목이다. 책의 내용과 제목이 이처럼 일치하기란 쉽지 않다. 이탈리아는 누구나 꿈을 꾸는 열정의 나라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한번 정도 이탈리아를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 책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풍부한 사진 자료 만큼이나 내용또한 충실하다. 이탈리아 문화, 사람, 생활, 역사, 자연 아우르지 않는 부분이 없다. 물론 내용은 깊지 못하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매력을 뽑아내는 데는 아쉬움이 없다. 이탈리아 국가의 초석이 되었던 도시국가 중심의 역사처럼 이 책의 내용 또한 도시별로 짤막하게 설명되어있다.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후 더욱 더 이탈리아에 대한 열망이 깊어진 사람에게는 이 책은 아마 도화선과도 같은 역할을 하리라. 이 책을 읽고 나서 로마, 베네치아, 나폴리, 피렌체 같은 유명도시들 뿐 아니라 구석 구석 곳곳을 여행하고 싶은 열망이 생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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