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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폴 오스터는 영문학을 전공한 친구에 의해 소개를 받았습니다. 원래는 뉴욕 삼부작을 읽고자 그 책을 구하기 위해 헤매다 결국 실패하고는 한참의 고민끝에 고른 책입니다. 폴 오스터는 이 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소탈하고 솔직하게 풀어냅니다. 친구들과 어울러 앉아 삼겹살 안주에 소주를 곁들여 가며 듣는 군대 이야기 만큼이나 개인에게 있어 특별한-타인에게 있어서는 단지 그렇고 그런 이야기- 경험이야기를 편안하고 격없이, 때로는 감상적으로 풀어내, 읽는이는 가끔은 키득거리며 동조하며 때론 지루하게 하품을 하며 부담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담을 풀어놓는 가운데, 경제공황을 지나 태어나 월남전 반전운동의 시대에 대학시절을 보내고 우드스탁과 히피 문화에 청년기를 보낸 그 시대의 젊은이들의 보편적 모습이 농담 너머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현재 미국 문학의 주류를 구성하고 있는 다른 모든 작가들처럼 폴 오스터 역시 불안했던 60-70년대의 청년기의 경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 역시 물질만능, '돈' 중심의 사회를 비판하고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토피아, 개인적으로는 글쓰기를 맘껏 할 수 있는 기회를 꿈꾸었던 자신의 모습을 빌어 그 시대의 대표적인 청년의 삶과 꿈, 그리고 현실을 치열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조화로운 삶>의 니어링 부부가 현실과 이상의 합리적 조율로 풍요로운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이 성공담을 글로 써냈던 것과 대조적으로 폴 오스터의 자전 소설은 현실(특히 돈)과의 관계에 실패하고 책의 첫머리에서 밝혔던 것처럼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그려내었습니다. '힘든 시절을 겪었지만 결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나의 이상을 지켰다'는 식의 영웅담이 아닌, 이상에 사로잡혀 있던 젊은이가 경시하고 무시했던 '돈'에 의해 그가 추구했던 삶이 어떤 좌절을 맛보고, 궁핍으로 인해 차츰 차츰 나락으로 떨어져 마침내는 부끄러움도 잊고 결국은 '돈'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야 했는지, 그리고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으로 인해 공황상태에 빠져 단지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싸구려로 팔아치우게 되는 슬프다 못해 굴욕적이기까지한 노력이 자행되었는지에 대한 작가의 솔직한 고백은 상당한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지독한 궁핍에서 극적으로 구해준 것은 그 자신이 경멸해 마지 않던 인색했던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였다는 것. 그 유산은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어 다시 안정을 찾고 그의 꿈은 계속되어 질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어떤 극적인 소설보다도 냉혹한 결말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그의 글에서는 사실적인 비참함과 더불어 그 시절을 견디었던 젊음에 대한 유머가 느껴지며 궁극적으로는 꿈을 지켰던 자신의 노력에 대한 겸손한 평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사족으로 지금은 유명 작가가 되어있는 폴 오스터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비참하고 끔찍했던 시절에 대한 글쓰기를 한 것은 글의 중반부에 나오는 크리스토퍼 스마트 상을 창설했던 기억과도 맞물려있는 것 같습니다. 그가 학창시절에 창설했던 실패자에게 주는 상, 일상적인 좌절 이나 실수가 아니라, 엄청난 타락과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가 대상이였던 상, 그 시절의 꿈을 잊지 않고 써내려간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